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으로 도시를 달렸다 | 에스콰이어코리아
LIFE

밤낮으로 도시를 달렸다

두 대의 레트로 모터사이클이 도심을 가로지른다.

ESQUIRE BY ESQUIRE 2017.10.31

BMW R나인 T 어반 G/S엔진 공/유랭식 수평대향 2기통 | 출력 110마력/11.8kg·m | 변속기 6단 리턴 | 무게 209kg | 가격 2090만원

DAY.

R NINE T URBAN G/S

고층 건물로 둘러싸인 이 도시는 스타일로 가득하다. 스타일은 우리가 만든 모든 사물에 녹아 있다. 색, 선, 재질, 무늬, 장식처럼 요소와 요소가 더해진 결과인 셈이다. 스타일은 장르를 개척하고 캐릭터를 만든다. 그러고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유행하면서 양식으로 자리 잡는다. 경계와 경계를 넘어 변화하고 융합하며 새롭게 태어나고 재해석된다. 당연히 모터사이클 분야에도 시대를 넘나드는 스타일들이 있다. 이 분야에서 스타일이란 목적을 의미한다. 스타일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뿐 아니라 ‘무엇을 표현하는가’가 중요한 이유다.

나는 모터사이클을 많은 기준으로 본다. 하지만 곱씹어보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타일이다. 자동차와 달리 모터사이클은 내 몸의 일부다. 반대로 내가 모터사이클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래서 둘은 어울려야 한다. 당연히 풍경에도 녹아들어야 한다. 화려한 도시에 어울리는 모터사이클은 많다. 하지만 내 스타일과 어울리는 모터사이클은 많지 않다.

“찾았다.”

흰색의 카울. 동그란 헤드램프. 수평으로 뻗은 빨간색 시트와 연료 탱크를 감싼 파란색 데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독특하기에 멋지고, 가벼워서 호기심을 끈다. BMWR 나인 T 어반 G/S는 21세기형 어드벤처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여기에 담긴 모든 스타일은 역사의 재해석이자 스타일의 융합이다. 1980년대에 등장한 R80G/S의 디자인 요소를 현대식 헤리티지 제품인 R 나인 T에 더한 것이다.

빨간색 시트에 앉아 시동을 건다. 쿵쾅쿵쾅. 연료 탱크 아래, 좌우로 튀어나온 복서 엔진이 차체를 강하게 흔들며 깨어난다. 기본형보다 약간 높은 핸들바와 푹신하고 평평한 시트가 특징이다. 시트에 앉아 두 다리로 연료 탱크를 조여본다. 자세가 편하다. 내 몸에 잘 맞는 느낌이다. 어디든 갈 준비가 됐다. 빈티지한 라이더 재킷에 작은 배낭을 메는 것만으로도 스타일이 완성된다.

어반 G/S의 겉모습은 1980년의 연장선에 있지만 속내는 완전한 최신형이다. 그게 나를 미치게 흥분시킨다. 1170cc2기통 엔진은 반응이 빠르고 힘도 강력하다. 7750rpm까지 엔진을 회전시키면 최대 110마력을 발휘한다. 스로틀을 강하게 돌리면 곧바로 속도계가 치솟으며 주변 풍경이 바뀐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일은 어반 G/S에겐 놀이에 가깝다. 길이라는 정해진 규칙 안에서 다양한 장애물을 피하면서 속력을 낸다. 직선이 아니라 코너를 찾아 달린다. 인생이 더 활기차지는 시간. 장시간의 투어보다 단 수분의 도심 속 라이딩이 더 재미있을 수도 있다. 어반 G/S와 함께한 낮 시간은 절대 지루하지 않다. 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낮은 곧 끝나고 어둠이 몰려온다.

BMW R나인 T 레이서엔진 공/유랭식 수평대향 2기통 | 출력 110마력/11.8kg·m | 변속기 6단 리턴 | 무게 210kg | 가격 2070만원

NIGHT.

R NINE T RACER

해가 진 도시는 낮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어둠 속에서 많은 일이 소리 없이 계획된다. 이 밤을 지배하는 것은 풋내기가 아니다. 이 시간은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레이서의 시간이다. 따듯한 햇볕 아래 어반 G/S가 레트로 낭만과 아름다움을 보여줬다면, R나인 T 레이서는 화끈한 달리기 성능으로 나를 이끈다. 갑자기 1970년대 전설적인 슈퍼바이크의 시대가 열리는 듯하다.

동그란 헤드램프를 감싼 하프 페어링 스타일이 독특하다. 요즘엔 찾아보기 힘든 카페 레이서 스타일이다. 21세기에 이런 모터사이클을 다시 만났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당장 경주에 나가도 될 만큼 본격적인 스포츠 모터사이클 구성이야.”

어반 G/S처럼 레이서도 R 나인 T를 기초로 한다. 물론 하나부터 열까지 짜릿한 주행 성능을 위해 개선됐다. 애초 두 명이 탈 자리는 없다. 1인용 시트가 기본이다. 핸들바의 위치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낮다. 시트에 앉아 핸들을 잡으면 자연스럽게 상체가 앞으로 기운다. 약간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포복한 모습이다. 뒤로 뻗은 발판에 발을 올리면 완벽하게 속도 경쟁에 참여하게 된다.

얼굴을 위로 치켜든다. 그래야 앞이 보인다. 전방 시야가 낮 동안의 절반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포지션이 낮아진 만큼 움직임은 한결 민첩하다. 라이딩의 질감이 전혀 다르다. 몸으로 느껴지는 속도감도 훨씬 빠르다. 따지고 보면 어반 G/S와 동일한 엔진이다. 무게도 특별히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주행 감각은 훨씬 역동적이다. 긴장감은 배가된다. 레이서는 직선에서 코너에 들어설 때 더 흥분된다. 모터사이클에 완전히 포개진 자세로 몸을 완전히 틀어 코너 입구를 바라본다.

‘질주’라는 표현에 어울린다. 실제로 어느 정도 속도를 내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코너에서 심장이 빠르게 요동치고 온몸으로 짜릿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이다. 코너의 이쪽저쪽으로 찔러본다. 레이서의 스타일은 확고하다. 이동 수단이라기보다 하나의 스포츠에 가깝다. 온몸의 감각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코너 끝에서 최대로 가속한다. 순간 앞바퀴가 가벼워지며 핸들로 전해지는 저항이 사라진다. “진정해야지.” 더 밀어붙이지 말아야 한다. 내 한계를 다시 체크한다. 어쩌면 이미 넘어섰을지도 모른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크게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천천히 속도를 낮추며 자세를 높인다.

낮부터 밤까지 두 대의 헤리티지 모터사이클이 도심을 누볐다. 이들의 가치는 분명 스타일(목적)이다. 이처럼 제대로 된 목적이 있다면 꼭 교외로 나가지 않더라도 두 바퀴의 매력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도심의 하루는 짧다. 다시 어둠은 간다. 그리고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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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Esquire Korea,사진|양 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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