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공화국의 민낯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 가능성의 시체들만 쌓이고 있다. | 아이돌,오디션,믹스나인,더 유닛

을 보다가 그만 기분이 상해서 채널을 돌려버렸다. 어쩌면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이런 방송이 탄생한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스타가 되고 싶은 욕망으로 들끓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스타로 만들 수 있는 대형 기획사의 수장. 그런데 수직적인 권력 관계를 노골적으로 전시하는 이 프로그램은 예상과 달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론칭한 유사한 기획의 역시 찻잔 속 태풍 정도의 영향력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그 와중에 현재 섭외 1순위 아이돌로 꼽히는 강다니엘이 쓰러졌다. 과다한 수면 부족으로 결국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징조는 이미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눕자마자 잠에 빠지는 건 대한민국 군인만의 특수 스킬인 줄 알았는데, 이걸 강다니엘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것도 단 한 방에 시전했던 것이다. 기실 그럴 만도 하다. 그가 속한 그룹 워너원은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이돌 관련 기사의 반은 방탄소년단, 나머지 반은 워너원이라 해도 좋을 상황이 이를 말해준다. 강다니엘은 아픈 몸을 이끌고 팬들과의 만남에 나타나서는, 건강 관리를 제대로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팬들은 빨리 나으라고 위로하면서, 소속사가 신경 좀 써야 하는 것 아니냐며 관련 기사의 댓글을 통해 타박했다. 의문부호가 그려졌다. 과연 소속사는 이를 계기로 워너원의 스케줄을 탄력적으로 운용할까? 아마 그럴 수 없을 거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한민국 아이돌 산업 자체가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성장한 까닭이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보자. 이걸 누가 모르나. 그럼에도 착취에 가까운 이런 구조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어느덧 사라지고, K팝의 해외 진출을 찬양하는 기사만 넘쳐난다. 방탄소년단에게 죄는 없지만, 방탄소년단이 일궈낸 선구자적 성취로 인해 이런 경향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게 뻔하다. 대한민국 아이돌 산업은 모순을 영양분 삼아 외연을 넓혀왔다. 바로 음악과 그 음악을 지탱하고 있는 구조 간의 모순이다. 우선 K팝은 끝내준다. “쾌적함을 제공하는 토털 패키지”라는 평가처럼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다. 음악은 첨단이고, 무대는 환상적이다. 심지어 “이거 영화 아냐?”라는 감상 평이 자자한 뮤직비디오도 K팝에 대한 반향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적어도 음악과 무대, 영상미, 패션 등 K팝은 ‘국뽕’ 논란을 넘어 확실히 인상적인 성공을 일궈냈다. 이걸 부정할 순 없다. 문제는 구조다. 을 보면서 나는 역사학자 헨리 애덤스의 다음 명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권력은 공감 능력을 죽이는 종양과도 같다.” 양현석이 김소리를 향해 했던 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나이가 좀 있어요. 아이돌을 하기에는 은퇴할 나이인 것 같은데.” 양현석 입장에서 이건 채찍이라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나이 동안 뭐 한 거예요? 되는 일은 없는데 하는 일은 되게 많군요.” 그는 이 정도까지도 문제없다 판단했을 것이다. 왜? 그는 권력을 가진 쪽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양현석은 곧장 당근을 쓱 내밀었다. 눈물을 참고 노래를 끝마친 김소리에게 잘했다면서 합격을 부여해준 것이다. 다음의 조언도 잊지 않았다. “나이 어리고 잘하는 경쟁자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열심해 해야 한다.”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고 양현석은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앞으로 저 아이를 더 강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부기 역시 빼먹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이건 마치 하나의 세트처럼 작동하는 발화 시스템인 까닭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기 편향 위주라는 본성이 존재한다는 것, 모르지 않는다. 그리고 대체로 성공한 자일수록 자기 편향성은 더욱 심화되기 마련이다. 그들에게 성공은 일종의 복제다. 컨트롤 C와 컨트롤 V가 그 세계를 지배하는 키워드로서 강력하다. 따라서 성공한 자가 성공 비밀을 털어놓는 건 일종의 비전을 계승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내 성공을 복제하고 싶어? 그렇다면 내 말대로 해.” 권력은 갈수록 강화되고, 피권력자는 먹이사슬의 최하층으로 내몰린다. 이 심대한 격차 속에서 매력적인 반항아, 스테레오타입을 거부하는 예술가가 태어날 리 만무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의 꼴을 쭉 살펴보면, 건설적인 비판마저 거세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K팝을 다룬 읽을 거리는 어느덧 대개가 한국인의 자긍심을 고취하거나 성공 시스템을 철저하게 분석하는 쪽으로 쏠려 있다. 즉 이 폭력적인 상부 구조가 ‘이제는 어쩔 도리 없다 여겨지는 하부 구조’의 결과물로만 의미 있게 된 셈이다. 그 와중에 (그것이 비록 자의에 의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10대 시절 전체를 연습생으로 보낸 스타의 과거가 찬미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입시에 10대를 저당 잡혔던 수능 고득점자에게 쏠리는 스포트라이트와 다를 바가 없다. 입시 지옥에 빠져 있는 것과 연습생의 굴레에 종속되어 있는 것, 형식적인 처지는 동일하지만 차이는 존재한다. 전자에 비해 후자의 물질적 보상이 훨씬 거대하다는 점이다. 이거 참 달콤한 선택지 아닌가. 모두가 스타가 될 수 있는 세상, ‘더 빛나는 스타’가 되려면 기존에 쓰인 성공 사전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게 최선이다. 이곳저곳에서 이미 성공을 맛본 권력자들이 자기에게만 유리한 사전을 치켜들고 “이것이 네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며 유혹한다. 사실 아이돌 산업을 경유한 훌륭한 퀄리티의 음악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걸 부정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것도 한정된 자원뿐이다. 그런데 끊임없이 들려오는 건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론칭 소식이다. 저들 중 몇이나 그토록 원하는 스타가 될 수 있을지를 곱씹어보면 정말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대신 그 사전 속에는 불문율에 가까운 조건도 포함돼 있다. 그 조건의 세목들을 살펴보자면 거의 사생활 침해에 가까운 수준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게 오디션 프로의 아이돌 지망생은 권력을 가진 자가 만들어준 거대하고 압도적인 설계도 속에서 그저 견실하게 살아가기를 요청받는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정치인을 비롯한 공인보다 연예인에게 더 청렴한 인성을 요구하는 나라 아닌가. 결국 기성세대에게 필요한 건 엇나가는 예술가가 아니라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일 뿐이다. 그런데 이것이 비단 어른들만의 문제일까? 아이돌에 환호하고, 기꺼이 조공을 바치는 팬들 중 많은 수가 첫손으로 요구하는 자질 역시 인성이다. 이 두 절대 권력 간의 암묵적 합의에 의해 아이돌은 스타로 살아가는 이상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히길 각오해야 한다. 불평은 허락되지 않는다. 우리의 존재 덕에 다른 아이들은 꿈도 꾸지 못할 부와 인기를 얻고 있다는 미명하에. 이 글을 쓰는 도중에 뉴스 하나를 접했다. 일본의 초유명 걸 그룹 AKB48의 멤버들이 내년에 방영할 에 출연한다는 소식이었다. 아, 이제 아이돌 선발 프로그램이 대체 몇 개인지도 모르겠다. ‘뭐 그냥 많겠지’ 하며 반쯤은 포기하는 것도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더 기분 나쁜 건 ‘내 말만 들으면 너도 나처럼 성공할 수 있다’며 꼬드기는 뱀의 혀가 비단 가요계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청춘의 등을 밀어주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 그건 아마도 누군가에 대한 동경일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쥐고 있는 권력을 이용해 청춘의 동경을 교묘히 착취해왔다. 효용 가치만을 숭상하는 세상 따위를 건설해놓고는, 그에 걸맞게 젊은이의 육체를 브라운관에 전시하고 재단하고 평가한다. 시청률 저점을 연이어 찍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 에서 보이는 참가자들의 표정이 방송이 거듭될수록 더욱더 간절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기 시작한 걸까. 사실 아이돌 산업을 경유한 훌륭한 퀄리티의 음악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걸 부정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것도 한정된 자원뿐이다. 그런데 끊임없이 들려오는 건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론칭 소식이다. 저들 중 몇이나 그토록 원하는 스타가 될 수 있을지를 곱씹어보면 정말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이 세상에 미수로 끝나는 계획이나 구상이 수도 없이 많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하나의 결과는 그보다 훨씬 많은 가능성의 시체 위에 살아남는 법이니까. 그래, 백번 양보해서 과 이 시청률에서라도 승승장구한다면 미처 빛을 보지 못한 지망생들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기 위함이라는 변호가 미약하게나마 설득력을 얻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둘 모두 완전한 실패로 판정 난 지금, 쌓여가는 건 오직 가능성의 시체뿐이다. 자, 이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언제나 그래왔듯 어른들은 책임지지 않고, 아이들은 사라진다. 어디 이뿐인가. 지난한 과정을 통과해 스타가 된 아이들은 어른들이 강요하는 스케줄을 못 이겨 쓰러진 뒤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자기 책임’이라며 침울한 얼굴로 사과의 말을 전한다. 이거 참, 과연 대한민국답다고 할 만한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