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담요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콜롬보의 캐시미어 블랭킷을 샀다. | 담요,캐시미어 블랭킷,로베르토 콜롬보

이곳이 캐시미어의 낙원이었다. 콜롬보 노블 파이버의 대형 매장은 갖가지 고급 원단을 아낌없이 활용해서 직조한 옷들로 그득했다. 조금 전까지 콜롬보 공장을 둘러보면서 제조 공정을 살펴봤던 바로 그 원단으로 만든 제품들이었다. 부드러운 캐시미어 100%의 코트와 부드러운 캐시미어보다 더 부드럽다는 키즈 캐시미어 100%의 터틀넥이 눈에 들어왔다.콜롬보 노블 파이버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로로피아나와 함께 밀라노를 대표하는 3대 원단 제조사다. 에르메스와 루이비통, 프라다, 구찌, 셀린느가 콜롬보의 원단으로 옷을 만든다. 에르메네질도 제냐나 로로피아나와 마찬가지로 콜롬보 역시 원단을 제조하면서 동시에 자기 브랜드의 어패럴 제품도 생산한다. 콜롬보 공장에서 멀지 않은 콜롬보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무언가 사지 않으면 손해일 것만 같은 강박을 느낀 이유다. 당장 카드를 꺼내서 캐시미어의 낙원을 마음껏 누리지 않으면 실낙원의 벌이라도 받을 것만 같았다.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코트며 피부처럼 느껴지는 터틀넥을 주섬주섬 입어봤다. 이렇게 양껏 옷을 입어볼 때면 평범한 남자도 잠깐 동안은 나르시시스트가 된다. 그러다 문득 매장 한편에 놓인 담요 하나를 발견했다. 캐시미어 100%로 만든 더블베드 사이즈의 블랭킷이었다. 지난 시즌에 발렌시아가의 뎀나나 셀린느의 피비가 선보인 트렌디한 블랭킷 패션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정통 담요였다. 추운 겨울 거실 소파에 덮고 앉아 밀감이나 까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면 딱 좋겠다 싶은 그런 따뜻한 담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담요를 덮고 있는 사람은 나르시시스트 남자가 아니었다. 어린 딸과 늙은 어머니였다. 할머니와 손녀였다.마음 한가득 들고 있던 캐시미어 코트며 재킷이며 니트를 슬그머니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짙은 회색의 블랭킷만 매만졌다. 한없이 부드러웠다. 속없이 따스했다. 이젠 친구처럼 지내는 할머니와 손녀가 캐시미어 담요를 덮고 수다 떠는 장면을 떠올렸다. “유이야, 한글 공부는 안 할래? 까막눈으로 초등학교 들어갈래?” “싫어. 애들은 놀아야 한다고. 공부는 나중에.” “할머니,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해?” “할머니도 몰라. 유이가 배워서 가르쳐줘.” 할머니와 손녀에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캐시미어 담요를 선물해주고 싶어졌다. 그냥 담요가 아니었다. 세계 최고의 원단사 콜롬보 노블 파이버가 만든 캐시미어 100%의 진회색 더블베드 사이즈 블랭킷이었다.어쩌면 조금 전까지 콜롬보의 CEO 로베르토 콜롬보가 들려준 얘기 탓인지도 몰랐다. 로베르토 콜롬보는 인터뷰 내내 가족이야말로 럭셔리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콜롬보는 이탈리아 회사답게 전형적인 가족 기업이다. 로베르토 콜롬보는 콜롬보 노블 파이버를 창업한 라니피치오 루이지 콜롬보의 큰아들이다. 처음엔 로베르토 콜롬보의 가족 경영에 대한 자부심을 흘려들었다. 그러다 로베르토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옛날 얘기를 듣게 됐다. 아버지를 도와서 처음 회사 일을 시작하던 때의 이야기였다. 원래 그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아픈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콜롬보 가문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국경 없는 의사회의 일원이 됐을지도 모른다. 대학 시절 아버지가 회사 일을 맡겼다. 고민이 없진 않았다. 결론은 자명했다. 가족이 우선이었다. 그때부터 40년 가까이 가족의 이름을 딴 회사에 출근해서 가족도 못 보고 밤낮없이 일했다. 콜롬보의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로베르토에게 회사는 인생이에요. 가족이 전부이고. 하루 24시간 일만 하죠.”로베르토는 강조했다. “최고의 품질을 유지한다는 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가족의 힘만이 그런 노력이 가능하게 해줘요.” 공정 혁신이니 첨단 기술이니 연구 개발 같은 용어는 말하긴 쉽다. 그걸 꾸준하게 실행에 옮기는 건 보통의 은근과 끈기로는 불가능하다. 제품과 기업에 대한 헌신이 없다면 성취하기 어렵다. 콜롬보의 원단 제조 과정은 사실 어머어마한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다. 일단 원사 채취 과정 자체가 복잡다단하다. 몽골부터 남아메리카까지 드넓은 지역에 걸쳐 군데군데 포진해 있는 소수민족 목축업자들과 개별적으로 거래를 해야만 한다. 언어도 다르도 문화도 다르다. 그들의 마음을 열기도 어렵지만 그들과 거래 관계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털은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부드럽게 빗질해서 채취한다. 그만큼 오래 걸리지만 소량밖에 얻지 못한다. 그렇게 모은 원사를 원단으로 만드는 과정도 은근과 끈기와 정성과 헌신의 연속이다. 방직기만 돌리면 원사가 원단이 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캐시미어 원단의 흠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보푸라기 하나까지도 특수한 집진 방식을 통해 빨아들인다. 심지어 공정과 공정 사이에 원단이 잠잘 시간까지 준다. 말 못 하는 원단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단을 세탁하는 과정에서 생긴 폐수도 완벽하게 정화해 다시 세시아강으로 흘려보낸다. 석회질이 없는 깨끗한 세시아 강물은 밀라노 의류 산업의 젖줄이다. 빗질부터 정수에 이르는 콜롬보의 원단 제조 공정은 공정이라기보다 지극정성에 가깝다. 로베르토가 모든 공정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려면 설명할 수 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는 이유다. 월급을 주고 사람을 쓰거나 로봇을 사서 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럭셔리는 호수 위의 백조와 같다. 수면 위에선 우아하지만 수면 아래에선 치열하다. 세상의 모든 럭셔리 브랜드가 콜롬보와 손을 잡는 건 우아한 원단을 치열하게 생산하기 때문이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콜롬보의 원단만이 아니라 콜롬보가 원단 산업에 접근하는 치열한 태도를 구매하는 것이다. 로베르토는 콜롬보가 그렇게 지극정성을 유지할수 있는 비결을 가족에서 찾았다. 의사의 꿈을 접고 기꺼이 아버지가 이루어온 가업에 뛰어드는 헌신 말이다.콜롬보의 가족주의는 콜롬보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동물의 털은 극한의 기후에서 더 많이 더 부드럽게 자란다. 로베르트는 몽골의 메마른 초원과 안데스산맥의 척박한 고산지대를 누비며 소수민족 목축업자들을 만난다. 콜롬보와 목축업자들도 가족이다. 로베르토는 말한다. “콜롬보는 다음 세대에 그들의 목축 노하우가 잘 전수되도록 도와줍니다.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제일 좋은 음식은 남겨뒀다가 콜롬보가 오거든 대접하라고. 그게 우리가 사업을 하는 방식입니다.”로베르토 콜롬보의 사무실에는 아버지 루이지 콜롬보의 졸업 앨범이 놓여 있었다. 젊은 시절 루이지 콜롬보는 로베르토 콜롬보의 아들과 판박이였다. 마침 중학생인 아들이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보러 회사에 들렀다. 로베르토는 말했다. “저도 어릴 적에 공장에서 뛰어놀면서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보곤 했어요. 그때 전 부모님이 일 얘기만 하셔서 내 아이들한테는 안 그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꿈을 꿔도 좋겠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큰딸은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하고 막내딸은 여덟 살인데 재봉질을 해요. 유전인 거죠.” 럭셔리는 불가능한 품질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가족적 헌신이야말로 원천 기술이다. “전문 경영인은 물론 회사를 더 조직화시킬 겁니다. 하지만 피 속에 깃들어 있는 가치까지 경영화시키는 건 불가능해요.”매장 직원은 캐시미어 블랭킷을 곱게 접어서 포장해줬다. 담욧값을 계산하면서 로베르토라는 남자를 떠올렸다. 평생 가족을 지키며 살아온 남자가 만든 세계 최고 원단의 제품을 기꺼이 사고 싶어졌다. 어린 딸과 나이 든 어머니에게 덮어드리고 싶어졌다. 내심 알고 있었다. 가족에게 선물하고 싶은 건 담요만이 아니었다. 따뜻한 울타리이고 부드러운 보금자리였다. 남자가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반드시 사야만 하는 궁극의 물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