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다, 돌았다, 살았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BMW M 트랙 데이에 M2 쿠페를 몰고 난공불락 인제 스피디움에 도전했다. | BMW M,트랙 데이

“청룡열차를 타고 있는데, 그걸 직접 내가 운전해. 미친 거지. 레일도 없어. 돈 거지. 그런데 M이야. 산 거지.” 지난 11월 2일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BMW M 트랙 데이 영상에서 했던 말이다. 결단코 방송용 멘트가 아니었다. 전신으로 느껴지는 짜릿한 속도감에 질려버린 두뇌가 무의식중에 반응하고 가까스로 해석해서 입으로 전달한 표현이었다. BMW M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동안에는 솔직히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거듭되는 직선과 곡선의 무한 반복 속에서 최선의 라인을 찾기 위해선 BMW M과 혼연일체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M이고 M이 나였다.지난 11월 1일 BMW M2 쿠페를 몰고 인제 스피디움에 나섰다. 인제 스피디움은 1회전이 3.9km가 조금 넘는 결코 짧지 않은 트랙이다. 인제 스피디움이 난코스인 건 180도에 가까운 코너링 구간이 굽이굽이 이어지기 때문만이 아니다. 인제 스피디움은 구간별 고저 차가 유난히 크다. 오른쪽으로 꺾인 180도 급회전 구간을 지나자마자 급경사 구간이 이어지는 식이다. 급경사 다음엔 다시 왼쪽으로 꺾인 180도 급회전 구간이 이어진다. M의 폭발적 속도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낭떠러지로 돌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다음 급회전 구간도 육안으로는 미리 식별할 수가 없다. 비유하자면 절벽으로 수직 낙하한 다음 곧장 반대편 절벽으로 몸을 날려야 한단 말이다. 이쯤 되면 경공술이다.몇 년 전 일이지만 전남 영암에 있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을 살짝 경험해본 적이 있었다. 처음 겪는 서킷 주행이라 낯설긴 했지만 이번만큼 긴장하진 않았다. 분명 원인은 두 가지였다. 우선 영암 서킷은 코너링이 극적이긴 했어도 고저 차가 이 정도로 다급하진 않았다. 적어도 낭떠러지로 뛰어드는 듯한 기분은 아니었다. 다른 원인은 확실히 BMW M이었다. 특히 새로운 M인 M2 쿠페가 주는 질주의 쾌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나도 모르게 속도를 내다가 놀라서 속도를 줄이기를 거듭했다. 6기통 3.0 트윈 스크롤 터보차저 엔진을 장착한 M2 쿠페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코스를 공략했다. BMW M의 알루미늄 차체 안에 흐르는 들끓는 가솔린이 콕핏에 앉아 있는 운전자의 혈관으로까지 세차게 흘러드는 듯했다.이쯤 되면 청룡열차가 맞았다. 처음 한 바퀴를 도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전혀 새로운 탈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내가 직접 운전하고 있었다. 미친 게 맞았다. 레일도 없었다. 언제 탈선할지 알 수가 없었다. 돈 게 맞았다. 그런데 M2였다. 50 대 50에 가까운 완벽한 중량 배분으로 후륜구동 스포츠 쿠페로선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를 지닌 녀석이었다. 난공불락 인제 스피디움이라도 M2와 함께라면 해볼 만했다.솔직히 기술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BMW M의 다이내믹 스태빌리티 컨트롤, 즉 DSC 기능이야말로 운전자의 드라이빙 경공술을 몇 갑자 증폭시키는 최첨단 기술이었다. 인제 스피디움을 공략하는 내내 솔직히 M2의 DSC 기능에 상당 부분 의존했다. 난공불락의 인제 스피디움을 트랙 초보자가 돌파하려면 BMW의 기술이 있어야 겨우 가능한 일이었다. DSC기술은 운전자가 제대로 트랙을 읽지 못한 채 무리한 기동을 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동으로 네 바퀴의 접지력을 유지시키고 오버스티어링과 언더스티어링 사이에서 차체의 균형을 잡아주었다. 우리가 단잠을 자는 사이에 지구 평화를 지켜주는 슈퍼 영웅들처럼, 트랙 위에서 정말 무식해서 용감한 운전자의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줬는지 모를 일이었다. 적어도 M2를 몰고 있는 지금의 운전 기술이 전부 다 제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정도의 겸손함과 분별력 정도는 있는 남자였다.사실 BMW M 드라이빙 테그놀로지의 진짜 정수는 이렇게 운전자와 차체를 안정적으로 지켜주는 데 있지 않다. 역설적이지만 운전자를 안전하게 위험하게 해준다는 데 있다. 인제 스피디움을 두 바퀴쯤 돌자 조금 자신감이 붙었다. 슬금슬금 낭떠러지를 만나면 차를 던지고 코너링을 만나면 차를 내팽개치는 짓을 해대기 시작했다. 남자란 원래 실제보다 스스로를 크게 보는 동물이다. 스피드라는 아드레날린으로 자극받자 남자다운 테스토스테론이 과다 분출되기 시작했다. 과연 M2의 주행 성능은 날카롭기 짝이 없었다. 코너를 찌르듯 감아 돌았다. BMW 인스트럭터의 말처럼 가고자 하는 곳으로만 시선을 고정시키자 아무리 깎아지는 듯한 급회전 구간도 세련되게 돌아 나갈 수 있었다. 스스로 드라이빙 천재인가 싶었다. 불과 두 바퀴째 만에 난공불락 인제 스피디움을 지배하게 되다니 말이다.아니었다. 이것도 기술 덕분이었다. BMW M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운전자의 주행에 스리슬쩍 개입했다. 운전자가 즐기고 싶은 만큼 차를 쥐었다 폈다 했다. 말 그대로 안전하게 위험하게 해줬단 말이다. 낭떠러지와 코너를 굽이굽이 돌아 나올 때마다 수많은 연산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이때 M이 읽어내는 건 차체에 가해지는 횡가속력과 종가속력 같은 것만이 아니었다. 순간순간 운전자의 마음속에서 펼쳐지는 용감함과 두려움의 비례관계를 정확하게 포착해내고 있었다. 내가 달리고 싶을 때 M은 차를 놓아줬고 내가 긴장했을 때 M은 차를 잡아줬다. 레일 없는 청룡열차를 탔는데 그걸 내가 운전하는 순간에도 결코 탈선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스릴 만점일 수 있었던 건 바로 M이 내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냈기 때문이다. M만 타면 인제 스피디움에서도 니키 라우다 혹은 자동차 전문 에디터 김태영이라도 된 것처럼 자신감 있게 달려볼 수 있단 말이다.이날은 운도 좋았다. BMW M 트랙 데이는 2박 3일 동안 80개 팀 160여 명의 고객이 참여하는 행사다. 당연히 조별로 나뉘어 트랙을 달리게 된다. 인스트럭터의 인솔에 따라 5명 정도가 한 조를 이루고 서로 보조를 맞춰야 한다. 어느 한 사람이 무리해서 추월하려고 들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결국 어떤 동료들과 조를 이루느냐에 따라 주행 경험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룹 C조는 서로 호흡이 잘 맞았다. BMW 인스트럭터도 찰떡궁합이라고 인정할 정도였다. 트랙을 돌 때는 인스트럭터가 앞장서고 나머지 차량들이 줄줄이 뒤를 따르게 된다. 이때 인스트럭터 바로 뒤에 서는 선두 차량의 역할이 중요하다. 트랙을 공략할 때는 라인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라인이란 트랙 위에서 차량이 주행하면서 그리는 선을 말한다. 이 선이 아름답고 효율적일수록 기록도 좋아진다. 인스트럭터가 그리는 라인을 선두 차량이 따라 달리고 후속 차량들이 추격하는 형국이다.인스트럭터가 그려놓은 최적의 라인을 선두 차량이 못 따라잡는 경우가 있다. 이러면 인스트럭터는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다. 자연히 줄줄이 속도가 늦춰지고 결국 그룹 전체가 정체된다. 다른 조들은 그랬다. 이날 C그룹만큼은 달랐다. 너 나 할 것 없이 인스트럭터가 그려놓은 라인을 잘 따라잡았고 덕분에 그룹 전체의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다. 급기야 다른 조들을 거듭 추월해나가기 시작했다. C그룹을 이끄는 인스트럭터도 점점 더 조원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사실 C그룹의 조원들이 다른 조보다 운전 실력이 월등했던 건 아니었다. 나부터가 그랬다. 거꾸로 어느 누구도 스스로의 운전 실력을 과신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스트럭터가 그려놓은 라인만큼은 똑바로 따라가려고 애썼다. 덕분에 선두 차량부터 후미 차량까지 모두가 거의 똑같은 라인으로 트랙을 공략할 수 있었다.어쩌면 C그룹은 독일 병정 같았다. 어떤 순간에도 열과 오를 맞춰서 각지게 행군하는 독일 군인이야말로 BMW M에 어울리는 운전자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데일리 스포츠카로서 BMW M이 지닌 다른 스포츠카와의 결정적 차이점이다. 다른 스포츠카들은 운전자가 적잖이 멋을 부리게 만든다. 스포츠카를 운전한다기보다는 스포츠카를 몬다는 풍류를 즐기는 식이다. 트랙과 차체의 마찰보다는 그걸 운전하는 내 폼에 신경이 분산되기 일쑤다. BMW M은 다르다. BMW M은 글자 그대로 진정한 운전의 즐거움 그 자체에만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싶어 하는 진정한 드라이버를 위한 차다. BMW M엔 군더더기가 없다. 모든 건 오직 진정한 운전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운전보다 폼에 관심 있는 운전자야말로 그토록 순정한 M한테는 불순물에 가깝다.그날 C그룹의 성실함은 BMW M과 정말 찰떡궁합이었다. 인스트럭터의 코칭을 칼같이 따랐고 BMW M의 기술에는 자로 잰 듯 맞췄다. 덕분에 트랙을 돌수록 점점 더 속도가 빨라졌다. 나중엔 거의 모든 조를 추월하고 몇 바퀴씩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BMW M의 특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만일 기술이 들어온 줄도 모르는 일반 고객들이 아니라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는 김태영 에디터 같은 정교한 드라이버였다면 BMW M의 성능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BMW M은 그런 운전자를 위해 태어난 궁극의 드라이빙 머신이기 때문이다.BMW M 트랙 데이에선 오직 트랙만 도는 건 아니다. 드리프트와 짐카나를 경험할 수 있다. 드리프트는 후륜 구동 성능을 이용해서 차체를 미끄러뜨리는 주행 방식이다. 짐카나는 콘으로 만들어진 미로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 시간 기록을 따지는 주행 경기다. 이땐 M2 이외에도 M3나 M4 같은 여러 M 시리즈를 경험해볼 수 있었다. 솔직히 드리프트는 말처럼 뜻대로 되지가 않았다. 차를 미끄러지게 만드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차를 딱 원하는 만큼은 미끄러지게 만드는 게 어려웠다. 인스트럭터들은 택시 드라이빙에서 인제 스피디움의 풀트랙 코스를 모두 드리프트로 빠져나가는 시범을 보여줬다. 타이어가 비명을 질러댔다. 이렇게 드리프트는 마음먹은 대로 이용하는 게 쉽지 않았다. 짐카나는 정교한 주행 실력이 필요했다. 지그재그 운전과 360도 급회전 운전을 병행하면서 시간을 단축시켜야 했다. 욕심을 버려야 했다. 욕심을 내면 오히려 차가 코스에서 이탈하기 일쑤였다. 분명한 건 BMW M은 운전자에게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운전자의 기술과 마음에 따라 매번 정확하게 반응해줬다. BMW M은 그런 차였다.BMW M 드라이빙 테그놀로지의 진짜 정수는 운전자와 차체를 안정적으로 지켜주는 데 있지 않다. 역설적이지만 운전자를 안전하게 위험하게 해준다는 데 있다.BMW M 트랙 데이는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하루 종일 운전을 즐기게 꾸민 행사다. 그렇다고 훈련만 하는 행사는 아니다. 고작 하루 트랙을 타본다고 당장 김태영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BMW M의 문화를 즐기는 것이다. 남자에게 자동차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출퇴근의 도구일 수도 있다. 가족을 위한 공간일 수도 있다. 하루하루 삶이 바쁜 도시 남자들은 종종 자동차가 하루 중 가장 즐거운 놀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그건 분명 남자의 라이프스타일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남자는 달리고 싶다.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다. 달리는 과정 그 자체가 인생의 목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도로에서 가끔씩 꿈틀대는 속도에 대한 갈증은 무모한 욕구가 아니라 가끔은 채워줘야 할 남자의 본능이다. BMW M은 잊고 있었던 본능을 다시 일깨워준다. 삶의 작은 즐거움을 깨닫게 해준다. 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쁠 수 있다는 걸 가르쳐준다.BMW M을 경험하고 난 다음 조금은 다른 남자가 돼 있었다. BMW는 인제 스피디움 한편에 재미있는 놀이 기구를 잔뜩 마련해놓았다. 드라이빙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뮬레이션 장비부터 모형 트랙을 달려볼 수 있는 미니카 경주 세트까지 다양했다. 나도 모르게 그런 장난감들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효율성만 따지며 점잔 빼는 지루한 남자가 아니었다. 눈앞의 무구한 재미를 누릴 줄 아는 키덜트가 돼 있었다. 어쩌면 코너를 돌 때마다 M이 그렇게 조금씩 나를 바꿔놓은 건지도 몰랐다. BMW M 트랙 데이가 선사한 가장 값진 경험은 이것이었다. 삶은 아직 내가 모르는 즐거움으로 가득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해준 것 말이다. 미쳤다. 돌았다. 살았다. 그렇게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