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중개자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에어비앤비가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는 오늘날의 풍경. | 에어비앤비,숙박

“‘간다’는 것이 여행이라면 ‘산다’는 것은 좀 더 깊이 있는 경험입니다.” 에어비엔비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가 선언하듯 말했다. 2016년 4월 1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에어비엔비 본사에서였다. 에어비앤비의 네트워크를 만든 초기 팀원들 사이에서 그의 선언이 이어졌다. “우리는 호텔에 투숙하지만 집에서 살죠. 도시 중심가를 관광하는 반면 동네에 살고요. 여행을 바꾸겠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여행을 통해 여러분이 삶을 사는 방식을 바꾸고자 하는 거죠. 어딘가에 산다는 것, 그 어디보다 중요한 건 그 어디에 다녀온 나 자신입니다.”그렇다. 에어비앤비는 지금 숙박 이상의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에어비앤비의 역사는 단 9년이다.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 졸업생 브라이언 체스키와 조 게비아, 하버드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네이선 블레차르지크가 2008년 인터넷 숙소 제공 서비스를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집 월세 1150만원을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9년 만에 에어비앤비는 업계의 초대형 플레이어가 되었다.수많은 수치가 그를 증명한다. 3만4000여 개 도시에 보유한 300만 개 이상의 숙소, 서비스 시작 후 1억8000만 명을 돌파한 이용자 수, 투자 누적 금액 23억9000달러, 2016년 연 매출 약 57억 달러. 2017년 기준 에어비앤비의 기업 가치는 310억 달러. 190억 달러인 힐튼 호텔 그룹보다 더 크다.게다가 에어비앤비는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고 여행업계의 왕좌를 거머쥐었다. 즉 에어비앤비는 누군가의 필요와 필요를 연결하는 중개업자 역할만 한다. 대한민국 서울의 여행자에게 이탈리아 베로나의 집주인을 소개한다. 스위스 취리히의 비즈니스 출장객에게 뉴욕의 스튜디오를 저렴한 가격으로 제안한다. 때로는 호스트와 게스트의 안전을 보증하는 대리인이 되기도 한다.최근 대형 투자 자본의 총애를 받은 비즈니스는 대부분 이런 형태다. 맛있는 식당을 찾아준다. 가장 가까운 곳의 택시를 불러준다. 1km 반경 안의 데이트 상대를 찾아준다. 어떤 기업에 잘 맞는 인재까지 추천해준다. 에어비앤비는 이러한 21세기형 중개업의 선구자다. 더 중요한 건 이들이 지금 선구자로서 일구었던 모든 것을 넘어서려 한다는 점이다.브라이언 체스키의 2016년 선언은 그렇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 선언에 따르면 에어비앤비는 이제 중개인이 아니다. 여행 설계자가 되려 한다. 브랜드의 새로운 장을 쓰는 동시에 여행의 역사에서 새로운 전기를 만들려고 한다. 여행업의 미래, 스타트업의 미래, 21세기 중개업의 미래를 모두 자신의 어깨에 짊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업계의 매머드급 기업인 만큼 에어비앤비의 행보는 더 이상 스타트업의 무모한 도전이라고 볼 수 없다. 이 모두를 합쳐서 에어비앤비는 삶의 설계자가 되려 한다.여행은 일상의 정반대처럼 보인다. 에어비앤비는 어떻게 여행이라는 비일상적 경험을 삶이라는 일상적 경험과 밀착시키겠다는 걸까? 에어비앤비가 꿈꾸는 여행, 에어비앤비가 꿈꾸는 삶은 무엇일까? 그 답은 앞 문장에 나와 있다. 해답은 경험이다. 정확히 가격을 매겨서 살 수 없는 가치 말이다.가격을 매길 수 있는 가치는 전통적 숙박 비즈니스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특정 체인의 호텔에서 하루 묵는다고 생각해보자. 미니바에는 음료와 스낵이 있다. 빗이나 헤어드라이어 등의 비품과 기물도 제 위치에 정확히 놓여 있다. 창밖으로는 산이나 강이나 도시 중심가가 내려다보인다. 방을 나가면 수영장이나 헬스클럽 등의 부대시설이 있다. 이 모든 요소에 일정한 톤과 매너로 다듬어진 서비스와 디자인이 있다. 호텔 투숙객은 결국 편의와 부동산 관점에서 가치가 입증된 브랜드를 산 셈이다. 호텔에서의 숙박 경험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고 가치도 입증되어 있다. 값을 매기기도, 지불하기도 쉽다. 기업과 소비자의 합의 역시 수월하다. 체인 호텔에서의 1박이 하나의 완성된 상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에어비앤비는 어떨까? 에어비앤비의 이용객도 호스트의 집이나 방에 매겨진 투숙비라는 가치를 확인하고 가격을 지불한다. 하지만 에어비앤비 이용자는 삼성전자의 평면 TV, 스위스 라우펜의 고급 욕조, 헤스텐스의 거위 털 침구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호스트의 부엌 찬장에 채워진 현지 식재료와 향신료, 호스트가 수집하거나 가꿔온 장식품과 테라스의 식물, 아침 햇살이 유독 잘 드는 자리와 현지 언어로 말하는 주변 이웃들의 활기찬 목소리 같은 걸 기대한다. 즉 에어비앤비의 1박당 가치는 표준화되지 않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불편하거나 생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건 스스로 통제 불가능한 미지의 경험에 기꺼이 투자하는 것이다.“한밤중에 창밖을 내다보는데 앞 건물 1층 집 창에서 노란 불빛이 보였어요. 유심히 보니 동화처럼 스탠드 불 아래서 아빠가 딸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거예요. 그런 풍경은 호텔에선 절대 볼 수 없는 거잖아요. 진짜 그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보는 것, 그렇게 며칠 살 수 있었던 여행이 제게 특별한 기억을 남겨줬어요.” 인테리어 스타트업 ‘아파트멘터리’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에어비앤비에서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커리어를 바꾸게 되었다고 했다.“에어비앤비 웹사이트엔 일부러 정원 사진을 올려놓지 않았어요. 게스트를 위한 깜짝 선물이랄까요? 게스트마다 숙소를 기대하기 마련이잖아요. 그 기대치 이상의 경험을 선사하는 게 저희 부부의 큰 즐거움이에요.” 샌프란시스코에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호스트 파파인의 말이다. 그는 ‘내가 게스트라면 무엇에 기뻐할까?’라는 질문을 가이드로 삼아 게스트를 환대한다고 덧붙였다. 게스트뿐 아니라 호스트 역시 게스트를 맞이하며 또 다른 경험을 누리기도 한다. 경험을 원하는 게스트와 경험을 팔려는 호스트 사이에서 에어비앤비는 이들을 연결시켜 ‘경험의 시장’을 만들어낸다.‘가지 마세요, 살아보세요(Don’t go there, Live there).’ 에어비앤비의 슬로건은 디지털과 가상 경험의 시대에 대한 비관론도 거부한다. 에어비앤비는 디지털 세계가 모든 경험을 대체할 거라 말하지 않는다. 대신 디지털을 통해 진짜 경험의 세상으로 나온다고 믿는 것 같다. 여행을 통해 진짜 경험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에어비앤비와 함께라면 남미의 고산지대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프랑스 숲속에 매달린 오두막에 머무를 수 있다. 벨리즈의 초소형 섬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다. 뉴질랜드의 원시 자연을 바라보며 업무를 볼 수도 있다. 에어비앤비는 표준화된 여행과는 다른 경험을 중개한다. 사람들이 자기가 제공하는 경험에 가치를 매겨서 거래할 수 있게 해준다. 에어비앤비는 사람들의 경험을 전 세계적으로 뒤섞어주면서 매출을 올린다.땅 한 뙈기 없는 채로.에어비앤비가 말하는 경험의 확장에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개개인이 인식하는 세상의 규모가 작아져야 한다는 것. 예를 들어 서울 사람이 보는 서울과 서울에 온 외국 사람이 생각하는 서울의 크기는 다르다. 이방인은 대도시의 규모를 가늠할 수 없지만 서울에 20년 이상 산 현지인은 서울의 규모를 훨씬 더 작게 인식할 수 있다. 우리는 안다. 어떤 대상에 대한 데이터가 많을수록 대상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결국 그 대상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규모로 우리의 마음속에서 줄어든다는 것을. 디지털 세계 안에 있는 정보 덕분에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규모의 밀도가 달라졌다. 말하자면 ‘작은 경험’의 대두다.“밀레니얼 세대는 소셜 미디어의 콘텐츠를 접하며 세상을 좁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에어비앤비 최고 마케팅 책임자 조너선 밀든홀의 말도 이런 경향을 설명한다. 에어비앤비가 제공하는 경험 역시 ‘작은 경험’이다. P2P, 개인과 개인의 수평적 연결이 가능해진 시대에는 갖가지 기술적 도움으로 작은 경험을 할 수 있다. 구글맵과 우버를 쓰면 처음 가보는 도시의 골목 안쪽 레스토랑도, 여러 집이 모인 주거 지역에서도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찾을 수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라는 소형 단말기 덕에 정보력과 기동력이 생긴 사람들은 한낱 여행자 수준에서 현지인의 생활 반경으로까지 들어간다. 요즘 한창 개발되는 통역 서비스 수준까지 높아진다면 작은 경험의 밀도는 더 진해질 수밖에 없다.이제 더 이상 여행은 일상의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일상의 연장에 가깝다. 단 하나의 도시에 삶의 기반을 두던 시대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서울의 일감을 들고 런던으로 떠나서 여행 틈틈이 업무를 보는 사람이 있다. 파리의 집을 에어비앤비로 돌리면서 베를린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유럽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이 적지 않다. 근거지를 옮기거나 여러 곳을 오가며 일하는 삶은 점차 더 보편화되고 있다. 사람들은 에어비앤비 서비스 위에서 호스트의 숙소에 머문다. 그 경험에서 국적, 언어, 생계 기반에 상관없이 세상 어디라도 터전 삼아 살 수 있음을 깨닫는다. 세상에서의 삶이란 크게 다를 게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체험한다.요즘 공유 경제 개념이 대두되며 경험의 반대에 소유가 있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소유가 내 것과 내 것 아닌 걸 가르는 경계라면 경험은 그 경계를 무너뜨린다. 21세기적 작은 경험이 반복되고 축적되면서 여행과 일상의 경계도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에어비앤비는 그 테스트 베드다. 여행과 일상의 경계뿐이 아니다. 직업과 취미의 경계, 삶과 일의 경계, 국가와 국가 사이의 경계 등 많은 것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에어비앤비는 그 경계 사이를 빠르게 침투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