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스맨'이 브랜드를 만든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영국 스파이 영화가 인터넷 쇼핑몰 브랜드가 되어 한국 소비자를 찾아간다. | 킹스맨

2017년 5월 25일 서울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코너 스위트룸의 닫혀 있던 방 안에 몇 명의 사람이 있었다. 초대장을 받은 사람이 두드릴 때만 문이 열렸다. 방 안에는 산업 기밀이나 고문서 같은 게 아니라 옷이 있었다. 영화 (이하 )의 속편인 (이하 ) 컬렉션을 발표하는 날이었다. 영국 온라인 쇼핑몰 미스터포터가 주관한 행사였다. 미스터포터의 아시아태평양 지사인 홍콩 사무실에서 이 행사를 준비했다. 한국의 패션 및 라이프스타일 잡지 에디터만 이 행사에 초대를 받았다. 왜 미스터포터는 한국에서 의 옷을 소개했을까? 데이터가 나왔기 때문이다. 데이터로 봤을 때 은 한국을 외면할 수 없다. 한국은 의 최상위권 흥행국이다. 박스오피스모조닷컴에 따르면 은 8100만 달러를 투자해 만들어 4억1435만1546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렸다. 그중 미국 시장 매출은 전체의 31% 정도다. 매출의 70%에 가까운 2억8608만9822달러가 타 국가에서 발생했다. 그중 최고 매출 국가는 중국. 7466만7000달러 매출이 나왔다. 한국이 2위다. 한국은 4688만5460달러 매출을 기록했다. 매슈 본도 자신의 영화가 동아시아에서 이렇게 인기를 끌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데이터가 나온 분야는 박스오피스만이 아니다. 의류 판매 데이터로 봐도 한국은 소중했다. 한국은 미스터포터의 킹스맨 라인이 가장 많이 팔린 나라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한국에 사무실도 없는 미스터포터가 굳이 한국에서 신제품 발표회를 연 데에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 그나저나 영화에 웬 의류 판매 데이터?“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말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 구절에서부터 출발한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건 하나의 주장일 뿐이다. 다만 사람은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말하는 영웅이 나오는 이야기를 만든다. 21세기에는 그 이야기에 옷이 실려 관객에게 흘러간다. 메시지가 실린 이야기가 사람을 움직이는 건 인류 역사상 계속 일어났던 일이다. 21세기에는 그 이야기의 힘이 신기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스파이의 스타일 레슨의 줄거리는 신사 해리 하트(콜린 퍼스)가 노동 계급 비행 청소년인 에그시 언윈(태런 애저턴)에게 전해주는 스타일 레슨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명대사는 같은 잡지에서 말하는 스타일 레슨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하다. “옥스퍼드, 브로그 말고”, “정장은 현대 신사의 갑옷이다” 같은 말은 남성 잡지 독자라면 잡지에서 몇 번씩은 봤을 말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리 설정이 새빌 로의 양복점 출신 비밀 스파이라고 해도 너무 광고 문구 같은 말 아닐까?에 나온 거의 모든 옷은 구입할 수 있었다. 영화가 흥행해서 다급히 만든 옷이 아니다. 해리 하트가 입었던 날씬한 더블브레스트 정장, 대사에 나온 검은 옥스퍼드 슈즈, 멀린(마크 스트롱)이 썼던 안경, 킹스맨의 요원 훈련 과정에서 에그시가 입었던 울 점프슈트까지 다 살 수 있었다. 의 크리스 로브자르가 이 과정에 대한 기사를 썼다. 디즈니랜드에 가면 캐릭터 상품 같은 걸 살 수 있다. 의 등장인물이 입고 나왔던 옷도 비슷한 개념이다.디즈니랜드 기념품과 킹스맨 의류의 차이는 품질이다. 보통 영화에 나오는 물건이 상품화되면 코스튬 플레이 이상은 하기 힘들 정도로 품질이 조악하다. 킹스맨의 이름으로 팔리는 옷은 현실 세계에서도 최고급품이다. 킹스맨이 총알을 막던 우산은 스웨인 애드니가, 구두는 조지 클레벌리가, 셔츠는 턴불 앤 아서가, 안경은 커틀러앤그로스가 만든다. 모두 역사와 전통이 있는 최고급 의류 및 장신구 브랜드다. 적어도 소재 면에서는 증권시장 개장 시간에 맞춰 출근하는 투자사 이사님이 출근길에 입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고급스럽다.영화 은 미스터포터에서 판매하는 의류 브랜드 ‘킹스맨’을 낳았다. 기사에 따르면 이는 영화를 만들기 전부터 계약된 사항이다. 영화 의상 디자이너 아리앤 필립스와 미스터포터 구매총괄 담당 토비 베이트먼이 실무를 진행했다. 이때는 의 성공 여부나 속편 제작 여부도 알 수 없었지만 ‘킹스맨’ 브랜드는 영화 의 흥행과 속편 제작 여부와 상관없이 계속 나오기로 계약되어 있었다. 미스터포터 측에서는 킹스맨 브랜드에 ‘코스튬 투 컬렉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돈을 벌 수 있는 창구가 다양해지면 사업하는 입장에서는 좋다. 영화 속 의상이 브랜드화되는 건 21세기와 잘 어울리는 신규 사업이다. 반대로 감독 입장에서 킹스맨 브랜드는 거추장스러운 PPL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감독은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장면까지만 넣고 싶었는데 브랜드 노출 압박 때문에 “정장은 현대 신사의 갑옷이다”라는 장면까지 찍어서 넣어야 했을 수도 있다. 할리우드 감독마저 PPL에서 자유롭지 못한 걸까.에는 반전이 있었다. 킹스맨의 수장 체스터 킹(마이클 케인)이 악당과 한편이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여기에도 의외의 요소가 있다. PPL 전략을 처음 낸 사람이 감독이었다는 게 이 이야기의 작은 반전이다. 매슈 본은 영화에서 파생될 수 있는 보다 발전된 상업적 프로젝트를 생각하다 영화 속 스파이의 옷장을 실제로 만들기로 했다.킹스맨은 007의 충실한 벤치마킹이기도 하다. 스토리 면에서 은 007 시리즈를 코믹하게 발전시킨 스파이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007은 스파이 캐릭터가 스타일 아이콘이 될 수 있다는 증명이었다. 남자들은 007이 찬 롤렉스 서브마리너를 차고, 거기에 007이 실제로 끼운 나토 스트랩을 끼웠다. 지금의 007은 그때에 비해 훨씬 세속적이다. 대니얼 크레이그가 입고 걸치는 스파이 유니폼은 전부 다 협찬이다. 정장은 톰 포드, 속옷은 선스펠, 구두는 크로켓 앤드 존스, 시계는 오메가, 차는 애스턴 마틴. 가 개봉할 때쯤 영국 은 “제임스 본드는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스파이인 것과 별도로 바쁜 세일즈맨처럼 보인다”라고 썼다. 의 첫 장면에서 군중 속에 있는 007이 스파이답지 않게 튀는 톰 포드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데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킹스맨 의류 브랜드 역시 007 시리즈 PPL을 진지하게 발전시킨 모델이다. 즉 영화 은 ‘스파이의 옷을 실제로 판매되는 고급 의류 브랜드로 만들어 판매한다’는 의류 브랜드 킹스맨을 보여주는 필름이기도 하다.3인조이 아이디어가 제대로 구현되려면 세 명이 필요하다. 이야기를 짜는 자, 옷을 입히는 자, 공급책. 매슈 본이 이야기를 잘 만든다는 건 이미 검증됐다. 거기 더해 킹스맨과 007의 차이점은 현장 스태프의 의상 이해도다. 007의 선글라스와 킹스맨의 선글라스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영국의 국적성을 드러낼 거라면 톰 포드 선글라스 같은 건 씌우면 안 된다. 영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미국 선수를 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매슈 본은 여기서부터 007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매슈 본은 ‘브리티시 니치 럭셔리’ 브랜드의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영국의 전통적인 셔츠 메이커 턴불 앤 아서는 와의 메일 인터뷰에서 “매슈 본의 아버지가 우리 브랜드 가운을 갖고 있더라”고 이야기했다. 킹스맨의 은거지로 묘사되는 양복점 역시 런던 새빌 로에 실제로 있는 양복점 헌츠맨이다. 매슈 본은 여기서 어릴 때 정장을 맞춘 기억이 있다고 한다. 매슈 본의 환경인 영국의 국적성이 영화를 만드는 데 잘 쓰인 경우다.옷을 좋아하고 이해하는 것과 전문 스태프를 꾸리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제대로 된 옷을 만들고 입히려면 확실한 이쪽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매슈 본은 아리앤 필립스라는 전문가를 모셨다. 아카데미 의상상 후보에 2회 선정되고 마돈나의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는 의상 제작자다. 는 그녀와의 메일 인터뷰를 통해 과 그녀의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에는 대사가 있는 배역이 최소 100명 나와요.” 그녀는 영화 한 편에 들어가는 의상 디자이너의 노동량을 설명해주었다. “대본에 따라 달라지지만 은 저 등장인물이 최소 한 벌의 의상을 입어요. 캐릭터도 20명은 되고, 엑스트라도 있어요. 를 위해 만든 옷은 1000벌 정도 돼요.”그녀에게도 같은 프로젝트는 큰 도전이었다. 영화 속 등장인물이 입고 나오는 옷을 대량생산하려면 생각보다 훨씬 기초적인 단계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영화 의상을 만드는 건 내 일이니까 쉽죠. 영화 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의상 컬렉션을 만드는 건 완전히 처음 하는 일이었어요. 전에 해본 일이 아니었지요. 의상과 킹스맨 의류 브랜드를 하면서 가장 중요시했던 건 영화에 나오는 원단과 판매하는 옷의 원단이 같아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그녀 역시 이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원단을 발주했다. 영화 속 의상과 실제 판매하는 상품이 똑같아야 했고, 그러려면 대단위의 원단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이 훌륭한 이유 중 하나는 현실적인 캐릭터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에그시와 친구들, 킹스맨 시험을 같이 보는 좋은 집안의 자녀,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명대사가 나오는 싸움 장면에서의 건달들, 이런 사람들은 굉장히 현실적으로 보인다. 적합한 의상을 입힌 덕분이다. 에그시의 차브(chav)풍 옷차림, 부잣집 아들이 허리에 두른 에르메스 벨트의 H 로고, 이 모든 작은 요소가 모두 아리앤 필립스의 의도다. 상업적인 컬렉션 의상을 디자인해야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본래 역할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영화가 먼저고 컬렉션은 그다음이에요. 우리는 이야기의 진행을 돕고 캐릭터를 형성하는 옷을 디자인합니다. 의상은 영화 제작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도구 중 하나예요. 의상은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줄 수 있어요. 그들의 배경, 영화에서 말하려는 것, 분위기와 느낌까지도요. 에 나온 의상은 모두 그런 기능이 있었고 매슈 본 감독과의 회의를 거쳐서 정해진 옷입니다. 우리의 모든 옷은 그 옷을 입은 우리의 의도를 반영해요. 우리에 대해 많은 걸 말해주죠. 그게 영화 의상 디자인이에요.”아리앤 필립스의 영화 의상 제작 철학은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그녀의 말대로 옷은 사람의 캐릭터를 형성한다. 동시에 옷은 그 사람이 옷을 입은 의도를 보여준다. 옷과 사람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서로의 이미지를 만든다. 옷이 사람의 캐릭터를 만들지만 사람이 그 옷의 캐릭터를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마크 주커버그의 갭 후디나 스티브 잡스의 이세이 미야케 터틀넥이다. 멋있는 사람, 성공한 사람의 옷은 그게 뭐라도 멋있어 보인다. 의 더블브레스트 정장이 인기를 끈 근본적인 이유다. 훌륭한 이야기는 캐릭터에게 정당성을 준다. 캐릭터는 옷을 입고 있다. 이야기 덕분에 옷까지 멋있어진다. 와 인터뷰를 나눈 로저 드뷔 CEO 장 마크 폰트로이도 말했다. “스토리텔링을 개발한다. 무브먼트나 고급 소재를 넘어서, 이야기를 만들어 우리를 정당화시킨다.”옷을 이해하는 영화감독과 이야기의 힘을 이해하는 의상 디자이너가 서로의 일을 잘 해내면 영화 속에 나온 멋진 옷이 갖고 싶어진다. 사업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유통 전문가가 필요하다. 실제로 그 영화에 나온 물건을 만들거나 구해 와야 한다. 팔릴 만한 수량의 물건을 가져다 놓아야 한다. 킹스맨 브랜드는 고가니까 비싼 물건이 팔릴 수 있을 만큼 세련된 홍보 전략도 써야 한다. 여기서 영국의 쇼핑몰 미스터포터가 등장한다.영화감독이나 의상 디자이너에 비해 유통 브랜드 측의 역할이 약해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는 반대다. 매슈 본과 아리앤 필립스가 영화 속에서 만들어낸 건 엄밀히 말하면 다 허구다. 스토리와 이미지는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사람들에게 돈이라는 자원을 쓰게 할 수는 없다. (옷에 대한) 관심과 재미를 주는 것과 그걸 수익 모델이라는 현실 세계의 사업으로 구현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현대 저널리즘 산업이 마주한 장벽 역시 이 부분이다. 관심을 모으는 데는 성공했으나 수익이 안 난다는 것. 사람들의 관심을 수익으로 돌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미스터포터의 구매총괄 담당 토비 베이트먼이 이 일을 맡았다. 그는 영국의 패션 유통업계에서 오래 일한 베테랑이다. 1996년부터 영국 백화점 하우스 오브 프레이저와 셀프리지스에서 경력을 쌓았다. 잘될 사람은 처음부터 다른 모양인지 그는 보통 바이어처럼 디자이너의 쇼룸에서 물건을 보고 고르지 않았다. 그는 와의 인터뷰에서 “디자이너 팀과 일하면서 영감을 주는 원단을 함께 벤치마킹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토비 베이트먼이 일하는 미스터포터는 지금 가장 대표적인 고가 의류 온라인 쇼핑몰 중 하나다. 미스터포터가 처음 생겼을 때는 누가 인터넷으로 비싼 옷을 사겠느냐는 의견이 많았으나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순항 중이다. 일찍부터 ‘유통 기업이 미디어 기업이 되고, 미디어 기업이 유통 기업이 된다’는 시장 흐름을 간파한 덕분이다.미스터포터의 성공 비결은 크게 둘이다. 하나,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고유한 쇼핑몰 레이아웃, 물건을 보여주는 방식,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종이 신문 모양의 팸플릿 등을 통해 미스터포터만의 정체성이 태어났다. 영국 편집장이었던 제러미 랭미드의 감각 덕분이다. 그는 논란을 무릅쓰고 저널리즘업계에서 의류 유통업계로 넘어가 지금 미스터포터의 브랜드&콘텐츠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유통이 미디어가 되고 미디어가 유통이 된다는 말이 미스터포터에서만은 농담이 아니다. 미스터포터가 발행하는 신문에는 단순히 미스터포터의 물건만 나오지 않는다. 그 물건으로 할 수 있는 일처럼 덜 상업적인 소재가 나오기도 하고, 상품 구매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제러미 랭미드 역시 매거진 와의 인터뷰에서 “더 자유로운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저희는 저희가 좋아하는 옷을 바잉하고 그에 대해 기사를 씁니다. 잡지에서 일할 때는 좋아하지 않는 옷과 관련해서도 기사를 써야 했지만요.” 모든 에디터는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다’는 꿈을 꾼다. 그 꿈은 실향민의 귀향처럼 이루어질 수 없다. 저널리스트의 꿈은 의외로 매체가 아닌 유통사에서 이룰 수도 있다.미스터포터를 이루는 또 하나의 축은 뛰어난 구매력이다. 무엇을 살 것인가, 어떤 브랜드의 어떤 물건을 사서 미스터포터라는 유통 브랜드의 이미지를 이룰 것인가. 소위 말하는 큐레이션 능력이 미스터포터의 핵심 역량이다. 이 분야를 총괄하는 토비 베이트먼은 의류 브랜드 킹스맨 컬렉션에도 깊이 관여했다. 그 역시 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 프로젝트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들려주었다.“‘영국의 비밀 에이전트 본부가 새빌 로 양복점에 있다.’ 첫 미팅에서 이 설정을 듣자마자 흥분됐습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시에 (물건을) 판매하는 ‘코스튬 투 컬렉션’을 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말이죠.” 토비 베이트먼은 영화에 기반을 둔 의류 브랜드를 만든다는 제의를 받았을 때 망설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래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인데 걱정은 안 됐을까? “매슈 본의 비전과 흥행 성적, 아리앤과 일할 수 있는 기회, 20세기 폭스, 블록버스터 스케일과 호화 출연진... 우리에게는 성공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의 자신감대로 킹스맨은 영화로도 브랜드로도 성공했다. “하지만 킹스맨이 우리의 가장 유명한 럭셔리 브랜드가 되고, 이 끝나고도 여섯 시즌이나 더 나온 건 말할 필요도 없이 예상보다 훨씬 큰 성공이었습니다.”영국 소형 고급 의류 협동조합킹스맨 영화와 의류 브랜드를 이끄는 큰 축은 영국 그 자체다. 영화 의 사무실은 영국의 양복 거리에 있다. 의 차는 런던 택시 블랙 캡이다. 의 사상적 기반 역시 영국식 신사도다. 의류 브랜드 킹스맨을 이끄는 축도 영국이다. 브랜드로서 킹스맨은 영국의 소형 고급 브랜드의 협동조합 같은 느낌을 준다. 턴불 앤 아서, 조지 클레벌리, 브레몽, 매킨토시, 체흐 앤드 스피크 등이 킹스맨 브랜드에 물건을 납품한다. 일본의 의류 유통 브랜드에서 출발한 더블 네임 전략이다. 킹스맨×커틀러앤그로스 안경 같은 식이다. 확실한 브랜드 가치가 있는 두 브랜드가 만나 서로의 색을 반반씩 넣은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매슈 본과 아리앤 필립스와 미스터포터(의 토비 베이트먼)가 킹스맨 영화와 브랜드를 이끄는 세 가지 축이었지만 실질적인 제품을 만들어 납품한 이들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그래서 이를 취재하기 위해 영국과 미국의 19개 브랜드에 서면 인터뷰를 요청했다. 미국 브랜드에도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는 에 ‘킹스맨의 미국 사촌’인 ‘스테이츠맨’이 나오면서 미국 의류 브랜드도 나왔기 때문이다. 19개 브랜드 중 7개 브랜드가 답을 보내왔다. 영국의 셔츠 메이커 턴불 앤 아서, 안경 브랜드 커틀러앤그로스, 구두 브랜드 조지 클레벌리, 그루밍용품 브랜드 체흐 앤드 스피크, 미국의 오리털 점퍼 브랜드 로키 마운틴 페더베드, 바시티 재킷(야구 점퍼) 전문 브랜드 골든베어, 아메리칸 캐주얼 브랜드 미스터 프리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영화 의상 기반 브랜드라는 기상천외한 체험에 참여한 이야기를 각자의 입장에서 들려주었다.의류 브랜드 킹스맨과 그의 서브브랜드인 스테이츠맨에 참여한 브랜드의 규모와 장르는 다양하다. 에 나오는 만년필을 만든 콘웨이 앤드 스튜어트는 홈페이지도 없다. 조지 클레벌리와 미스터 프리덤과 브레몽은 간단한 서면 인터뷰였는데 대표가 직접 답안을 작성해줄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이들에게 미스터포터와 할리우드 영화를 통한 노출 제안은 보통 좋은 기회가 아니었다. 처음에 미스터포터 측의 제안을 받았을 때 어땠는지에 대한 질문은 하나마나 한 수준이었다. 모두 너무 좋았다고 답했다.영화감독과 의상감독과 쇼핑몰 구매총괄이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콘셉트를 현실화시킨다는 건 생각만 해도 복잡한 일이다. 각 브랜드가 들려준 이야기는 그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복잡한지 확인받는 과정이었다. 예를 들어 커틀러앤그로스 담당자는 콜린 퍼스의 안경테를 만들기 위해 그를 만나러 프랑스까지 날아가야 했다. “다른 프로젝트와 가장 달랐던 건 동시에 여러 다른 장인과 일해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슈트 제작자와 신발 제작자와 함께 가장 믿음직스럽고 순수한 맞춤 안경, 구두, 신발을 만들었죠.”각 브랜드는 매슈 본과 아리앤 필립스의 의상에 대한 이해도를 칭찬하는 걸 잊지 않았다. “아리앤과 매슈는 모두 정통파 맞춤 장인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있어요. 둘 다 지식도 엄청 뛰어납니다.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자극을 받았어요.” 커틀러앤그로스 담당자가 회상했다. 턴불 앤 아서도 마찬가지였다. 턴불 앤 아서는 에서 (영국 셔츠 브랜드임에도) 카우보이 셔츠를 비롯해 셔츠 102벌을 만들었다. “우리는 에서 콜린 퍼스가 입었던 실크 드레싱 로브도 만들었어요. 매슈 본의 아빠가 갖고 있던 빈티지 턴불 앤 아서 드레싱 로브를 보고요.”“우리는 아직 작은 브랜드라 영화에 우리 물건을 노출시킬 만큼 큰 예산이 없어요.” 영국산 고가 시계 브랜드 브레몽의 공동대표 자일스 잉글리시는 솔직한 답을 보내왔다. “을 만들 때, 매슈 본은 영국 스파이가 나오는 영화였으니 영국산 시계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핑크색 초침 등 필요한 디자인 요소에 대해 논의했어요. 물건을 만드는 과정은 우리가 군대와 일하는 과정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손톱깎이 세트를 만든 체흐 앤드 스피크 역시 “미스터포터와 킹스맨과 함께 디자인했습니다”라고 답했다. 모든 작은 브랜드와 일일이 시간을 잡고 만나서 원하는 바를 말하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21세기의 브랜드 비즈니스란 이렇게 점차 세밀해지고 있다.고가품 브랜드 입장에서도 영화에 들어가는 소품을 만드는 건 새로운 도전이었다. “우리는 핸드메이드입니다.” 조지 클레벌리 CEO 조지 클레벌리는 이렇게 답을 보내왔다. “시간이 걸리지만 시간이 걸릴 만한 가치가 있는 절차를 거쳐 구두를 만들어요. 하지만 영화와 일을 하다 보면 우리의 자원에 압박을 가하는 마감일이 있습니다. 거기 더해 우리가 기존에 받고 있던 신규 고객이나 기존 고객도 있죠. 저는 배우와 엑스트라에게 제공된 모든 신발을 마감일에 맞춰서 잘 만들었다는 점이 자랑스럽습니다.”아리앤 필립스는 서부극인 의 의상감독도 맡은 적이 있다. 미스터 프리덤의 크리스토퍼 로이론은 아리앤 필립스를 만난 적도 있었다. “아리앤은 몇 년 동안 미스터 프리덤에서 옷을 사 갔어요. 미스터 프리덤 데님 피코트를 사서 톰 크루즈에게 입히기도 했어요.” 의류업체가 캐릭터에 관여하는 정도는 조금씩 다르다. “어떤 캐릭터를 위해 가죽 재킷을 만들었어요. 아마 악역일 거라 생각해요. 아직 영화를 안 봐서. 미스터 프리덤의 베스트셀러인 캠퍼스 재킷을 조금 변형했어요.” 등에 ‘포피’라고 쓰인 베이스볼 점퍼를 만든 골든 베어와 패딩 베스트를 만든 로키 마운틴 페더베드 등 이번에 새로 합류한 미국 브랜드도 킹스맨과의 협업을 만족스러워했다.오늘날의 비즈니스킹스맨 브랜드와 미스터포터 사이에는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고정비용이 없다. 킹스맨은 컬렉션이지만 패션 위크에 나가거나 쇼를 하지는 않는다. 영화 자체가 최고의 패션쇼다. 이미지에 더해 스토리까지 제공하고, 재미있으면 사람들이 두 번 세 번씩도 찾아 본다. 아무리 아름다운 패션쇼라 해도 결국은 업계 내 이벤트라는 점에서 영화를 쇼 삼고 추가 비용을 안 쓰는 이쪽이 훨씬 효율적이다. 킹스맨은 유명인에게 비싼 돈을 주고 광고 모델로 기용하지도 않는다. 큰돈이 나갈 일이 줄어든다.미스터포터는 오프라인 매장이 없다. 오프라인 매장 역시 고정적으로 돈이 든다. 매장은 부동산 산업과 연결된다. 부동산에 쓴 돈은 원론적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매몰 비용이다. 오프라인 매장을 계속 관리하는 데에도 인건비나 건물 관리비, VMD 같은 다양한 부대 비용이 든다. 온라인에서 쇼핑몰을 전개한다면 그런 비용을 들일 일이 없다.대신 그 예산으로 다른 걸 한다. 킹스맨은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의상 디자이너와 쇼핑몰 관계자를 만난다. 아리앤 필립스는 영화 촬영 시작 3개월 전부터 에 관련된 미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수십 개의 브랜드를 영화에 맞춰서 조금씩 수정한다. 그 브랜드가 ‘코스튬 투 컬렉션’이 되어 ‘보고, 산다’라는 콘셉트의 현실화된 쇼핑 모델이 된다. 매슈 본은 두 파트너와 함께 시리즈를 일종의 쇼 필름처럼 만들었다. 미스터포터는 자체 매체를 만들다가 이제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었다. 영화와 함께.세상은 끊임없이 바뀐다. 하다못해 아리앤 필립스가 만든 영국 정장의 모양도 바뀌었다. 그녀는 본인이 바꾼 새빌 로 스타일을 정리했다. “새빌 로 스타일 정장의 어깨 모양은 남겨뒀지만 재킷 길이는 조금 짧게 만들었어요.” 의 콜린 퍼스가 의 대니얼 크레이그보다 한층 자연스러워 보였던 이유다. 전통을 바탕으로 하되 현재 상황에 맞춰 조금씩 업데이트한다. 세련된 시선으로, 너무 과하지 않게. 그렇게 하면 킹스맨이 된다.세상이 변하면 반드시 실패자가 생긴다. 영화 산업과 의류 유통 산업은 둘 다 인터넷이라는 혁명적인 변화를 맞았다. 디지털을 받아들인 영화와 온라인 쇼핑을 받아들인 의류 유통업은 둘 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어떤 감독은 바뀐 시대를 견디지 못했다. 수많은 의류 유통 기업이 인터넷 시대를 맞아 고전하다 사라졌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변화에서 기회를 찾았다. 킹스맨처럼, 매슈 본처럼, 미스터 포터처럼. 양복을 입은 영웅이 영화 속에서 멋있는 이야기를 해서 그 사람이 입은 걸 멋있어 보이도록 만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접속한 인터넷에서 그 옷을 바로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모든 판매 활동은 물건에 어떻게 정당성을 담아 넣느냐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좋은 이야기는 물건에 정당성을 실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에어 조던이, 잡스의 아이폰이, ‘갓뚜기’ 오뚜기의 라면이 그렇게 팔려나간다. 영화는 사람들을 어두운 극장에 몰아넣고 평균 2시간 정도 사람들에게 영상과 음성이 혼합된 이야기를 주입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집중도가 높은 프로파간다다. 찰리 채플린도 말했다. 모든 영화는 프로파간다이고, 자신의 영화는 사랑의 프로파간다라고. 영화 역시 프로파간다다. 신사됨에 대한 프로파간다, 21세기풍 새빌 로 정장에 대한 프로파간다, 그걸 쇼핑몰에서 파는 미스터포터의 고가 신사복 브랜드에 대한 프로파간다. 그러면 그 선전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필요한 건 무엇일까?“이야기입니다.”매슈 본 감독의 목소리가 스피커폰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스토리라인이 첫 번째, 옷이 두 번째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언제나 가장 중요합니다. 스토리가 좋고 캐릭터가 좋아야 그들이 입는 옷이 좋아 보이는 겁니다.” 그가 만든 스토리와 캐릭터와 옷이 얼마나 좋아 보이는지는 곧 확인할 수 있다. 은 9월 27일에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