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블랙리스트에 대해 몰랐던 이야기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거기 이름이 올라 있던 사람들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그 피해를 다 감내해야 했다. 과연 그게 끝이었을까? | MBC,블랙리스트,KBS

오랜만에 어머니와 식사하는 자리, 밥술을 뜨던 어머니가 조심스레 묻는다. “요새 그 블랙리스트 명단 떠들썩하던데, 네 이름은 없냐?” 뜬금없는 질문에 말문이 막힌 나는 답했다. “응, 없더라. 그건 갑자기 왜?” 일평생 나 를 구독하고 영남 기반의 보수 정당에 투표를 해왔던 어머니는 지난 9년 자신의 투표가 아들의 생계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세월이었다는 사실이 못내 찜찜했던 모양이다. 일평생 와 을 구독하고 원내에는 진입도 못 해본 좌파 정당의 당원으로 살아온 아들이니 걱정이 안 되었겠나. “아니, 너 맨날 집회니 시위니 나가고 촛불도 많이 들었다 아이가? 그래 너 이름은 없었나 걱정되니까 그렇지.” 어머니의 걱정이 무색하게 내 이름은 그 어느 블랙리스트에도 없었다. 블랙리스트에 오를 만큼 영향력이 크지도 않았고 실천도 치열하지 않았으며 이름도 알려진 바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그 9년 동안 공기업 사보에 칼럼을 연재하고 MBC와 KBS 프로그램에도 간간이 얼굴을 비쳤으니 말 다했지.시간이 지났으니 농담처럼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거지, 지난 9년 블랙리스트가 존재할 것이라는 심증은 이 판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었으리라. 엠넷이 이례적으로 녹화 현장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면서 촬영했던 의 파일럿 방송이 아예 편성조차 받지 못하고 편성 취소가 되는 걸 보면서, 윤도현이 오랫동안 진행했던 KBS 에서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쫓겨나는 걸 보면서, 김미화가 MBC 에서 물러나고, 가 폐지되는 걸 보면서 그 정도 셈을 못 한다면 무신경한 사람이거나 생각이 없는 사람이리라. 그 9년 동안 우리는 정연주가 KBS 사장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았고, 엄기영이 온갖 굴욕을 당한 뒤에 MBC 사장 자리를 내주는 것을 보았다. 대통령과 정치 철학을 같이하는 이들이 공영방송의 사장 자리로 가는 것까지는 어찌어찌 참으며 봤는데, 일선 제작 현장에서 실력을 뽐내던 유능한 실무진이 단순히 정부 정책과 의견을 달리한다는 이유만으로 뭉텅이로 쫓겨나거나 징계를 당하고 일평생 몸담아온 직장을 떠나는 꼴을 보는 건 참기 힘들었다.블랙리스트의 가장 지독한 악랄함은 밉보인 사람들을 쫓아낸다는 점에 있는 게 아니라, 아직 리스트에 오르지 않은 이들로 하여금 자기 검열을 하도록 만든다는 점에 있다. 이런 의견을 내면 찍히지 않을까. 이런 표현을 썼다가 괜히 밉보이는 건 아닐까. 나라고 영향을 안 받은 것은 아니다. 몇몇 매체에 실린 원고는 내가 보낸 원고와는 결이 달라진 채 발행됐다. 편집자가 윤문하고 교열할 권리를 가지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나, 다른 단어나 표현은 무사히 살아남는 반면 권력 상부가 불편해할 만한 단어만 둥글게 다듬어지는 걸 보는 심기는 영 불편했다. ‘신군부 독재’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로, ‘문화계에 가해진 검열과 탄압’은 ‘대중문화에 대한 엄격한 심의’로, ‘유신 독재’는 ‘유신 시절’로. 몇 차례 불만을 표현할 때면 애꿎은 편집자가 면목 없는 목소리로 간곡하게 해명했다. “그게 저희 독자들 연령대도 연령대이고, 대중문화 칼럼이 통시적인 시선을 지니는 건 좋은데 정치적인 코멘트가 섞이면 지면 성격과도 안 맞을 수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서요....” 편집자가 느끼는 공포는 전화기 너머로 선명하게 전달됐고, 몇 번을 보내도 비슷한 결과로 둥글려진 결과물을 받아보는 데 익숙해진 어느 날부터는 나 또한 처음부터 표현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어차피 고칠 거, 두 번 일하지 말고 처음부터 이렇게 하자는 심정이었다. 나는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기 시작했다. 지난 9년 동안 나 과 같은 매체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었지만 여타 매체에 글을 쓸 때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이름 없는 나조차도 영향을 받고 표현을 거르기 시작했는데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들이 영향을 안 받았을 리 없다. 자신의 토크 콘서트 에서 김제동은 관객과의 Q&A 시간에 한 관객이 던진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다 흥미로운 일화를 들려줬다. 무대 대기실에 노무현 대통령 달력을 가져다 놓았는데, 이런저런 일로 촬영하러 올 때마다 작가들이 쭈뼛쭈뼛 와서는 달력을 잠시만 치워주면 안 되겠느냐고 묻는다는 이야기다. 심지어는 MBC 촬영팀이 자신의 집을 찾아와 촬영하게 된 날에도, 제작진이 거실 벽에 걸린 노무현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잠시만 내려주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을 했단다. 꾸준히 자막을 통해 은근한 정치 풍자를 쉰 적이 없고, MBC 예능국의 가장 견고하고 확실한 브랜드이기에 경영진조차 어떻게 건드릴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진 조차 지속적으로 압박을 받았던 것이다. 누가 봐도 정치 풍자의 의도가 명확해 보이는 자막을 방영해놓고도 화제가 될 때면 제작진은 지난 몇 년간 ‘우연의 일치’라거나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의도한 것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완강히 고개를 저어야 했다. 말하고 싶은 걸 말하지 못하고 정당한 크레디트를 주장하지 못하는 세월이었다.혹자는 ‘찾아보면 과거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시절에도 비슷한 일이 다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이를테면 의 최보식 선임기자는 최근 칼럼에서 “아직 못 찾아냈을 뿐 진보 정권에서도 다 작성됐을 것”이라며 “김지미 씨는 영화인협회 이사장직을 중도에 물러났다. 몇 년 전 본지 인터뷰에서 김지미 씨는 ‘영화 역사(歷史)를 지켜온 사람이 누군데, 그때 명계남·문성근 이런 사람들이 갑자기 혁명군처럼 구세대는 다 물러가라는 식으로 나왔다’라며 증언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최보식, ‘최보식 칼럼’ 해묵은 ‘블랙리스트’ 꺼내 들며 탄압받은 正義의 사도처럼...’ 2017년 9월 22일 자). 당사자인 김지미 선생이 원을 풀지 못하고 그와 같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야 그럴 수 있겠거니 해도 저널리스트라면 그러면 안 된다. 1996년 대종상 시상식에 아직 개봉도 하지 않았던 이 이나 등을 제치고 주요 부문 상을 휩쓰는 파행이 터져 결국 국정감사까지 진행됐던 사실이나, 그해 말 합동영화사 곽정환 대표와 태흥영화사 이태원 대표 같은 한국 영화계의 어른들이 탈세 혐의로 구속되며 영화계 전반에 만연한 비리와 무능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던 걸 기억한다면, 당시 영화계 중진들이 원로들에게 책임을 물었던 일련의 프로세스를 블랙리스트와 동일시하며 물타기를 해선 안 된다.이런 식으로 잘잘못에 대한 비판과 비평을 싸잡아 블랙리스트와 동일시하며 ‘보라, 이런 식의 정치적 안배는 과거 정권에도 있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저자에 허다하니, 결국 대중문화 작품에 대한 비평마저 진영 논리로 해석되기 시작한다. 힘을 가진 쪽에서 편을 갈라 사람을 차별하고 탄압하는 일을 지속하니, 그 어떤 비평도 “그래서 너는 어느 편이냐?”라는 질문을 피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영화 의 조악한 만듦새와 서툴고 노골적인 프로파간다를 지적할 때, 이 아버지들이 살아온 세월에 대해 경의를 바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어떠한 정치적 해석도 삼가느라 결국 놀이공원 같은 모양새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비판할 때, 그 모든 지적은 오로지 “그건 쟤도 저쪽 진영이라서 그래”라는 말로 일축당했다.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비평을 무조건 정치적 코멘트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이들 속에서 블랙리스트로 대변되는 정치적 탄압의 심각성은 턱도 없이 흐려졌다.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있는 법. 오랜 세월 정치적 탄압에 시달려온 진영 또한 작품에 대한 비평을 정치적으로 과잉 방어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영화 에 대해 “공과 과가 모두 있는 정치적 인물에 대한 영화를 만들면서 그가 가장 빛났던 순간만을 발췌해서 영화를 만드는 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항의를 들어야 했고, 영화 의 만듦새에 대해 비판한 평론가 허지웅 또한 성난 시민들의 항의를 마주해야 했다. 양쪽 진영이 하는 짓이 똑같았다는 게으른 양비론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블랙리스트를 손에 쥐고 집행한 덕분에 권력이 쉽게 사람들을 분할하여 통치할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누군가는 조직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와중에 우리 쪽에 대한 비판에 동참하다니 너는 대체 누구 편이냐고 물으며 의심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든 장본인들이 바로 블랙리스트를 만든 권력이었으니까.마치 오랜 세월 독재 정권과 싸워왔던 학생운동 판이 1980년대 들어 누가 안기부에서 보낸 프락치인지 의심하느라 신경쇠약을 앓았던 것처럼 권력은 영악하고 효율적으로 세상을 주물렀고 사람들의 영혼을 파괴했다. 편을 갈라주니 알아서들 싸웠다.창작자들은 위축되어 자기 검열에 시달렸고, 비평은 정치적 코멘트인 것처럼 오도되었으며, 실력 있는 사람들은 조직에서 쫓겨나 변두리를 떠돌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비평을 믿지 않고, 지상파 채널에 대한 기대치를 버리며 체념과 냉소를 학습했다. 이게 지난 9년간 한국 문화의 힘이니 K-팝과 K-드라마 육성이니 문화 융성 같은 슬로건을 걸고 한국 대중문화계를 제 입맛대로 주물렀던 이들이 남긴 유산이다. 적폐 청산이 진보와 보수 간의 진영 문제가 아니라 원칙과 상식을 바로 세우는 문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초라하고 황폐해진 유산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