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의 아무 말 백과사전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엉성한 책 안에 엄중한 시대의 흐름이 담겨 있다. | 청나라,만물도형잡자,백과사전

1902년. 105년 전. 청나라의 열한 번째 황제 광서제가 나라를 다스린 지 28년째 되던 해. 조선은 고종의 광무황제 시기. 일본은 메이지 덴노 시기. 그해에 중국 쓰촨성에서 가 출간됐다. 만물의 모습을 표현한 온갖 글자를 한데 모았다는 뜻이겠다. 즉 백과사전이다.백과사전이라는 말에서 같은 걸 생각하면 안 된다. 얄팍한 책자다. 게다가 만물도형잡자라고 써뒀으면서 다음 페이지에는 버젓이 ‘만물도행잡자(萬物圖行雜字)’로 제목이 바뀌어 있다. 중국어로는 형(形)과 행(行)의 발음이 모두 ‘싱’이라 편의상 이렇게 쓴 것 같다. 헷갈렸거나. 사전이라면서 제목부터 오락가락하는 책을 출판한 곳은 정흥당(正興堂)이다. ‘올바름을 흥하게 하는 서당’이라는 뜻일 텐데, 왠지 미심쩍다. 정흥당은 팽읍 북쪽 거리에 있다고 쓰여 있다. 팽읍은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 서남쪽의 쓰촨성 청두다. 위촉오 삼국시대에 촉나라의 도읍이기도 했다.이 책을 펼쳤을 때 솔직히 ‘이게 뭐지?’ 싶었다. 첫 장을 넘기면 오른쪽엔 바지만 입은 남자의 전신상이 있고 그 위로 몸의 각 부위 명칭이 표시돼 있다. 왼쪽엔 목차가 적혀 있다. 해초류 19장, 청과물 32장, 말린 채소 18장, 나무 31장. 이 책의 목차와 실제 순서 역시 맞지 않았다. 우선 넘어가자.그다음 페이지엔 전가보(傳家寶)가 실려 있다. 집에서 대대로 전해야 할 보물 같은 이야기라는 뜻이다. 전가보는 네 장이다. 낚시하며 때를 기다리는 강태공. 임금이 되기 전 농사를 지으며 효도하는 순(舜: 요순시대의 그 순). 땔나무를 옮기는 증자. 책을 읽는 안회. 효도하고 일하고 공부하면서 때를 기다리라는 메시지다. 그 뒤로는 집 안 곳곳에 대한 명칭 설명이 이어진다.이쯤 되면 이 책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다. 앞에는 사람 몸이 있고 다음에는 삶의 메시지가 있으며 그 뒤로 집의 각 부분을 알려주는 페이지가 이어진다. 글자를 처음 배우는 어린이, 혹은 생활 한자를 익혀야 하는 낮은 계급 사람들을 위해 만든 책 아닐까? 기본적인 정보를 간소화해 싼값에 제공하는 평민 가정용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겠다.본문 속 항목을 보면 1902년 당시 중국의 삶을 짐작할 수 있다. 탁자, 촛대, 등잔, 중국 장례식에서 태우는 종이돈(錢紙), 의자, 붓, 주판, 저울, 돈통, 담뱃대와 담뱃불과 물담뱃대, 접시, 소쿠리, 각종 사이즈의 물잔과 술잔, 젓가락과 젓가락 통, 주전자, 세숫대야, 됫박, 화로, 광주리, 빗자루, 칼, 창, 가위, 상자, 카펫, 베개, 거울, 빗, 모자, 옷, 신발, 부채, 옹기, 나무 자, 바둑판과 바둑알, 각종 농기구, 똥 푸는 국자, 맷돌, 디딜방아, 도끼, 말안장, 재갈, 물고기 잡는 그물, 낙엽 모으는 갈퀴, 물레방아, 베틀, 전지가위, 송곳, 여성용 분을 담는 분합, 치마, 바지, 우산, 안경, 거울 함, 가마, 각종 과일과 채소.우리 주변의 물건이 우리의 일상을 말해준다. 어느 시대든 누구의 물건이든 마찬가지다. 이 백과사전 속 물건을 보면 자연스럽게 이 책을 만들고 읽었을 사람의 계급과 직업을 떠올릴 수 있다. 청나라 말엽 쓰촨성에 살았던 농민이나 하인들은 이런 물건을 일상적으로 접하고 썼을 것이다.사전의 핵심 기능 중 하나는 세상을 분류하는 것이다. 물건을 설명하기 전에, 어떤 물건이 어디에 분류되어 있다는 걸 정의하는 게 사전의 큰 기능이다. 이 작은 사전 역시 초반에는 사전이라 부르기 충분할 만큼의 질서가 있다. 서민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모자와 농기구 등은 질서에 맞게 차례로 모여 있다.페이지가 넘어가면서 사전의 질서가 깨지기 시작한다. 고추 옆에 심장, 간, 폐, 손이 있다. 그 아래로는 느닷없이 따오기가 나타난다. 다음 페이지에는 해, 달 옆으로 가지가 나왔다가 해삼이 나오고 또 그 옆엔 참새가 있다. 그 뒤로 목마, 마술 상자, 꽁치, 옥수수, (또) 모자, 사과, 금은보화 창고, 숫돌이 이어진다. 거듭 읽어도 무슨 원리로 그림과 글자를 배치했는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횡설수설하는 부분이 지나면 책은 자다 깬 사람처럼 질서를 되찾는다. 말, 소, 양, 닭, 거북이, 게, 조개, 거미, 고양이처럼 친근한 동물이 나온다. 한국이라면 닭이 양보다 먼저일 텐데 역시 양꼬치의 나라 중국답다. 피리, 나팔, 큰북과 작은북, 꽹과리 등의 악기가 나오고 활, 화살, 칼, 곤봉, 사다리, 깃발 같은 무기가 이어진다.기묘한 카테고리도 있다. 정상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 뭔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부르는지에 대한 페이지다. 이 페이지에는 키가 큰 사람, 키가 작은 사람, 다리 저는 사람, 한쪽 다리가 없는 사람, 대머리, 척추장애인,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의 그림이 있다. 얼굴이 얽은 남자가 광대로 분장하고 앵무새를 새장에 넣어 다니는 모습도 있다. 사전에 들어가기엔 너무 극적인 설정이다. 연극의 한 장면 같다.이 책이 사전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에서 벗어나는 건 분명하다. 마지막도 조금 무질서하다. 종과 북이 매달린 누각, 연극 무대, 더위를 피하는 정자, 배와 다리, 패루(인천 차이나타운 어귀에도 패루가 서 있다), 토지신을 모시는 사당, 푸른 사자, 흰 코끼리, 용까지 나오고 봉황 그림으로 끝난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사전의 질서가 무너져버려 당혹스럽기까지 하다.이 부분에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떠올렸다. 그의 유명한 글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에는 라는 중국 백과사전이 나온다. 보르헤스는 이 사전이 다음과 같이 분류되어 있다고 설명했다.“(존 윌킨스의 작업은) 프란츠 쿤(FransKuhn) 박사가 라는 이름의 중국 백과사전에 대해 지적한 문제점들을 상기시킨다. 이 고서는 동물이 a) 황제에 속하는 것, b) 향기가 있는 것, c) 훈련된 것, d) 돼지, e) 인어, f) 터무니없는 것, g) 방목견(犬), h) 이 분류에 포함되는 것, i) 미친 사람처럼 날뛰는 것, j) 헤아릴 수 없는 것, k) 낙타털의 섬세하디섬세한 화필로 그려진 것, l) 기타, m) 장식 항아리를 금방 깬 것, n) 멀리서는 파리처럼 보이는 것들로 나뉜다고 적고 있다.”보르헤스는 이 세상에 없는 책에 대한 논평을 소설에 집어넣곤 했다. 그야말로 지적인 유희다. 도 세상에 없는 책이다. 하지만 생각 속의 책에서 영감을 받아 진짜 책이 나올 수도 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보르헤스가 쓴 저 대목을 끌어와서 을 시작했다.보르헤스와 푸코는 중국이라는 단어에서 이국적인 무질서를 떠올린 모양이다. 그러니 질서의 상징 백과사전에 중국을 붙이면 질서와 무질서가 뒤섞인 혼란이 된다. 즉 이들의 상상 속 중국 백과사전은 알다가도 모를 카오스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중국의 백과사전은 서양인의 생각과는 달랐다. 전근대 중국의 백과사전류라 할 수 있는 나 는 각각 그 책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 사전의 사전적 정의에 충실하게도, 그 책 속 각각의 항목은 합당한 근거로 인해 그 자리에 존재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내 앞에 놓인 1902년판 중국 백과사전은 그야말로 보르헤스의 상상을 방불케 하는 카오스다.1과 2까지 보면 청나라의 보통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어떤 물건을 썼는지 추측할 수 있다. 그러다 3에서 갑자기 질서가 깨지기 시작해 해와 달 아래에 가지가 나온다.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4에서 동물을 보여주다 5에서는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105년 전 중국의 누군가는 이 책을 통해 세상을 분류했을 것이다. 왜 이 책은 처음에 잘 나가다가 중간에 질서를 잃어버렸을까? 이 책을 일본의 야후 옥션에서 입수한 후로 이 문제는 나에게 오랫동안 골칫거리로 남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은 하나밖에 없었다. 출판사가 대충 만들었을 것이다. 서민에게 필요한 정보인 일용품과 일상에 대한 그림을 앞에 넣고, 다른 걸로 뒤를 채우다 어느 순간 파탄이 났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하지만 모든 책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그 책이 생긴 시대적 맥락이, 그 책이 생겨난 존재론적 가치가 있다. 1902년판 백과사전을 통해서도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이런 백과사전을 읽고 싶어 하는 평민들이 1902년 당시 청나라 서남쪽에 많이 살았다는 것, 평민도 살 수 있을 만큼 저렴한 책이 그곳에서 팔렸다는 것.보통 이런 책이 더 살아남기 힘들다. 쉽게 만든 책은 귀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이렇게 대중적인 책이 사서오경처럼 상대적으로 어려운 책보다 더 쉽게 잊힌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원래의 책 표지는 진작 없어졌다. 나중에 입수한 사람이 새로 붙인 듯한 표지에는 ‘청경우독암장(睛耕雨讀庵藏)’이라는 장서인이 찍혀 있다. ‘날이 맑으면 농사를 짓고 비 오는 날에는 책을 읽는 사람의 서재’라는 뜻이다. 서민이 읽으라고 만든 책자와 잘 어울리는 글귀다.이 조악한 책은 거대한 역사적 변화의 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백과사전은 권력자와 부자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던 것이 1902년쯤에는 평민의 손에 들어가 읽혔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지식과 정보가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0년이 조금 넘은 지금은 위키피디아나 구글 학술 자료 등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인류 역사상 고급 정보를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청나라 평민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만든 이 백과사전이 왠지 사랑스러운 이유다.물살을 타고 움직이는 배처럼 이 책이 내게까지 왔다. 사람과 사물을 보내주고 이어주는 물류 기술과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 덕분에. 쓰촨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인터넷 옥션을 거쳐 다시 나 같은 한반도 남쪽 평민의 손에까지 들어왔다가 우연한 계기로 한국판 처럼 우아한 잡지에 이렇게 재배치됐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플라톤이 그의 철학을 요약한 말이 아주 유명하다. “판타 레이.” 모든 것은 흐른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이 책만 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