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을 부탁해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이름값도 팔고, 음식도 파는 쇼호스트 셰프 시대. | 박찬일,홈쇼핑

한때 내 친구가 부인에게 ‘짝수’로 된 TV 채널 금지령을 내린 적이 있었다. 짝수 채널은 대부분 홈쇼핑 채널이었다. 그나마 6번은 예외였다. SBS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슬그머니 저 대단한 공중파 채널조차 6번에서 5번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짝수 채널은 몽땅 홈쇼핑이 차지해버렸다. 그리고 친구 부인은 짝수 채널을 돌려 보면서 집 구석구석에 홈쇼핑 물건을 쌓아갔다. 1개 중대는 먹이고 입히며 놀릴 수 있는 양이었다. 공중파 채널도 밀어내는 홈쇼핑은 모바일 대세에도 꿋꿋하다. 아직까진 TV로 드라마와 예능을 보는 시대다. 그리고 인기 예능이나 드라마의 광고 시간대가 홈쇼핑 채널에는 골든 타임이다. 지루한 광고를 피해 채널을 돌리며 ‘재핑(zapping)’하다가 잘 알려진 셰프가 지글거리며 돈가스를 튀기고, 해산물을 물어뜯는 모습에 채널을 고정한 뒤 끝내 카드를 긁는다. 특히 슬슬 배가 고파질 늦은 밤, 홈쇼핑은 셰프들을 동원한다. 요즘은 에 출연했던 친구들이 1년 넘게 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방송은 파생 상품을 만든다. 유명인을 탄생시킨다. 그걸 채간 게 홈쇼핑이다. 셰프들도 그렇다. 셰프들은 배가 고프다. 메뚜기도 한철이다. 부를 때 나간다. 대체로 미슐랭 스타에 흥미가 없는, 어쩌면 가망이 없다는 걸 잘 아는 친구들이 저녁을 먹은 배가 다 꺼져서 출출해질 때 TV로 얼굴을 내민다. 그리고 1시간 동안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데 일조한다. 과거에 홈쇼핑에 나온 셰프들은 얼굴이 없었다. 손만 나와 칼질만 하는 존재였다. 김수미 같은 탤런트가 더 인기였다. 손으로 쭉 짜면 뭉글뭉글 비어져 나오는 간장 게장으로 그이는 돈 좀 벌었을 거다. 굴비가, 전복이 그렇게 팔렸다. 한때 돈가스의 왕은 정형돈이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셰프가 서 있다. 이젠 셰프가 홈쇼핑의 대세다. 스테이크, 심지어 일반인은 듣도 보도 못하던 티본스테이크도 셰프들과 함께 홈쇼핑 상품으로 나온다.얼마 전 A 셰프는 1시간 동안 적당히 웃는 얼굴로 화면을 달구고 13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그에게 배당된 돈은 매출의 5%, 즉 3000만원이 넘었다. 적지 않은 배당이다. 식당 한 달 운영해서 3000만원 버는 집은 별로 없다. 오히려 적자가 부지기수다. 게다가 월급쟁이 셰프라면 월 1000만원 받는 이가 어디 있겠나. 그런데 눈 딱 감고 1시간 동안 조명받고 서 있으면 그 돈이 나온다. 물론 잘 팔리는 셰프의 경우다. 그들은 한 달에 2회 출연이 기본인데, 담당 상품의 수명이 6개월 이상 넘어가는 경우에는 회당 2000만원만 받아도 1개월에 4000만원을 버는 셈이니 6개월에서 12개월 이상 판매량을 유지하면 2억~3억원을 건질 수 있다. 큰돈이다. 셰프는 상품이 되었고, 이 거대한 비즈니스에서 핵심 유닛이 되었다. 홈쇼핑 기획자들은 셰프를 찾느라 잠을 못 잔다. 그래서 취재 중 홈쇼핑 관계자에게 들은 발언을 빌려 표현하자면 ‘칼질도 제대로 못하는’ 셰프라 해도 방송을 타 얼굴이 알려졌다 하면 멱살을 잡고서라도 홈쇼핑으로 끌고 나온다. 보통 홈쇼핑에 나오는 셰프 상품은 몇 가지 방식이 있다. 대개는 ‘벤더’라고 부르는 공급자 겸 기획자가 우선 ‘채널을 잡겠다’며 셰프에게 출연을 제안한다. 그리고 상품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시장의 기호에 맞춰 상품이 정해지기도 하지만 시장 발굴을 통해 얻어내는 경우도 있다. 닭가슴살이 남아돌거나, 오호츠크해에서 갑자기 왕게가 많이 잡혔다거나, 연어 소비가 부진해서 밀어내는 물량을 잡았다거나 하면 개발에 착수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이 다 벤더의 능력이다. 셰프들과 친밀하게 지내며 신뢰 관계를 쌓아가는 것도 기본이다. 셰프들의 경조사에 얼굴을 내미는 것도 그들의 일이고, 개인적인 고민을 해결해주기도 한다. 형, 동생 사이가 된다. 벤더는 채널을 잡고, 셰프는 이미지를 제공한다. 개중에는 더 나은 상품을 위해 셰프가 주도권을 쥘 때도 있다. 제품 개발에 참여하는 것이다. 레시피를 만들거나 가공에 개입한다. 이런 상품은 쇼호스트가 외치는 호객 멘트에 틀림없이 들어간다. “B 셰프님이 직접 만든 소스, 비장의 레시피가 들어 있어 차별화된 맛이지요”라고 말이다. 홈쇼핑은 채널을 쥔 본사-벤더-셰프-제조사 순으로 이익을 나눈다. 당연히 본사가 갑이다. 여기에 객원 쇼호스트(C 방송인의 경우 회당 2%를 챙긴다. 10억원짜리 상품이라면 2000만원을 가져가는 것이다) 몫도 빠질 때가 있다. 제조사 수익이 제일 박하다. 제조사는 얼굴이 없다. 다시 말해 상품 판매에 주도권이 없다. 그러니 제조 과정에서 인건비를 아껴야 한다. 그런 탓에 사고가 적지 않다. 미숙련 제조공이나 외국인 노동자가 공정에서 실수하는 경우가 생긴다. 언어 소통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심지어 낮은 마진을 만회하기 위해 식재료의 질을 떨어뜨릴 때도 있다. 이럴 때 소비자 불만이 폭주하고 반품량이 급증한다. ‘방송에서 보던 그 맛있어 보이던 제품이 아닌’ 까닭이다. 한 셰프는 얼마 전 제품 중량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 자신이 추천한 제품의 무게와 실제로 배송된 상품의 무게가 달랐던 것이다. 자연 감소인지 제조사의 고의였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셰프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대중의 비난은 그걸 ‘팔고 선전한’ 셰프에게 꽂히게 마련이다. 일단 방송에 나오는 매진 자막은 대개 사실이다. 소비자 보호 장치가 촘촘해졌고, 행정 당국이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매진이나 완판에 대한 허위 광고는 불가능하다. 물론 ‘문의 폭주’, ‘매진 임박’ 같은 문구에는 딱히 제한이 없는 것 같다. 셰프들은 판매율이라는 가시방석에 앉아 있다. 기왕 나온 방송, 매상을 크게 올려야 다음 기획물이 온다. 그러자면 완판까진 못해도 회당 판매율 80%는 찍어야 한다. 59900, 69900, 79900. 홈쇼핑에 동원된 셰프들을 몸부림치게 만드는 숫자다. 언젠가 소용이 다하고 새로운 셰프들이 올라오면 그들의 몸부림도 끝날 것이다. 혹은 새로운 셰프들에게 밀려나지 않으려고 더욱 열심히 몸부림치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