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의 펜디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는 금요일 오후 같은 컬렉션을 만들었다. 유머와 철학, 일상과 몽상으로 완성한 펜디적 세계관. | ESQUIRE,에스콰이어

사무실. 펜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가 선택한 이번 컬렉션의 무대다. 하지만 구태의연한 오피스 룩을 거듭 강조한 건 아니었다. 옷의 형태를 정의하는 대신 어떤 상황과 감정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주말을 코앞에 둔 회사원의 들뜬 마음과 해방감, 그리고 긍정적 기운에 관한 내러티브. 금요일 오후, 퇴근을 앞둔 일주일 중 가장 행복한 시간. 그녀는 그날의 기분과 장면을 떠올리며 컬렉션을 만들었다.컬렉션은 비즈니스 룩을 기초로 하고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 룩의 형태, 기능, 역할에선 한참 비켜나 있다. 어떤 부분에선 무척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셔츠와 타이 차림에 캡을 쓰고, 슈트 재킷 대신 트랙 재킷과 아노락을 입었다. 또 위아래가 이질적인 옷, 이른바 스카이프 룩(skype look)이라는 형태가 등장하는 파격. 어딜 어떻게 봐도 업무에 짓눌린 회사원을 상상하기 어렵다. 몽상가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오피스룩과 레저 룩의 혼종에 가까워 보인다. 당장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 해변으로 뛰어들 준비가 된 옷이다.어쨌든 이번 컬렉션을 지탱하는 건 긍정적인 유머다. 어울리지 않는것들의 돌발적인 스타일링, 마드라스·실크·퍼·스웨이드 등 호화롭고 일상적이지 않은 소재들의 뒤섞임. 색은 또 그 어떤 때보다 나긋하고 풍요롭다. 액세서리에도 유머를 잔뜩 넣었다. 단정한 가방 반대편에 대담한 일러스트를 넣어 주중과 주말의 라이프스타일을 동시에 고려하는가 하면, 남성적인 브리프케이스에 장난스러운 그림을 넣거나 참 장식을 달기도 했다. 슬링백 로퍼와 스포티한 샌들, 슬라이드 등 사무실에선 꿈도 못 꿀 신발도가득했다. 특히 큰 역할을 한 것은 영국 아티스트 수 틸리(Sue Tilley)의 일러스트다. 바나나 껍질, 코르크 따개, 책상 조명, 마티니 잔 등 일상적인 물건을 몽상적인 옷과 가방에 장식했다. 일탈과 일상은 공존하는 듯 했다.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는 이번 시즌에도 남자들을 현실에서 도피시키려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를 백스테이지에서 만났다.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컬렉션이다.어디에서 시작되었나? 인류의 ‘직업’이라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와 새로운 기회를 생각했다.곧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고 또 생겨날 것이다. 모두가 인간을 대신할 안드로이드의 출현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 어떤 것도 인간의 창의력, 상상력, 선견지명, 꿈은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 컬렉션의 바탕엔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 지금과는 다른 직업관, 업무 환경에 속한새로운 세대를 묘사했다. 꽤 철학적이다. 컬렉션에는 어떻게 표현했나? 정형화된 오피스 룩을 재밌고 편안하게 바꿔보고 싶었다. 대표적으로 타이, 서스펜더, 로퍼 같은 아이템을 통해 스카이프 룩을 표현했다. 상반신은 타이를 매고 셔츠와 재킷을 제대로 입었지만, 밑에는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는 식이다. 이제 근무 환경이 달라져서 수영장이나 호텔 방에서도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이런 룩을 통해 기업 중역의 새로운 이미지를 상징하고 싶었다.영국 아티스트 수 틸리와 협업한 이유가 궁금하다. 수 틸리는 35년간 아주 평범하고 정형화된 일을 하면서도 늘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루시안 프로이트의 뮤즈이기도 했고, 그녀 자신도 예술가로 활동했다. 그녀는 여러 영역에 몸담으면서 시대를 앞서나갔다. 그런 삶의 방식과 태도는 여전히 우리를 감화시킨다. 그녀의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수 틸리의 작품은 어떤 방식으로 당신의 옷과 조화를 이뤘나? 그녀는 전화기, 바나나, 조명 등 사무실 책상에 놓여 있을 법한 일상적 사물을 표현했다. 미니 피카부 핏 가방, 재킷의 반짝이는 아플리케 패치, 면 자수 니트, 크레이프 셔츠와 실크 트윌 풀라드, 벨트, 파우치 등 다양한 카테고리에 그녀의 작품을 적용했다. 나는 삶의 어떠한 부분에도 상상력과 창의력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또 펜디는 앞으로 일상성을 많이 반영할 계획이라 이 같은 아이디어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재미있는 콘셉트의 액세서리들이 눈에 띄었다.펜디는 언제나 기교와 혁신을 결합한다. 특히 예상 밖의 것들을 조합하는 것을 좋아한다. 스카이프 룩이나 뒤꿈치를 슬링백으로 마무리한 로퍼처럼. 가방도 특별하게 만들었다. 나일론으로 만든 평범해 보이는 토트백의 한 면은 주머니가 많고 기능적인 반면, 다른 면은 수 틸리의 그림이 장식되어 예술적인 느낌을 준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날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선택해서 들면 된다.이번엔 주로 어떤 색을 사용했나? 푸른색, 황갈색, 베이지색, 흰색 등 기본적인색을 고상하게 쓰고 분홍색을 양념처럼 썼다. 펜디의 남성복에서 분홍색은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색이다.실루엣은 어떤가? 재킷은 각을 없앴고, 부드러운 가죽 아이템에는 부피감이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바지는 허리선을 높이고 플리츠를 넣었다. 길이는 대부분 짤막하다. 전반적으로 낙낙하고 짧거나, 길고 날렵한 것을 조화시켰다.특별히 좋았던 액세서리는 무엇인가? 새로 나온 피카부 핏이 마음에 든다. 전형적인 서류 가방 형태를 차용한 피카부 백의 날렵한 버전이라 생각하면 된다.두 번 강조하고 싶은 스타일은 무엇인가?요즘의 세태를 반영한 스카이프 룩. 이것은 새로운 태도에 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