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이 예술이다-4 민이한상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남도 음식의 대가가 차린 밥상. 한정식에 비해 단출하지만 그 안에 똑같이 고수의 손맛이 숨어 있다. | 민이한상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들렀다면 ‘민이한상’을 깔끔한 신생 밥집 정도로 인식할지 모른다. 민이한상은 문을 연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엄청난 비하인드 스토리를 품고 있다. 역삼동 오피스 타운의 한 뒷골목에 위치한 민이한상은 마주 보고 있는 남도 음식점 ‘해남천일관’ 이화영 사장이 차린 밥집이다. 1인당 10만원을 호가하는 문턱 높은 이 한정식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역사의 시작이 거의 한 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남천일관의 뿌리는 1924년 이 사장의 할머니인 고 박성순 선생이 해남에 차린 천일식당으로,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를 집필하느라 전국을 누빈 유홍준 교수가 우리나라 3대 한정식집 중 하나로 손꼽은 해남 천일식당은 현재 박 선생의 손자며느리가, 서울의 해남천일관은 박 선생의 막내딸을 거쳐 외손녀인 이 사장이 맡고 있다. 이런 대단한 집안 내력을 가진 이 사장이 밥집을 낸 이유는 단순히 한참 전에 지어서 미리 떠놓아 떡진 식당 밥이 지겨워서였다.“갓 지은 밥에는 김치 한 점 올려 먹어도 맛있잖아요. 그런 소소하지만 당연한 기쁨을 나누고 싶었어요.”이 사장은 15구짜리 전기식 압력솥 밥 기계를 들이는 등 밥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기계가 고가인 데다 자리를 많이 차지하며 밥 짓는 데 8분이 소요돼요. 주문이 들어오면 그제야 밥을 안치니 그만큼 회전율이 떨어져요.”그럼에도 이 사장이 이 기계를 이용해 1인분씩 밥을 짓는 이유는, 그래야 진정으로 갓 지은 밥이라는 공식이 성립되고 숭늉까지 대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쌀은 ‘신동진’을 쓴다.“신동진 쌀은 쌀알이 굵어 압력솥 밥 기계로 지으면 탱글탱글한 식감이 배가돼요. 직장인들은 주로 점심에 사태육개장이나 황태해장국을 주문해 밥을 말아 먹는데 그럴 때도 밥알이 쉬이 풀어지지 않아 좋더라고요.”솥뚜껑을 여니 뽀얀 연기가 받쳐 올린 구수한 향이 코끝에 스민다. 이 사장이 귀띔한 대로 반 공기는 반찬을 곁들여, 나머지는 국에 말아 먹으니 두 가지 요리를 동시에 맛보는 듯 먹는 즐거움이 배가되었다. 특히 황태 머리로 육수를 내고 황태 채를 푸짐히 넣은 후 마지막에 황태 가루를 뿌려 천연의 구수한 맛을 극대화한 해장국은 여태껏 먹은 황탯국과 북엇국의 역사를 새로 쓰는 듯했다. 무는 물론 감자와 미나리 등 허투루 쓴 재료가 없다.Address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13길 22Tel 02-566-78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