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중국과 일본의 성씨 책으로 보는 한·중·일 문화 비교 분석. | 성,김시덕,이름

오늘날처럼 모든 사람이 성(姓, family name)과 이름(first name)을 함께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이름만 있었다. 소수의 지배계급만 성을 가졌다. 한반도의 경우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가 돼서야 대부분의 사람이 성을 갖게 되었다. 현대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김, 이, 박 등의 몇몇 큰 성씨를 쓰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족보를 갖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수많은 평민과 피차별민이 지배계급의 성을 (멋대로) 가져다 썼다. 둘, 그들이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고 지배계급의 족보에 스스로를 편입시켰다(혹은 위조했다).전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신분제 철폐를 통해 아래로부터의 평등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때 한반도에서는 모든 사람의 양반화를 통해 인간 평등을 추구했다. 그 결과 조선 전기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었던 노비를 자기 조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많은 사람이 자기 조상을 잊어버리고 남의 조상을 자기 조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세계의 다른 지역에는 자기 조상이 해방된 흑인 노예거나 노동계급이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사람이 많다. 미천한 신분과 계급으로 태어났어도 능력과 행운으로 입신양명한 조상에게 존경과 자부심을 느낀다. 현대 한반도에서는 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수많은 평민과 노비의 후예들이 자기 조상을 괴롭히던 지배계급과 스스로를 동일시한다. 자기 조상을 부정하는 역사 왜곡인 셈이다. 나는 이러한 자기부정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보이는 수많은 봉건시대적 잔재와 시대착오적 현상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참고로 나의 아버지 쪽 집안은 평안북도에서 유래한 광산 김씨임을 내세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에서 판단하건대 근대의 어느 시점에 광산 김씨 족보에 편입된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나는 같은 민족인 노비와 평민을 착취한 양반보다 자기 힘으로 열심히 살아간 노비나 평민이 조상이라면 더 자랑스럽겠다고 생각한다.그런데 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사람들이 일제히 성을 갖게 된 걸까? 세금과 군대 때문이었다. 모든 개개인에게 확실히 세금을 걷고, 성인 남성이라면 한 명도 빠짐없이 군대에 징용하기 위해서였다. 한 사람의 국민도 놓치지 않고 세금을 걷고 군대로 징집하는 건 오늘날의 우리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근대국가는 일종의 국가 프로젝트처럼 모든 국민을 한 명도 빠짐없이 파악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여기에서 국민국가(nation state)가 탄생했다.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은 국민 개개인에게 성을 주고 국가가 인구를 파악한 최초의 사례를 고대 한족의 중국에서 찾는다. 최근 재미있게 읽은 그의 책 에 나온 이야기다. 국민과 같은 뜻으로 쓰기도 하는 말 중에 ‘백성(百姓)’이 있다. 이 단어는 원래 성을 부여받은 지배 집단을 가리키는 ‘백관족성(百官族姓)’의 줄임말이었다. 딱 100개의 성이 있었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성이 많았다는 뜻이다. 고대의 세계에서는 지배 집단만 인간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백성이라는 말이 오늘의 국민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백성이라는 단어가 지배 집단이 아닌 지배를 당하는 일반 평민이라는 뜻으로 변한 건 세월이 흐른 결과다.100가지 성은 각각 무엇이었을까? 중국의 한족(漢族)은 이런 궁금증을 품었다. 아울러 흔히 쓰는 성을 처럼 모으면 아동 교육에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의 주인공 이 탄생했다. ‘100개 집안 성씨’라는 뜻이다.현재 에는 504개의 성이 실려 있다. 한 글자 성이 444개, 두 글자 성이 60개다. 모두 아시다시피 중화인민공화국, 타이완,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등의 주요 민족인 한족은 조(趙), 전(錢), 손(孫), 리(李)처럼 한 글자 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남궁(南宮), 황보(皇甫), 제갈(諸葛), 사공(司空), 선우(鮮于), 동방(東方) 같은 두 글자 성도 적지 않다. 한편 현대 한국에서는 중국에서 온 두 글자 성과 고구려와 백제에 많이 있었던 두 글자 성이 많이 사라지고, 인구의 절대다수가 한 글자 성을 갖게 되었다.일본인은 대부분 두 글자 이상의 성을 쓴다. 하야시(林) 같은 한 글자 성은 오히려 그 수가 적다. 고대에는 미나모토(源), 다이라(平), 기(紀), 반(伴)과 같이 한 글자 성을 쓰는 지배 집단도 적지 않았지만 언젠가부터 두 글자 이상의 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일본인이 성을 두 글자 이상으로 쓰게 된 건 귀실(鬼室), 목협(木), 부여(扶餘), 사택(沙宅), 흑치(黑齒) 같은 백제식 성의 영향인 듯하다. 에도 시대 일본에서도 대부분의 성은 두 글자 이상이었다. 후지와라(藤原)를 도(藤)라고 하는 식으로 일부러 한 글자로 줄여 중국풍을 흉내 내는 경우도 있었다.이처럼 다양한 성을 책 한 권으로 엮으면 편리하겠다는 발상이 중국에서 처음 나타난 곳은 북송(北宋) 시대의 강남(江南)이다.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맨 앞에 나오는 성이 북송 시대 초기에 절강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집안의 성씨였기 때문이다. 강남 지역 지식인들이 자기 지역의 유력 가문 성씨를 외우기 쉽도록 쉽게 묶은 책이라는 의미다. 이렇게 탄생한 은 곧 강남을 넘어 한족 전체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백가성은 그리고 세 글자씩 묶어 외우도록 한 과 함께 ‘삼백천’이라 불리며 지금도 중화권에서 널리 읽힌다. 나도 몇 년 전 베이징의 대형 서점에서 유아용 을 샀다. 펼치면 노래가 나오는 책이었다.나는 두 권의 옛 중국판 을 갖고 있다. 한 권은 1881년의 목판인쇄본 이다. 빙계영(憑桂榮)이 쓴 글씨를 나무판(木版)에 새겨 인쇄한 글자 연습 교재다. 빙계영이라는 사람이 누군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글씨를 써서 먹고살았던 사람 같다. 이 책은 몇 년 전 베이징의 유서 깊은 서점가 유리창(琉璃廠)에서 360위안에 샀다. 유리창은 베이징에 사절로 갔던 박지원이나 이덕무도 책을 사러 갔다고 해서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마침 갔더니 이 있길래 사 왔다.다른 한 권은 1906년판 석판본(石印本) 이다. ‘삽화를 많이 싣고 쉬운 설명으로 주석을 붙인 백가성’이라는 뜻이다. 제목답게 편찬한 곳의 이름도 양몽학당(養蒙學堂), 어리석은 아이들을 교육하는 학교라는 뜻이다. 출판사는 상하이의 금문당(錦文堂), 비단처럼 귀한 글을 펴낸다는 뜻이다. 발행 당시 판매 가격은 1각5부라고 하니 염가 판매다. 이 책은 야후 저팬 옥션 사이트에서 샀다. 20세기 초에 중국 강남 지역에서 출판되어 팔렸다가 일본이 패전하기 전에 일본으로 건너간 게 아닐까 싶다.표지에는 책의 대상 독자인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마치 소림사의 권법 소년처럼 과격하게 노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책 안에는 각 성별로 유명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책 속의 삽화도 표지의 소년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파워풀하다. 이 책을 편찬한 사람은 ‘호걸’이라는 이미지를 좋아한 것 같다. 걸핏하면 인물 설명에 ‘이 사람은 언제 적 호걸이다’라는 말을 붙인다. “항우는 진나라 말기 호걸이다”, “한신과 번쾌는 초한 시대 호걸이다”, “관우는 삼국시대 호걸이다” 같은 식이다. 그래도 이런 사람들은 무사이니 호걸이라는 단어가 맞는 것 같다.하지만 “초나라 시인 굴원은 춘추시대 호걸이다”라는 설명은 어떨까? 조선 시대든 현대 한국에서든 굴원은 흔히 ‘우국 시인’이라 평한다. 하지만 그를 호걸이라 평하는 건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장자는 전국시대의 도덕 호걸(道德的豪傑)”이라는 설명을 보면 당혹스러워지면서도 감탄하게 된다. 신선처럼 산속에 조용히 앉아서 수양하는 모습이 아니라 호걸처럼 씩씩하게 숲과 마을을 걸어 다니는 장자의 모습도 왠지 그럴듯하다.양명학(陽明學)에 대한 평가도 눈에 띈다. 조선 시대 사람들과는 달리 청나라 말기의 이 책에는 양명학을 창시한 왕수인(王守仁)을 ‘명나라 때의 큰 유학자’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명·청 시대의 한족 지식인들은 주자학만 받들고 양명학을 몹쓸 것으로 생각하던 조선 지식인들을 이상하게 여기곤 했다. 21세기 한국인 가운데에도 여전히 조선 시대 주자학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큰 지적 자극을 받을 것 같다.그러던 이 어느 때인가 일본으로 건너갔다. 에도 시대에는 청나라 상인들이 강남 지역과 나가사키를 오가며 무역을 했다. 몇몇은 나가사키를 비롯한 규슈 서쪽에 정착해서 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도 일본 사회에 알려졌을 것이다. 일본 출판인은 중국 베스트셀러 을 본떠 아동용 교재를 만들었다. 제목은 혹은 였다.내가 가지고 있는, 제목을 알 수 없는 아동용 책자 세트 속에 가 포함되어 있다. 성만 실린 과 달리 에는 미나모토, 다이라, 후지와라, 다치바나 등 몇 개의 고대 귀족 성씨만 실려 있다. 당시 책의 대상 독자인 일본 서민은 성이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들에게는 성보다 이름 글자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했을 것이다. 일본 서민의 이름 가운데 자에몬(座衛門), 우에몬(右衛門), 효에(兵衛), 가미(守·督·頭·正), 스케(佐·補) 등은 고대 일본의 관직명에서 유래한 글자다. 하지만 이 책이 만들어지고 읽히던 에도 시대에는 평민의 이름에도 많이 쓰였다. 단어 ‘백성’이 처음엔 지배계급을 가리키다 어느새 피지배계급을 가리키는 단어로 바뀐 것처럼 귀족 이름에 쓰던 글자를 평민도 쓰게 되었다. 문화가 위에서 아래로 퍼지던 시절이다.중국의 은 유명한 책이었다. 과 함께 3대 아동 교재에 속하던 책이니까. 역시 일본의 아동용 종합 학습서에 포함될 정도로 인기가 있던 책이다. 그런데 한·중·일 중 중국과 일본의 이름 책에 해당하는 책이 한반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놓치고 있는 책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 해도 중국의 이나 일본의 처럼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책은 아닐 것이다.중국과 일본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데 한반도 사람들은 공유하지 않는 문화 현상이 있다. 출퇴근과 통학길의 자전거 행렬, 음식에 샹차이(고수)를 넣어 먹는 문화, 마작 문화, 그리고 과 까지.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걸까? 조선 시대 후기부터 오늘날까지 한반도는 일종의 정치적, 문화적 고립 상태에 놓여 있다. 이 이유를 밝혀낼 수 있다면 한반도의 고립을 해소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