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현실에 일어난 비극을 과거에서 바로잡으면 된다는 설정이야말로 안이하고 편리하다. 요즘 한국에 이런 드라마가 많아진 덴 이유가 있는 법이다. | 드라마

한국 대중문화에서 더 이상 시간은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쉴 틈 없이 시간을 넘나드는 주인공들 덕분에 시간은 현재에서 과거로 갔다가 다시 미래로 방향을 틀며 갈지자로 흐른다. 2013년 OCN 이 성공하고 2016년 tvN 이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끈 이후 한국에서 제작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들은 시간을 달려 과거로 돌아가거나 미래로 넘어가 불행한 현재를 바로잡으려 노력한다. 전생의 환영을 보거나 다음 생을 기약하며 환생하는가 하면, 꿈속에서 미래를 미리 보거나 물, 터널, 맨홀 따위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간의 흐름을 우회하는 주인공들이 2017년 한 해에만 몇 명이었는지 이젠 헤아리기도 지친다. tvN , KBS , OCN , SBS , 그리고 영화 까지. 2017년은 옛 연인의 결혼을 막기 위해, 가족의 죽음을 막기 위해, 불행하게 끝난 결혼 생활을 되돌리기 위해, 못 잡은 범인을 잡기 위해 등 다양한 이유로 시간을 넘나들며 고군분투하는 이들로 북적였다.언제부터 이렇게 한국인들이 시간을 뛰어넘는 서사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물론 OCN 과 tvN 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사례를 보며 용기를 낸 제작자와 창작자가 많았을 거란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이와 같은 본격 판타지 장르는 대중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제작이 반려되곤 했는데, 홈런을 날린 드라마가 등장했으니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일도, 투자를 유치하는 일도 더 이상 어렵지 않게 되었으리라. 그러나 그게 이유의 전부일까? 타임슬립 장르물의 본격적인 기폭제가 된 tvN 의 주제 의식과 작품이 등장한 시점을 생각해보면 이게 그렇게 단순한 일은 아니다. 은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 살인 사건들을 해결하고 가능하다면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과거와 현재 양쪽에서 무전으로 소통하며 활약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상처로 남아 있는 참극의 진실을 밝힐 수 있다면, 더 나아가 아예 그 참극을 막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욕망은 그 무렵 한국 사회가 경험한 트라우마에 대한 대답이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시간의 인과를 흔드는 일이 예기치 못한 다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을 외면하지 않았던 은, 올바른 선택을 하기란 얼마나 힘들고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를 상기시켰다.이 어떤 트라우마에 대한 답이었는지, 보다 더 직접적인 인용을 보자. 꿈으로 미래를 보는 이들이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다룬 SBS 의 한 장면. 꿈에서 버스 폭발로 버스 기사인 아빠가 승객들과 함께 죽는 것을 보았다며 버스를 버리고 같이 도망가자는 딸에게 아빠는 승객들을 대피시키라 말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아빠는 이 버스의 대장이라고. 승객들이 다 무사히 내리는 걸 확인하지도 않고 버스에서 내릴 수는 없다고. 다른 나라의 작품이라면 몰라도, 2017년 한국에서 만든 작품에서 이와 같은 대사가 나온다면 그것이 암시하는 건 2014년 진도 해역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 이런 참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미리 예측하고 적극적으로 막았다면, 누군가 책임감을 가지고 그 자리를 지켜줬다면 결과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라는 믿음. 2014년 세월호가 가라앉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면서도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는 극도의 무력함을 경험한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 속에는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그 불행했던 사건을 겪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이라는 자책이 깊게 자리 잡았다. 이 과거를 바로잡는 주인공들의 활약을 보여주며 만루 홈런을 친 이후 우후죽순처럼 시공간을 뛰어넘는 서사들이 세상에 등장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불행하기 전의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우리는, 시간을 달려 과거를 바로잡는 주인공들을 보며 위안을 받는다.이미 벌어진 비극을 되돌리고 싶은 건 모두의 판타지이다.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되돌리고 싶은 일을 너무 많이 경험한 한국 사회에서, 그 마음을 위로하는 작품이 속속 등장하는 건 일견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좋은 노래도 반복해서 들으면 물리는 법. 온 대중문화계가 시간을 넘나드는 이들로 붐비는 통에 그 위로가 주는 힘은 갈수록 미약해진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되돌리려는 부부가 등장하는 KBS 를 보자. 서로 상대와 결혼했기에 불행해졌다고 믿는 마진주(장나라)와 최반도(손호준)는 가정법원에서 이혼 판결을 받고 나오던 날 18년을 거슬러 올라가 스무 살이던 시절로 돌아간다. 꼬이기 전 시점으로 돌아왔으니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거라며 큰 고민 없이 신나게 청춘을 만끽하려는 두 사람을 붙잡는 건 과거 시점에선 아직 세상에 없는 자식에 대한 걱정 정도가 전부이고, 두 사람은 미래에 큰 불화로 이어질 사소한 오해들을 바로잡고 진심을 고백하며 고장 난 부부 관계를 복원하려 애쓴다. 현재의 소중함을 절감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기 위해 지출하는 대가는 제로에 가까우며, 원인을 알 수 없는 타임슬립은 아주 편리하게도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시의적절한 시점에 주인공을 떨궈준다. “거 참 편리해서 좋겠다” 이상의 소감이 나오기 어려운 타임슬립의 반복 속에서 위로와 교훈은 힘을 잃는다. 이미 벌어진 비극을 되돌리고 싶은 건 모두의 판타지이다.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되돌리고 싶은 일을 너무 많이 경험한 한국 사회에서, 그 마음을 위로하는 작품이 속속 등장하는 건 일견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비극을 비극으로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한번 벌어진 이상 돌이킬 방도가 없다는 것이며, 사람들이 과거사를 철저하게 규명하고자 하는 것 또한 단순히 “이 사건을 이때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안타까워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앞으로는 이와 같은 참극이 없어야 하겠기에 그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시간을 몇 번이고 다시 되감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들 안에서 이와 같은 절박함은 자꾸만 흐릿해진다. 타임슬립물의 난무 속에서 한번 벌어진 비극의 불가역성은 가볍게 무시되고, 교훈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할 위험부담은 한없이 0으로 수렴한다. 그러니 시간을 되돌리고 넘나드는 일 자체가 점점 심드렁해지는 것이다. 여기에 과거로 돌아간다는 점에 착안해 식상해진 흥행 카드인 복고 코드를 슬그머니 다시 꺼내는 제작자들 덕분에 한국의 타임슬립물은 점점 손쉬운 퇴행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됐다. 뉴 잭 스윙이 유행하던 1990년대 초반의 의상을 챙겨 입은 윤시윤이 다시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겠다며 썰매를 타고 계단을 구르는 KBS 에서 타임슬립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과거의 선택이 현재의 결과를 바꾸는 일의 연속이 인과를 어떻게 틀어놓을 것인가 손에 땀을 쥐며 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쯤에서는 반복해서 시간을 되감는 행위의 허망함에 슬슬 지쳐간다. 언제든 돌이킬 수 있는 비극은 더 이상 비극이 아니고, 원만한 해피 엔딩과 선명한 권선징악을 예측할 수 있는 서사 구조 속에서 반성은 사라진다.우리는 이처럼 처음에는 신선했던 장르가 어느 순간 퇴행을 반복하며 지리해지는 걸 전에도 여러 차례 목격했다. 2005년 영화 과 이 개봉했을 때만 해도 인간 승리의 실화를 소재로 삼은 휴먼 드라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달하는 도구였지만, 2006년 와 2007년 를 지나며 슬슬 그 공식이 정형화되어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2001년 에서 시작되어 2011년 에 이르기까지 흔들림 없는 흥행 카드였던 복고 코드 또한 2012년 을 기점으로 더 폭발적으로 소비되며 그 의미를 잃었다. 1990년대 인기 가수들을 모아 고스란히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공연을 가진 MBC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2014)나, 오늘날의 노년층에게 달콤하게 곱씹을 만한 좋았던 과거를 박제해서 선물했던 영화 (2014)쯤 되면 복고 코드는 더 이상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가 아니다. 복고 코드는 이제 테마파크처럼 안전하게 즐기고 회고할 수 있는 과거로 가서 그 시절을 한껏 만끽함으로써 불행하고 초라한 현재를 잊으려 하는 발버둥으로 전락해버렸다. 실화가 주는 감동은 게으르게 반복되며 점점 그 감흥을 잃은 채 쉽고 얄팍한 위로의 말이 되며,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짚으며 오늘날을 돌아보려던 복고 코드는 단순히 과거의 영광을 돌이켜보는 자위 행위가 됐다. 그리고 이제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비극을 막아보고 싶었던 이들의 열망이 소환해낸 타임슬립 장르 또한 마찬가지의 길을 걷고 있다. 손쉽게 비극 이전의 시간대로 돌아가 ‘없던 일’로 만들면 그만인 작품의 홍수 속에서 타임슬립 장르는 이제 그 생명력을 다하는 중이다.물론 대중문화 상품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이들에게 대단한 사회적인 메시지나 교훈을 담아야 한다는 법 같은 건 없으며, 오히려 그런 강박이 더 기형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온 사회가 그런 강박을 서로에게 강요하고 강요받던 시기, 뮤지션의 장르적 성향과는 무관하게 카세트테이프 B면 맨 마지막 곡으로 무조건 건전 가요를 한 곡씩 실어야 했던 폭력의 역사를 살았던 한국인들에게 ‘교훈적인 면을 잊지 말라’는 주문은 그 얼마나 시대착오적으로 들릴 것인가. 그러나 달기만 한 음식이 몸에 좋을 리 없고, 고통을 잊게 해주는 진통도 그 양이 과하면 중독이 되는 법이다. 단순히 좋았던 과거를 회상하는 것도 위험한 마당에, 쉽게 시간을 되돌려 아무런 대가 없이 불행한 현재를 없던 일로 만드는 서사를 이처럼 빠르게 소진해버린 오늘날의 한국은 분명 위험해 보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서사는 불행한 오늘을 없던 일로 만드는 현실도피의 서사가 아니라,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어버린 오늘을 인정하고 그 위에서 어떻게 일을 바로잡아 내일로 나아갈 것인가 함께 고민하는 서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