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셰프는 왜 없을까?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다들 엄마 밥을 노래하는데 정작 여자 셰프는 보이지 않는 기이함에 대하여. | 셰프,여자,여성

이탈리아의 유명한 미식 잡지 에서 올해의 여성 셰프를 뽑은 적이 있다. 그이들의 사진이 잡지에 실렸는데 내 마음이 짠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의 얼굴에 그간 겪어온 차별과 삶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뉴욕의 유명한 식당 프룬(Prune)의 오너 셰프 개브리엘 해밀턴의 말대로 ‘코너에 몰린 복싱 선수 같은 심정’으로 일하는 게 여성 셰프란 뜻이다.해밀턴은 그야말로 여성의 한계를 무너뜨린 셰프로 기억될 만한데, 그것은 요리 실력이나 장사 수완뿐 아니라 그이가 ‘케이터링 셰프’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은 덩치도 크고 자동차도 크고 영토도 크고 햄버거도 크고 심지어 남자들 그것도 크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나라에서 대량 급식용 요리를 한다는 건 여성들에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번에 1000명분의 음식을 만드는 일이 익숙한 곳에서 어지간한 악과 깡이 있지 않고서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자가 버티기 어려울 터. 해밀턴은 자신의 책에서 그런 점을 토로하기도 했다.어쨌든 한국에서 여자 요리사를 뽑을 때, 결연한 표정으로 한번 해보겠다는 그이들에게 남자들이 실실 웃으면서 조소를 보내는 장면을 많이 보았다. “이봐요, 거대한 육수 통이 집에서 쓰는 귀여운 밥통은 아니거든요.” 이런 느낌으로 말이지. 실제로 60갤런(1갤런은 약 3.78리터다) 이상 들어가는, 집채만 한 육수 통을 들어 올리려면 허리가 부러지는 듯한 통증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이 ‘무시무시한’ 세계에 진입하는 걸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걸 크러시라는 말도 실은 ‘걸’이라는 데 방점이 찍히는 것 아닌가 하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내가 맡아서 보는 광화문과 서교동의 몽로 두 곳의 셰프는 모두 여성이다. 광화문의 경우를 얘기해보자. 광화문 몽로의 셰프는 경력 10년이 넘었다. 자그마한 덩치의 그이가 셰프라는 사실을 알면 다들 놀라곤 한다. 고전적인 상황인데, 고기를 배송하러 온 새 거래처의 남자는 우리 셰프가 말을 걸면 “이 건은 셰프님이랑 얘기해야 하는데?”라고 대꾸한다. 여전히 우리는 주방장이라면 어느 정도 덩치가 있는 남자라고 생각한다. 여담인데, 어떤 손님은 내가 배가 나오지 않아서 손맛이 없어 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다.이 셰프는 물론 많은 여성 셰프들이 어느 정도 차별과 비딱한 시선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어떤 여성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샐러드 라인만 5년을 돌았어요. 풀만 보면 미칠 것 같다니까요.” 여자들은 주방에서 여전히 보조적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경우도 많다. ‘빵이나 굽고’ ‘풀이나 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물론 빵과 샐러드는 아주 중요하다. 다만 이 업무가 여성에게만 오래 주어지는 이유가 마땅치 않다는 의미다. 불신감이 가득한 한 셰프는 “1~2년 하다가 때려치우고 여행을 떠날 여자들에게 주방의 중요한 보직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경험상 그런 남자도 비일비재하다. 떠날 사람이 떠나는 것이지, 여자라서 더 잘 떠나는 건 아니다. 유독 여자가 일을 그만두면 더 눈에 잘 띄는 건 무슨 이유일까.사회적 악습은 주방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주방은 남성 호르몬이 넘치고, 남자들이 좋아하는 군대식 서열과 폭력적 상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편견은 주방을 소재로 한 여러 드라마와 영화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드라마 은 그런 고정관념을 만들어낸 일등 공로자다. 그 외에도 많은 작품이 여자 셰프는 언제나 남자 셰프의 비위를 맞추거나, 보조적 주인공으로 출연해서 ‘연애나 거는 존재’가 된다. 이를테면 드라마 의 공효진처럼.요즘은 그나마 줄어든 것 같지만 구인란에 아예 ‘남자’로 지원 요건을 못 박는 식당도 많았다. 그래서 행정기관과 사회의 시선을 많이 받는 대형 업체 주방에서 여자들이 아주 많이 일했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구인에 차별을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주방의 정서가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여전히 주방장들은 여자보다 ‘튼튼하고 일을 막 잘할 것 같은’ 남자를 선호한다. 여자들이 생리적으로 더 잘 우는 것조차 시비 대상이 된다. 그저 감정의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나온 눈물을 ‘상황을 모면하려는 모종의 수작’으로 보지 않는가. 어쩌면 요리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실은 우리는 주방 일의 상당 부분이 여자들의 섬세한 손과 예민한 감각이 필요한 분야라는 점을 잊어먹는다. 무거운 육수 통을 들어야 하는 일이 그렇게 많을 리도 없다. 그런데도 왜 에는 여자가 안 나오는 것일까. 여자들은 패널로 불려 나와서 “어머 맛있어”만 말해야 하는 것일까. 방송에 내보낼 만한 마땅한 여자 셰프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요리사라면 그래도 남자지!’라는, 제작팀의 통념이나 시청자들이 그리 믿고 있다는 선입견이 작동하는 것일까. 둘 다일 수도 있다. 여자들에게는 주방장의 자리 아래 두꺼운 유리 천장이 놓여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다들 엄마 밥을 노래하는데 정작 여자 셰프는 보이지 않는 기이함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