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 사는 할아버지는 절실했다. 의관을 갖추는 데 온 정성을 다했다. 몸을 깨끗하게 하고 옥빛이 도는 도포까지 갖춰 입고 박정희와 육영수 여사의 사진에 네 번 절했다. 조선 시대에는 임금이 죽으면 네 번 절했다는 거였다. 그에게는 대통령이나 임금이나 다를 게 없었다. 그러곤 박정희 대통령의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녘에 길을 나섰다. 청주에 사는 할아버지 조육형 씨의 어느 아침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다. 새마을운동 1기생이면서 마을 지도자였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이었다.
울산에 사는 김종효 씨 부부도 비슷했다. 육영수 여사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그의 사진을 지갑 속에 넣고 다녔다. 그들이 운영하는 식당에는 오랫동안 모아온 육영수 여사의 사진이 전시돼 있었다. “우리 사랑하는 육영수 여사님 사진입니다. 여기 휴대폰 고리도, 앞면은 박정희, 뒷면은 육 여사.” 남편은 휴대폰 고리를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했다. 이들 역시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추모제를 지내고 육영수 여사의 숭모제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 김종효 씨 부부도 박사모 회원이었다.
다분히 정서적인 차원이었다. 이들이 박정희와 육영수 여사를 생각하는 마음은 백성이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에 가까웠다. 베풀어준 게 있으니 감사해서 사랑하고, 너무너무 곱고 예뻐서 보기만 해도 좋다는 거였다. 오래된 클리셰 또한 등장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가난을 해결해줬다는 거였다. 배고픔을 가시게 했다는 거였다. 다시 클리셰가 이어졌다. 요즘 사람들은 아무리 말해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박정희와 육영수 여사를 생각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들의 마음은 정치적 이해를 뛰어넘는 차원에 있었고, 그 마음이 그대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까지 이어지는 거였다.
영화에는 몇 가지 전환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이 이어지던 때였다. 광화문에서는 매주 촛불이 모이고, 서울역에서는 매주 태극기가 모이던 때였다. 청주에 사는 조육형 할아버지는 그날도 의관을 정제하고 길을 나섰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마침내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는 좀 혼란스러워했다. 분위기가 삼엄했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의 언어는 폭력적이었다. 할아버지의 눈빛이 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적잖이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다. 할아버지가 연단의 구호를 따라 외치기 시작한 건 시간이 좀 흐른 뒤였다. 그제야 얼굴의 긴장도 풀려 있었다.
김종효 씨 부부는 충북 옥천에서 열리는 육영수 여사의 숭모제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부부가 한껏 차려입은 날이었다. 하지만 숭모제 현장에 도착했을 때의 분위기는 흉흉했다. 숭모제를 반대하는 시위가 한창이었고, 숭모제를 지지하는 측과의 충돌도 있었다. 부부는 그 옆을 지나가려다 흠칫 놀랐다. “깜짝이야! 여기 가도 되나?” 사투리로 남편에게 묻는 아내의 목소리에는 낯선 공포가 묻어 있었다. 그런 식의 충돌은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 사람의 반응이었다. 숭모제 현장에 들어가서 절을 하고 나와서야 그들은 긴장이 풀려 있었다. 그들은 주최 측에서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음식을 나눠 먹고는 현장을 떠났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들은 한국의 극우여야 했다. 박정희와 육영수 여사를 임금 내외로 모시고, 모든 논리와 공과를 뛰어넘어 마음으로 좋아하며, 그들을 거의 신격화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 그 마음 이 그대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로 이어져서 무조건 두둔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우리 근혜가 잘못한 게 뭐 있어요, 사람을 죽였어요 뭘 했어요? 그 못된 최순실한테 잘못 걸려서 그래 된 거지, 진짜로.” 영화에는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잠시 등장했다. 탄핵 정국이 한창이던 2016년 내내 듣던 말이기도 했다. 그들의 맥락이었다.
태극기 집회 현장의 연단에서 마이크를 잡고 유세하던 사람들도 같은 사람들이어야 했다. 그들은 모두 박사모 소속이었다. 빨간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탄기국(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 대변인이자 박사모 회장이었던 정광용 씨도 그런 사람이었다. 군복에 빨간 모자를 쓰고 마이크를 잡았던 사람이었다. 빨갱이는 몽둥이로 때려잡아야 한다고 외치던, 그 집회를 주도하던 사람이었다. 지난 11월 13일, 검찰은 정광용 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누구나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의사를 표현할 자유가 있지만 무제한 보장이 아닌 일정의 한계가 있다. 우린 그걸 법치주의라고 한다. 해당 집회는 법치주의 허용의 테두리를 넘은 불법 집회. 법치주의를 크게 훼손한 두 사람은 혐의를 부인하고 반성을 하지 않는다’는 게 검찰의 소견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 태극기를 든 거의 모든 사람이야말로 한국의 극우 같았다. 내 편이 아니면 다 빨갱이고, 빨갱이는 다 죽어야 하며, 그런 논리 안에서 모든 폭력이 용인될 거라고 믿는 사람들.
2016년 촛불 집회 현장은 그대로 한국이었다. 다양한 매체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호명하던 사람들이 작년의 광장에 다 있었다. 광화문과 시청에서는 촛불을 들었고 서울역에서는 태극기를 들었다. 그런 양상을 두고 누군가는 분열, 대립 같은 단어를 꺼내 들기도 했다. 태극기를 든 사람들한테 촛불을 든 사람들은 모두 좌익, 빨갱이였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 태극기를 든 거의 모든 사람이야말로 한국의 극우 같았다. 내 편이 아니면 다 빨갱이고, 빨갱이는 다 죽어야 하며, 그런 논리 안에서 모든 폭력이 용인될 거라고 믿는 사람들.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강원택 교수는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보수의 기본 틀은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 시대가 지닌 핵심 개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반공’, 나머지는 ‘성장’이다. 흔히 말하는 ‘빨리빨리’ 문화가 가리키듯이 성장은 빠른 시간 안에 성과를 내야 하는, 물질적 성공과 발전이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개념이다. 이는 박정희 시대를 거쳐온 한국 보수의 중요한 특성이다.” 강원택 교수의 언어를 태극기 집회 현장의 언어로 치환하면 ‘먹고살게 해준 게 누군데’와 ‘빨갱이는 때려 죽여야 한다’가 된다. 전자가 성장이고 후자가 반공이다. 성장과 반공이야말로 한국 보수의 만능열쇠 같은 두 단어였다. 태극기 집회 현장의 극단적인 언어와 폭력성이 박정희 시대에 형성된 한국 보수의 틀 위에 있었다는 뜻이다.
어쩌면 바로 여기가 진짜 혼란이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한국의 보수가 성장과 반공이라는 두 기둥 위에 지은 집이라면, 흔히 알려져 있는 보수의 가치와는 아주 다른 전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8월 6일 자 <한국일보>에 정두언 전 국회의원이 쓴 칼럼 ‘보수주의가 지켜내야 할 가치’가 실렸다. 칼럼에서는 보수주의의 가치를 이렇게 요약했다. “보수주의는 이념보다는 실용, 과거보다는 미래, 폐쇄보다는 개방, 분열보다는 통합, 의존보다는 자율, 극단보다는 중도, 비판을 위한 비판보다는 대안 마련, 비관보다는 낙관, 부정보다는 긍정, 안주보다는 변화와 도전을 추구한다. 우리나라, 우리 민족, 우리 국민이 수많은 사람의 고귀한 헌신과 희생으로 외부 세력의 숱한 도전을 이겨낸 ‘위대한 여정’을 따라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게 ‘21세기형 보수주의’의 지향점이다.” 칼럼이니까, 정두언 전 의원의 생각일 수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보수의 가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상식 차원에서도 그렇다. 지켜야 마땅한 가치를 지키고, 품위와 격식을 중시하며, 말 그대로 변화에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양식. 그렇다면 질문할 수 있다. 한국에 진짜 보수가 존재했던 적이 있었나? 초보적인 질문일 수 있으나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혹시 보수라는 이름으로 태극기를 들고 그들 스스로의 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선전처럼 이용해온 단어가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거칠게 주장할 수 있다. 규정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랬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판에서 ‘보수’라는 단어는 보수가 마땅히 지켜야 하는 국익이나 이념과는 크게 관련이 없었다. 그보다는 일종의 이익집단 같았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묻는 이유 또한 있다.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의 두 주인공, 조육형 할아버지와 김종효 씨 부부 같은 사람들 때문이다. 이념 같은 건 크게 관심도 없고, 보수와 진보 역시 중요하지 않으며, 그저 마음으로 박정희와 육영수를 좋아하는 사람들. 같은 마음으로 그들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마음’의 스펙트럼 또한 극단적이라는 걸 잘 알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섬세하게 접근해야 하는 개인들.
영화의 마지막 전환점은 올해 3월 10일이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피청구인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주문을 확정했을 때, 조육형 할아버지는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다만 이제 이런 촬영은 그만하자, 더 했다간 내 건강에 악영향이 올 것 같다는 말로 갈음했다. 김종효 씨 부부도 진심으로 가슴 아파했다. <미스 프레지던트>를 연출한 김재환 감독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슬픈 건 이분들이 너무 착하다는 사실입니다. <엠비의 추억>처럼 풍자했다간 자칫 조롱으로 그칠 수 있었습니다. 태극기 집회의 연단 위에 서는 분과 아래에 서는 분을 구분했으면 좋겠습니다. 박정희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돌 맞을 분들은 아닙니다.”
촛불 집회 현장에 규정할 수 없는 개인이 거대한 덩어리로 모여 있던 것처럼 어쩌면 태극기 집회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현장 혹은 비슷한 현장에 조육형 할아버지와 김종효 씨 부부도 있었다. 처음에는 겁이 나서 어리둥절하다가, 눈치를 보다가, 마침내 같이 함성을 지르면서 ‘작은 힘이라도 보탰다’고 생각한 개인들이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개인으로서는 같았다. 누가 얼마나 알고 누가 뭘 모르느냐의 문제도 아니었다. 보수와 진보, 극우와 극좌, 성장과 안보 같은 언어야말로 여전히 비현실적이었다. 열쇠를 쥐고 있는 건 결국 개인이었다. 개인을 들여다봐야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었다. 거대한 정치 이론과 어려운 단어에 가려져서 한 번도 제대로 호명된 적 없었던, 오로지 개인만이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