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방탄소년단은 한류가 아니다

방탄소년단의 세계적인 인기는 한류를 탄 결과가 아니다.

BYESQUIRE2017.12.24

팟캐스트를 운영하던 때가 있었다. 2013~2014년경의 일이다. 방송 이름은 <힙합 초대석>. 새 앨범을 발표한 힙합 뮤지션을 초대해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방송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놀랍게 들릴 만한 사실을 하나 공개하자면, <힙합 초대석>에는 방탄소년단도 출연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당신의 표정을 당연히 이해하지만 엄연히 사실이므로 JTBC에 팩트 체크를 요청해도 무방하겠다. 정확히 말하면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 방시혁과 방탄소년단의 프로듀서 피-독(P-dogg), 그리고 방탄소년단의 멤버 RM와 슈가가 출연했다. 우리는 힙합, 아이돌, 그리고 힙합과 아이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를 떠올린 후 지금을 떠올리면 미묘한 기분이 든다. 단순한 격세지감만은 아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음악적으로, 또 가사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해온 과정을 머릿속으로 되짚는 중이다.

최근 들어 더욱 두드러지는 방탄소년단의 성공을 누군가는 아직도 의심하거나 폄하할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뮤지션의 해외 진출에 대한 과장된 의미 부여에 지속적으로 노출돼왔다. 때로는 허위 사실도 접했다. 외국에서 한국인 관중만 세워놓고 진행한 공연을 해외 진출의 쾌거로 둔갑시키는 언론플레이에 질린 것도 물론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먼저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7위에 올랐다. 또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에서는 28위까지 올랐다. 둘 다 빌보드에서 가장 중요한 차트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 초청되기도 했다. 올해 시상식에서 그들은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을 수상했다. 이 부문의 ‘끝판왕’ 저스틴 비버마저 꺾은 결과였다. CNN은 이 수상을 다룬 기사의 제목을 이렇게 지었다. ‘(저스틴) 비버보다 거대한?(Bigger than Bieber?)’ 빌보드 뮤직 어워드뿐이 아니다. 방탄소년단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도 퍼포머로 초청되어 무대에서 ‘DNA’를 불렀다. 체인스모커스는 이 무대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 다음 무대를 소개해야 하는데, 지금 약간 떨립니다. 이 친구들은 ‘인터내셔널 슈퍼스타’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한 친구들이에요.” 뭔가 이상하다. 인터내셔널 슈퍼스타는 체인스모커스 아니었나.

빌보드 측에서 방탄소년단을 비틀스와 견준 것도 주목해야 한다. 방탄소년단의 미국 상륙을 비틀스의 ‘브리티시 인베이전’과 비교한 것이다. 다분히 상징적이다. 방탄소년단의 엄청난 인기를 입증해주는 말인 동시에 미국이 그들을 ‘좀 신기한, 아시아에서 온 녀석들’이 아니라 자국의 슈퍼스타들과 동등한 맥락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음이 읽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방탄소년단은 <지미 키멜 라이브>나 <엘렌 드제너러스 쇼> 같은 미국의 대표적인 토크쇼에도 연이어 출연했다. 이런 프로그램은 아무나 출연시키지 않는다. 동양인 남자 그룹이라면 더욱더.

사실 (가장 부정확할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정확한 지표는 바로 미국 셀럽들의 반응이다.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현장만 살펴봐도 우리는 앞서 언급한 체인스모커스는 물론 카밀라 카베요, 앤설 엘고트, 자레드 레토, 마시멜로, AJ 깁슨 등 수많은 셀럽이 먼저 방탄소년단의 팬을 자처하거나 그들의 무대를 본 후 감격에 젖어 있는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RM을 발굴한 장본인이자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데뷔 때부터 만들어온 프로듀서 피-독은 전화상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수많은 영상에는 오히려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현장의 열기가 제대로 담기지 않은 것 같다. 과장 조금 보태서 방탄소년단의 단독 콘서트 같았다.” 방탄소년단의 ‘미국 침공’은 과장이 아니다.

그들에게 이 무대는 불가능함을 극복한 성취였고, 성장 서사의 완결이었으며, 궁극적으로는 미국 사회에서 자신이 되고자 하는 이상향이었다. 방탄소년단은 그들에게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잊지 마. 나의 성공은 곧 너의 성공.”

방탄소년단의 이 같은 성공이 큰 맥락에서는 한류의 도움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독자적인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도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이에 대해 지난 10여 년간 미국에 거주하며 K팝을 지켜봐온 김영대 음악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K팝 콘서트인 ‘K콘(Kcon)’의 관중이 2만 명 수준에서 8만 명까지 대폭 늘어났다. 모든 인종과 국적이 섞여 있고, 이제는 백인 중산층 자녀들도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온다. 하지만 동시에 방탄소년단 팬은 K팝 팬층과 성격이 또 다르다. 방탄소년단 팬은 K팝 팬이 아니라 방탄소년단만의 팬이 많다. 기존 한류 팬이 아니라 방탄소년단을 통해 입문한 팬들이다.”

방탄소년단의 독자적인 성공에 큰 역할을 한 소셜 미디어 활용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으므로 생략하자. 대신 이쯤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운드’와 관련한 그들의 전략이다. 프로듀서 피-독은 이런 말도 전해왔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힙합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팝 쪽으로 외연 확장을 한 것도 사실이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만드는 기준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는 것이었다. 한국 그룹이기 때문에 한국적인 것을 강조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반대로 미국인이 좋아할 만한 것을 일부러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단지 시대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세계의 보편적 기준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늘 캐치하려고 했다.” 이는 서양인들이 방탄소년단을 ‘이국적(exotic)’으로 느끼게 하는 대신 ‘쿨하고 세련된’ 존재로 보게 만들고자 했다는 의미다. 전화비가 아깝지 않은 답변이었다.

동양인 남자는 대체로 서양에서 남성성이나 성적 매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서양인에겐 동양인 남자에 대한 전통적인 고정관념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의 젊은 층이 방탄소년단에 반응한 건 아이돌 음악에 관심이 많고 인종에 대한 편견이 상대적으로 낮은 덕분이다. 이들이 동양인 남자를 보는 시선은 자신들의 위 세대가 지닌 오랜 고정관념과 또 다르기 때문이다. 마치 흑인 래퍼를 우상으로 삼고 자란 백인이 부모와 달리 오바마를 자신의 대통령으로 흔쾌히 받아들이며 지지한 것과 비슷하다면 비슷하다. 특히 젊은 층 중에서도 비주류, 즉 동양계 이민자와 소수 인종, 성 소수자의 지지를 빼놓을 수 없다. 방탄소년단이 몇 장의 앨범을 통해 보여준 긴 호흡의 ‘성장’ 서사는 이들에게 강렬한 정서적 자극을 준 것은 물론, 아예 자신과 방탄소년단을 일치시키는 수준에 이르게 했다. 그 때문에 방탄소년단의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무대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이 무대는 불가능함을 극복한 성취였고, 성장 서사의 완결이었으며, 궁극적으로는 미국 사회에서 자신이 되고자 하는 이상향이었다. 방탄소년단은 그들에게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잊지 마. 나의 성공은 곧 너의 성공.”

‘건강한 메시지’를 전파하는 팝 스타가 현재 미국에 부족하기 때문에 방탄소년단이 그 반대급부를 얻은 면이 있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같은 매체에서 방탄소년단을 다룬 뉴스에 ‘그들은 매우 친절하고, 귀엽고, 겸손하고, 달콤하고, 멋있다!(They are so Kind, Cute, Humble, Sweet, Nice!)’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혹자는 미국에 팝 스타가 얼마나 많은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잠시 떠올려보자. 저스틴 비버나 크리스 브라운이나 그들의 현재 모습은 초창기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저스틴 비버는 디제이 칼리드의 앨범에 참여해 성적 은유로 무장된 가사를 내뱉고, 크리스 브라운은 오래전부터 저스틴 비버보다 훨씬 강력한 친힙합적 성향을 보여왔다. 성적 은유가 나쁘다는 말도 아니고 힙합이 별로라는 말도 아니다. 단지 이것은 다양성의 문제다. 힙합이 팝이 되고, 많은 팝 스타가 힙합으로 쏠릴 때, 쿨하고 세련된 ‘틴에이저 팝 스타’로서 방탄소년단이 미국에 상륙했다. 그들의 성공이 일시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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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민 용준
  • 사진|ⓒ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