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사이언스 오메가 편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스톱워치에서 모션 센서까지. | 시계,오메가,스포츠 사이언스

운동선수의 시간을 재는 걸 타임키핑이라고 한다. 초기의 타임키핑 도구는 크로노그래프가 전부였다. 지금 기계식 손목시계에 있는 그 기능 말이다. 지금은 액세서리처럼 쓰이는 그 기능이 100년 전만 해도 지금의 열 감지 카메라 같은 특수 장비였다. 심지어 정확하지도 않았다. 1898년의 크로노그래프는 크기가 초코파이 정도로 컸는데 잴 수 있는 시간 단위는 1/5초였다. 지금 네이버 최저가로 1만8500원에 판매하는 카시오 목걸이형 디지털 스톱워치 HS-3V보다 성능이 떨어진다. 다만 1898년은 생각보다 먼 옛날이다. 1898년은 고종 35년이고 그해 흥선 대원군이 죽었다.첫 근대 올림픽은 1896년부터 열렸다. 이때의 타임키핑은 지금 기준으로 봤을 때는 타임키핑이라고 하기 어렵다. 1/5초 정도까지만 측정 가능한 크로노그래프는 심지어 틀리기도 잘 틀렸다. 몇 대의 크로노그래프로 시간을 재고 평균값을 내야 했다. 모든 스포츠는 심판이 정확해야 재미가 배가된다. 올림픽은 제대로 시간을 재주는 누군가가 필요했다.우리의 오메가가 여기서 등장한다. 오메가는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시작으로 86년 동안 24차례 정식 올림픽 타임키퍼였다. 오메가가 처음 공식 타임키퍼로 참가한 1932년에 사용한 시간 측정 장비는 크로노그래프 30개, 그걸 운용하는 사람은 1명이었다. 86년이 지난 지금 오메가가 평창에 가져온 장비는 300톤이 넘는다. 투입된 타임키퍼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합해 300명 이상이다.타임키핑에서 중요한 요소는 사실 변하지 않는다. 출발과 도착 시간을 정확히 파악해 선수의 정확한 기록을 재는 게 핵심이다. 이걸 구현하기 위해 오메가를 비롯한 타임키핑 전문 기업들은 신호 시스템부터 고심해서 만들기 시작했다. 육상 종목의 스탠드에는 센서가 부착되어 선수가 달려나가자마자 시간이 측정된다. 수영장 벽에도 센서가 달려 있다. 도착한 선수가 벽을 치면 센서가 자동적으로 시간을 기록한다.100m 달리기의 개인 기록은 숫자로 딱 떨어진다. 말하자면 절대 기록이다. 하지만 올림픽을 비롯한 운동 종목에는 순위라는 게 있다. 얼마나 잘했는지도 중요하지만 누구보다 잘했는지도 중요하다.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는 사진 기술의 힘이 필요하다. 1948년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서부터 오메가는 ‘매직 아이’라 부르는 사진 판독 기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진으로 판독할 경우 결승선을 지나는 순간 미세한 상대적 순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지금의 타임키핑 역시 개념적으로는 그때와 똑같다. 스티어링 휠을 틀었을 때 바퀴가 돌아가는 자동차 현가장치의 원리가 예나 지금이나 흡사한 것과 마찬가지다. 대신 타임키핑은 기반 기술과 정확도에서 엄청난 향상을 이뤘다. 전기와 디지털 기술 덕분이다. 오메가는 자체적인 타임키핑 기술을 발전시키고 독창적인 이름을 달았다. 카메라인 스캔 ‘오’ 비전, 신호총 역할을 하는 이-건 등.스포츠 타임키핑 전문 기업의 정확성은 엄청난 수준이다. 세상에는 올림픽 말고도 복잡한 타임키핑 종목이 많다. 예를 들어 자전거 경주는 거의 수백 명이 한 번에 출발한다. 그런 데서도 기록을 재야 한다. 요즘의 측정 도구는 그 정도도 쉽게 할 수 있다. 1/10,000초 단위의 고화질 사진을 바로바로 촬영하기 때문이다.절대 시간을 측정하고 상대 우열을 가린다는 면에서 현대 타임키핑은 거의 발전이 끝났다고 봐도 된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다. 스포츠 타임키핑은 단순히 선수의 기록이라는 데이터 입력만을 뜻하지 않는다. 스포츠 선수의 기록이라는 데이터가 얼마나 빨리, 얼마나 정확하게, 어떤 모습으로 출력되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이쪽으로는 아직 개선과 혁신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스포츠 타임키핑의 출력 부문 역시 역사가 길다. 1964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은 이 부문에서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다. 이때 처음으로 스포츠 선수의 기록을 TV 화면에 자막으로 표시했다. 이전까지는 방송으로 송출한다고 해도 TV에 숫자가 따로 나오지 않았다. 정보 통신 기술과 중계 기술 역시 스포츠 타임키핑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셈이다.심지어 전광판도 스포츠 타임키핑의 일부다. 전기 매트릭스 보드라고 부르는 스타디움의 전광판 역시 꾸준히 발전했다. 처음으로 전기 매트릭스 보드를 사용한 올림픽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이다. 기술이 꾸준히 발전한 셈이다. 다만 올림픽 타임키퍼급이라도 실수를 한다. 루마니아의 나디아 코마네치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체조 역사, 아니 올림픽 역사에 길이 남을 만점 연기를 선보였다. 전광판에는 1.00이 떴다. 타임키퍼 측에서 점수를 9.99까지 표시할 수 있게 해두었는데 코마네치가 10점을 받았기 때문이었다.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서울올림픽 역시 타임키핑의 기술사에서 한 부분을 차지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올림픽 타임키핑 역사상 최초로 컴퓨터 기반의 타임키핑을 적용했다. 올림픽 역사상 가장 복잡한 장비를 스위스에서 서울로 공수했다. 올림픽 스타디움에 설치한 14×9m 크기의 대형 전광판 역시 오메가가 설치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올림픽이 끝나고 이들이 가져온 장비를 몇 개 구입했다고 한다.타임키핑에도 경쟁이 있었다. 오메가가 올림픽 타임키퍼를 가장 많이 했지만 늘 타임키퍼였던 건 아니다. 타임키퍼업계의 경쟁은 일본과 스위스의 경쟁이기도 했다. 세이코는 1964년 오메가를 제치고 올림픽 공식 타임키퍼를 하기도 했다. 지금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공식 타임키퍼는 세이코다. 브랜드 이미지 마케팅 전략에 따라 다른 회사가 올림픽 공식 타임키퍼가 된 적도 있다. 스와치는 1996년 애틀랜타, 2000년 시드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공식 타임키퍼였다. 그때는 기록이 정확한지에 대한 항의가 조금 더 많이 들어왔다는 소문이 있다. 브랜드가 저렴해지니까 왠지 조금 덜 믿음직스러워 보였던 모양이다. 이미지는 무서운 것이다. 사실은 오메가에 들어간 오토매틱 무브먼트보다 스와치에 들어간 쿼츠 무브먼트가 더 정확할 텐데.좀 더 정확히 말하면 스와치든 오메가든 시간을 재는 회사는 똑같다. 올림픽 타임키핑은 스와치나 오메가의 부서에서 하는 게 아니라 스와치그룹 자회사인 스위스 타이밍이 한다. 이곳은 스포츠 시간 측정에만 특화된 회사다. 스와치그룹 안에서 유일하게 시계 제조와 아무 상관없는 일을 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1년에 120만km 이상 이동하고 500개 이상의 스포츠 이벤트에 참여한다. 이 회사의 사람들이 올해 평창에도 왔다 갔다.이들은 이번에도 신기한 최신 기술을 선보였다. 이번의 최신 기술은 센서를 통한 선수의 데이터 수집과 그 데이터의 실시간 시각화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모든 선수는 어딘가에 트랜스폰더(transponder, 중계기)를 달고 있다. 트랜스폰더 안에는 모션 센서가 들어 있다. 그 센서는 자세, 움직임, 가속, 감속, 중력가속도를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스키 점프의 경우에는 가속, 감속, 실시간 속도, 스키가 벌어지는 각도까지 집계된다.이 데이터는 컴퓨터 게임처럼 실시간으로 중계 화면에 뜬다. 방금 예로 든 스키 점프는 해당 선수가 점프한 순간의 속도와 거리가 바로 표시된다. 왼발과 오른발의 스키 각도(기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까지 바로 띄워준다. 중계의 재미를 더해주는 건 물론 선수들의 향후 훈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이건 생각해보면 아주 초현실적인 일이다.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했다. 약 3000년이 지나서 프랑스의 이상주의자 쿠베르탱이 이 대회를 부활시켰다. IOC의 천재 마케터들이 이 정신을 국제 규모의 프랜차이즈 비즈니스로 승화시켰다. 이 대회에서 대부분 공식 타임키퍼가 된 오메가는 고급 기계식 시계를 만드는 회사다. 오메가가 속한 스와치그룹의 자회사인 스위스 타이밍이 첨단 전자 장비로 시간을 잰 후 오메가 로고를 달고 전 세계로 시간을 송출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였을까 싶은 조합이야말로 21세기적인 풍경이라고 할 수밖에. 우리는 그냥 시간을 보고 감동하면 된다. 세상에 저렇게 잘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면서. 하지만 가끔 다른 것에 감탄해보는 것도 좋겠다. 저 선수들 뒤에 대단한 시간 측정 전문가들이 있구나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