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어쩌다 직장인의 꿈이 되었나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가슴에 사표를 품고 다닌다는 말은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회사는 누구의 삶도 아니고, 박차고 나가야만 더 나은 삶을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현실이다. | 퇴사,직장인

퇴사가 유행 같았다. 가끔은 ‘나만 빼고 다 퇴사하는 것 같다’는 문자를 받기도 했다.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끼리는 언제까지 회사에 다닐 것인가를 두고 더 이상 마실 수 없을 때까지 토론했던 밤도 있었다. 그만둘 수 있을 것인가, 그게 과연 옳은 것인가, 대책은 있는 것인가. 그래도 당신은 아직 결혼 전이니까 자유롭지 않느냐는 타박에는 사실 부러움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배우자도 자녀도 없는 사람은 그 세계의 무게를 알 길이 없었다. 혼자인 사람은 혼자인 그대로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다. 어느 한쪽의 어깨가 더 무거운지는 가늠도 할 수 없는 채, 몇 번의 술자리는 그렇게 마무리됐다.그러는 사이 누군가는 실제로 사표를 내기도 했다. 딱히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좀 쉬고 싶어서요. 더 다녔다간 내가 크게 다칠 것 같아서.” 그의 퇴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약한 소리가 아니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면 거기가 지옥이었다. 그의 직책은 과장이었다. 폭풍같이 배웠던 사원 시절도 지나고, 이제 좀 알 것 같았던 대리 시절도 끝났다.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는 채 과장이 됐다. 그의 나이 34세였다. 연봉도 적지 않았다. 억대 연봉은 아니었지만 부러운 것도 없었다. 먹고 싶은 건 다 먹고, 갖고 싶은 걸 대충 사도 저금을 할 수 있는 정도는 됐다.회사에서의 이름이 최 과장이 되면서부터 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가 말했다. “아래는 후배들이 있고 위에는 상사가 있죠. 차장, 부장 뭐 이사, 상무 그런 사람들. 더러는 대표님까지. 이렇게 보고 있으면 답답했어요. 그냥 답답하기만 하면 사실 견딜 수 있었는데, 그들이 짜놓은 정치판에 휩쓸리다 보니까 정말 죽겠더라고요. 결정적으로 내가 그 회사에서 출세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살아봤자 그들처럼 사는 건데....” 최 과장은 회사와 자신을 같이 탐구하기 시작했다. 자의가 아니었다. 다시 살기 위한 고찰이었다. 이대로 계속 살다간 결국 밤 10시 전에는 퇴근조차 못 하는 상사처럼 살게 될 거라는 공포는 본질적이었다.그들이 자신의 5년 후 혹은 10년 후였다. 그들이 좋은 어른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최 과장은 조금 더 버틸 수 있었을까? 이런 가정은 사실 아무 의미도 없다. 최 과장이 보는 상사들 역시 절반은 지옥 속에 있었다. 이런 식이었다. 이사는 부장을 총애했다. 부장은 차장을 수족으로 부렸다. 그러면서 팀원 개개인과 소통하면서 서로를 이간질하는 식으로 팀을 쪼개놨다. 차장이 지쳐가는 게 눈에 보였다. 차장에게 몰려 있는 일을 나눠서 하려는 시도도 부장에게서 막혔다. 말하자면 그 차장이 ‘타깃’이었다. 부장은 팀원들끼리 점심을 먹으러 가거나 잠깐 커피 마시러 나가는 것도 가만두지 않았다. 그들끼리 모여서 소곤거리다가 웃음소리가 들리면 “회사가 농담 따먹기 하는 데냐”는 호통이 돌아왔다. 그는 팀워크를 경계하는 팀장이었다. 팀이 뭉치면 자기 자리가 위협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상사였다. 이미 그 때문에 그만둔 직원도 여럿이었다.여러 층위의 회사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었다. 자기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 바로 아래 있는 직원을 괴롭히는 건 비겁하지만 흔한 생존 전략이었다. 흔하다는 건 꽤 효과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례를 수집하다 보면 그게 거의 공식처럼 굳어진 느낌마저 있었다. 부하 직원이 ‘알아서 기는’ 성격이라면 잠시나마 평화를 찾기도 했다. 하지만 최 과장이 말했다. “아마 그랬다면 내가 타깃이 됐을 거야. 그럼 내가 그 스트레스를 다 받았겠지. 지금 우리 차장님 머리가 어떻게 됐는 줄 알아? 원형 탈모가 방사형으로 왔어. 무슨 미스터리 서클처럼.”‘자리를 보전한다’는 말은, (백번 양보하면) 결국 ‘그도 먹고살기 위해서’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 한국에서 가장 치열한 연령대가 거기 다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연령대는 대략 한국의 2차 베이비붐 세대와 겹친다. 1964년부터 1974년 사이 10년 혹은 그 즈음에 태어난 사람들의 사회적 위치는 불안하고 치열하다. 세대론에 대입하면 386세대와 가장 가까운 집단이기도 하다. 그들은 지금까지 성취해온 게 있으니까 포기도 어렵다.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력은 없는데 그 주변에 있다. 위와 아래를 동시에 견제하면서 자기 몫을 챙겨야 한다.그만두기에는 이미 좀 늦었고, 착실하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한국적 가정’의 테두리를 지키고 있을 가능성 또한 크다. 아내와 자식과 부모님 사이에서 경제활동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 이것도 저것도 그만두거나 버릴 수 없으니 절박하다는 뜻이다. 그들의 절박함이 개인적 이기심과 만나면 회사는 순식간에 지옥이 된다. 최 과장이 말을 이었다. “보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많이 해. 사이코패스 체크 리스트에서 해당되는 거 체크해보면 100%로 나와. 게다가 회사 생활을 정치로 하니까 일은 정말 못해. 합리, 비합리를 따질 단계가 아니야. 그냥 말이 안 통하는 수준이라니까.”34세 최 과장의 상황이야말로 지금 한국 회사 생활의 축소판이다. 그는 본격적인 정치판 밖에 있지만, 좀 다른 의미로 위태롭고 절박하다. 거기서 조금 더 가면 성취를 포기하기 힘든 단계로 넘어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거기서 연봉이 더 올라버리면 그걸 포기하기 어려워서 회사를 나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이젠 돈이 마냥 좋은 시대도 지났다. 연봉이야말로 삶을 옥죄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러니까 본격적인 생존 경쟁의 레이스가 시작되기 전에 탈출을 꿈꾸는 마지막 세대가 30대 중·후반이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퇴사를 다루는 도서 출간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퇴사를 다루는 서적의 판매량은 지난해에 비해 10배 정도 늘었다. 2000년대 초반에 서가를 채웠던 경제, 경영, 자기 계발서의 자리를 퇴사 관련 서적이 채우고 있다. 전직 기자 이나가키 에미코가 쓴 책 는 명실상부 퇴사 시장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30대야말로 퇴사 시장의 큰손이다. 구매자 중 절반이 30대였다. ‘취준생’ 시기를 가까스로 지나면 곧 ‘퇴준생(퇴사 준비생)’ 시기가 찾아온다는 말도 이젠 익숙한 우스개가 되었다.조금 더 냉정해진 후에 작정하고 솔직해지기까지 하면 퇴사야말로 거의 유일한 희망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온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직장’으로서의 기능은 하지만 ‘직업’으로서의 기능은 희미한 채 사회생활 자체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직장과 직업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직장은 내 것이 아니지만 직업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지금 속해 있는 직장을 벗어나도 사회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직업인, 직장을 벗어나는 순간 사회인으로서의 정체성조차 흔들린다면 직장인이라는 구분은? 직장인의 회사는 퇴사 이후 거의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다. 그다지 어려운 판단도 아니다. 버티고 버텨도 50대 중반인데, 그 이후의 수입을 퇴직금이나 연금에 마냥 기댈 수 있는 시대도 아니라는 뜻이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야말로 공포스럽다. 이제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살아 있어야 한다. 회사에 다니면서 프로페셔널에 가까운 취미 생활을 갖고, 그 자체를 퇴사 이후의 계획으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 탈출구가 있는 사람과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느끼는 불안의 정도는 다르다. 불안의 농도가 삶을 가르기도 한다.오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는 누군가의 사직원을 봤다. “아래와 같이 사직코자 하오니 재가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10년째 광고인으로 살았던 박 팀장의 인스타그램 계정이었다. 그는 올해 초부터 적극적으로 퇴사를 설계해왔다. 그가 말했다. “광고 회사는 순환이 굉장히 빨라. 참 많은 사람이 나가고, 놀랍게도 아직 이 시장에 정말 많은 사람이 들어오고 있어. 게다가 늘 젊은 사람의 아이디어가 신선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일단 나이가 들어가면 빨리빨리 승진시켜서 내보내는 경향이 강한 거지.” 박 팀장도 조금 있으면 더 높은 자리로 가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보다 높은 자리로 가면 숫자에 신경 써야 한다. 회사의 손익을 계산해야 하고, 벌어온 돈만큼 실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좋은 광고’를 만드는 재미와 과로에 빠져서 보내온 10년이었는데, 이젠 억지로라도 관리직이 되어야 하는 시기가 됐다는 뜻이었다. 그에 따르면 ‘재미도 없고 부담과 스트레스만 강한 시한부 직장인’이 되는 셈이었다. 그래서 계획은 있느냐고 물었다. 지도자로서 본격적으로 요가를 수련하는 중이긴 했지만 당장 업으로 삼을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이런저런 계산과 예측 속에서 정작 박 팀장이 선선하게 말했다. “그건 아직 모르겠어요. 일단 쉬려고요. 돈을 꼭 필요한 데에만 쓰고, 지금까지 소진한 것 좀 충전하려고요. 물론 처음엔 저도 망설였죠. 그런데 결심하고 나니까 일사천리였어요. 후회 안 해요. 충전해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지금은 그게 제일 중요하니까.”퇴사는 더 이상 충동이 아니다. 버틴다고 보상이 돌아오는 시대도 지났다. 꾹 참고 다닌다고 계층이 바뀔 리도 만무하다. 을 쓴 강상중 교수는 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일에 전부를 쏟아붓지 않는 것, 스스로를 궁지로 내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다움’을 찾지 않고 직업의 안정성에 의존한 채 계급사회의 계단을 올라가면 엄청난 혼란에 빠질 거예요. (중략) 행복과 풍요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500만 엔의 월급쟁이가 200만 엔의 월급쟁이보다 행복할 거라는 단순 비교 시대는 끝났습니다.”인생을 다시 설계하고 싶은 사람한테 일단 필요한 건 결심도 돈도 아니다. 시간과 에너지다. 관습적인 회사와 무능한 상사가 필사적으로 빼앗으려고 하는 것, 하지만 이젠 모든 걸 걸고 지켜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반드시 회사를 나와야만 새로워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생각의 타래를 끊을 필요도 없겠다. “이대로 괜찮을까?”라고 한번 물어보는 휴일 오후도 좋겠다. 회사는 영원하지 않지만 나는 계속 살아야 하니까.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상사이거나 후배에게도 시간만은 평등히 제한돼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