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팁이 뭐길래?

주는 쪽도 받는 쪽도 난처한 팁 문화에 대하여.

BYESQUIRE2018.03.25

술을 배우던 시절의 얘기다. 횟집에 앉았는데, 도통 먹을 만한 것이 없었다. 메뉴판의 가격을 감안해보면 화가 날 일이었다. 아주머니를 불렀다. “조금 있다 실장님 오시거든요.” 아하, 비로소 뭔가 좋은 걸 들고 온다는 뜻이겠다. 내가 머리는 나빠도 그런 눈치는 참치 볼살처럼 떡떡 붙게 알아들었다.

과연 실장님이 오셨고, 그는 약 5분간 설명을 했다. 뭐, 있잖은가. 참치 수정체와 턱살의 밀도와 저작감에 대해, 그것을 구하려는 ‘실땅님’들의 노력에 대해, 인간문화재 소목장이 자개를 붙일 풀을 만드는 데 쓴다는 민어 부레가 우리의 상에 도달하기까지 고생한 가게 사장님의 은공에 대해 나는 브리핑을 들었다. 훌륭했다. 감사했다. 깊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그건 그가 거의 머리를 조아리다시피 해서 생긴 답례이기도 했다). 그리고 흘러간 2~3분은 참 길었다. 그는 내 얼굴을 한 번 보았고, 갈망과 약간의 불안과 내 눈치 없음에 대한 지도와 자신이 곧 다음 방으로 건너가야 한다는 뜻을 넌지시 담고 있는 눈빛이었다.

그가 마지막 신공을 보였다. 뭐 그저 그런 양상추에 연어에 무순과 서양고추냉이 소스와 땅콩 소스를 올려 돌돌 싸서 내 입에 넣는 것 아닌가. 나는 이것이 정말 어울리는 궁합인지 알 수 없어 잠깐 망설였지만 입을 벌려 그것을 받아먹어야 했다. 달고 들척지근한 맛이었다. 게다가 자기 손의 위생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는지 몰라도 그의 손가락까지 입안으로 같이 들어오다시피 했다. 내 혀는 찬물에 퉁퉁 불은 그의 손가락까지 핥았다. 아마 그는 이로써 손님과 동지로서 깊은 유대감 혹은 손님에 대한 최상급의 봉사 의지에 방점을 찍고자 했던 게 아니었을까.

다시 2~3분이 흘렀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뭔가 ‘처분’을 기다리는 자세였다. 나는 참 바보였다. 그를 피곤하게 했으니까. ‘요식 행위’를 치르기만 하면 될 일을 나는 왜 미처 알지 못했을까. 지폐 두어 장으로 사례를 했다. 그리고 그 후로 다시 그 횟집에 가지 않았다. 당시 일식집 방에서 돈을 주고받는 행위에 반응하는 두드러기 같은 것 때문이기도 했다. 서로 뻔한 눈치에, 뻔한 형식을 만들어 몇 푼을 수수하는 인간들의 복잡한 회로 같은 것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더구나 다시는 밑도 끝도 없는 땅콩버터 소스와 서양고추냉이 소스의 연어 양상추 쌈을 먹고 싶지도 않았다. 요즘 말로 괴식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그런 맛이었으니까.

“가위질이 거칠어지면 배춧잎이 빠진 거야.” 이 말도 참 명언이었다. 다만 일하는 아주머니의 입이 아니라 내 동료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손님 시각에서 만든 “이따가 실장님이 오시거든요”였다고 할까. 보다 정확하게는 아주머니가 고기를 가위로 철컥철컥 썰기 시작할 때 그가 지갑을 열면서 한 말이었다. 아, 우리는 왜 이리 촌스러울까? 돈을 주고받는 일이 왜 껄끄럽게 느껴질까? 누구보다도 돈을 좋아하면서도 애써 고상한 척해야 하는 심리는 무엇일까? 이것이 설마 빌어먹을 동방예의지국의 잔재 같은 것일까?

좀 다른 얘기지만, 언젠가 내 이탈리아 요리 사부가 한국에 와서 멋진 갈라 디너를 했다. 식당 사장님이 사례금을 봉투에 넣어 드리자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로서는 참 애매한 입장이었는데, 돈이 보이지 않도록 봉투에 넣어 전달하는 행위는 이탈리아에서는 뇌물을 주는 것과 같은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일명 ‘언더 더 머니(under the money)’, 구체적으론 마피아가 지자체 상공국장에게 돈을 줄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정결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방법으로는 그다지 추천할 만한 방법이 아닌 셈이었다. 그 나라에선 과외 선생에게 교습비를 줄 때도, 월급을 줄 때도 그냥 지폐를 세어서 쓱 줬다. 그런 식이었다. 나는 얼른 봉투를 열도록 유도해서, 만인이 그것을 보도록 함으로써 그의 부담을 덜어줬다. 그가 붉은 얼굴로 파안대소했다. 목욕탕에서 몸을 불린 후에 때밀이 서비스를 받는 것과 같은, 흥미로운 이국 문화를 체험하는 표정이었다.

최근에 나는 뉴욕에 갔다가 하루 종일 팁에 대한 강박에 시달렸다. 동행인에게 물었다. 얼마 줘야 하지요? 여기도 팁을 주나요? 몇 프로가 적당할까요? 안 주면 어떻게 됩니까? 카드로 낼 때는 어떻게 하죠? 30%까지 요구한다는데 사실입니까? 안 주면 쫓아온다는데 진짜예요? 커피숍에서도 줘야 하나요? 한 카페의 서버는 커피 잔을 던지다시피 했는데. 그럼에도 10%, 15%, 20%라고 적힌 청구서를 내주는 게 기본이었다. 어떤 서버는 볼펜으로 20%라는 글자에 진하게 밑줄을 쳐놓기도 했다. ‘어이, 뉴욕은 처음이지? 20%라고, 이 친구야.’ 뭐 이런 안내였으리라. 뉴욕 기념품점의 최고 인기 품목은 ‘I♥NY’이 아니라 ‘I♥TIP’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뉴욕은 팁에 아무도 손댈 수 없다. 주인은 물론이고 주방 요원도 마찬가지다. 오롯이 서버들의 몫이다. 나눠 가지면 불법이란다. 뉴욕의 서비스가 대체로 훌륭한 건 그 때문일까?

귀국길에 케네디 국제공항 4터미널의 엉터리 피자집에서 마지막 식사를 했다. 그 집 서버도 피자 한 쪽을 내밀면서 청구서 아래에 기재된 20%에 볼펜으로 줄을 죽 그어서 주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다 보니 출국장을 나서면서 얼떨결에 여권과 1달러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낼 뻔했다는 후일담도 기록해두어야겠다. 물론 정말 그랬다간 수갑 찰 일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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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민 용준
  • 사진|정 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