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루션 컴플리트!"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로 돌아오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스타크래프트가 데뷔 20년을 앞두고 리마스터로 새롭게 태어났다. 오리지널의 데뷔부터 리마스터까지,하나의 게임과 게임 회사가 일궈낸 역사적 기록에 관해 살펴본다. | ESQUIRE,에스콰이어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를 손에 들고 한참을 바라봤다. 그러자 지난 추억이 뇌리를 스쳤다. 함께 게임을 즐겼던 친구의 얼굴, 쿰쿰한 냄새를 풍기던 PC방, 게임을 하며 느꼈던 승부욕까지 떠올랐다. 스타크래프트는 단순한 게임을 넘어 하나의 문화였다.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기도 했다. 시장을 확장했으며 지속 가능성도 보여줬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게임 방송과 e스포츠, 프로 게이머의 개념이 모두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성장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게이머가 세계에서 인정받게 된 이유, 해외 유명 게임이 한국 시장에서 성공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모두 스타크래프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전략 게임의 획을 그은 스타크래프트가 데뷔 20년을 앞두고 리마스터로 새롭게 태어났다. 짧지 않은 시간, 스타크래프트와 게임 개발사 블리자드는 어떤 일을 이뤄냈을까?챕터 1_ 스타크래프트1990년대 초, PC판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RTS)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전략 게임은 두 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정해진 규칙 안에서 두뇌 싸움을 벌이는 구성을 말한다. 그 뿌리는 바둑, 장기, 체스에서 전해진 것이지만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고 게임 제작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이후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 됐다. 당시 전략 게임은 흥미로운 스토리와 새로운 조작성으로 시선을 끌었다. 웨스트우스 스튜디오의 ‘듄2’나 ‘커맨드&퀀커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마우스를 이용한 전략 게임을 시장에 정립시키는 데 성공했다. 반면 내용과 연출력 부분에선 단순했다.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어 싸우는 스토리가 전부였다. 이때 블리자드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전략 게임을 내놨다. 바로 ‘워크래프트: 오크 앤드 휴먼’이다. 지금은 게임계의 전설로 추앙받지만 당시에는 창립한 지 3년밖에 안 되는 작은 회사였다. 혜성처럼 나타난 이들은 판타지 소재를 전략 게임에 접목하며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오크와 인간의 싸움. 워크래프트는 이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가능성을 담고 있었다. 신선한 캐릭터와 상상력 넘치는 건설의 조합, 유닛 제어 능력 등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새로운 세계관과 풍부한 스토리까지 담았다. 블리자드는 단순히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었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창조자였다. 워크래프트는 1995년 ‘워크래프트 2: 타이드 오브 다크니스’에 이어 확장판을 내놓으며 1996년 6월까지 120만 장을 판매, 그해 베스트셀러 PC 게임이 되었다. 그 유명한 디아블로 시리즈가 등장한 것도 이때다. 하지만 블리자드의 결정적인 한 방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1998년 블리자드는 게이머와 게이머가 온라인상에서 대전을 펼치는 ‘배틀넷’을 서비스했다. 대단한 인기였다. 출시 한 달 만에 배틀넷에 접속한 게이머는 15만 명, 플레이 게임은 150만 회에 달했다. 하지만 배틀넷의 인기를 지속해서 끌고 가려면 워크래프트와 디아블로 이상으로 발전한 전략 게임이 필요했다. 물론 블리자드는 확실한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1998년 3월, 스타크래프트가 세상에 등장했다.스타크래프트의 배경은 미래의 우주였다. 지구에서 버림받은 범죄자 집단인 테란과 집단의식을 가진 생명체 저그, 지성이 고도로 발달한 외계 종족인 프로토스의 전쟁 이야기다. 당시 유행하던 실시간 전략 게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게이머와 게이머가 겨루는 과정을 세밀하게 조율했다. 유닛의 수로 싸우는 게 아니라 ‘컨트롤’과 ‘전략’의 극대화에 힘썼다. 그래서 한 그룹으로 묶을 수 있는 유닛의 숫자를 제한했고, 전투에서는 유닛의 숫자와 상관없이 지형을 잘 이용하는 자가 유리했다. 새로운 개념의 실시간 전략 게임과 온라인 결투에 전 세계 게이머가 열광했다. 이를 입증하듯 스타크래프트는 출시 석 달 만에 300만 장이 팔렸다.1998년에 등장한 확장판 ‘브루드워’ 이후 배틀넷 사용자 수가 400만 명에 달했다. 400만 명이란 숫자가 어느 정도의 인기를 대변하는지 피부로 와 닿지 않을 것이다. 당시 10~20대 남자라면 스타크래프트를 하지 않고는 깊은 대화에 참여할 수 없었다. 초·중·고등학교 주변을 비롯해 대학가 골목 구석구석까지 도처에 PC방이 널려 있었고, 그 안에서 열에 아홉은 스타크래프트에 심취해 있었으니까.챕터 2_ 위대한 게임들블리자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가슴이 뭉클하거나 소름 끼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들은 가상 세계, 가상 인물과 주변 이야기를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만들어냈다. 스타크래프트는 시작에 불과했다. 성공은 자연스레 차기작에 대한 기대를 낳는 법. 2000년 블리자드는 곧바로 디아블로 2를 내놓았다. 스타크래프트와는 전혀 다른 다크 판타지 액션 롤플레잉 장르의 게임이었다.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동네 게임 판매점에서 디아블로 2를 전시했던 모습이. 그 앞에서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디아블로 2의 등장은 롤플레잉 게임의 판도를 바꾸어놨다. 요즘의 국산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에서도 이전 디아블로 시리즈의 게임 요소가 대거 쓰인다. 그러니 17년 전 게이머에게 디아블로 2가 얼마나 큰 감동으로 다가왔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게임 시장은 100만 장을 돌파하는 시간을 공표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게임의 성공을 판가름하는 척도였다. 디아블로 2는 단 3주 만에 이 판매 수치를 넘어섰다.2000년대에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에 다시 많은 힘을 쏟았다. 2003년 워크래프트 3에 이어서 2005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를 출시했다. WOW는 다중 접속 온라인 역할 수행 게임(MMORPG) 장르로 이전 게임들과는 또 다른 영역이었다. 그래도 충분한 연관성과 스토리를 유지했다. 이전 워크래프트에서 보여준 가상 세계 아제로스를 배경으로 다양한 영웅을 골라 다른 플레이어와 함께 퀘스트를 완료하는 형식. 블리자드는 믿고 사는 게임 브랜드가 됐다. 실제로 WOW는 출시 당일 북미, 호주, 뉴질랜드에서 베스트셀러 판매 기록을 경신하며 블리자드의 아홉 번째 베스트셀러 게임이 됐다.다음 해에는 한국, 유럽과 중국에도 출시했다.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의 열기가 식기도 전에 다시 WOW의 시대가 열렸다. 게임 가입자 수는 2005년에 500만 명, 2008년에 1000만 명을 넘어섰다. WOW 추종자는 10~20대뿐이 아니었다. 이미 스타크래프트를 경험한 30~40대까지도 끌어들였다. ‘밤새워 WOW를 하고 아침에 출근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릴 정도였다.2010년 7월 블리자드는 또 한번 힘찬 날갯짓을 했다. ‘스타크래프트 2:자유의 날개’와 함께 차세대 배틀넷을 공개한 것. 실시간 전략 게임과 플레이어 간의 전투 요소는 극대화하면서 그래픽과 스토리, 세계관을 한층 확장했다. 여느 게임과 다르게 스타크래프트 후속은 한국에서도 특별했다. 베타 플레이 기간부터 뜨거운 관심과 인기를 끌었다.2012년 디아블로 3가 출시될 때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학창 시절 디아블로 2에 열광하던 무리는 직장인이 됐다. 그들은 넉넉한 주머니 사정을 앞세워 사전 예약부터 열을 올렸다. 디아블로 3는 충분한 시간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뛰어난 한글화가 특징이었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런 게임을 만들 수 있었을까? 사실 블리자드는 게임 발표를 미루거나 중간에 프로젝트를 중단시켜버린 경우도 종종 있다. 높은 완성도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프로젝트 실패가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경험이 언젠가 더 위대한 게임으로 재탄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챕터 3_ 넓은 세계관블리자드는 게임을 통해 장대한 대서사시를 꾸준히 소개해왔다. 때론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넓은 세계관으로 우릴 놀라게 했다. 블리자드가 다른 게임 회사보다 잘하고 집중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워크래프트의 경우 2000년대부터 수십 권의 장편소설로 만들어졌다. 2016년엔 영화로도 제작됐다. 그만큼 풍부한 스토리가 뒷받침됐다는 소리다. 블리자드가 한 가지 게임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사람들을 빠르게 매료시킬 수 있었던 이유다.풍부한 스토리와 흥미로운 세계관이 절정에 이른 건 오버워치에서다. 오버워치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협동 슈팅 게임이다. 군인, 과학자, 모험가, 로봇 등 25명의 캐릭터가 각각 역할을 분담해 전투를 펼친다. 기본적으로 6:6으로 펼치는 1인칭 슈팅 방식(FPS)이지만 구성이 단순하지가 않다. 모든 캐릭터의 능력이 다르기에 이전엔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게임 전개를 보여준다.오버워치는 뛰어난 스토리 전달력과 등장인물 설정, 게임의 균형까지 삼박자를 두루 갖췄다. 이야기는 오버워치라는 특수 부대가 강제로 해체된 후 국제 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다시 오버워치 요원들이 속속 등장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말하는 고릴라, 닌자, 미치광이 등 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들 모두에겐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알면 알수록 모든 등장인물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주제를 관통한다.한국 캐릭터 디바(D.Va)의 경우 전 프로 게이머라는 설정이다. 옴닉 괴물에 맞서 한국을 지키기 위해 중장갑 무인 조종 로봇이 등장했고, 이를 조종하기 위해 프로 게이머를 투입한다. 블리자드는 일정한 시간을 두고 시네마틱 트레일러(단편영화 형식)를 통해 오버워치 요원들의 배경 이야기를 꾸준히 공개한다. 아직 디바의 이야기는 공개되지 않았다. 오버워치는 알면 알수록, 하면 할수록 잘 구성된 게임이다. 캐릭터에 담긴 스토리와 그들이 만드는 세계관에 매료된다. 플레이어가 이렇게 빠르게 게임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드물다.물론 블리자드에는 더 큰 세계도 있다.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오버워치 등 모든 게임 시리즈를 하나로 어우르는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 그것이다. 여기엔 다른 게임 속의 전설적 영웅이 대거 출연한다. 그리고 서로의 세계관을 지키기 위해 협동하고 싸우며 치열한 전쟁을 벌인다. 챕터 4_ e스포츠를 키운 씨앗e스포츠라는 말이 이제는 자연스럽다. e스포츠는 어떤 분야에 비해서도 빠르게 급성장한 게임 스포츠 산업이다. 컴퓨터와 전용 장비를 이용해 네트워크상에서 게임으로 승부를 겨루는 행위다. 여기에 게임 회사가 개최하는 대회 또는 리그를 바탕으로 방송사의 중계와 관전까지 더해지며 하나의 스포츠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2022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e스포츠는 초기 비디오 게임을 기반으로 한다. 1970~1990년 사이에 수많은 게임 대회가 열렸다. 그러다 1990년 다양한 PC 게임이 온라인 매치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2000년 글로벌 토너먼트 형식으로 발전했다. 한국은 1997년 이후 초고속 인터넷망의 보급과 더불어 e스포츠가 급성장했다. 블리자드가 배틀넷을 서비스하고 스타크래프트를 내놓은 시기와 적절히 맞아떨어졌다.사실 스타크래프트가 데뷔하기 이전 게임들은 싱글 플레이나 근거리 통신(LAN)을 이용한 매치 플레이만 가능했다. 하지만 초고속 인터넷 시대의 시작과 함께 배틀넷처럼 자체적으로 매치 플레이가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e스포츠가 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이후 스타크래프트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된 e스포츠 종목이 됐다. 한국e스포츠협회 주관으로 온게임넷(게임 전문 방송)에서 주요 리그를 진행하며 인기를 끌었다. 자연스럽게 프로 게이머가 생겼고, 기업의 후원을 받는 소속 팀이 만들어졌다. 시장도 생겼다. 그러니 사실상 한국에서 e스포츠가 자리 잡게 된 결정적 이유를 스타크래프트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타크래프트의 성공 이후 e스포츠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카트라이더, 카운터 스트라이크, 서든어택, 리그 오브 레전드, 하스스톤 등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리그를 형성했다. 블리자드는 오버워치 리그의 출범을 알리는 등, 더 큰 이스포츠 무대를 만들며 투자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최근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최첨단 시설을 갖춘 e스포츠 경기장인 ‘블리자드 아레나’를 건설하기도 했다. 블리자드가 이런 리그를 주최하고 경기장에 투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열정이다. 게이머들이 세계 최정상 플레이어들의 경기를 보며 게임 기술을 발전시키고 동시에 열광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들이 e스포츠에 기여하는 자세는 이처럼 순수하다. 비슷한 관점에서 블리자드에 중요한 행사가 있다. 바로 ‘블리즈컨’이다.챕터 5_ 블리즈컨의 의미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하는 게임 축제, 따끈한 게임 소식과 e스포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가 블리즈컨(BlizzCon)이다. 2005년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첫 번째 블리즈컨이 개최된 후 작년까지 총 10회가 열렸다. 블리즈컨은 말 그대로 블리자드를 사랑하는 모든 팬의 축제다. 그 인기가 실로 대단하다. 매년 티켓 판매를 시작함과 동시에 매진을 기록한다.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람객이 수만 명에 이른다. 이곳에서 실제 게임 개발자의 간담회와 인터뷰를 볼 수 있다. 신규 게임 정보가 공유되고 시연에도 참여할 수 있다. 매년 블리자드의 성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행사다. 2016년의 경우 10주년을 맞아 다양한 정보를 공개했다. 1년이나 지난 일이라 세부 사항까지 소개할 필요는 없겠지만, 확실한 것은 블리즈컨이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와 내용 면에서 성장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올해도 열린다.한국 시간으로 2017년 11월 4일과 5일, 오전 2시부터 오후 3시까지. 디지털 입장권을 사면 안방에서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참여할 수 있다. 가상 입장권을 구매하면 특전으로 제공되는 다양한 게임 내 선물을 얻을 수 있고, 실물 선물이 담긴 백팩으로 구성된 선물 꾸러미도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챕터 6_ 블리자드 코리아블리자드는 미국 게임 회사지만, 글로벌 게임 회사로서 각 나라의 문화와 정서에 맞춘 현지화에 힘쓴다. 따라서 한국 지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블리자드 코리아는 2004년 2월 설립됐다. 이들은 게임을 유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 시장에 최적화시키는 작업을 한다. 가령 오버워치의 경우 출시 전부터 25명의 캐릭터에 맞는 한국어 더빙 작업을 포함, 완벽한 한글화 작업을 병행했다. 스타크래프트에도 유명 성우와 아나운서가 더빙에 참여했다. 1998년 LG 소프트를 통해 한국에 출시한 오리지널은 한국 지사가 있기 전의 작품이라 현지화가 매우 부족했다. 당시엔 영문판 그대로 발매했기에 스토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웠다.또 배틀넷에서 한글이 입력되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GG(굿 게임)’ 같은 약어가 생기고 ‘Showmethemoney’ 같은 치트키가 유명해진 이유이기도 했다. 별도로 한글을 지원하는 ‘한스타’ 같은 외부 제작 프로그램도 덩달아 큰 관심을 얻었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블리자드 코리아가 현지화에 힘쓴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는 완벽한 한글화를 지원한다. 텍스트뿐 아니라 모든 캐릭터의 음성까지 새로 더빙했다. 블리자드의 게임을 한국에서 우리가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것은, 블리자드 코리아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챕터 7_ 추억까지도 리마스터글_양현용(전 게임 개발자)대한민국 30대 이상의 남자에게 스타크래프트는 추억이다. 1998년 여름, 친구 따라 갔던 PC방에서 처음 접한 스타크래프트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이어 출시된 확장판 브루드워까지, 게임이 이렇게 짜임새 있고 재미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건설 구조를 정리하고 조작법을 연구하며 게임에 몰두했다. 결국 수능 전날에도 PC방에 있었을 만큼 게임에 푹 빠졌고, 당연히 수능은 망쳤다. 하지만 그래서 이후 9년간 게임 회사에서 일했다. 만약 스타크래프트가 없었다면 나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렇게 의미 있는 게임이 출시 20주년을 앞두고 리마스터로 다시 돌아왔다. 당연히 누구보다 빨리 리마스터를 손에 넣었다.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는 오리지널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일단 그래픽을 고해상도로 다시 그렸다. 원작은 640×480픽셀의 낮은 해상도 탓에 유닛이 뭉그러졌다. 도트 수십 개로 표현하는 방식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반면 리마스터는 3840×2160 해상도, 최대 4K에 달하는 UHD와이드 스크린 해상도까지 지원한다. 그래서 이제는 땅강아지처럼 보이던 저글링의 앞발이 날카롭게 보이고, 질럿의 머리 모양까지도 세심하게 표현된다. 게임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유닛만 한참 들여다봐도 재미있을 만큼 극적인 변화다. 물론 도트로 만들어진 희미한 캐릭터를 보며 상상의 날개를 펼쳤던 재미는 사라져 아쉽다.유닛뿐만 아니라 배경의 디테일이나 효과도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단순히 해상도만 높아진 게 아니라 사실적인 특수 효과도 추가됐다. 애니메이션 프레임도 늘어서 한결 부드럽게 움직인다. 게다가 게임 중간에 언제라도 F5 키를 눌러 오리지널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쓱 오버랩되며 도트가 가득한 세상으로 변했다가 다시 선명해지는 화면을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다니는 느낌까지 든다. 내 인생의 20년이 버튼 하나로 전과 후로 바뀌는 기분이랄까?분명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의 외형은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래도 게임이 돌아가는 내부 알고리즘은 이전과 동일하다. 블리자드는 게임의 룰이나 조작법, 기본적인 인공지능은 손대지 않았다. 덕분에 왕년의 실력자들이 곧바로 적응하기가 쉽다. 머리가 굳은 건 어쩔 수 없지만 손은 단축키를 기억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같은 게임이기 때문에 기존의 오리지널 버전인 스타크래프트 엔솔로지와 리마스터가 함께 멀티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올바른 확장성의 사례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대환영할 일이다. 참고로 스타크래프트 엔솔로지는 리마스터 공개 전에 이미 무료화됐다.그래픽의 발전보다 반가운 것은 완전한 한글화다. 드디어 채팅과 게임 속 모든 캐릭터의 음성이 한글로 구현된다. 싱글 플레이 모드에서 스토리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굳이 멀티플레이를 하지 않더라도 리마스터를 살 명분은 충분하다고 본다. 오리지널부터 확장판인 브루드워까지 캠페인을 다시 차분하게 즐길 수 있으니까. 블리자드는 한글화 측면에서 어지간한 한국 게임 회사보다 표현력의 수준이 높다. 덕분에 스타크래프트의 대서사시를 20년 만에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스토리의 완성도와 몰입도는 2017년에도 충분히 통했다. “아! 멩스크 나쁜 놈.”2017년에도 충분히 통했다. “아! 멩스크 나쁜 놈.” 스타크래프트는 내 인생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년이란 시간은 10대 소년을 30대 후반의 아저씨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배틀넷에서 밤새울 만한 열정이 남지 않았다. 배틀넷에서 리더 보드 상위 랭커는커녕 이제는 ‘왕초보’라는 제목의 방만 찾아다닌다. 번번이 ‘GG(굿 게임)’를 먼저 칠 만큼 실력이 따라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게임을 즐기고 있다. 얼마 전 리마스터 출시를 기념해 열린 홍진호와 임요환의 시범 경기를 보며 울컥한 사람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기쁘고 재미있고, 또 슬프다. 게임 하나가 이처럼 복잡한 기분을 선물할 줄이야. 그래서 말인데 20년 후에도 스타크래프트가 그때의 기준으로 다시 리마스터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