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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가을이었다 그날의 마지막 수업에서... | 피비 파일로

2009년 가을이었다. 그날의 마지막 수업에서 발렌티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를 보고 있었다. 영화는 감동적이었지만 여느 때와 같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셀린느 2010년 리조트 컬렉션을 보고 시선이 멈췄다. ‘예쁘다’도 아니고 ‘아름답다’도 아니고 멋져서 놀랐다. 그 뒤로 영화의 마지막은 보지 못했다. 컬렉션에 나온 네이비색 크롬비 코트와 캐멀색 박스백을 꼭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뒤로 방황하던 사사로운 물욕은 사라졌다. 선택과 집중. 마침 생일이었고 피비 파일로가 만든 첫 컬렉션을 소유했다는 만족감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벅찼다. 그때부터 짝사랑이 시작됐다. 사실 셀린느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피비 파일로 때문이었다. 셀린느가 나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 일과 가정 모두 충실하고자 한 책임감. 선동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는 대범함. 보통의 여자가 어쩌면 가장 특별하다는 신념. 그리고 지적인 외모까지.셀린느는 진보적이고 과감했다. 구조적인 오버사이즈의 유행, 새로운 원단부터 최고급 원단까지 자유롭게 사용하는 럭셔리, 란제리를 스포티즘과 결합시키는 독창성, 가방을 멋지게 드는 방법, 힘 있게 액세서리를 연출하는 법, 턱시도 셔츠와 슬립온 운동화의 믹스매치, 남성 테일러링 기술을 접목시킨 코트와 바지 등. 특징 없던 셀린느라는 브랜드를 확고한 아이덴티티로 재창조하는 저력은 대단했다. 셀린느는 세련되면서도 따뜻했고, 독창적이면서 우아했다. 그래서 피비 파일로가 만든 셀린느를 입으면 몸이 편안하고 마음은 당당했다. 그녀는 옷과 브랜드를 뛰어넘는 삶의 방식을 여자들에게 선물했다.피비 파일로는 자신은 디자이너이자 엄마, 여동생, 친구라고 말했다. 모든 역할이 똑같이 중요하고 똑같은 성취감을 준다고 말하는 그녀는 진정한 젠틀 우먼이었다. 모두가 사랑하는 스타 디자이너였지만 사생활을 철저히 지키며, 최고의 정점에서 홀연히 떠나는 결단력조차 멋있었다. 어쩌면 그런 멋진 젠틀 우먼이 되고 싶어 10년 가까이 셀린느를 입었다. 모두가 핑계라고 비웃겠지만 진심이었다. 셀린느를 입으면 기분이 정말 좋았고, 옷 하나로 사람의 태도까지 변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피비 파일로가 셀린느를 떠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2017년 11월호 마감 날이었다. 그녀가 셀린느를 떠난다는 소문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런 소문을 접할 때마다, 그래서 그녀는 어디로 가는지, 그 소문이 정말 진실인지 궁금했지만 그날은 아니었다. 아쉽지만 덤덤했다. 그 어떤 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내가 셀린느와 함께한 세월이 떠올랐다. 통가죽으로 투박하게 만든 가방이 좋아서 스크래치투성이가 될 때까지 매일 들고 다니던 그때, 네이비색 코트가 그 어떤 코트보다 멋져서 평생 이것만 입겠다고 엄마에게 호언장담하던 순간. ‘셀린빠’, ‘셀린녀’라는 나에 대한 수식어. 옷 더미가 돼버린 드레스 룸을 빙 둘러봤다. 옷의 70%가 셀린느였다. 언제 샀고 어디서 어떻게 입었는지 생생했다.나의 20대를 멋지게 만들어준 셀린느, 그리고 피비 파일로. 이제는 진짜 젠틀 우먼이 되고 싶은 30대가 되었다는 걸 이 글을 적으며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