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이론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트럼프, LTCM, 황 교수, 그들은 왜 파산 신청을 하게 됐을까. | 파산,가계 부채

“친한 후배가 있는데요, 지금 빚이 한 3000만원 된대요. 개인 파산 신청을 하고 싶다는데, 어떻게 말해줘야 해요?”누군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곧바로 ‘3000만원 때문에요? 20대 초반인데 파산 신청을? 말도 안 돼요!’라고 말하려다 멈칫했다. 3000만원의 빚. 누군가에겐 큰돈이 아닐 수 있지만 막 사회에 나와서 이제 100만원 넘는 월급을 받는 누군가에겐 무거운 족쇄가 될 수 있다. 그래도 개인 파산 대신 회생 신청을 권하고 싶었다. ‘파산하면 빚은 없앨 수 있지만 한동안 금융 거래는 끝’이라고 조언하려는데, 이런 말이 들려왔다.“빚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살이 쪽 빠졌어요. 하루하루가 두렵대요. 누가 이 빚만 갚아주면 뭐든 다 하겠다는데, 제가 빌려줄 처지도 아니고....”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때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가 끼어들었다.“그래서 연예인이 좋다니까. 신동엽, 김구라, 이상민 봐봐. 수십억 빚을 턱턱 갚아내잖아. 일반인은 꿈도 못 꿀 일 아니야?”이후 연예인의 빚으로 화제가 넘어갔다. 난 그래도 그들이 파산 대신 빚을 갚기로 선택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렇다.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이 빚을 지고 살아간다. 한국엔 무려 1400조원에 달하는 가계 부채가 있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가 동시에 파산 신청을 하면 어떻게 될까. 파산하면 내 인생은 정말 끝나는 것일까. 파산하고도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들은 뭔가. 그녀는, 나는, 그리고 우린 어쩌다 이렇게 많은 빚을 지게 된 걸까. 우린 이 빚을 갚을 순 있을까.네 번 파산한 트럼프, 그런데 재산은 여전히 4조원?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파산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물론 개인 파산은 아니었다. 자신의 회사가 네 번 파산했고, 무려 여섯 번이나 기업 회생을 신청했다. 트럼프의 파산과 회생 신청 인생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애틀랜틱시티에 있던 타지마할 호텔 및 카지노가 영업 부진으로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연방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이후에도 실패의 연속이었다. 트럼프 플라자&카지노와 트럼프 캐슬도 줄줄이 무너졌고 1992년, 2004년, 2009년에 다시 또 파산과 기업 회생을 신청했다. 뉴욕의 플라자 호텔, 트럼프 엔터테인먼트 리조트 등도 모두 파산의 희생물이었다. 바로 여기서 드는 의문. 그럼 35억 달러(4조원)에 달하는 그의 재산은 대체 어떻게 모았다는 말인가.트럼프는 미국의 파산 제도를 꿰뚫고 있었다. 사람들은 트럼프가 부동산 신화를 일궈냈다고도 한다. 헛소리다. 그가 잘하는 일은 허풍과 바람 잡기, 그리고 고액 연봉을 챙겨 받는 것뿐이었다. 재산 4조원의 대부분은 연봉과 TV 출연료, 그리고 브랜드 로열티로 모았다. 그는 20년 가까이 기업을 경영하면서 평균 1200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아 챙겼다. 다른 소비는 모두 법인 카드로 해결했으니 이 돈을 고스란히 저축할 수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미국은 기업이 파산해도 대표를 연대 파산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망해가는 카지노에서도 700억~800억원씩 연봉을 챙겼다. 이후 방송인으로 변신해 자신을 부동산 귀재로 포장하는 데 주력했다. 실제 2000년대 중반부터는 그가 한 일이 없다. ‘트럼프 타워’란 브랜드만 빌려주고 로열티를 받아 챙겼을 뿐이다. 아마도 트럼프의 파산 때문에 수많은 사람과 그의 가족들은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마침내 미국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랐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빚더미에 앉아 있는 미국인들이 왜 대리 만족을 느끼면서 그에게 표를 던진 것일까?파산한 천재가 깨달은 사실은?100번 동전을 던졌다. 놀랍게도 100번 모두 앞면이 나왔다. 이제 101번째 동전을 던진다. 당신은 앞면과 뒷면 중 어디에 베팅할 것인가. 이 경우 사람들은 대부분 뒷면에 돈을 건다. 하지만 실제 동전은 과거를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결국 2분의 1의 확률로 앞면 또는 뒷면이 결정 난다. 다시 말해 투자할 때는 엄청난 공포를 느끼더라도 위축될 필요가 없다, 뭐 그런 조언이 많다.로버트 머튼 전(前)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교수는 어릴 적부터 투자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수학 천재였다. 파생 상품의 적정가격을 산출하는 일명 ‘블랙-숄즈-머튼 모형’을 통해 노벨 경제학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런 그도 1998년 세계를 금융 위기의 공포로 몰아넣은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 파산의 주인공이 됐다.1994년 세계 금융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인 경제학자 로버트 머튼과 마이런 숄스 그리고 전설적인 채권 딜러 존 메리웨더가 합세해 헤지펀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LT C M이었다. 그들은 1997년 연간 41% 수익을 기록하며 업계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모은 돈은 약 46억 달러. LT C M은 여기에 레버리지를 걸어 1조2000억 달러 이상을 굴렸다. 우리 돈으로 1000조원이 넘는다. 참고로 당시 우리나라 1년 예산은 80조원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결국 파산했다. 핵심은 간단했다. 역설적으로 동전의 앞면이 100번 나왔다고 101번째에 뒷면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망해가는 러시아가 결코 디폴트로는 가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문제였다. 당시 LT C M은 폭락한 러시아 국채를 매수했고, 동시에 가격이 쑥쑥 오르고 있는 미국 국채를 매도하는 스프레드 거래에 올인했다. 하지만 결과는 잘 알려진 것처럼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마무리됐다. 그렇게 로버트 머튼도 사라졌다.그런데 70세가 훌쩍 넘은 그가 최근 재무 설계 강사로 대중 앞에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음은 그가 강의에서 강조하는 말이다. “저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세요. 진짜 중요한 건 순자산이 아니라 월 소득입니다. 은퇴할 때 얼마 모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평생 매달 어떻게 소득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입니다.”1000조원을 허공에 날려버린 그는 재산보다 소득을 강조하고 있다. 계좌에 들어 있는 10억원이 아니라 지금 몸을 움직여 버는 월 300만원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 막상 파산해보니 손에 쥐고 있는 100달러가 진짜라는 걸 깨달은 것일까.황 교수님, 그 빚을 왜 당신이 갚습니까?명문대 출신에 명문대에 재직 중인 황 교수는 그야말로 인생이 탄탄대로인 분이었다. 책도 많이 썼고 후학들의 존경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대학총장 후보로도 언급됐고 자식들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잘 성장한 것 같았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학교에 사표를 내고 가진 재산을 다 팔아 아내와 함께 시골 어딘가로 떠났다.모두가 궁금해했다. 종교에 귀의했다는 이야기도 돌았는데 시간이 꽤 흘러서야 황 교수가 왜 그렇게 서둘러 은퇴했는지 확인이 됐다. 발단은 바로 IT 버블이었다. 2000년, 2001년 주식 좀 한다는 사람들은 나스닥 버블로 촉발된 금융 버블에 모두 미쳐 있었다. 이때였다. 황 교수는 한 벤처기업을 알게 됐고, 그 기업의 젊은 CEO에 매료됐다. 그리고 그 주식에 투자했다. 하지만 황 교수는 태생적으로 욕심이 없었다. 주식보다는 교회 헌금에 돈을 더 많이 쓰는 타입이었으니까.그러니까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아무 일도 없는 거였다. 그런데 명절날 온 친지들이 다 모여 있는 장소에서 황 교수가 그 주식 이야기를 꺼냈다. 천하의 황 교수가 추천한 주식이라니! 친척들은 앞다투어 올인했다. 사촌인지 오촌인지 몰라도 누군가는 집을 팔아 그 돈으로 올인했다고 했다. 이다음 상황은 추측하는 대로다. 결국 IT 버블은 ‘빵’ 하고 터졌다. 증시에선 5일 연속 하한가, 10일 연속, 20일 연속 하한가 종목이 속출했다.돈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사악하게 돌변하는 게 인간이다. 집안의 자랑이라고 그렇게 황 교수를 치켜세우던 친지들이 이번엔 황 교수 때문에 모든 것을 날렸다면서 집으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저렇게 많은 혜택을 받았건만 악랄하게 황 교수를 몰아쳤다. 그때 황 교수는 벌건 눈빛으로 달려오는 그들에게 ‘내가 다 책임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법적으론 아무런 책임이 없지만 그는 모든 짐을 본인이 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처분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건 일부 친척들의 반응이다. “기회비용이란 게 있는데 이자까지 내야지!”라면서 돈을 더 뜯어갔다는 것이다. 그렇게 황 교수가 떠나던 날,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제자들은 울며불며 이렇게 외쳤다.“그 돈을 왜 교수님이 갚아줘야 합니까? 자기들이 투자한 거고, 자기들 욕심 때문에 당한 건데 그걸 왜 교수님이 다 책임져야 하냐고요?”하지만 황 교수는 묵묵히 웃으면서 떠났다. 둘째 아들이 친척들과 몸싸움을 벌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쨌든 상황은 종료됐다. 평생 일궈냈던 모든 재산과 명성까지도 다 날리고 파산한 황 교수. 그는 지금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부인 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의 선택이 현명한 것이었을까. 오히려 못돼먹은 친척들에게 맞서야 했던 것이 더 당당한 것 아니었을까. 하지만 놀랍게도 주위엔 이런 연유로 파산한 분들이 꽤 된다. 누구는 대법원 판결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버텨내는데 이들은 잎새에 이는 바람만큼이나 작은 책임 때문에 파산을 불사하고 그 의무를 다하려 한다. 왜일까?빚은 결국 갚아야 끝난다. 하지만 한국 경제,나아가 세계 경제를 보면 죽었다 깨어나도 갚지 못할 수준의 부채를 떠안고 있다. 그러니 빚은 갚아야 끝나는 게 아니라 결국 파산해야 끝이 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빚은 결국 파산해야 끝난다?빚은 결국 갚아야 끝난다. 무덤까지 빚쟁이가 찾아온다는 말도 있다. 현재 한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를 보면 죽었다 깨어나도 갚지 못할 수준의 부채를 떠안고 있다. 본격적인 부채 상환이 시작될 때는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버티고 버티다 결국엔 파산을 맞이하는 사례도 속출할 것 같다. 그렇다면 빚은 갚아야 끝나는 게 아니라 결국 파산해야 끝이 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우린 IMF 외환 위기 때 이미 이런 상황을 겪어봤다. 상대적으로 2008년 말 세계 금융 위기 때는 지옥의 시기가 1년 만에 종료됐는데 이유는 여러분도 잘 아는 양적 완화 때문이었다. 빚을 빚으로 갚으면서 10년을 버텨낸 것이다.요즘 내 주위엔 비관론자가 부쩍 늘었다. 1930년대 대공황을 공부한다는 스터디 클럽도 만나봤다. 그들은 지금이 마치 대공황 직전 상황과 비슷하다고 했다. 가령 1920년대 초·중반까지 미국에선 할부가 처음으로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다. 자동차, 가구, 세탁기 같은 값비싼 내구재를 할부로 사는 경험을 맛본 미국인들에게 10년간 가계 부채가 거의 두 배로 늘었다. 1929년 10월 어느 날 주식시장이 이를 먼저 알고 무너졌고, 이어 가계 부채로 가계가 넘어지고, 마지막으로 돈을 빌려준 은행 신용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무려 10년에 걸친 대공황이 왔다는 분석이다.현재 문재인 정부는 가계 부채 총량이 더 불어나지 않는 데 주력하고 있다. 부동산 규제도 실은 큰 틀에서 보면 빚 차단 정책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미 부채를 실은 기차는 멈출 수 있는 임계점을 넘었다. 그렇다면 결국 마지막 충돌 당시 얼마나 충격을 줄일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추석 연휴 직후 가계 부채 종합 대책이 나올 것도 같다. 앞으로 돈 빌리기는 정말 하늘의 별 따기가 될 것 같은데, 당장 300만원이 없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을 위한 정책적 고려는 반드시 필요하다.누구는 3000만원 빚 때문에, 누구는 3억원 빚 때문에, 또 누군가는 30억원 만기 도래 채권 때문에 하루하루를 공포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일단 버텨내야 한다. 그 뭣 같은 돈이란 녀석에게 영혼까지 담보로 저당 잡힌다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니까. 물질적 파산도, 영혼의 파산도 결국 내가 결정하는 것이란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