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왜 파워건을 들었나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삼성전자가 시장에서 주목받을 신제품을 2017 IFA에서 대거 내놨다.이 중 특히 프리미엄 무선 청소기 파워건이 관심을 끌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 파워건,청소기,무선청소기

솔직히 놀랐다. 한 기업의 산업 규모, 그들이 미치는 영향력이 이렇게 거대한 경우도 드물 것이다. 삼성전자 이야기다. 지난 8월 말, 2017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에 삼성전자는 획기적인 기술을 담아낸 다양한 신제품을 발표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현장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새삼 많은 것을 느꼈다. 59개 계열 회사를 둔 삼성그룹이 아닌, 삼성전자만의 행보였다. 그런데도 모바일, 오디오, 주방·생활 가전, TV, 컴퓨터, 액세서리 등 그들이 만드는 제품은 이미 시장 전체에 퍼져 있었다. 모르는 사실은 아니었지만 막상 삼성의 주요 제품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보니 그 규모와 수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IFA에서 단일 브랜드로 가장 큰 규모의 삼선전자 부스를 둘러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1938년 한국에서 시작한 삼성상회라는 작은 회사가 어떻게 지금 전 세계 브랜드 6위까지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경향의 중심에 서다2017IFA는 ‘유럽 최대 규모의 주방 가전 박람회’라는 수식이 부족하지 않았다. 올해는 40개가 넘는 전시 홀에서 1500개 이상의 브랜드가 참여했다. 1~26번 홀까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수십 개의 건물과 건물을 통과해야 다 볼 수 있었다. 여기엔 멀리서 로고만 봐도 아는 유명 브랜드부터 카탈로그를 한참 들여다봐도 도통 모를 브랜드까지 다양했다. 사실 모르는 브랜드가 더 많았다. 당연했다. 가전, IT 제품뿐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없는 유럽 식기와 주방용품도 큰 비중을 차지했으니까. 모든 전시장을 돌아보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박람회에서 중요한 것은 경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많은 브랜드가 경쟁하는 포인트가 무엇인지, 어떤 브랜드가 선두에 있는지를 보면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 IFA를 다 돌아보고 난 뒤 다리가 아파 거의 쓰러지듯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숨을 돌리며 몇 가지 메모를 했다. ‘사물 인터넷 증가’, ‘주방 가전의 연결성 확장’, ‘OLEDTV 기술 경쟁’, ‘HDR+ 영상 규격 보급화’, ‘고용량 반도체 기반 저장 장치(SSD)’, ‘게이밍 기어에 대한 높은 관심’ 등. 전체 흐름을 짚어보고 재미있는 결론에 도달했다. 경향의 중심에 몇몇 거대 기업이 있었다. 그중 가장 돋보인 것이 삼성전자였다. 과장이 아니다.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그대로를 취합했을 뿐이다.실제로 삼성은 올해 IFA에서 시티 큐브라는 별도의 독립관을 사용했다. 참가한 모든 브랜드 중 단일 브랜드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삼성 브랜드관에 오려면 2관과 7관 사이 별도의 통로를 따라와야 했다.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삼성 부스는 제품을 전시, 소개하는 기법도 뛰어났다. 가령 ‘더프레임’ 전시관의 경우 270도 벽면에 붙은 더 프레임 TV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화려한 영상 기술을 동원했다. 미술 작품이 사방으로 떠다니며 더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고 또 나왔다. 기어 스포츠 전시 부스는 몇 개의 러닝 머신과 운동 기구를 활용해 제품을 직접 체험해보도록 했다. 수십 명의 사람이 기어 VR을 쓰고 움직이는 의자에 앉아 가상의 콘텐츠를 체험하는 공간도 IFA에서 유일했다.삼성은 주방 가전 부문도 화려했다. 해외 유명 주방 가구업체와 협업해 마치 실존하는 주방처럼 꾸몄고, ‘삼성 클럽 드 셰프’ 프로젝트에서 활동하는 유명 셰프가 등장해 실제 삼성 주방 제품으로 요리하는 이벤트를 선보였다. 잘 차려진 테이블을 준비해 수십 명의 관계자에게 직접 음식을 맛볼 기회도 제공했다.불과 일주일 전 뉴욕에서 발표한 노트8과 유럽 시장을 공략하는 신개념 드럼 세탁기 퀵드라이브도 눈길을 끌었다. 삼성전자의 모든 제품이 시장의 흐름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었다. 따지고 보면 거의 대부분이 그 시장에서 주목받는 제품이었다.파워건으로 무선 청소기의 개념을 다시 쓰다“프리미엄 무선 청소기 시장에 뒤늦게 진출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희 삼성은 무작정 제품을 내놓지 않습니다. 시장의 판도를 바꿀 만큼 뛰어난 제품을 만들 때까지 노력하죠. 파워건이 바로 그런 제품입니다.”2017IFA 개막 전날 저녁, 베를린 웨스틴 호텔의 한 세미나실. 프리미엄 무선 청소기 삼성 파워건의 세부 정보가 공개됐다. 유럽에서 공개하는 첫 프리미엄 청소기였다. 본디 생활 가전 분야에서는 그동안 유럽 명품 브랜드가 강세로 여겨졌다. 수십 년간 한 가지 제품을 만들면서 독자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시장의 분위기가 다르다. 전자, 통신 기술이 발전하고 생활 가전과 접목되면서 삼성전자 같은 기술 개발 능력이 뛰어난 회사가 빠른 속도로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번 2017IFA에서도 그들은 생활 가전 전반에 걸쳐 획기적인 제품을 내놨다. 그중 가장 주목할 제품은 무선 청소기였다.“다이슨과 비슷한 디자인 같은데요. 이유가 있나요?”누군가의 질문에 삼성 관계자는 충분히 예상했다는 듯 답했다.“경쟁사의 디자인을 의식한 게 아니라 효율성을 추구한 디자인입니다. 청소기 노즐 입구부터 모터까지 일직선으로 뻗은 구조가 디자인의 핵심이지요. 아마 그래서 비슷하게 보일 수는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그랬다. 파워건엔 다이슨 청소기 같은 디자인적 기교는 없었다. 오히려 훨씬 담백했다. 뜯어보면 구석구석 효율을 극대화한 디자인만을 채택했을 뿐이다. 파워건이라 불리는 것도 총처럼 생긴 모습에서 따온 직관적인 이름이었다. 유럽에서는 같은 제품에 ‘파워스틱 프로’라고 이름 붙이기로 했다. 스틱 청소기 시장에 속하기 때문에 한국에서와는 다른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파워건은 프리미엄 무선 청소기 시장을 공략한다. 삼성이 공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청소기 시장 규모는 약 140억 달러(15조8550억원)에 이른다. 당연하다. 우리가 아는 상식 선에서 대부분 가정에서 청소기를 사용하니까. 하지만 이 시장에도 빠르게 변화가 일고 있다. 특히 무선 청소기 시장의 성장 추세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2014년 전체 시장 비중의 22%였던 것이 현재 40%까지 상승했다. 한국은 이보다 빠르다. 같은 기간 29%였던 것이 이미 51%를 넘어섰다. 삼성의 예상에 따르면 올해 최고 65%까지 무선 청소기 시장 점유율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패러다임의 변화. 시기적으로 잘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난 몇 년간 무선 청소기가 다양한 경로로 사람들에게 노출되며 트렌드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덩달아 뛰어난 기술력을 앞세운 프리미엄 제품이 시장에서 주목받았다. 그때 삼성은 삼성 제품의 고유 강점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답을 찾았다.“좋은 가전제품이란 사용자가 불편함을 잊고 쓸 정도로 익숙해야 합니다. 하지만 청소기의 경우 불편함이 존재합니다. 청소라는 행위 자체가 고단한 일이죠. 무거운 청소기를 집 안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청소하는 것이 결코 즐겁지 않습니다. 파워건은 그동안 청소기에서 느꼈던 이런 단점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제품입니다.”서병삼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부사장의 말처럼 삼성은 청소라는 행위에서 오는 부담을 줄이는 청소기를 만들고자 했다. 힘이 덜 들고, 피곤함을 줄인 청소를 구현하기 위해 많은 연구가 필요했다.파워건이 경쟁사 제품과 다른 부분이기도 했다. 멋진 디자인과 기능성뿐 아니라 사용자의 편의성을 최대로 고려했다. 그 과정에서 4000장의 디자인 스케치, 150개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플렉스 핸들’이다. 기존 프리미엄 스틱 청소기엔 없는 구조다. 본체가 관절처럼 꺾이는 형태를 이용해 인체에 전해지는 피로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최대 50도까지 구부러지는 관절로 침대나 소파 밑처럼 낮고 깊은 곳을 청소할 때 손목과 무릎에 가해지는 부담을 크게 덜었다. 또 바닥부터 무릎과 허리, 어깨, 머리 위 높이에서도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다섯 가지 형태의 브러시를 더했다. 각 브러시는 청소 부위와 최적의 각도로 접근하도록 디자인했고, 기존 브러시와 차별화된 기능도 더했다.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다른 청소기에서 단점으로 지적된 부분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작업까지 거쳤다. 예컨대 바닥을 청소하는 브러시는 밀 때 10도, 당길 때 40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먼지를 일관적으로 제거하지 못한다. 게다가 같은 공간에서 앞뒤로 두 번 움직여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그래서 개발자들은 파워건에 듀얼 액션 브러시를 만들었다. 브러시가 두 개, 양방으로 분당 6500번 회전하는 구조로 한 번을 밀어도 훨씬 꼼꼼하게 먼지를 제거한다. 듀얼 액션 브러시는 또 다른 장점도 있다. 바닥이 아닌 갑자기 다른 부위를 청소하고자 할 때 브러시를 빼도 구조상 스스로 서 있을 수 있다. 별거 아닌 기술이지만 실제 사용자에게 꼭 필요한 기능이기도 하다.이지 클린 기능도 같은 맥락의 장점이 있다. 해봐서 알겠지만, 청소 후 브러시나 먼지 통을 비울 때 각종 이물질과 씨름해야 한다. 엉킨 머리카락이나 미세 먼지를 손으로 직접 만져야 하기 때문에 꺼림칙한 것이 사실이다. 이지 클린은 이런 꺼림칙함과 수고를 덜어준다. 브러시의 경우 버튼을 누르고 한쪽으로 쑥 빼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기구에서 브러시가 빠지는 동안 전용 기구를 통해 각종 이물질이 떨어져 나간다. 먼지 통도 뒤에서 필터부터 쑥 잡아당기면 끝이다.진정한 혁신은 우리가 느끼기도 전에 이미 활용되는 것이다“무선 스틱 청소기 구입을 앞둔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소비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흡입력이었습니다. 전체 리서치 중 28% 수준으로 압도적이었지요.”파워건은 개발 당시 크게 세 가지를 만족시켜야 했다. 강력한 흡입력, 충분한 청소 시간, 배터리 수명으로, 모두 모터와 배터리의 적절한 균형과 최적화 기술을 요하는 것이었다. 특히 모터가 어려웠다. 청소 환경에 따라 선택해 쓸 수 있는 5종의 브러시를 제공한다. 브러시 하나하나에도 경쟁사에는 없는 추가 기능이 달렸다. 브러시부터 모터까지 일직선으로 자리 잡은 직선 구조로 디자인했다. 150W급 모터의 흡입력을 높이는 가장 효율적인 설계다. 특허 받은 ‘이지 클린’ 기술은 청소 후 뒤처리가 한결 쉽게 돕는다. 먼지 통은 원터치로 쉽게 분리되고, 손으로 필터를 당기는 것만으로도 통 안에 쌓인 먼지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배터리 팩을 갈아 끼우는 방식을 택했다. 1개의 배터리로 최대 40분간 작동하고, 필요시 크래들에 장착된 여분의 배터리로 쉽게 교체가 가능하다. 배터리 수명도 길다. 5년간 배터리 수명의 80%를 유지한다.“업계 최고 수준인 150W 흡입력을 만들기 위해 수십 개의 모터를 만들어 연구했습니다. 1992년부터 축적해온 생산 노하우를 바탕으로 했고요. 이렇게 만든 디지털 인버터 모터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항공기 날개 형상을 채용했으며, 결과적으로 토네이도 측정 최고 등급에 해상하는 700km/h 풍속을 실현합니다. 이는 바닥 재질과 상관없이 먼지를 99% 제거하는 효율성을 보여주죠.”백문불여일견이라 했다. 실제로 파워건을 들고 방아쇠 모양 버튼을 당겨 모터를 깨웠다. 흡입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특히 버튼을 강하게 당겨 터보 모드에 들어갈 때 노즐에서 공기를 빨아들이는 힘이 엄청났다.“이렇게 강하게 모터를 돌리면 배터리가 금방 방전되지 않나요?”중요한 질문이었다. 사실 무선 청소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이에 삼성 관계자는 파워건을 마치 총처럼 들고 탄창을 빼듯이 배터리를 분리시켰다.“배터리 팩은 교체가 가능합니다. 기본 모드에서 40분 청소할 수 있고, 터보 모드에서 최대 7분을 쓸 수 있습니다. 배터리는 별도로 크래들에 물려 충전도 가능하기 때문에 청소기를 쓰는 동안 충전도 됩니다. 그러니 청소 도중 배터리가 방전돼서 청소를 중단해야 하는 일은 없죠.”일반 가정에서 청소기 사용 시간은 15~30분 정도다. 그러니 40분 사용이 가능한 배터리 팩 두 개면 충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파워건에 들어가는 배터리는 삼성 SDI와 5년간 공동 개발한 것으로 수명도 충분히 길다. 1년에 100회 완전 충전과 방전을 거듭하며 5년을 사용해도 배터리 용량의 80%까지 사용이 가능하다고.생각해보면 그동안 청소기는 인간 중심이 아니라 청소라는 행위 중심에 맞춰져 있었다. 효율적인 청소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상황이 빈번했다. 하지만 파워건을 접하고 나서 청소기에 대한 관점이 크게 달라졌다. “기술 들어갑니다”라는 모 광고처럼, 파워건엔 삼성의 뛰어난 기술력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삼성은 제품에 한해서는 절대로 콧대 높은 전략만 세우는 기업이 아니었다. 제품의 완성도에 누구보다 집중하고, 소비자의 의견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제품을 만들고, 그래서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었다.개인적으로는 이런 게 혁신이 아닐까 싶다. 사전적으로 혁신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청소기가 날아다니기 전까지 웬만한 변화를 혁신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생활에 밀접한 생활 사전에서 진정한 의미의 혁신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삶의 질이 바뀌는 것이다. 그러니 파워건을 들고 청소를 좀 더 쉽게, 피로감을 줄여주었다면 그 또한 혁신적인 경험이겠다.이번 2017IFA를 경험하며 깨달은 게 있다. 삼성은 적어도 제품에 한해서는 절대로 콧대 높은 전략만 세우는 기업이 아니었다. 제품의 완성도에 누구보다 집중하고, 소비자의 의견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제품을 만들고, 그래서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었다.2017IFA에서 삼성이 내세운 슬로건 ‘당신의 새로운 기준(YourNewNormal)’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삼성)가 만든 기준이 당신에게 어울립니다’가 아니다. ‘당신이 원하는 기준에 맞춰 우리가 만듭니다.’ 이게 그들이 전하는 진짜 메시지이자, 누구보다 잘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