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목동이다 | 에스콰이어코리아
PEOPLE

나는 목동이다

고프로 창업자 닉 우드먼이 생각하는 액션캠의 미래. 단순한 플랫폼 그 이상이다.

ESQUIRE BY ESQUIRE 2017.12.01

2006년, 자동차를 대상으로 영상을 만들던 남자가 있었다. 때마침 열린 디지털 HD 방송 시대와 함께 영상 카메라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던 시기였다. 그는 고민했다. HD 화질의 영상을 제대로 만들려면 부피가 큰 카메라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자동차 안팎에서 생동감 넘치는 장면을 담기 위해서는 공간의 제약이 컸다. 이 주제를 두고 그는 수년을 연구했다. 그러곤 결국 특수한 형태의 고정 마운트를 만들어서 좁은 공간에 카메라를 욱여넣거나, 차 외부에 카메라를 부착하는 방법으로 문제에 적응했다.

비슷한 시기에 해외에서 ‘액션캠’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레저 스포츠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쓸 수 있는 다목적 카메라. 물론 처음엔 단지 호기심 가는 장비로 인식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2011년, 액션 카메라 전문 회사 고프로(GoPro)가 ‘히어로 2’를 내놨을 때 업계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혁신이었다. 한 손에 잡힐 만큼 작은 카메라가 고화질 HD 영상을 기록할 수 있다니! 고프로는 진화한 카메라가 아니라 하나의 해결책이었다. 화각이 넓어서 좁은 공간에서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고, 투명 케이스에 넣으면 방수도 됐다. 전용 마운트에 달면 자동차든 비행기든 스케이트보드든 상관없이 영상을 기록했다. ‘왜 이런 카메라를 만들 생각을 못했을까?’ 남자는 고프로를 손에 들고 한참을 생각했다. 자신이 수년간 고민해오던 것을 고프로가 깨끗하게 해결한 것처럼 보였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만든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모든 것이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다. 지금도 그 순간의 기억이 또렷하다. 그 남자가 바로 나니까. 그리고 나와 비슷한 고민에서 시작해 고프로를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한 사람이 바로 현재 고프로 최고경영자인 닉 우드먼이다.

2017년 11월의 어느 날, 한국의 어느 호텔에서 닉 우드먼과 만날 기회가 생겼다. 당연히 이번 만남은 개인적으로도 특별했다. 단지 기업 CEO를 취재하는 기자 입장만이 아니라 수년간 제품을 사용한 소비자 또는 팬의 입장이었으니까.

히어로 2가 등장한 후부터 고프로가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이 크다.

긴 시간 동안 고프로 제품을 사용해봤으니 우리가 얼마나 많이 발전했는지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고프로는 이제 15년 된 회사예요. 그중 한국 시장에 진출한 건 7년 정도 됐고요. 이런 흥미로운 시장을 두고도 제가 이제야 한국에 왔다는 게 믿겨지지 않네요.

고프로를 만든 사람으로서 당신은 발명가에 어울리나, 아니면 사업가에 어울리나?

시작은 발명가였지만 회사를 운영하면서 깨달은 점은 사업가도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좋은 제품을 발견하는 것에 그치면 안 되고, 이걸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하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목동(牧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품이 있고 사업이 성장하면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이 움직임으로 변하거든요. 고프로는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정신을 담은 기업이에요. 그러니 이제 제가 할 일은 고프로의 잠재력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이죠.

대학을 졸업하고 세운 회사가 연달아 실패했다고 들었다. 재충전을 위해 떠난 여행에서 서핑하다가 액션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그게 고프로의 시작이라고 했다. 다시 실패할 가능성도 있었을 텐데 어떤 동기부여로 세상에 없는 장르에 도전하게 됐나?

스스로 다짐했어요. ‘서른 살까지만 기업가에 도전해보자.’ 두 번째 회사가 실패한 후 나에겐 아직 4년의 시간이 남아 있었죠. 실패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후회하고 싶지 않았어요. 기업가가 된 후에 느낀 점이라면 이런 과정이 마치 암벽등반 같다는 거예요. 밑에서 보면 목표가 보이고 올라갈 수 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올라갈수록 아래를 보면 두렵죠. 그런데도 내려갈 수는 없어요. 반대로 위로 올라가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지고요. 그러니까 매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누구나 이런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낀다는 점을 받아들이면 두려움이 에너지로 전환되는 순간이 있지요.

당신에게 필요한 장비라는 이유로 고프로를 세상에 탄생시켰다. 이처럼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생각해냈을 때 직접 만들어서 도전하는 것을 추천할 만한가?

나는 사람들이 제품이 아니라 어떤 사건에 대한 해결책을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우리 제품을 산 것도 고프로가 자동차에서 촬영하는 해법을 제시했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을 때 과연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아이디어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같은 문제를 여러 사람이 겪고 있어야겠지요.

요즘엔 고프로를 어떤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지?

젊었을 때는 서핑, 스키, 자동차 경주에 고프로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3명의 아들을 촬영하는 데 주로 활용합니다. 7세, 5세, 3세니까 아직은 제가 쫓아다니며 많은 것을 도와줘야 하죠. 이제 고프로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시간은 지나가지만 고프로로 촬영한 영상을 봤을 때 마치 과거의 그 순간에 다시 살고 있는 착각이 듭니다. 일반 카메라는 내가 타인을 촬영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고프로는 그 순간에 나도 담겨 있어요. 결국 인생이라는 건 경험으로 구성되고, 저는 고프로가 모두의 경험을 기록해서 추억으로 남기길 바라죠.

스토리텔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퀵 스토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자동 편집 프로그램을 세상에 내놓은 것은 혁신적이었다. 누구 아이디어였나?

고프로는 처음에 스포츠용품으로 인식됐어요. 특별한 순간을 촬영하는 영상 장비였죠. 그러다 점점 가족 중심으로 변하며 진화했어요. 그 순간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순간의 기록을 더 가치 있게 만들려면 장면을 엮어서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요. 자동 편집 툴인 퀵 스토리를 개발한 이유였지요. 실제로 저는 자녀들의 모습을 고프로로 많이 찍어요. 하지만 편집까지 마무리하기엔 주어진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그래서 누군가 자동으로 영상을 묶어서 편집해주는 기능을 떠올렸고요. 우리가 실제 사용자였기에 필요한 걸 만들어냈던 거죠. 소비자들도 이 부분에 공감했다고 생각합니다.

신제품인 고프로 6 블랙은 지금까지 나온 제품 중에 단연코 최고다. 그런데도 개선하고 싶은 부분이 있을 텐데.

앞으로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목적과 형태의 고프로를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 쓰이는 목적 이외의 환경에서 고프로가 사용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고프로의 정의란 결국은 또 다른 형태의 스마트폰 카메라입니다. 스마트폰과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활용해서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고프로로 촬영한 영상이 지금 이 순간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공유된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상이 있나?

아주 많은데 그중에서 한 개를 꼽으라면 새끼 사다새(펠리컨)의 첫 비행이에요. 위험한 곳에서 구출되어 인간의 품에서 자란 새였죠. 날아본 적이 없는 새에게 사람이 날갯짓을 보여주며 비행을 가르친 거죠. 첫 비행을 앞두고 고프로를 사다새 부리에 달고 찍었어요. 그리고 그 새가 처음으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혔죠. 아주 의미 있고 감동적인 장면이었어요.

고프로 드론과 짐벌을 카르마로 브랜딩하고 있다. 카르마 제품의 2세대를 기다리는 소비자도 많은데, 2세대 카르마 출시는 언제 정도로 예상하는지.

지금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제품을 내놓기 위해서 만든 제품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충분히 발전한 의미 있는 제품일 거라는 점입니다. 카르마 드론의 경우 지금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발전한 형태일 겁니다. 이건 모든 고프로 제품이 마찬가지죠.

단순한 촬영 장비를 넘어, 고프로는 누군가의 생활 속 일부다. 그만큼 팬도 많고. 브랜드에 충성하는 팬들에게 어떻게 보답하려고 노력하는가?

더 좋은 제품, 개선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사용자는 고프로를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역동적인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도 비슷하죠. 누군가의 열정을 기록하고 즐기고 공유하도록 돕는 겁니다. 그러니 고프로를 사용하는 동안 부족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가 할 일입니다.

Keyword

Credit

    에디터|김 태영,사진|민 성필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