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의 재구성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엄마가 없어도 괜찮은 집밥을 차릴 수 있다. | HMR,가정 간편식,반찬 배달,배달의 민족

멀리 찾아가지 않아도 유명 식당의 반찬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은 덤이다. 서툰 솜씨지만 반찬은 집에서 만들어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올여름은 더워도 너무 더웠다. 도저히 불 앞에 설 자신이 없어 진작에 요리를 포기했고, 종일 집에 있는 날이면 대충 비빔면이나 비벼 먹었다. 그 생활을 두어 달 지속하여 물릴 때쯤 눈에 들어온 것이 있다. ‘모바일 반찬 가게’라는 낯선 개념의 서비스. ‘모바일’과 ‘반찬 가게’를 붙여 발음하니 입안에서 서로 상치되어 덜그럭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원리는 매우 간단했다. 모바일 앱으로 먹고 싶은 반찬을 고른 후 주문 버튼을 누르면 다음 날 혹은 그다음 날 새벽 집 앞에 도착한다. 당일 배송이 불가한 이유를 찾아보니 주문 즉시 조리하기 때문이라고. 솔깃한 마음에 모바일 반찬 가게를 표방하는 업체 중 가장 익숙한 배달 앱을 이용하여 주문해봤다. ‘배달의민족’에서 운영하는 ‘배민프레시’는 반찬 종류가 어찌나 많은지 고르느라 한동안 애먹었다. 장바구니에 수십 종을 담았다 빼기를 수차례 반복한 후 최종 관문을 통과한 반찬들이 다음 날 아침에 당도했다.일단 포장 상태에 합격점을 주고 싶었다. 반찬 국물은 물론 냄새까지 샐 틈 없이 깔끔하게 밀봉한 데다 냉장 온도도 잘 유지돼 있었다. 실제로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 절반을 아이스 팩이 차지했고, 당장 냉장고에 넣어야 할지 아니면 이대로 둬도 되는지를 가늠해주는 온도계가 부착돼 있었다. 냉장고에 대충 반찬을 넣은 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7시쯤 귀가했다. 냉장고에서 후다닥 반찬을 꺼내 데울 건 데우고 식탁을 차리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 물론 그릇에 옮겨 담지 않았다면 더 단축됐을 터이다. 순간 집에서 이렇게 많은 반찬을 마주한 게 얼마 만인가 싶었다. 아니, 처음이지 않을까. 간도 밖에서 사 먹는 것처럼 세지 않으면서 대체로 깔끔하고 담백했다. 해가 채 지기도 전에 식사를 끝낸 덕에 여유롭게 과일도 깎아 먹었다. 물론 설거짓거리도 단출했다. 이제야 이 서비스에 눈을 뜬 내 자신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편리했다.때마침 한국야쿠르트도 ‘잇츠온’이라는 모바일 배달 서비스를 개시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모바일로 반찬을 주문하면 야쿠르트 아줌마가 직접 배달한다고 했다. 지난해 ‘아줌마 찾기’를 하기 위해 한국야쿠르트 앱을 깔기도 했던 사람으로서 아줌마가 직접 건네주는 반찬을 먹는다는 사실이 새로운 흥밋거리로 다가왔다.당장 앱에 들어가보니 단 하나를 주문해도 무료 배송하고 배달 희망 시간도 정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지정한 시간에 초인종이 울렸다. 야쿠르트 아줌마였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손에서 손으로 물건을 건네받는 그 순간이 꽤나 즐거웠다. 하지만 반찬 맛은 평이했다. 반찬 종류도 배민프레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 사실 잇츠온은 식품 제조 유통 업체 ‘아워홈’으로부터 반찬을 납품받는 것이지, 실제로 제조하지 않는다. 아워홈은 쇼핑몰 푸드코트, 회사 구내식당, 학교 급식을 통해 자주 접하는 업체이다. 그만큼 새로운 맛을 기대하기 어렵다. 두 브랜드를 놓고 저울질할 즈음 동원이 운영하는 ‘더반찬’도 궁금해졌다. 브랜드 반찬 검색 점유율이 가장 높다는 더반찬은 지난해 7월 회원 수 26만 명에 달하는 동명의 반찬 배달업체를 동원이 인수한 것으로, 현재 회원 수가 30만 명으로 늘었다. 이쯤 되니 우리를 주방에서 해방시킬 배달 반찬, 즉 가정 간편식(HMR, Home Meal Replacement) 시장이 궁금할 따름이다.가장 인상적인 점은 가정 간편식 시장의 규모였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가정 간편식 시장 규모는 3조원에 달할 전망이라고 한다. 이는 국내 맥주 시장에 준하는 규모다. 나는 이제야 겨우 입문한 이 시장이 언제 이렇게 성장했는지 의아했다. 그리하여 찾아본 가정 간편식은 맥주처럼 단일 품종을 뜻하는 게 아닐뿐더러 그 범주가 상당히 방대했다. 편의점에서 쉽게 보는 도시락, 샌드위치, 삼각김밥은 물론 냉동 만두, 피자, 돈가스, 즉석 카레 등 너무도 익숙한 레토르트 식품이 모두 가정 간편식에 속한다. 멸균하지 않은 냉장 상태의 반찬은 그 시장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김치나 김처럼 기본 반찬을 사 먹는 일은 익숙해도 선택지나 마찬가지인 반찬을 사 먹는 일은 아직 익숙하지 않다. 구매가 이뤄지더라도 동네에서 영업하는 반찬 가게이고, 품목도 나물이나 간단한 밑반찬에 그친다. 상황이 이러하니 더욱이 신선 반찬의 시장 규모를 측정할 길이 없다. 그 와중에 대기업 한둘이 기존의 소규모 반찬 배달업체를 인수하며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다.“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0년 422만 가구였던 1인 가구 수가 2015년에는 520만 가구로 100만 가구 이상 늘어났다고 합니다. 오는 2045년에는 809만3000가구로 전체 가구 수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할 거라고 예상하고요. 향후 1인 가구나 ‘혼밥족’ 외에도 물가 상승, 시간 및 경제적 효율성을 고려하는 소비층이 확대됨에 따라 간편식 시장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합니다.” 한국야쿠르트가 배달 반찬 시장에 진출한 배경을 홍보실 김근현 과장이 통계청 발표를 근거로 설명했다.‘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서’라는 이상 아래 배달 음식 주문 앱 배달의민족을 개발, 운영해온 기업이 반찬을 모바일 앱을 통해 주문, 배송하는 일은 매우 자연스러운 행보로 여겨진다.동원이 배달 반찬 시장에 집중한 이유는 확장성이다. “동원은 식품 관련 공장을 건립하는 등 식품 생산에 대한 기술력과 신선 식품 유통 및 물류에 대한 경험치를 꾸준히 쌓아왔습니다.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올해 서울에 대규모 조리 공장을 건립했습니다.” 동원그룹 홍보실 김일규 팀장의 설명이다. 동원그룹은 개별 가정을 대상으로 한 반찬 배달을 넘어 학교 등의 시설과도 계약해 B2B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사람들은 ‘동원’ 하면 단순히 참치 캔을 떠올리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유제품, 축산업, 조미 제조업 등 식품업계에서 손이 닿지 않은 영역이 없다.이 두 기업이 신규 사업을 추진하며 구매 접점으로 모바일에 집중한 이유는 굳이 분석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집도 온라인으로 사고파는 세상이니. 그런데 배달 반찬 사업은 꼭 모바일이어야 하는 특수성도 있다. 한식은 기본적으로 반찬의 가짓수가 많아 선택의 폭이 굉장히 넓다. 대규모 배달 반찬업체들에게 ‘다품종 소량 생산’과 ‘주문 후 조리’는 선택이 아닌 필연의 문제인 셈이다. 진열대를 비워놓은 채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할 수도, 임의로 반찬을 만들어놓고 손님이 고르기만을 기도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므로 일단 온라인으로 시장의 추이를 분석한 후 오프라인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한편 IT 기업에서 푸드테크 기업으로 거듭난 ‘우아한형제들’이 모바일 반찬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 이유는 백분 납득이 간다.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서’라는 이상 아래 배달 음식 주문 앱 배달의민족을 개발, 운영해온 기업이 반찬을 모바일 앱을 통해 주문, 배송하는 일은 매우 자연스러운 행보로 여겨진다.“배민프레시 앱을 개시할 때 처음에는 ‘프레시’라는 이름 아래 팔 수 있는 모든 신선 제품을 망라했어요. 빵, 과일, 주스, 유제품, 그래놀라 등 종류가 다양했지요. 앱을 운영하며 FGI(Focus Group Interview) 등의 방법으로 고객과 꾸준한 만남을 유지한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밥으로 한식을 원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어요.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걸 빠르고 다양하게 제공하고자 올 초 반찬 가게로 전환했습니다. 물론 저희가 가장 자신 있는 품목이 반찬이기도 했고요.” 배민프레시 FC사업기획팀 김지훈 책임의 설명이다.그러한 맥락으로 협력사였던 15년 경력의 배달 반찬업체를 인수한 배민프레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도시락 연구에 매진해온 셰프들을 영입했다. 모던 한식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옹수민 셰프가 대표적 인물. “도시락 전문점 ‘옹가솜씨’를 인수하며 옹 셰프님이 저희 회사 소속이 되었어요. 고급 도시락을 만들어온 옹 셰프님은 차갑게 식은 음식을 다시 데우거나 그대로 먹을 때 본연의 맛을 잃지 않게 하는 법을 오랜 시간 연구해온 분이에요.” 현재 옹수민 셰프를 포함한 7명의 셰프 군단이 배민프레시 상품을 개발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배민프레시의 서비스 중 가장 놀라운 점은 반찬 가짓수다. 그 수가 800여 종에 달하며, 멸치볶음만 해도 20종이 넘는다. (물론 이들 모두를 동시에 판매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멸치볶음을 먹도록 권할 순 없다.” 배민프레시가 이렇듯 다양한 제품 개발, 판매에 치중하는 이유를 김지훈 책임은 이렇게 설명했다. 그렇다. 입맛이라는 건 참으로 개인적인 기호이며, 이는 대체로 자라면서 먹어온 집밥에서 형성된다. 가족이 해주는 집밥을 먹을 수 없을 때 차선책으로 택하는 게 배달 반찬이다. 그러므로 최대한 집밥과 유사한, 입맛에 맞는 반찬을 찾아주겠다는 이야기다. 취지는 좋으나 현실에 옮기기 영 어려워 보이는 이 선택을 실현 가능하게 해준 배경에는 배민프레시만의 독특한 공급 구조가 있다. “저희가 반찬을 개발, 조리하는 방법은 총 세 가지로 나뉩니다. 저희가 레시피를 개발하여 직접 제조하는 방법과 오프라인의 유명 식당이나 반찬 가게와 협업하여 레시피를 개발해 저희 공장에서 제조하는 방법, 그리고 그 업체에서 직접 조리한 음식을 저희가 대신 유통하는 방법입니다.” 공급 루트가 세분화돼 있기에 보다 더 다양한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것이다. 멀리 찾아가지 않아도 유명 식당의 반찬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은 덤이다.맛은 평이하지만 푸근한 아주머니가 따뜻한 미소와 함께 건네주는 반찬, 고스란히 흡수한 전통 강호의 노하우에 대기업의 자본이 더해진 충실한 기본기의 반찬, 보다 세심하게 입맛을 배려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는 반찬 중 어느 것을 택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 모두가 우리를 주방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줄 거라는 점이다. 물론 그 자유로움이 필요한 순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