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다이닝의 신성-2 모수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경기 불황으로 암흑 같은 시절을 관통하며 사그라진 국내 파인다이닝 시장을 황황히 빛내줄 레스토랑이 등장했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8개월로, 아직 문을 연 지 채 1년이 안 됐지만 지금 반드시 주목해야 할 신생 레스토랑 세 곳을 소개한다. | 모수,파인다이닝

모수주소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55가길 45문의 02-793-5995지난 10월 문을 연 모수는 국내 미식계에서 현재 가장 뜨거운 감자다. 안성재 셰프가 해외에서 미슐랭 별을 받고 귀국하여 동명의 레스토랑을 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에도 미슐랭 별에 빛나는 셰프들이 귀환하는 일은 잦았다. 그럼에도 안 셰프의 모수가 남다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주방 직원이 아닌 오너 셰프로서 별을 수여받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해외에서 오너 셰프로서 미슐랭 별을 받고 레스토랑을 한국으로 옮겨온 건 안 셰프가 최초일 것이다. 게다가 이는 미슐랭 별을 따고 채 반년이 지나지 않아 내린 결심이었다. 오너 셰프로서 외국, 그것도 미국의 다이닝 신을 이끄는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별을 안겨준 레스토랑을 과감히 접은 안 셰프. 자신의 결심이 모험이 따르는 선택이었던 만큼 스스로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만한 무게의 책임감을 느낀다고 한다.한남동의 한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모수는 골목에서부터 주방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새하얀 조리복에 동색의 앞치마를 두른 사람들이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연구실을 연상케 한다. 자그마한 마당을 향해 난 문을 열고 들어가자 훈훈한 기운이 온몸에 보드랍게 감겼다. 주방 직원들과 대비되는 올 블랙 의상을 입은 홀 직원들이 격식을 갖추되 유연한 몸동작으로 자리를 안내했다. 1~2층을 터 천장은 높고 마당을 향한 벽면에는 통유리를 사용해 환한 빛이 쏟아지며, 기둥과 창틀은 건메탈, 가장 깊은 쪽 벽면은 적벽돌로 감쌌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공간에 건메탈의 태엽 장식과 폴란드 작가 후베르트 힐스헤르(Hubert Hilscher)의 위트 넘치는 포스터가 시각적 즐거움을 더한다.모수는 저녁 식사만 진행한다. 오후 5시 30분에 문을 여는데 이른 아침부터 모든 직원이 식사와 서비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준비한다. 우라사와, 프렌치 런드리, 베누, 아지자 등 세계적 명성의 파인다이닝에서 이력을 다지며 일식, 프랑스식, 한식, 중식, 레바논식 등을 고루 익힌 안 셰프가 코스로 추려낸 10여 가지 요리는 모두 그의 시그너처 같은 존재다. 그중 샌프란시스코 시절부터 맥을 이어온 두부 요리는 칡 전분과 다시마 국물에 말차 가루 대신 흑임자를 넣어 빚었다. 한련화잎 장아찌를 더한 간장 소스에 살짝 담갔다가 잘게 썬 한련화 줄기와 금박을 이고 있는 두부를 반으로 가르자 그 속에서 성게알이 뽀얀 살을 드러냈다. 색 대비가 주는 재미에 흐뭇해하며 입에 넣자 간장의 짭조름한 맛, 흑임자 두부의 고소하면서도 쌉싸래한 맛, 성게의 옅은 바다 향이 섞인 단맛이 차례로 스며들더니 마지막 순간에는 한련화의 알싸한 매운맛만 남아 입안을 말끔히 씻어냈다. 이 작은 두부 주머니에서 거의 오미에 가까운 맛을 느꼈다고 할까.안 셰프가 제안하는 일련의 미식 경험을 절정으로 끌어올려줄 ‘한우 갈비와 구운 야채’는 익숙한 듯 새롭다. 짝으로 받은 갈비를 발골하여 입자가 다르게 다진 살코기를 간장 소스에 절인 후 지방을 대신하여 푸아그라를 넣어 둥근 형태로 모양을 잡고 숯불에 구웠다. 한국인에게 너무나 익숙한 떡갈비를 모수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이 갈비 요리는 은은한 단맛에 육 향과 불 향이 더해져 입에 착착 감긴다. 특히 눈물 모양으로 한 덩어리 곁들인 순무는 배 등의 과실 향과 밤 등의 견과류 향에 불 향이 난다고 했더니, 일주일 넘게 찌고 훈연하는 과정을 거쳐 만든 결과물이라고. 젊은 셰프들의 재기 발랄한 요리들 사이에서 오랜만에 언뜻 장인의 면모가 비치는 셰프를 만난 듯하여 조용히 고개가 끄덕여졌다.‘Comfort is the new luxury(편안함은 새로운 호화로움이다)’라는 안성재 셰프의 철학이 녹아 있는 공간과 주방 한편에 마련한 훈연실, 그리고 그곳에서 탄생한 익숙한 듯 새로운 갈비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