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프로젝트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10대의 목소리가 미국의 총기 규제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까? | 미국,총기 규제,,NeverAgain

미국의 풍자 뉴스 매체 은 지난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의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에서 17명이 사망한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기사에 이런 제목을 붙였다. “‘이 일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라고 유일하게 이런 일이 정기적으로 일어나는 나라에서 말합니다.” 반복적으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는데도 미국 정부와 의회가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풍자한 것이었다. 재미있는 건 이 제목이 달린 기사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이 제목은 2014년 5월 샌타바바라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을 때 처음 사용했고, 이후 은 총기 난사 사건이 있을 때마다 사건이 일어난 날짜와 장소, 피해자의 숫자만 바꿔서 같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제목은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교회 총기 난사 사건, 오리건 커뮤니티 칼리지 총기 난사 사건, 캘리포니아 샌버나디노 총기 난사 사건, 작년에 있었던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 텍사스 서덜랜드 스프링스 총기 난사 사건, 그리고 올해의 플로리다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까지 총 일곱 번이나 사용됐다.이렇게 같은 제목의 기사가 다시 사용되고 그때마다 해당 기사가 다양한 경로로 공유된다는 건 미국 내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이로 인한 슬픔과 분노만 일뿐 궁극적인 변화가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대변한다. 이 제목을 처음 생각해낸 제이슨 로더는 플로리다 마조리 총기 난사 사건 이후 트위터에 “내가 처음 이 헤드라인을 쓸 땐, 내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이 헤드라인을 사용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란 미국인의 삶과 이렇게 가까이 맞닿아 있다.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한국인들도 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사건이 발생하고, 곧이어 참사에 대한 슬픔과 분노, 총기 규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그러다 그 사건이 잊힐 때쯤이면 다시 똑같은 일이 다른 장소에서 반복된다. 이는 국내 총기 사고에 관한 뉴스를 거의 접할 일이 없는 한국인들 입장에선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일 수도 있다. 무기 휴대의 권리를 규정한 수정 헌법 2조 때문에 총기 소유를 완전히 금지할 수 없다면, 적어도 총기를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확인하고, 총기 소유 자체를 어렵게 만들면 될 일 아닐까. 실제로 미국에서 총기 규제를 촉구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완전한 총기 소유 금지가 아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그렇게 간단한 사안이 아닌 것 같다. 총기 난사 사건이 있을 때면 오히려 개인의 보호를 위한 총기 소지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시골 지역에서는 총기를 레저 수단으로 여긴다. 그리고 미국총기협회의 막대한 로비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대두되는 총기 규제 법안의 의회 통과가 번번이 좌절된다. 그 와중에 언론이 주목하는 사건은 매 순간 빠르게 변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해당 사건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힌다. 여태까지 총기 사건 이후의 양상은 매번 이런 패턴으로 흘러갔다. 미국의 유명 천체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은 플로리다 총기 사건 이후 트위터를 통해 “수년간 여러 장소에서 모은 증거에 따르면, 기도의 힘은 총알로부터 학생들을 지키는 데 불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라는 의견을 남겼다. 이는 매번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지적이자 이번만큼은 슬픔과 분노가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조언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과연 이전과 달라질 수 있을까?그럴 수 있다고 확답한다면 이는 미국총기협회의 저력을 무시하는 것이거나 문화의 일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미국인과 총의 관계를 과소평가하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만큼은 어떤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되는 건 이번 총기 난사 사건의 생존자들 덕분이다. 끔찍한 총기 난사 사건에서 살아남은 플로리다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 학생들은 의회와 정부에 직접 총기 규제를 촉구하기로 결심했다. 이들은 운동을 조직하고, 분노와 슬픔이 변화로 이어지길 원했다. 생존자 중 한 명인 엠마 곤잘레스도 친구들과 함께 총기 관련 법안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자신의 학교가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의 마지막 장소이길 바란다고 말한다.“그들은 더 강력한 총기 규제 법안이 총기 사건을 줄이지 못할 거라고 말합니다. 그건 헛소리입니다. 그들은 총을 가진 선량한 사람이 총을 가진 나쁜 사람을 막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건 헛소리입니다. 그들은 총이 칼처럼 단순한 도구일 뿐이라고, 자동차가 위험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얘기합니다. 그건 헛소리입니다. 그들은 그 어떤 법도 수많은 무분별한 비극을 막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건 헛소리입니다. 그들은 우리 같은 아이들이 자신이 뭘 말하는지 모르고, 정부가 하는 일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걸 헛소리라고 하겠습니다.” 엠마 곤잘레스의 이 연설이 어쩌면 미국의 총기 규제에 대한 티핑 포인트일지도 모른다. 물론 예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미국의 언론 매체들은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는 이번엔 다를지도 모른다고 말했고, 는 학생들이 교실을 벗어나 소셜 미디어에서 공통된 해시태그로 연대하는 모습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상을 남긴다고 말했다.#NeverAgain이라는 해시태그를 공유하며 집회를 기획한 학생들은 총기 규제에 대한 분명한 당사자성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목소리는 미국이 다시 한번 총기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널리 전파되고 있다.생존 학생들이 3월에 대규모 집회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은 언론에서 총기 규제 법안의 발의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강력한 이유 중 하나다. 3월 14일에 ‘내셔널 스쿨 워크아웃(National School Walkout)’을 주도했고 3월 24일에는 대규모 집회인 ‘우리의 삶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이 예정되어 있다. 내셔널 스쿨 워크아웃은 ‘여성들의 행진(Women’s March)’을 조직했던 이들 가운데 어린 학생들을 주축으로 기획된 집회로 3월 14일 오전 10시부터 17분 동안 이번 사건으로 사망한 학생 17명을 추모하고, 의회에 총기 규제 법안의 입법을 촉구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3월 24일의 행진은 좀 더 본격적이다.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 학생들은 총기 규제를 옹호하는 비영리 단체 ‘에브리타운 포 건 세이프티(Everytown for Gun Safety)’와 함께 워싱턴을 비롯한 미국 전역에서 총기 규제를 촉구하는 행진을 한다. 이미 플로리다주의 주도인 탤러해시에서 행진을 시작한 이들은 플로리다주의 정치인들과 만나 총기 규제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전했다. 조지 클루니 부부를 비롯해 제프리 캐천버그 부부, 스티븐 스필버그 부부 그리고 오프라 윈프리가 이 행진을 위해 50만 달러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저스틴 비버, 에이미 슈머, 존 레전드 같은 유명인들이 이 행사에 선뜻 돈을 기부했다. 유명인들의 참여가 운동의 성공을 담보하는 건 아니지만 이 운동이 정치인들에게 입법을 촉구하는 데 목적이 있음을 생각했을 때 대중의 관심을 끌고,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물론 현실적인 난관은 산재해 있다. 는 미국의 총기 문제가 여전히 매우 복잡한 문제임을 지적한다. 미국인의 개인 총기 소지율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높다. 전 세계 총기의 42%를 미국인이 갖고 있을 정도로 절대적이다. 미국 인구가 세계 인구의 5%를 차지한다는 걸 생각하면 절대적으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총기 사고가 잦은 건 그만큼 당연한 일이다. 연구자들은 총기에 의한 살인 사건뿐만 아니라 자살, 가정 폭력, 경찰을 상대로 한 폭력 역시 총기 수와 비례해 증가한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총기 규제를 원하는 미국인이 더 많음에도 상당수 미국인이 총기 소유의 권리를 포기하지 못하고, 소수의 총기 옹호자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사를 개진해왔다. 이것이 미국 내 다수가 지지하는 총기 규제가 제도화되지 못한 이유다.이런 현실에서도 이번 3월 집회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은 이미 충분해 보인다. #NeverAgain이라는 해시태그를 공유하며 집회를 기획한 학생들은 총기 규제에 대한 분명한 당사자성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목소리는 미국이 다시 한번 총기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널리 전파되고 있다. 10대답게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도 행진의 성공을 담보하는 요인 중 하나다. 다만 이 행진이 현실 정치에 영향을 끼쳐 총기 규제를 제도화시킬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큰 목소리는 단순한 울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현실의 변화란 곧 제도화, 법제화를 뜻한다. 이번 행진을 주도하는 학생들 또한 그것을 알고 있다. 자신들이 살고 싶은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분명히 알고 있고, 살고 싶은 세상을 얻으려면 직접 나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안다. 그러니 이들이 부디 앞선 세대보다 더 잘 해낼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그들이 공유하는 해시태그처럼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