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본에서는 여성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도 많이 출판되었다. 지금은 남성지 <에스콰이어>를 만드는 편집부 안에도 여성 에디터가 남성 에디터만큼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200년 전 일본에서는 여성 독자를 위한 책을 만든 사람도, 출판한 사람도 남성이었다. 시대가 시대였으니까.
같은 시기에 조선은 어땠을까? 우선 이런 책을 만들어 팔 시장이 없었다. 조선왕조는 상업의 발달을 억제했다. 남자 지배층도 책을 베껴서 봤던 이유다. 여자들도 자신에게 필요하고 읽고 싶은 책을 베껴서 봤다. 이렇게 베껴서 보는 책을 필사본(筆寫本)이라고 한다. 조선 여성에게는 자신에게 필요하고 읽고 싶은 책을 직접 창작하고, 이를 베껴서 읽는 문화가 있었다. 안동 장씨라고 알려진 여성이 쓴 요리책 <음식디미방>이나, 안겸제의 어머니라고 알려진 여성이 쓴 대장편소설 <완월회맹연>이 그렇다.
일본은 1650년대부터 출판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전쟁이 끝나고 정치가 안정되면서 경제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원래 경제 규모가 컸기 때문에 시대가 안정되자 그만큼 출판 시장 규모도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급기야 베스트셀러까지 탄생했다. 그 책이 <기요미즈 이야기(淸水物語)>다.
<기요미즈 이야기>는 아무리 좋게 말해도 재미있다고는 하기 힘들다. 절벽 위에 서 있는 것으로 유명한 교토의 절 기요미즈데라(淸水寺)에서 불교 승려와 주자학자가 만나 논쟁을 벌이는 게 소설 내용이다. 그런데도 2000~3000부가 팔렸다. 21세기 한국에서 웬만한 저자도 넘기기 힘든 3000부 판매의 벽을 넘어선 것이다. 그런 점에서 17세기 일본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융성했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시작부터 좋았던 일본의 출판 시장은 점차 발전해갔다. 18세기에 들어서는 순전히 재미를 추구하는 소설과 그림책이 대거 등장했다. 스모 선수와 게이샤의 브로마이드라고 할 수 있는 판화 우키요에 역시 인기를 끌었다. 이런 배경에서 <에스콰이어> 1월호에 소개했던 춘본, 즉 야한 책도 나온 것이다.
19세기가 되어 출판 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삼도, 즉 교토·오사카·에도(도쿄) 3대 도시에서 융성하던 출판 문화가 그 밖의 지방으로 퍼져나갔다. 확산은 지역뿐 아니라 계층 사이에서도 일어났다. 계급으로 나누면 중상층 이상이 보던 책을 중하층과 여성까지 널리 읽기 시작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출판 시장의 독자층이 넓어졌다. 19세기 초기에는 ‘닌조본(人情本)’이라는 소설 장르까지 탄생했다. 여성 독자만 대상으로 한다고 선언한 소설이었다.
출판 시장이 넓고 깊어지면서 여성이 시장의 타깃으로 부상했지만 여전히 여성이 책을 집필하고 출판하는 일은 드물었다. 같은 시대의 조선처럼 일본 여성도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은 필사본으로 만들고 베껴 읽었다. 출판인들이 이 시장을 놓치고 싶지 않은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실용서와 연애소설을 적극적으로 출판했다.
물론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이라는 말에는 남자가 보기에 여성이라면 이런 걸 좋아할 것이며 이런 걸 알아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여자라면 작고 예쁜 것을 좋아할 거라는 선입견, 여자라면 길쌈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가부장적 관점이었다.
이 시기의 여성 독자에게는 사회가 자신에게 덮어씌운 이런 관점을 거부하거나 대체할 무기가 없었다. 이들이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태도 역시 한정적이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다움을 최대로 실천해서 사회적 책임을 달성하고 그 달성을 토대로 발언권을 얻는 정도였다. 같은 시기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여성도 비슷한 사회적 역할을 강제받았다. 여성의 인권이라는 면에서는 일본도 조선도 영국도 큰 차이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여성성을 남성이 정의하고, 남성이 정의한 그 여성성에 맞춰서 남성 출판인이 여성 독자를 대상으로 만든 실용서를 한 권 갖고 있다. 크기는 가로 11.5cm에 세로 7.5cm, 딱 여자 손바닥에 들어갈 만한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은 알 수 없다. 표지가 없이 종이 끈으로 묶여 있으며 본문에도 제목이 적혀 있지 않다. 책의 가장 뒷부분도 없다. 그러므로 출판사 이름, 출판 연도, 책의 전체 분량 역시 모른다.
여기까지만 보면 보잘것없지만 이 책은 상업 출판 서적치고는 비교적 잘 만들어졌다. 1페이지는 컬러로 되어 있으며 페이지 번호도 잘 매겨졌다. 이 정도 만듦새라면 당시 중하층 여성이라도 조금 무리하면 살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초 일본 실용서는 지금 돈으로 5000엔(약 5만원) 정도였으니 현재 시세로 1000엔(한화 1만원) 정도 했을 듯싶다. 당시 여성들의 경제적 상황을 생각하면 아주 높은 가격은 아니다. 집안의 남성이 여성에게 사주는 비싼 교과서가 아닌, 여성이 직접 서점에 나가 골라서 살 수 있는 정도의 가격이었을 것이다.
책을 열어보자. 1페이지 앞에 그려져 있는 건 6가선(六歌仙)이다. 이들은 일본 고유의 시 형식인 와카(和歌)를 완성시킨 여섯 사람으로 숭앙받아왔다. 요즘의 일본 대중문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귀여운 느낌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뒤로는 여자 두 명이 길쌈하는 그림이 있다. “길쌈은 여자가 가장 잘해야 하는 일이다. 어릴 때부터 잘 배워야 한다. 미모가 뛰어나더라도 길쌈을 못하면 가장 부끄러운 법이다”라는 말도 적혀 있다. 당시 사회에서 여자에게 요구하는 게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컬러 페이지는 여기까지다. 책의 첫 페이지가 주는 인상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역시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첫 페이지를 예쁘게 만드는 것은 책을 잘 팔기 위한 전략이었다.
2페이지 앞에도 길쌈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여기엔 칠월 칠석에 칠석제를 진지하게 치르고 자신을 다잡을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말이 적혀 있다. 칠석의 주인공인 견우와 직녀 중 직녀는 베를 짜는 여신이다. 칠석제를 잘 치르라는 말 또한 여성에게 길쌈을 잘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2페이지 뒤에는 노시가미(慰斗紙)의 여러 방법이 나온다. 노시가미는 종이접기 예법을 말한다. 종이를 접은 후 경사스러운 날에 선물로 주는 것이다. 지금도 영어권에서 종이접기를 오리가미(origami)라고 부를 정도로 일본의 종이접기는 에도 시대에 이미 고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노시가미는 원래 말린 전복 선물이었다가 말린 전복 모양을 본떠 접은 종이 선물로 바뀌었다.
3페이지도 길쌈과 조금 관련이 있다. 여기엔 잃어버린 바늘을 찾는 노래가 적혀 있다. 그림은 여성이 길쌈하던 옷을 들춰보며 바늘을 찾는 장면이다. 당시에 바늘은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중요했다. 좋은 바늘은 오늘날의 재봉틀이나 컴퓨터처럼 한 사람이나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의 도구였다. 그 때문에 바늘이 부러지거나 사라지는 건 한 집안의 생계가 달린 문제였다. 조선도 비슷했다. 조선 순조 때 유씨 부인이 쓴 ‘조침문(弔針文)’이 좋은 예다. 이 글은 바늘이 부러진 것을 슬퍼하는 내용이다.
독자의 세계와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3페이지 뒷면에는 교토와 에도의 궁녀들이 쓰는 우아한 말 리스트가 실려 있다. 4페이지 앞면에는 남자들이 주로 쓰던 가타가나로 적은 이로하가 실려 있다. 이 책의 예상 독자인 중하층 여성들과는 다른 세계에 속한 귀한 신분의 여성 및 남성의 세계를 맛보게 하는 코너라 하겠다.
이것 말고도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요즘 잡지를 떠올리는 부분이 있다. 4~6페이지는 불·물·흙·쇠·나무의 오행과 십간십이지로 보는 남녀 궁합, 그리고 여성과 궁합이 맞는 남성의 이름 리스트가 실려 있다. 요즘 여성지에도 나오는 혈액형에 따른 성격이나 별자리 운세 코너와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참고로 혈액형별 성격 구분은 나치 독일과 제국주의 일본의 어용 학자들이 인종차별을 하기 위해 개발한 논리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혈액형별 성격 구분을 여지껏 믿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현실 세계의 활동과 관념 세계의 논리는 끊임없이 마주친다. ‘이사하기 좋은 날’ 같은 것이 좋은 예다. 현실과 관념이 연결되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책의 7페이지에는 의복에 묻은 얼룩 빼는 법이 실려 있고, 8페이지와 9페이지에는 남녀 각각의 액년(厄年)이 실려 있다. 액년은 운이 나쁜 해를 뜻한다. 여자 나이보다 네 살 많은 남자와는 궁합이 안 맞는다는 이야기도 크게 보면 액년 이야기다. 그 뒤로 새 고소데(小袖, 여성용 정장) 입는 길일, 일 년 열두 달의 별칭이 이어진다. 10페이지에는 여러 옷감의 사이즈 통용 표와 옷감 자르는 법이, 11페이지 앞에는 일 년 열두 달 중 옷감 자르면 안 되는 날이 실려 있다. 길쌈이라는 현실 세계의 활동과 점술이라는 관념 세계의 논리가 여기서도 만나는 걸 볼 수 있다.
‘건강’과 ‘소원’이라는 잡지의 주요 테마 역시 찾아볼 수 있다. 11페이지에는 일본의 음력 달력에서 길하고 흉한 날을 표시하는 육요(六曜)에 대해 설명해놓았다. 12페이지에는 지시고(知死期)라는, 콧김을 잘 살피면 그 사람이 죽을 때를 점칠 수 있다는 내용이 실렸다. 사람이 죽을 때를 알아야 그 주변 사람들이 대처하기 쉽다는 말과 함께. 12페이지 뒤에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과 이루어지지 않는 날 목록이 있다.
13페이지에는 여장문장(女狀文豪) 목록이 실려 있다. 절기별로 써서 보내는 편지 예문을 말한다. 그나저나 12페이지까지는 상12(上十二) 같은 식으로 페이지 번호 앞에 ‘상(上)’ 자가 붙어 있는데, 여장문장이 실린 페이지부터는 13(十三)이라고 페이지 번호만 매겨져 있다. 그러므로 12페이지까지에서 전반부를 끝내고, 여장문장은 후반부로 구분해 인식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여장문장 목록에 거론된 문장은 총 7개다. 내 소장본에는 13페이지 뒤와 14페이지 앞에 ‘연시의 문’이라는 신년 인사 편지 예문이 실려 있다. 제목 오른편에는 정월을 기념해 집안을 장식하는 소나무와 금줄이 아담하게 그려져 있다. 14페이지에는 3월의 안부 편지 예문이 실렸다. 그런데 내가 갖고 있는 책 페이지를 보면 14페이지 뒤로 이어지는 15~19페이지가 없다. 그래서 3월 절구 안부 편지 내용이 도중에 끊어진다. 20페이지 앞으로는 앞 페이지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 뒤에는 편지 접는 법이 나와 있다.
에도 시대의 이 책 주인은 7개의 예문 중 신년 인사 편지 예문과 편지 접는 법만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책을 사서 13~14페이지의 예문과 20페이지 뒷부분만 남겨두고 필요 없는 페이지는 과감하게 떼어버린 듯하다. 표지는 어떻게 된 걸까? 책 본문 상태가 나쁘지 않은 걸 보면 이 책의 예전 소유자가 책을 사서 잘 읽다가 표지가 떨어져나가자 종이 끈으로 견고하게 다시 제책한 건 아닐 듯싶다. 이 책 주인은 표지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15~19페이지를 떼어낼 때 표지도 함께 떼어버린 것 아닐까.
아니면 이 책이 간략하고 예뻐서 표지가 필요 없는 책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옛날 일본에서는 개인적인 용도로 쓰는 노트에는 표지를 붙이지 않고 종이 노끈으로 노트를 고정시키기만 했다. 표지가 있는 책은 공적인 성격을, 표지가 없는 책은 사적인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이 책은 공적인 책을 사적으로 변환시켰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남이 만든 책을 사서 자기 방식대로 편집하고 그 성격을 새롭게 부여한 것이다.
옛 세계에서는 책 읽기가 수동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비록 여성들 자신이 원하는 내용의 책을 직접 집필하고 출판해 돈을 벌 수는 없었지만, 예를 들어 이런 식의 적극적인 독서 행위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주위에 반영하려 했다. 얼핏 보면 적극적인 독서 행위가 잘 안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손바닥만큼 작고 귀여운 이 책을 찬찬히 뜯어보면 그 시대를 살아간 개인의 취향이 차츰 그 전모를 드러낸다.
크고 귀한 물건에는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작고 흔한 물건에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큰 물건이든 작은 물건이든 물건은 각자의 소리를 낸다. 그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듣는 기술을 익히면 이 세상을 좀 더 재미있고 다이내믹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