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도 아직 못 봤어요.” <에스콰이어>를 초대한 브라이틀링의 한국 담당자가 말했다. 1월 말에 브라이틀링이 신제품을 발표하는데, 아직 제대로 본 사람이 없다고 했다. 보통 기자들에게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내부적으로는 다 봤을 가능성도 있다. 예상 가능하고 이해할 수도 있는 정보의 술래잡기다. 그 정도로 브라이틀링의 신제품은 비밀에 부쳐져 있었다.
“사장님 인스타그램에 떴던데?” 프레젠테이션 전날 상하이의 중국집에서 한국 기자들끼리 밥을 먹으러 모였을 때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사장님과 인스타그램. 이 둘은 새로워진 브라이틀링의 큰 상징이다. 브라이틀링은 2017년 여름 전격적으로 CEO를 교체했다. 고급 시계업계에서도 도전적인 캐릭터로 유명한 조지 컨이 브라이틀링의 새로운 CEO였다. 보통 스위스 시계 브랜드는 1년에 한 번 있는 바젤월드에서 신제품을 선보인다. 브라이틀링은 바젤월드가 열리기 두 달 전쯤인 1월 말에 스위스 바젤이 아닌 중국 상하이에서 신제품을 선보였다. 그리고 본사 직원들이 보기도 전에 CEO의 인스타그램에 티저 사진을 올렸다. 조지 컨은 그런 남자였다. 도전적이고,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예민하며, 동시에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전설적인 빈티지 시계라는 브라이틀링의 DNA가 우리에게 아이디어를 주었습니다.” 드디어 신제품 시계를 보여주는 날 무대에 선 남자가 말했다. 브라이틀링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기 보브였다. 그는 이날과 그다음 날에 열린 미디어 세션에서 브라이틀링의 새로운 시계뿐 아니라 매장 디자인까지 모두 바꿀 거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들의 말처럼 ‘리부트’라고 할 만한, 큰 변화였다. 기 보브는 이른바 팀 조지의 일원이기도 했다. 미디어 세션이 끝났을 때 그에게 가서 전에도 이런 일을 해봤는지 물어보았다. “해봤습니다. 조지와 함께 다른 브랜드에서요.” 손발을 맞춰본 사람들이 능숙하게 전통의 명가를 리부트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계는? “오늘밤, 브라이틀링이 항공 개척기에 이룬 혁신과 성과에 경의를 표하는 새로운 내비타이머 8 컬렉션을 공개하게 돼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조지 컨이 신제품 설명회에서 말했다. 이날 선보인 라인업은 내비타이머 8. 빈티지 파일럿 시계 디자인에 다양한 가격 구성을 무기로 하는 고전적인 항공 시계다. 이 시계는 브라이틀링의 중흥기를 이끈 윌리 브라이틀링과 그가 1938년 설립한 ‘휴이트 항공 부서’에 찬사를 보내는 새로운 컬렉션이다. ‘휴이트’는 프랑스어로 8을 말한다. 8은 항공기 시계에 필수적이었던 8일 파워 리저브를 뜻하기도 하며, 그 이름처럼 기내의 항공 시계에서 디자인 영감을 받았다. 옛날 시계가 그러하듯 단정하고, 조지 컨의 시계가 그러하듯 단정하지만 확실하게 눈에 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적당한 정도로. 이게 조지 컨이 시계업계에서 승승장구한 비결이자 조지 컨만의 ‘매직 터치’일 것이다.
“자, 브라이틀링의 새로운 무대로 넘어가시죠.” 설명을 들으며 식사를 마치자 무대 위에 있던 조지 컨이 말했다. 이날의 설명회장은 호텔 결혼식장 같은 느낌의 무대 아래 놓인 식탁들이었다. 식사가 끝날 때쯤 닫혀 있던 무대 뒤의 두꺼운 커튼이 열렸다. 한국과 일본과 홍콩의 기자 및 바이어들이 모두 그 무대를 밟고 새로운 브라이틀링의 무대로 떠났다. <어벤져스>의 사운드트랙처럼 장엄한 음악 사이로 내비타이머 8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실로 대단한 신제품 출시 행사였다.
브라이틀링의 리부트는 단순한 신제품 출시에서 멈추지 않았다. 일례로 브라이틀링 로고에는 이제 대문자 B 좌우에 두던 날개가 없다. 항공 시계에만 머물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들은 전통의 강호 내비타이머로 파일럿 시계에서의 역량을 강화시킨다. 다이버 시계인 슈퍼오션으로 다이버 시계 분야에서의 캐릭터도 놓치지 않는다. 브라이틀링 포 벤틀리도 더 세심하게 다듬어 드라이빙 시계 분야에서도 확실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 외에도 새로운 라인업을 만들거나 정리해 브랜드의 세그먼트를 더욱 간결하고 강력하게 재편한다. 파격적이고 깔끔한 변신이다.
브라이틀링 내비타이머 8은 다양한 가격대와 라인업으로 출시된다. 지름 41mm의 아담한 ‘타임 온리’ 버전부터 자사 무브먼트를 탑재한 골드 버전까지 있다. 덕분에 가격대가 굉장히 다양해졌다. 크기도 작아지고 가격대도 다양해졌는데 브라이틀링 특유의 브랜드 색깔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손목이 가는 아시아 사람들이 브라이틀링을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이어지는 페이지에 이 변화를 진두지휘한 남자, 지금 스위스 시계업계에서 가장 돋보이는 CEO 조지 컨의 한국 단독 인터뷰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