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합과 집산의 계절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바른정당은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자유한국당은 그만큼 커졌다. 국민의당은 심정적 분당 상태다. 김무성, 유승민, 홍준표, 안철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정치,안철수,유승민,홍준표,김무성

11월 6일 오전 10시, 기자들이 모인 국회 정론관에 8명이 나왔다. 바른정당 탈당을 선언한 자칭 ‘통합파’ 의원들이었다. 카메라 앞에 선 그들은 진지하고 엄숙했다. ‘가짜 보수와 결별하겠다’며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을 탈당할 때의 표정 그대로였다. 탈당 명분은 뭘까?“(전략)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국정 폭주를 막기 위해서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보수 세력이 즉각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중략) 보수 세력의 새로운 세계를 위한 첫 발걸음은 보수 대통합을 이뤄내는 일부터 시작돼야 합니다.(후략)”- 11월 6일 ‘탈당 선언문’ 중역시 ‘무대(김무성 대장)’ 김무성 의원이 가장 눈에 띈다. 유승민 의원은 2016년 말 새누리당에 남아 ‘당을 쇄신하겠다’며 고민했다. 그를 데리고 나온 사람이 김무성이다. 이제 김무성이 자유한국당에 복당한다. 정치는 묘하고 민망하다. 한국당은 107석에서 116석으로 몸집을 늘렸다.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이들의 바른정당 탈당 명분을 만들어주는 치어리더를 자청했다. 그가 ‘당원 박근혜 제명’이라는 카드를 흔들었다. 누가 봐도 명분이라 말하기 어려웠지만 그 카드로 바른정당을 같이 흔들었다. 친박과의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의석수 40석인 국민의당은 현재 ‘심정적 분당 상태’(11월 7일, 이상돈 의원)다. 안철수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안파’와 호남 중진이 두 축으로 나뉘어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안철수는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추진하려 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25일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급제동에 걸렸다. 이후 안 대표는 ‘통합’ 대신 ‘연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정책 연대, 선거 연대를 넘어 그 이상을 바라본다. 친안파와 호남파의 긴장과 갈등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안철수가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기 시작했다.궁금하다. 김무성은 왜 비난을 감수하고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했을까? 유승민은 왜 원내 교섭 단체 지위 상실이라는 수모까지 당하며 남으려 할까? 홍준표는 왜 친박과 싸우며 바른정당 의원들을 흡수할까? 안철수는 왜 이질적인 바른정당과 합치려 할까?없던 무성김무성 탈당의 명분은 없었다. 탈당 회견 후 “모든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현시점에서는 보수가 통합해서 문재인 정부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는 가치가 우선이라 이런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지만 우습다. 김무성의 변심은 예고돼 있었다. 지난 2월부터. 때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승민은 회고한다.“바른정당을 창당할 때부터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 대선 전 바른정당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김무성 의원이 노골적으로 ‘바른정당은 반기문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만든 정당’이라고 하더라. (중략) 나로서는 굉장한 충격이었다.(후략)”- 2017년 11호 10월 13일 인터뷰 중이쯤 되면 김무성의 변심이 아니라 김무성의 진심이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지난해 말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새누리당의 대선 승리 가능성은 제로였다. 친박이 점령한 새누리당 안에서 쇄신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이때 김무성은 반기문에게 눈독을 들였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새 대통령은 새 당에!’ 다른 당을 만들어서 반기문을 영입하고 대선에서 승리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럴듯한 시나리오로 보였다. 하지만 반기문은 몇 주 못 버티고 불출마를 선언했다.“김무성 의원이 근래 술을 안 하는데 어제 상당히 술을 많이 드시는 모습을 봤다.” 김무성과 가까운 김성태 의원은 반기문의 불출마 선언 다음 날, 한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김무성 스스로도 “너무 큰 충격이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그는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이번이 마지막 총선 출마’라고도 했다. 같은 해 11월 “오늘 제 정치 인생의 마지막 꿈이었던 대선 출마의 꿈을 접고자 한다”며 대선 불출마까지 선언했다. 반기문에게 걸겠다는 의미였다. 그 반기문이 사라졌다. 김무성에게 남은 운명은 사실상 정계 은퇴였다.여기서 멈춘다면 ‘무대’가 아니다. 바른정당은 처음부터 반기문 영입용으로 창당했다.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다. 당이 라이벌 유승민의 색으로 채워지는 것도 거슬린다. 지지율도 바닥이다.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혼란이다. 친박의 기세는 꺾였다. 홍준표는 막말로 보수의 체통을 깎아먹는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도 있다. 이 사건의 대법원 판단에 홍준표의 미래가 걸렸다. 김무성에겐 천혜의 조건이다.김무성이 복귀하면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다. 친박은 최소 2018년 지방선거까지 주도권을 잡기 어렵다. 홍준표가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아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치러도 지금의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 등을 감안하면 승리 가능성은 낮다. 지방선거에서 패하면 홍준표는 날아갈 가능성이 높다. 다음 순번이 김무성에게 올지도 모른다. 총선과 대선 불출마는 번복하면 된다. 자기 살길 찾는 정치. 김무성 모델은 (본인에게는) 참 좋은 모델이다.챙긴 승민정치인에게는 명분이 생명이다. 유승민은 그걸 챙겼다. 김무성이 버리고 간 그 명분을 지켰다는 점에서 좋은 대조를 이룬다. 실익은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 폼은 난다.유승민의 정치 인생은 평탄할 것 같았다. 2000년 이회창에게 발탁돼 정치권에 들어올 때만 해도, 2005년 원조 친박으로 박근혜의 비서실장으로 선택됐을 때만 해도. 딱 거기까지였다. 한국형 보수정당에서 가장 싫어하는 ‘입바른 소리’를 한 게 죄였다. 유승민은 2015년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 박근혜와 각을 세우다 배신의 정치로 찍혀 원내대표직에서 쫓겨났다. 2016년 총선에선 공천에 탈락해 무소속으로 나가 당선했다. 당시 그는 하얀색 점퍼를 입고 유세를 벌었다. 백의종군 혹은 귀양 가는 선비를 연상시킨 절묘한 컬러 선택이었다. 칭찬한다. 대구의 4선 위원인 유승민이 새누리당을 떠나는 건 쉽지 않았다. 김무성 등의 회유와 설득(?)에 못 이겨 당을 나왔다. 그렇게 바른정당을 만들었다.바른정당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5월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의원 13명이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했다. 대부분 김무성계. 1차 집단 탈당. 2016년 11월 탈당이 2차 집단 탈당이다. 유승민에게는 황당한 일이다. 황당을 넘어 절망이고 배신이다. 그는 뒤늦게 바른정당에 합류했다. 11월 13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에도 도전하고 있었다. 어쨌든 유승민은 명분을 잡고 당에 남았다.유승민은 친정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까? ‘명분을 지킨다’는 말은 사실 ‘명분만 생기면 언제든지 뛰쳐나가겠다’는 의미다.솔직해질 필요는 있다. 유승민은 친정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까? ‘명분을 지킨다’는 말은 사실 ‘명분만 생기면 언제든지 뛰쳐나가겠다’는 의미다. 최근 인터뷰 곳곳에서 그의 갈증이 드러난다. 그는 10월 9일 자 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이 동의할 만한 명분 있는 통합이라면 당장 한다 해도 반대하지 않는다. 내년 지방선거 전 통합도 가능하다. 다만 지방선거를 좀 더 편리하게 치르기 위해, 그저 문재인 정부를 반대하기 위한 통합에는 반대다”라고 말했다. 11월 1일 CBS 에서는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면 더 명분 있는, 그런 보수 대통합의 기회가 분명히 올 거라고 본다. (중략) 통합을 하려면 국민이 박수를 치는 통합을 해야 한다”라고도 말했다.그도 정치인이다. 계산이 없을 리 없다. 자유한국당과의 즉시 통합은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다. 쇄신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통합한들 2018년 지방선거 승산율이 높지 않다. 계산을 해도 실익이 없다. 생명력이 긴 명분을 챙기는 게 낫다. 그러니 당장은 춥고 배고파도 기다린다. 2022년 대선이라는 고지를 향해.모를 준표홍준표의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가장 가깝게는 대법원 판결이 있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살아남아도 그의 미래는 알 수 없다. 2018년 6월 지방선거, 2020년 총선, 2022년 대선, 그에게 쉬운 일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홍준표 주변엔 사람이 없다. 정치 인생 시작부터 지금까지. 지난 대선 후보가 된 건 천운이다. 2월 16일 성완종 리스트 사건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무죄 판결을 받아 기사회생했다. 자유한국당은 대통령 탄핵 때문에 친박당에서 친박 후보가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자유한국당은 어쩔 수 없이 홍준표를 대선 후보로 내세웠다. 홍준표는 박근혜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그러니 홍준표는 대선 후보가 되었어도 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기대할 수 없었다. 홍준표 스스로가 그 사실을 가장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대선 기간 내내 ‘불쌍한 박근혜’를 말했다. 그러던 홍준표가 11월 3일 ‘1호 당원 박근혜’를 제명시켰다. “한국 보수 우파의 본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박근혜당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게 김무성의 복당 명분을 위한 수였다는 건 다 안다. 그럼에도 왜?자기 세력이 없는 홍준표는 당대표여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힘이 빠졌다고 해도 자유한국당은 친박당이다. 물론 홍준표는 김무성계(혹은 비박계)와 친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그쪽이 있는 게 낫다. 친박 일색보다는 친박-비박이 섞인 당이 차라리 편하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현상 유지 정도만 되어도 홍준표의 공간이 넓어진다. 여세를 몰아 2020년 5월 총선에서 친박들을 제거하면 가장 좋다. 그런데 잘될까? 모르겠다.아는 철수안철수가 문재인을 너무 싫어하는 건 모두 다 안다. 극중주의, 공화주의 등을 외치지만 안철수가 가장 확실히 외치는 건 ‘반문(재인)주의’다. 반문주의의 계기는 2012년 대선 과정의 앙금과 2017년 대선의 좌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1박 2일 국빈 방문이 품격 있는 나라에서 있는 일인가.” “지금 서로 전(前), 전전, 전전전 (정권을) 때려잡느라고 완전히 정신이 없다. (중략) 복수하려고 서로 정권을 잡았느냐. 나라를 잘되게 해야지 무슨 복수를 하려고 (하나).” 안철수의 최근 발언이다.조금 유치해 보인다. 외교에서는 의전, 타이밍, 접촉 시간 등 모든 요소가 중요하긴 하다. 그럼에도 미국 대통령은 한국 단독 방문이 아니라 아시아 5개국 순방이라는 장기간 외교 일정을 수행하고 있다. 모든 나라를 똑같이 방문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 ‘1박 2일 방문’과 ‘품격’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복수’ 주장도 마찬가지다. 안철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국방부의 정치 관여 및 댓글을 통한 여론 조작, 블랙리스트에 대한 검찰 조사를 복수라고 규정했다. 대통령 이명박은 광우병 사태 후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시작했다. 정치적 위기의 타개와 현 정부의 적폐청산을 같은 범주로 보았다. 착각으로 보인다.안철수는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모색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2016년 총선에서 승리한 지역구 25석 가운데 무려 23석을 호남에서 얻었다. 호남에 기반을 둔 당대표가 영남과 수도권에 기반을 둔 바른정당과 손을 잡겠다고 하니 호남 의원이 가만있을 리 없다. 게다가 본인 상황도 별로인 유승민에게 ‘햇볕정책과 호남 지역주의를 떨쳐내야 통합 논의가 가능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햇볕정책은 호남에 역린과도 같다. 그런데도 안철수는 바른정당을 바라본다. 왜일까?안철수는 처음부터 문재인이 될 수 없었다. 정계 입문한 2012년 대선에선 ‘착한 이명박’ 이야기를, 2017년 대선에서는 ‘MB 아바타’ 소리까지 들었다. 안철수의 인생과 정치적 발언은 진보 성향 유권자의 마음에 들기엔 부족하다. 노무현에 대한 향수, 이명박과 박근혜에 대한 분노 등을 사로잡지 못했다. 그래서 안철수는 오른쪽 전략을 택했다. 대표적인 게 사드에 대한 입장 변화다. 안철수는 사드에 대해 국회 비준과 국민투표 검토까지 언급했다. 지금 안철수는 사드 배치 찬성으로 돌아섰다. 해명은 있었으나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서 그의 모습은 낯설었다.안철수에게는 보수가 죽은 지금이 기회다. 어차피 진보 진영 표는 기대하기 어렵다. 고맙게도 자유한국당은 극우라는 이념과 영남이라는 지역에 갇혔다. 제대로 된 보수가 없다. 빈 공간을 채울 누군가가 필요하다. 안철수는 ‘바로 나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세력이 필요하다. 이미 갈라선 더불어민주당과 다시 도모하는 건 매우 어렵다. 마침 유승민과의 공통점이 보인다. 유승민은 ‘개혁 보수’, 안철수는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다. 게다가 호남 국민의당과 영남 바른정당이 모이면 외연 확장도 가능해 보인다. 이론적으로는. 그런데 정치는 연산도,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아니다.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안철수의 입장은 명확하다. “지도부가 고작 한다는 것이 당내 중진 의원에게 ‘나가라’고 막말을 해대고 있을 뿐 (중략) ‘하는 꼴이 딱 초딩 수준’이라는 비난을 자초할 것이다.”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이 11월 7일 페이스북에 쓴 말이다. “정치적 자산이 고갈된 사람 (중략) 바른정당분들도 그(안철수)가 아마추어고 정치적으로 다 종 친 사람이라고 본다.”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도 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반면 안철수는 11월 11일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외연 확장을 통해 선거에 승리하는 게 정당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얼마나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