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북극성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엄격하고 일관성 있게 항상성을 추구하면 업계의 별이 된다. <미쉐린 가이드>처럼. | 미쉐린 가이드

미쉐린 타이어는 세계 최초로 공기 주입식 타이어를 발명했다. 미식의 바이블 를 만들기도 했다. 이 둘을 연결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미쉐린 그룹의 마스코트 ‘비벤덤’의 모습에서 둘 사이를 유추해볼 뿐이다.“‘그 미쉐린이 이 미쉐린이 맞습니다’라고 말하기 위해 캠페인에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었습니다.” 미쉐린 타이어 북미 지역 PR을 담당했던 어느 디렉터의 말이다. 여기서 ‘그 미쉐린’은 무엇일까? 타이어일까, 아니면 가이드일까? 해당 업계에서의 영향력만 놓고 보면 지금 ‘그 미쉐린’은 일 확률이 높다.는 미식업계에서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미쉐린 타이어 판매를 촉진하고 더 나아가서는 자동차 여행을 장려하는 임무를 띠고 1900년에 출발한 가이드북이 타이어의 명성을 뛰어넘었다. 인증 시스템으로 독자적인 지위를 얻었다. 물론 이 독자적 지위 앞에서 갑론을박이 오가는 게 사실이다. 누군가는 요리에 별점을 매기는 방식을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말한다. 식문화의 다채로운 양상을 담아내지 못하는 단선적 플랫폼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그럼에도 가 여전히 영향력이 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모든 사람이 목소리를 내는 세상일수록 북극성이나 황금률처럼 누구나 믿을 수 있는 기준이 더욱 필요한 법이죠. 그것이 바로 입니다.” 현 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인터내셔널 디렉터 마이클 앨리스 역시 이렇게 자신한다. 북극성과 황금률. 그가 이야기하는 건 탁월도 우월도 아니다. 의 100여 년 역사에서 가장 큰 업적은 항상성 유지라는 말이다.‘성장’이나 ‘혁신’처럼 거창한 단어에 비하면 ‘항상성’은 조금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살아남지 못하면 성장도 혁신도 의미가 없다. 생존의 핵심은 외부 환경의 변화 앞에서도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엄정한 기준과 그 기준을 가꾸는 역량이다. 의 공신력이 바로 거기서 왔다. 가려내는 것. 가려내어 별을 주는 것. 좋은 요리, 더 좋은 요리, 아주 좋은 요리를 구분해 알려주는 것. 아주 부침이 심한 비즈니스인 미식이라는 세계 속에서.는 프랑스의 레스토랑과 호텔을 소개하는 정보성 가이드에 별점 평가 제도를 도입했다. 그 이후로 이들은 ‘3스타’ 시스템을 고집스럽게 유지했다. 의 평가 대상은 계속 넓어졌다. 프랑스에서 서부 유럽으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아시아 대륙으로. 그렇게 별점 제도가 확장된 지금도 최고의 영예는 ‘3스타’다. 노점상에서 파는 2달러짜리 국수 한 그릇에도, 오트 퀴진으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고급 레스토랑에도 그 기준을 똑같이 적용한다.의 기준은 북극성처럼 단순하다. ‘요리가 훌륭한 식당’에는 별 하나, ‘요리를 맛보기 위해 멀리 찾아갈 만한 식당’에는 별 둘, ‘요리가 매우 훌륭해 맛을 보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에는 별 셋을 준다. 한때 경쟁자로 거론된 인증 브랜드와 달리 이곳저곳에 별을 팔지도 않는다. 2007년 도쿄와 오사카가 의 발행 도시로 추가되며 대거 별을 얻기 전까지는 미식의 종주국 프랑스의 파리에도 고작 65개의 레스토랑만이 미쉐린의 별을 갖고 있었다. 일본이 추가되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를 발행하는 28개 국가를 통틀어 3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은 110여 개에 불과하다.항상성은 가 요리를 평가할 때도 중요하다. 가 공식적으로 공개한 다섯 가지 레스토랑 평가 항목이 있다. 그중 마지막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요리의 일관성’이다. 최고 수준의 레스토랑 셰프들은 끊임없이 탁월함을 갱신해야 한다. 그를 모를 리 없는 가 말하는 일관성이란 아주 높은 수준의 평균값 구현이다. 레스토랑 중에는 다양한 지역의 음식을 섞는 경우가 있다. 새로운 공간이나 서비스를 통해 식문화의 스펙트럼을 넓힌 곳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곳이 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평균값이 없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전 미쉐린 3스타의 영광을 얻은 레스토랑이 하루아침에 별을 빼앗길 때도 있다.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뜻이다.이제 사람들은 미쉐린의 별을 얻은 레스토랑뿐 아니라 별을 잃은 레스토랑에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런 걸 보면 앞으로 는 점점 ‘어느 레스토랑이 더 뛰어난가’를 가리는 순위 매기기가 아니라 ‘어떤 레스토랑이 의 평가를 거쳐 살아남을 것인가’를 보고 즐기는 쇼 같은 양상으로 소비될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혁신 대신 생존을 택한 것처럼. 별점이라는 아주 단순한 의식을 반복하며 권위의 기준이 된 것처럼.지금은 오픈소스와 집단지성이 지식과 정보의 유통처가 되었다. 그 시대에도 미쉐린은 오로지 공식적인 목소리로만 외부와 소통한다. 의 생존 역시 떠들썩한 방식이 아니라 아주 은밀하게 이어져왔다. 는 평가원의 신상, 평가원 개인의 견해, 평가 일정, 기타 세부 과정을 철저하게 숨기는 걸로도 유명하다. 의 평가원은 요식업계에서 수십 년간 수상한 사람들로 통해왔다. 이들은 정체를 숨기기 위해 최고급 코스 요리와 와인을 가 내주는 비용으로 직접 지불하며 자신의 정체를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막심’이라는 가명으로 와 인터뷰한 의 평가원이 있었다. 그는 평가원 모두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지 않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며, 직업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고 고백했다. 의 조사 과정을 발설했다가 자격을 박탈당한 평가원도 있다.의 항상성은 결벽한, 아니 편집증적일 정도의 비밀 유지를 통해 이루어졌다. 비밀 절차로 항상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생산자와 수요자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많은 비즈니스 주체가 권위를 내려놓으면서 신뢰라는 권위를 얻으려 한다. 제품이 어디서 왔으며, 어떤 사람들을 통해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공개해야만 제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구는 브랜드도 있다. 탈권위가 패션 트렌드 같은 모습으로 소비된다. 특히 가 속한 평론과 인증의 분야는 특정 집단의 권위보다 파편화된 개인의 ‘리뷰’에 의존한다. 과잉된 자의식과 취향이라는 말로 용서받는 개인의 호불호가 당대의 평론이다. 개인화된 평론은 날것인 채 노출되어 있으며, 빠르게 권위를 얻을 수 있고, 대신 그 권위를 잃기도 쉽다.미쉐린은 반대다. 의 별은 모호하고 비밀스러우며 성스럽기까지 하다. 를 만드는 사람들 역시 강경한 자세로 별의 성스러움을 지키려 한다. 누군가 평가 기준에 대해 반문해도 그들은 모든 의혹과 의심을 일축한다. 그때의 답변도 한결같다. “별은 오로지 요리에만 담겨 있다.” 에디터였던 프랑스인 미식 비평가 프랑크 피네라바루도 말한다. “기준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 구체적인 이의 제기를 피해가도록 해주기도 합니다. 10점에서 20점까지 등급이 훨씬 세분화되어 있고 비평 글도 훨씬 더 긴 미식 가이드 의 경우 애초 미식 비평에서 성립될 수 없는 객관성 문제로 공격을 받곤 하죠.”미쉐린의 별은 북극성처럼 사람들이 보고 따라갈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식도락 여행자, 세계 곳곳의 크고 작은 레스토랑, 그리고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에게 의 성스러움은 확실한 목적의식을 준다. 만약 가 별 셋 대신 세분화한 등급 체계를 갖췄다면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이 미식의 성지 같은 게 될 수 있었을까? 혹은 스스로의 정의처럼 누군가에게 ‘그 요리 하나만을 위해 떠날 만큼의 동력’을 줄 수 있었을까? 어느 인증 등급이나 평론 매체도 이런 수준의 상징성은 갖지 못했다.베를린의 요리사 팀 라우에는 미쉐린의 별을 받았다. 베를린은 미식의 척박한 토양으로 여겨졌지만 팀 라우에가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이 된 뒤로 상황이 변했다. 라우에는 미쉐린의 상징성과 목적의식에 긍정적이었다. “별 하나를 받았을 때는 더 발전해야 할 부분만 생각했어요. 별 하나는 셰프에게 더 나은 음식을 만들라는 격려이자 자극입니다. 물론 별 두 개를 받은 지금도 어떻게 하면 제 요리가 좀 더 나아질까 고민해요. 그러지 않으면 제 자신이 만족할 수 없고, 또 주방의 스태프들도 지루해할 테니까요.” 비평가 프랑크 피네라바루의 생각도 비슷하다. “지금 떠오르는 레스토랑 인증 매체들이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고 트렌드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면, 미쉐린은 그 젊은 셰프들이 완전히 만개했을 때 훈장을 달아주는 역할을 하죠.”재능 있는 요리사가 요리를 만든다. 재료를 깊이 이해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해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게 주목을 받는다. 그 요리의 신선함과 흥미로움이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명성을 얻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요리를 칭찬한다. 그 요리가 창작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을 때쯤, 미쉐린의 별을 주는 사람들이 몰래 다녀갔을지도 모른다. 얼굴을 숨긴 채 슬며시 찾아온 의 평가자들은 1년에 한 번씩 만드는 책을 통해 활짝 피어나는 꽃 같은 재능을 치하한다. 근 한 세기 동안 그들이 해온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