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취중낭만 인천기행

인천에 가면 늘 취하고 싶다. 인천에는 쇠락한 도시만이 품을 수 있는 오랜 낭만이 있다.

BYESQUIRE2017.11.26

“이달은 원고 대신 신체 부위를 내놓을 거요?” “아, 예... 송구합니다. 노모가 아프고 아내가 큰 수술을 해서...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나으리!” 나는 담당 에디터의 독촉에 장롱을 뒤져 보따리를 푸는 심정으로 아이템을 찾았다. 그러다 결국 아내가 시집올 때 해온 모본단 저고리는 아니고, 인천 이야기를 찾았다. 사실 아닌 게 아니라 아내는 본래 인천 사람이고, 나는 청담동의 어느 식당에서 해고되었을 때 인천에서 처가살이를 했던 터라 반쯤은 인천 사람이나 다름없다. 정말 이 아이템은 어쩌면 산신령이 준 세 가지 주머니 중에 마지막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인천으로 가보자.

느긋하게 용산이나 영등포쯤에서 급행열차를 타고 잠깐 잠이 들어도 좋겠다. 동인천역에서 내려 일반 열차로 갈아타고 몇 정거장 더 가면 인천역이다. 여기서 인천 사람 흉내를 내자면, 인천역이 아니고 ‘하인천역’이라고 부르는 게 좋다. 옛날에 상인천역이 따로 있었던 흔적이다. 인천역 광장에 발을 디디면, 우리는 그대로 저 먼 개화기 신사나 육이오 때 피난민의 느낌을 살려볼 수 있다. 100여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광장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청나라와 일본 군대가 집합해서 “뒤로 번호!”를 외쳤을 것이며,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온 피난민들이 진을 쳤다.

지금부터 우리는 시간 여행이자 맛 여행을 하게 될 것인데, 불행히도 이는 어쩌면 인천이란 도시가 쇠락한 탓에 얻은 열매라 할 수 있겠다. 별 볼 일 없는 동네가 되면서 오히려 옛것이 그대로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인천역 광장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수천억의 돈을 빨아먹고 나 몰라라 하고 자빠져 있는 기괴한 구조물을 볼 수 있다. 월미은하레일이라고 명명한 이 골칫덩이 밑에 역사적인 현장이 있었다. ‘깡마당’이라고 부르는 옛 시장이다. 이곳으로 사람들이 몰려 생선 따위를 사고팔며 생계를 이었다. 신일복집의 탄생도 여기서 시작한다. 인천의 술꾼들이 이 동네를 섭렵할 때 필수 코스였던 신일복집은 깡마당에서 아귀를 된장 풀어 끓여 잔술과 함께 제공했던 가게였다. 아무나 다룰 수 없어 버리다시피 한 작은 복어도 주요 안주였다. 막걸리나 쓴 소주에 이런 안주를 먹으며 이 부둣가에 넘칠 듯한 노동자들이 목구멍을 씻어냈다. 현재 신일복집은 길 건너 차이나타운 입구에 있다. 중년의 사장 부부가 대를 이어서 장사하고 있다. 지금은 화려했던 옛 전사들(?)이 간혹 추억에 젖어 들르고, 나 같은 석기시대 사람들도 와서 술을 마신다.

원래 신일복집은 마지막 코스였다고 한다. 밴댕이집에서 먼저 마시고 해장을 하러 가는 집이었다. 그 밴댕이집이 건재하다. 수원집이라는 곳이다. 이 집이 생긴 후 밴댕이집이 많이 들어서면서 이 골목을 밴댕이골목이라 불렀다. 수원집이 원조인 셈이다. 특이하게도 수원집은 아침에 문을 열어 오후에 닫는다. 부두 노동자들이 일을 공치면 아침부터 와서 줄 서서 술을 마시는 관습이 있어서 아침에 연다. 원래는 항아리를 묻어두고 잔술에다가 온갖 잡어와 밴댕이를 굽고 회를 쳐서 팔았다. 지금은 구운 안주는 없고 밴댕이나 병어, 준치 같은 생선을 회 친다. 오래된 나무 도마에 할머니 주인장이 썰어주는 안주 맛이 기막히다. 옆자리에 70~80대 노인들이 혼자 와서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다.

이 두 집에서 먼저 속을 데운다. 너무 많이 마시면 오늘 여행을 끝까지 못 치른다. 차이나타운을 설렁설렁 보면서 중구청으로 간다. 중구청은 원래 일제 놈들이 인천부 청사로 지은 건물이다. 이 동네가 계속 잘나갔다면 싹 밀어 없어졌을 게다. 이 청사 앞으로 인천의 역사를 증명하는 온갖 건축물과 박물관이 들어섰다. 인천의 힘을 과시했던 일본 은행의 여러 지점도 다 이곳에 있었다. “인천에 배 들어오면 내가 너를 행복하게 해주마” 했던 신파극의 대사는 바로 바다 건너온 물건, 즉 박래품(舶來品)이 하역되어 흥청망청한 인천의 옛 영화를 증명한다. 술 먹은 티가 안 난다면 박물관을 두어 곳쯤 들러봐도 좋다. 그러고는 신포동으로 간다. 인천의 진짜 술꾼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최승렬이라는 전설적인 시인의 두상이 그대로 석고로 만들어져 대문 밖에 붙어 있는 희한한 술집, 다복집이 눈에 띈다. 인천의 문화·예술계 멋쟁이들이 이 골목을 드나들었다. 다복집의 대표 안주는 스지탕이다. 소 힘줄을 탕으로 끓여낸 것이다. 소주나 인천의 전통 막걸리인 소성주를 한잔하면 좋다. 신포동 골목에는 이 집 말고도 인기 있는 곳이 많았다. 백항아리 같은 곳이다. 이제는 거의 문을 닫았다. 간판도 멋진 신포주점은 아직 살아남았다. 옛 영화를 그리워하는 술꾼이 간혹 혼자 앉아 잔술을 마시고 있다. 거기에 슬쩍 끼어들어 대폿집의 기운을 느껴볼 수 있다. 딱 우리 아버지 세대가 어떻게 술을 마셨는지 절절히 체험할 수 있다. 서울에서는 거의 사라져버린 풍경이 인천에는 아직 살아남은 셈이다.

자, 술도 깰 겸 신포동에서 길을 건너 애관극장 방면으로 간다. 인천의 최고 명소, 암표도 성행했던 전설적인 극장이다. 지금은 어설픈 멀티플렉스(그래 봐야 스크린 숫자는 몇 안 된다)로 바뀌었다. 그래도 1895년에 협률사라는 공연장으로 문을 열었던 이곳이 헐리지 않은 채 영업을 계속한다는 건 한편으로 경이롭다. 이 골목을 천천히 걸어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쪽 길로 들어서면 초입에 싸리재라는 환상적인 커피숍이 있다. 클래식 애호가인 사장님이 직접 LP 플레이어를 돌리거나 마그네틱 테이프를 틀어준다. 2층으로 된 적산 가옥인 이곳의 천장에는 쇼와 시대(1927~1945)의 상량 기록이 붙어 있다. 인천 남녀의 소개팅 장소로도 유명했던 이곳도 이제 손님이 드물다. 술을 깨고 싶어 커피를 주문하고자 한다면 봉봉을 추천한다. 달콤한 연유가 들어간 사장님의 특제 커피다.

이제 발길을 배다리로 돌려본다. <도깨비>에 나온 덕분에 한때 셀카족이 몰려들었던 헌책방 골목을 천천히 걸어본다. 옛날 책을 아주 싸게 판다. 나는 주로 오래된 한식 요리책을 사는 곳이다. 이 배다리골목을 들어서기 전, 고가 밑의 오른쪽 골목에는 용화반점이 있다. 나이 든 주방장이 힘겹게 팬을 놀리고, 그의 아내가 돕는 장면이 작은 주방 문으로 보인다. 이 집이 바로 <수요미식회>에 나와서 난리가 났던, 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중국요릿집이다. 결국 외지인들이 몰려들어서 줄을 서는 바람에 이 집의 명물인 볶음밥을 먹을 수 없게 됐지만 인천 사람들은 별 걱정을 안 했다. 배다리골목 안에 있는 문화반점을 가면 되니까. 문화반점의 주인장은 용화반점의 주인장과 친척지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역시 제대로 된 볶음밥을 판다. 출출할 테니 먼저 볶음밥과 짬뽕을 먹어도 좋겠지만 마지막으로 소개할 이 목로주점을 들른 후에 문화반점을 찾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배가 너무 부르면 곤란하니까.

자, 개코막걸리 차례다.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당장 문을 닫는다 해도 할말이 없는, 주인 내외도 이제는 힘겹게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느낌에 숙연해지는 술집. 외지인은 거의 오지 않으니, 50년째 홀을 보는 주인아저씨가 다가와 묻지도 않은 말을 꺼낸다. 외지인 손님이라면 누구나 묻게 마련인 그 질문을 자문자답하시는 거다. “왜 개코막걸리라고 이름이 붙었느냐면, 내가 홀에 앉아서 테레비를 보는데 <동물의 왕국>을 하더라고. 거기 개코원숭이가 나오는 거야....” 이 대목에 주인아주머니가 소리를 지른다. “손님들 좀 내버려둬요, 귀찮게.” 내가 이 집을 갈 때마다 레퍼토리가 똑같다. 여러분도 진짜 이 대사가 지속되는지 확인해주시기 바란다.

개코막걸리는 인천의 마지막 공동체이자 인천다운 마을이라고 일컫는 배다리를 지키는 현장 운동가들, 문화·예술가들의 사랑방이기도 하다. 따스한 기운이 묻어난다. 무엇보다 안주가 기막히다. 무얼 시켜도 후회하지 않는다(나는 이 대사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민물새우탕, 박대구이, 콩비지, 통북어찜. 세 명이서 코가 비뚤어지게 마셔도 절대 5만원이 넘지 않는 가격도 미안해진다. 코가 비뚤어질 때쯤 일어나 10분쯤 걸어가면 다다르는 경인선 도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오면 된다. 아, 가고 싶다. 가고 싶다. 당장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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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민 용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