남자는 왜 벨루티를 만나게 되는가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취향을 아는 남자라면 인생의 어느 시기에 결국 벨루티를 만나게 된다. | 벨루티

브라운색 스웨이드 블루종. A56 사이즈. 제품 번호 146412. 벨루티 2017F/W 파리 컬렉션 제품. 신세계 본점 6층 벨루티 매장에서 다시 만났다. 브라운색 스웨이드 블루종을 처음 목격한 건 지난 6월 말이었다. 2018S/S 파리 패션 위크 출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한 시즌 전이었던 2017F/W 파리 패션 위크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벨루티 컬렉션을 살펴봤다. 디자이너 하이더 아커만이 벨루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처음 선보인 작품들이었다.하이더 아커만의 벨루티 첫 시즌에 관해선 대체로 무난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막상 그렇지도 않아 보였다. 하이더 아커만의 전임자인 알레산드로 사토리가 이끌던 시절의 벨루티에 비하면 단언컨대 자유분방했다. 1895년부터 122년째 이어져온 벨루티의 뼈대 있는 전통은 여전했다. 모델들은 하나같이 벨루티를 대표하는 알레산드로 구두와 첼시 부츠를 신고 있었다. 벨루티 브랜드는 구두에서 기원했다. 하이더 아커만도 분명 벨루티의 전통을 신고 있었다. 대신 벨루티 구두를 신은 남자에게 어울릴 만한 벨루티적 패션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상상했다.알렉산드로 사토리도 그랬었다. 정작 알렉산드로 사토리는 내내 벨루티라는 틀에 갇혀 있었다. 벨루티의 2014F/W 컬렉션만 봐도 알 수 있다. 점잔 뺀 더블브레스트 재킷이나 진지한 스리피스 슈트, 보타이를 맨 블랙 턱시도가 대다수였다. 온통 검은색과 회색과 갈색 천지였다. 사토리는 2011년에 벨루티에 합류했다. 벨루티를 이끈 지 3년이나 지난 때인데도 그랬다. 벨루티를 너무 벨루티 안에서만 상상했다.2017F/W의 하이더 아커만은 달랐다. 첫 시즌부터 용감했다. 벨루티를 신은 남자가 반드시 드레스 코드 블랙을 고집하란 법은 없다. 주황색에 와인색, 핑크색까지 등장했다. 쇼의 하이라이트는 브라운색 스웨이드 블루종이었다. 벨루티의 첼시 부츠를 신고 캐시미어 니트를 입은 하이더 아커만의 남자가 브라운색 스웨이드 블루종을 걸친 채 런웨이에 고독하게 서 있었다. 난생처음 만나는 벨루티였다. 브라운색 스웨이드 블루종은 하이더 아커만이 이끄는 새로운 벨루티의 상징과도 같았다.새로운 벨루티를 신세계 본점 6층 벨루티 매장에서 직접 입어봤다. 웬일인지 블루종이 끌려서 몇몇 브랜드를 살펴본 적이 있었다. 마음에 쏙 드는 블루종은 없었다. 이제야 만났다. 스웨이드의 감촉이 육감적이었다. 브라운 빛깔이 조명을 받더니 육식동물의 등 근육처럼 번뜩였다. 거울을 봤다. 하이더 아커만이 상상했을 법한 벨루티의 남자가 서 있었다. 고독하지만 진취적이며 로맨틱하면서 관능적인 남자가 서 있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이고 싶어 하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스스로 그렇다고 믿고 싶어 하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생애 처음으로 벨루티 구두를 장만한 건 얼마 전이었다. 파리 생토노레 매장에서였다. 파리 생토노레 매장은 전 세계 60개 벨루티 매장 중에서도 간판이다. 파리에는 3개의 벨루티 매장이 있다. 상젤리제 근방의 마메프 26번가 매장은 벨루티의 고향이다. 아버지 알레산드로 벨루티에게 가업을 이어받은 토렐로 벨루티가 1940년대에 문을 연 최초의 벨루티 매장이다. 마메프 매장이 클래식한 벨루티를 상징한다면 생토노레 매장은 모던한 벨루티를 보여준다. 고전미 가득한 목재와 대리석 인테리어로 장식한 마메프 매장과 현대적이고 미니멀하게 디자인한 생토노레 매장의 모습은 벨루티의 과거이고 현재다.생토노레 매장 1층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 문득 제러미 아이언스가 떠올랐다. 제러미 아이언스는 벨루티의 오랜 모델이었다. 벨루티의 갈색 첼시 부츠를 신은 채 똑떨어지는 벨루티 슈트를 입고 소파에 앉아서 인지 인지를 펼쳐 든 모습이었다. 벨루티 그 자체였다. 틀을 지키지만 틀에 박히지 않았고, 세월이 흘러 그만큼 나이도 먹었을 테지만 여전히 위태롭고 그래서 섹시한 남자였다. 파리의 무더위를 뚫고 생토노레 매장을 찾은 건 단지 쇼핑 때문이 아니었다. 남자가 쇼핑을 하는 건 누군가에게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새로운 자아를 찾기 위해서다. 이제 40대다. 오늘보다 어제가 더 젊었다. 오늘보다 어제가 더 용감했다. 여전히 세차게 흔들리는데 함부로 무너져서는 안 되는 나이다. 그럼에도 벨루티를 통해 구원받고 싶었다. 그럼에도 파격적이고 관능적인 남자가 되고 싶었다. 분명 패션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에 옷을 입히는 행위다.지갑이며 벨트 같은 액세서리가 진열된 1층 로비를 지나 작은 계단을 올라서 2층 응접실로 향했다. 구두를 신어보는 공간이었다. 한가운데에 1인용 가죽 소파가 놓여 있었다. 벨루티의 구두처럼 파티나로 채색돼 있었다. 파티나는 벨루티만의 독특한 구두 염색 방법이다. 광고 속 제러미 아이언스처럼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직원이 샴페인 잔을 들고 다가왔다. 역시나 루이나였다. 벨루티 매장에선 구두를 맞추러 온 고객에게 루이나 샴페인을 권한다. 오후에 즐기는 샴페인 한잔의 여유야말로 가장 벨루티적인 사치다.직원이 소파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벨루티 매장에선 낯선 풍경이 아니다. 고객에게 눈높이를 맞추는 당연한 일일 뿐이다. “어떤 구두를 원하세요?” 한국말이었다. 벨루티 고객들 사이에선 유명한 이은주 씨였다. 벨루티 생토노레 매장의 유일한 한국인 직원이면서 판매왕으로 뽑힌 적도 있는 최고의 직원이다. 원래는 알레산드로를 장만할 작정이었다. 알레산드로는 벨루티를 대표하는 구두다. 단 한 장의 가죽으로 재단했다. 바느질 자국 하나 안 보인다. 천의무봉의 구두다.문득 제대로 된 구두를 사는 건 난생처음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평생 몇 켤레의 무명 구두를 임시변통하듯 돌려 신었다. 10년 전쯤인가 제법 이름 있는 구두 한 켤레를 산 적이 있다. 이내 벗어버렸다. 고지식한 구두였다. 고지식하게 살기엔 너무 자유분방한 남자였다. 구두는 곧 그 남자다. 벨루티의 알레산드로를 사고 싶었던 것도 어쩌면 그래서였다. 단 한 장의 가죽으로 만든 파격적인 알레산드로라면 신고 싶었다. 닮고 싶었다. 알레산드로의 관능적인 곡선과 파격적인 재단을 말이다. 구두는 남자의 인생을 규정한다. 별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이은주 씨는 대뜸 몇 켤레의 알레산드로를 가져다줬다. 훌륭한 벨루티 직원에겐 손님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다.정작 인연은 따로 있었다. 몇 켤레의 알레산드로를 신어본 다음이었다. 이은주 씨에게 무심코 물었다. “저 첼시 부츠는 어떨까요?” 어쩌면 매장에 들어설 때부터 제러미 아이언스를 떠올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알레산드로를 벗고 발목까지 오는 첼시 부츠를 신었다. 벨루티의 첼시 부츠는 알렉산드로처럼 천의무봉이면서 알레산드로보다 파격적이다. 슈트에도 어울리지만 데님에는 더 잘 어울린다. 벨루티의 첼시 부츠를 신는 순간 다른 구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패션은 언제나 내면의 반영이다. 벨루티의 첼시 부츠를 신고 남은 인생을 걸어가고 싶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1895년 이후 벨루티를 찾은 모든 남자가 경험한 마술적 순간인지도 모른다. 인생의 길을 발견한 기분 말이다. 그래서 벨루티는 늘 남자에게 단순한 구두 브랜드가 아니었다. 인생의 길잡이였다.벨루티 구두를 생산하는 이탈리아 페라라의 벨루티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구두를 디자인하고 나무로 구두 틀인 라스트를 깎아 만들고 가죽 갑피를 씌우고 겉창을 덧대는 제조 과정을 차례차례 살펴봤다. 전통적 방식의 인간과 현대적 방식의 기계가 효율적으로 협업하고 있었다. 가장 전통적인 알레산드로부터 가장 현대적인 패스트 트랙까지 아우르고 있었다. 패스트 트랙은 벨루티가 만드는 스니커즈다. 벨루티답게 슈트에도 잘 어울린다. 페라라 공장의 공장장 파올로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남자였다. 셔츠 단추를 가슴골 깊숙이 풀어 헤친 차림새로 구두 제조 공정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말투엔 자긍심이 가득했다.페라라 벨루티 공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가죽을 염색하는 벨루티 특유의 파티나 과정이었다. 벨루티의 야전사령관 같던 파올로조차 섬세해지는 순간이었다. 벨루티의 파티나는 가죽을 선별하는 과정부터가 특별하다. 은근과 끈기로 상처 하나 없는 소가죽을 고르고 흉터 하나 없는 악어가죽을 선택한다. 작은 흠조차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원피 중의 원피만 벨루티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 가죽이 벨루티 특유의 천연 태닝 과정을 거쳐 베네치아 가죽으로 재탄생한다.베네치아 가죽을 개발한 사람은 알레산드로 벨루티의 손녀 올가 벨루티다. 올가는 검은색과 갈색투성이인 남자 구두에 컬러 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남자 구두가 온통 무채색이었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구두 가죽의 흠을 가리는 데에는 검은색 염료가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염색하기 전 단계의 가죽을 만드는 태닝 과정도 거칠기 짝이 없었다. 가죽의 숨구멍을 다 막아버렸다. 짙고 검은 염료가 아니면 가죽에 스며들 틈이 없었다. 올가 벨루티는 가죽을 해방시켰다. 미네랄 성분의 천연 염료로 가죽을 태닝했다. 숨구멍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 있는 소와 악어의 피부처럼 숨 쉬게 만들었다.페라라 벨루티 공장에선 이렇게 천연 태닝한 상태의 살아 있는 가죽을 직접 볼 수 있다. 정말 살결을 만지듯 보드랍다. 무결점 가죽에 천연 태닝한 베네치아 가죽은 벨루티 구두의 핵심 경쟁력이다. 이제부터 파티나다. 베네치아 가죽은 캔버스처럼 염료를 심호흡하듯 빨아들인다. 벨루티 특유의 수채화 같은 입체적인 색감이 가능한 이유다. 올가 벨루티는 이런 입체적인 색감을 활용해 남자 구두를 무채색에서 해방시켰다. 벨루티 브랜드만의 개성을 창조했다.페라라 벨루티 공장에서 파티나 실습을 해봤다. 작은 카드 지갑이 놓여 있었다. 아무런 색깔도 칠한 적 없는 순결한 베네치아 가죽 그 자체였다. 여기에 무슨 색깔을 칠할까 고민했다. 가을하늘 같은 푸른색일 수도 있고 붉은 노을 같은 적갈색일 수도 있었다. 검은색을 선택했다. 파올로조차 놀라는 눈치였다. 올가 벨루티는 베네치아 가죽과 파티나로 남자 구두를 검은색에서 해방시켰다. 검은색은 벨루티에선 오히려 낯선 색이었다. 그냥 검은색이 아니었다. 멀고 먼 심우주의 검은색이었다. 깊고 깊은 심해저의 검은색이었다. 베네치아 가죽과 염료의 조화는 마법 같았다. 검은색을 덧칠할수록 검디검은 검은색이 우러나왔다. 너무나도 검기에 어두움에서 빛이 우러나오는 창백한 검은색 말이다. 남자의 내면이었다.파리 생토노레 매장에서도 결국 검은색 첼시 부츠를 장만했다. 페라라 벨루티 공장에선 미처 빚어내지 못한 진실로 창백한 검은색이었다. 견습공조차 못 되는 파티나 실력으론 어림도 없었다. 생토노레 매장에서 끝내 발견한 검은색 첼시 부츠는 예술 작품이었다. 분명 검은색이지만 흑빛이 아니었다. 검은색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검디검기에 밝디밝은 검은색이었다. 페라라 공장에서 만든 카드 지갑을 주머니에서 꺼내봤다. 공장을 다녀온 이후 줄곧 지니고 다녔다. 남자가 물건을 사랑하는 건 비싸서가 아니다. 자신과 닮아서다. 벨루티의 검은색 파티나는 그렇게 거울보다 더 투명하게 남자의 내면을 반영하고 있었다. 벨루티의 첼시 부츠를 보고 첫눈에 반했던 것도 단지 첼시 부츠 특유의 야성미 때문만은 아니었다. 벨루티의 검은색 파티나가 창백한 내면의 색깔과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예전에 살던 집을 온통 검은색 벽지로 도배했었다. 집에 앉아 있으면 창백한 심우주 속을 홀로 유영하는 듯했다. 올가 벨루티는 남자가 구두에서 자기만의 영혼의 빛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줬다. 단지 구두의 색을 해방시킨 게 아니었다. 남자의 영혼을 해방시켰다. 영혼의 색깔을 찾아줬다. 벨루티 생토노레 매장에서 영혼을 닮은 첼시 부츠를 들고 나왔다. 남자는 옷이나 구두가 아니라 영혼을 쇼핑한다.첼시 부츠가 든 가방을 들고 생토노레에서 상젤리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당장 청바지를 하나 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벨루티 첼시 부츠와 어울릴 만한 데님 바지가 숨 가쁘게 필요했다. 파리 출장 트렁크 안에 하필 데님 바지가 하나도 없었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 하나의 쇼핑 아이템이 다른 쇼핑 아이템을 도미노처럼 소화하는 경우 말이다. 스스로를 완성하고 싶어서다. 첼시 부츠에 어울리는 청바지를 입고 남색 티셔츠를 입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남자에게 패션은 자아실현이고 쇼핑은 자기 수양이다.창백한 검은색 첼시 부츠에 데님 바지를 입고 파리 화폐박물관에서 열린 2018S/S 벨루티 쇼를 보러 갔다. 2018S/S 시즌은 하이더 아커만에겐 두 번째 시즌이었다. 하이더 아커만은 첫 번째 시즌보다 더 과감해져 있었다. 시종일관 편안한 옷차림이었다. 헐렁한 바지와 가벼운 셔츠였다. 여전히 알레산드로와 첼시 부츠를 신고 있었지만 가죽 샌들까지 등장했다.몇 달 전 하이더 아커만이 와의 인터뷰에서 들려준 말이 떠올랐다. “보통의 남자가 흥미로워요. 제가 쇼에 올린 건 모델이 아니에요. 고독한 남자들이죠. 벨루티는 이미 가장 꼭대기에 있는 브랜드예요. 전 점잖은 벨루티를 좀 더 일상으로 끌어들이고 싶었어요.” 과연 일상적인 옷들이었다. 2017F/W 시즌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었다. 시즌마다 일맥상통하는 부분은 또 있었다. 스웨이드 소재다. 하이더 아커만은 유난히 스웨이드를 사랑한다. 스웨이드의 촉감이 피부의 감촉과 가장 닮아 있기 때문이다.하이더 아커만의 스웨이드가 올가 벨루티의 베네치아 시대를 뛰어넘어 서로 소통한다. 베네치아 가죽으로 만든 올가 벨루티의 구두는 동시대 남자들을 자유롭게 해줬다. 벨루티 패션의 스웨이드 가죽은 벨루티 구두의 베네치아 가죽이다. 벨루티를 상징하는 소재들이다. 보기에 따라 변화무쌍한 스웨이드 가죽의 빛깔은 베네치아 가죽을 채색한 파티나와도 이어진다. 올가 벨루티는 새로운 소재와 새로운 색깔로 당대의 남자들을 사로잡았다. 구두와 옷이라는 장르는 다를지라도 하이더 아커만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가죽으로 외피를 감싸고 특별한 색깔로 내면을 표현하고자 하는 남자의 욕망은 어느시대에나 똑같다.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 4층 벨루티 매장에서 브라운색 스웨이드 블루종을 다시 만났다. 갤러리아 백화점 벨루티 매장 한가운데엔 소파가 하나 놓여 있다. 생토노레 매장 2층에 놓여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소파다. 벨루티의 다른 제품들을 둘러봤다. 원쥬르와 투쥬르 같은 여행용 가방이 우선 눈에 띄었다. 요즘 자꾸만 백팩보다 보스턴백이 끌린다. 열일하는 백팩적 인생보단 태평해 보이는 보스턴백적 삶을 살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공전의 히트작이었던 벨루티 아이폰 케이스에도 호기심이 생겼다. 파티나로 채색한 가죽 케이스였다. 과거엔 지갑이 남자를 설명해줬다. 그러나 지갑도 휴대폰 안으로 들어와버린 요즘 시대엔 휴대폰 케이스가 남자를 말해준다. 담배 케이스와 라이터 지갑까지 있었다. 정말 벨루티엔 남자를 위한 거의 모든 것이 있다. 이쯤 되면 벨루티 매장은 남자들을 위한 놀이터다. 그래도 눈길은 자꾸만 브라운색 스웨이드 블루종에 꽂혔다. 9월이 되면 창백한 검은색 첼시 부츠와 함께 입고 싶었다. 이제 왜 그토록 스웨이드 블루종을 갖고 싶었는지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었다. 벨루티의 전통을 신고 벨루티의 미래를 입고 싶었다. 과거를 딛고 미래로 향하는 남자처럼 말이다.벨루티의 첼시 부츠는 알렉산드로처럼 천의무봉이면서 알렉산드로보다 파격적이다. 슈트에도 어울리지만 데님에는 더 잘 어울린다. 그렇게 거울에 비친 자신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패션은 언제나 내면의 반영이다.소파에 앉아서 갤러리아 백화점 벨루티 매장의 임승빈 매니저와 한담을 나눴다. 오다가다 매장 매니저와 친구처럼 우정을 나누는 건 파리 벨루티에선 흔한 일이다. 심지어 대를 이어서 친구가 된다. 루이나 샴페인은 없었다. 여긴 파리가 아니다. 임승빈 매니저는 2006년부터 벨루티에서 일했다. 벨루티가 한국 시장에 처음 들어온 게 2004년이다. 한국 벨루티의 산증인인 셈이다. 임승빈 매니저는 말했다. “벨루티 브랜드가 지난 몇 년 동안 빠르게 변화한 건 사실입니다. 하이더 아커만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오고 나서 변화의 속도가 더 빨라졌죠. 저처럼 오래전부터 벨루티를 알았던 직원과 고객 모두 처음엔 당황했을 정도예요.” 어느새 임승빈 매니저는 페라라에서 만들어 온 카드 지갑을 닦아주고 있었다. 한번 벨루티 고객이 되면 평생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닦아주고 고쳐주다 결국엔 새것처럼 부활시킨다. 좋은 가죽과 좋은 염료를 쓰는 벨루티 제품만이 그렇게 새로 태어날 수 있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 근처 벨루티의 비스포크 공방을 방문했던 기억이 났다. 알레산드로 벨루티 시절처럼 구두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공들여 구두를 만들고 있었다. 공방 한쪽엔 특별한 손님들의 발 치수가 기록된 구두 라스트가 놓여 있었다. 공정은 페라라 공장과 흡사했다. 주문받은 구두 하나하나에 들이는 정성은 공장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어쩌면 고객과 평생을 함께할 구두였다. 구두와 함께 평생 공방을 찾을 고객들이었다. 갤러리아 백화점 벨루티 매장에도 분명 그런 문화가 녹아들어 있었다. 임승빈 매니저는 말했다. “그러다 새로운 벨루티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러자 기존 고객들도 설득할 수 있는 자신이 생겼지요. 제가 변화를 받아들이자 고객들도 저를 믿고 변화한 벨루티를 받아들이더군요. 지금은 하이더 아커만의 신상품을 서로 먼저 찾으세요. 또 예전과 달리 매장을 찾는 손님들이 정말 다양해졌어요.”한국 시장에 벨루티적인 남자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었다. 파리에선 1970년대에 올가 벨루티가 뿌리내리게 한 남성적 취향의 세계다. 올가 벨루티는 클럽 스완이라는 남성 사교 모임도 만들었다. 클럽 스완은 전 세계 벨루티를 돌며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017년엔 도쿄에서 열렸다. 벨루티는 일본에서 유난히 인기가 높다. 일본 남자들은 한국 남자들에 비해 취향이 한 세대는 앞선다.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간과 돈도 훨씬 많다. 이제 다음은 한국 남자들 차례다. 벨루티는 남성적 멋의 완성이다. 임성빈 매니저는 말했다. “지난 십수 년 동안 벨루티에서 일하면서 많은 고객을 만났습니다. 벨루티를 좋아하지만 다른 브랜드에 대한 호기심으로 옮겨가는 분도 많았어요. 하지만 결국엔 다시 벨루티로 돌아오셨어요. 벨루티는 남성 취향의 종착역 같은 브랜드입니다.” 취향을 아는 멋있는 남자라면 인생의 어느 시기에 벨루티를 만나게 된다. 한번 벨루티를 알면 언젠간 반드시 벨루티로 돌아오게 된다.갤러리아 백화점 벨루티 매장 소파에 앉아서 알레산드로 구두를 살펴봤다. 다 같은 알레산드로가 아니었다. 올가 벨루티 시절의 알레산드로는 파티나는 화려하지만 형태가 좀 더 점잖았다. 알레산드로 사토리 시절의 알레산드로 구두도 있었다. 여전히 뭉툭했다. 하이더 아커만이 디자인한 알레산드로는 더없이 뾰족하고 섹시했다. 파티나 역시 강렬해졌다. 벨루티는 어제보다 오늘이 더 젊은 미중년의 나쁜 남자 같았다. 그날, 벨루티 브라운색 스웨이드 블루종을 주문했다. 그렇게 일상을 살아가는 고독한 남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