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석 배우와 팔씨름해봤어요?
장난 잘못 쳤다가 큰일 겪는다고, 감히 동석이 형한테 장난 안 치죠.(웃음)
신작 <챔피언>에서 마동석 배우를 팔씨름 선수로 만드는 장본인이잖아요.
정식 팔씨름은 아니고 손을 잡아보긴 했어요. 힘이 굉장히 세요. 동석이 형이 촬영 기간 동안 실제로 팔씨름하는 장면이 많았거든요. 팔을 많이 쓰다 보니 쉬는 시간이나 다른 때에는 체력을 아껴야 해서 제가 쉽게 시도해보지 못했죠.
영화 속 에이전트 역할을 카메라 밖에서도 충실히 수행했군요.(웃음)
물론 저와 한 게임 한다고 형의 힘이 많이 소진되지는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아끼는 마음에.(웃음)
이번에 연기한 진기라는 캐릭터는 잔머리가 알파고급이라던데 권율 씨는 어때요?
진기처럼 생각이 많은 편이기는 한데, 그래도 저는 잔머리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이 다른 것 같아요.
어른스럽네요.
두뇌 회전이 빠르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편이기는 합니다.(웃음)
승부욕은 강한 편인가요?
굉장히 센 편입니다. 어릴 때 동네에서 친구들과 공을 차더라도 꼭 이기려고 몸이 축날 때까지 막 뛰어다니고 그랬어요.
그 정도로요?
아홉 살 때부터 축구를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과정보다 승리했을 때의 기쁨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과정이 어떻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려고 발버둥치던 시기가 아니었나…. 그 시기에 승부욕이 형성되지 않았나 싶어요.
지든 말든 무덤덤해할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선. 의외예요.
요즘은 좀 초연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오락하다가도 지면 굉장히 화도 나고 분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런 것에서 좀 내려놓은 것 같아요. 사소한 데 승부욕을 부리지 않으려고 해요. 진짜 승부욕을 부려야 할 때를 대비해 에너지를 모으고 있습니다.
아직 그때가 오지 않았다고 보는군요.
사실 연기하는 모든 순간이 그런 때 같아요. 제가 승부욕이 강하다고 해도 형제 중 막내로 커서 그런지 한편으로는 양보를 많이 하는 편이기도 한데, 연기라는 부분에서는 내 것을 절대 양보하지 않고 끝까지 한번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상대 배우와의 승부욕이 아니라 제 연기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승부욕만큼은 끝까지 놓지 않으려고 많이 생각해요.
그 마음이 조금씩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마동석 배우와 영화 <비스티 보이즈>(2008)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이에요. 그때는 모두 조연이었는데 이젠 주연이죠.
뜻깊은 일이죠. 특히 마동석 선배님은 <비스티 보이즈> 현장에서도 누구보다 인기가 많았거든요. 큰형처럼 잘 챙겨주고, 현장 분위기도 재미있게 이끌어주고, 뚝심 있고. 이후로도 끊임없이 활동하면서 관객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해나가시는 선배님을 보면서 배우로서 귀감으로 삼고 있어요. 또 저 역시 관객으로서 동석이 형의 연기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했는데, 다시 마주 보며 연기하게 되어 기분 좋죠.
남다르겠어요.
그럼요. 현장에서 동석이 형과 대화도 많이 하고 상의도 자주 했어요. 형도 연기하면서 집중할 일이 많았을 텐데 제 것까지 하나하나 봐주시고…. 제가 많이 보여드렸죠. “형, 이렇게 해볼 건데 어때요? 재밌어요, 안 재밌어요?” “어 재밌어” 그러면 기분 좋고.
붙임성이 좋은가 봐요.
제가 딱히 모난 구석은 없어서….(웃음)
소문난 절친인 윤계상 배우도 <비스티 보이즈>에서 만났다고 들었어요. 누가 먼저 말 걸었나요?
제가요. 아무래도 당시 형은 주인공이라 신경 쓸 것도 많았고, 마침 제가 맡은 지훈이란 역할이 형이 연기한 승우를 잘 따르는 캐릭터였거든요. 그래서 제가 먼저 많이 다가가게 됐고 계상이 형도 저를 굉장히 좋게 봐주시고 예뻐해주셨죠.
윤계상 배우의 어떤 면을 보고 스스럼없이 다가갔어요?
지금이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웃기지만 당시에는 저도 모르게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계상이 형은 아이돌 출신이잖아요.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사람이 자신이 누구였는지, 어떤 위치였고 얼마만큼의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었는지, 그런 거 다 내려놓고 현장에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배우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던 것 같아요. 말이 쉽지 ‘제가 가수로서는 대상까지 받은 사람이지만 연기자로서는 신입입니다’ 하는 자세를 실천하기에는 자존심이랄까, 깨기 힘든 부분이 있을 것 같거든요. 윤계상 선배님은 그런 의식 전혀 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감명 깊었어요.
권율 씨와의 인터뷰에서 왜 굳이 윤계상 배우에 대해 물어봤느냐면요….
그러니까요. 다 잘라주세요, 제 인터뷰니까.(웃음)
친구가 되는 중요한 연결 고리는 서로 비슷한 면이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절친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권율 씨에게도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생각해보면 그렇게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 나와 같아서가 아니라 비슷해지고 싶어서, 본받고 싶어서 친해진 것 같아요.
좋은 마음가짐이네요. 질투가 아니라 닮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반대로 계상이 형은 원래 말이 참 없는데 저와 있을 때는 말이 많아요.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와 저와 둘이 있을 때 모습이 다르다는 것은 저로서도 기쁘죠. 그런 게 친구인 것 같아요.
남자들끼리는 뭐 하고 놀아요?
제가 구기 종목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대학교 때는 농구 서클에 들었고, 축구도 했고, 구기 종목은 다 좋아해요. 친구들 만나면 운동하거나 저희 집에서 스포츠 경기를 많이 봐요.
새벽에 방송한 맨시티랑 리버풀 경기도 봤어요?(챔피언스 리그 8강 1차전이었다.)
오늘 촬영 때문에 일찍 자느라 못 봤어요. 저 리버풀 팬이거든요.
리버풀이 이겼잖아요.
3 대 0으로 이겼죠.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언터처블’한 팀이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끄는 맨시티인데, 과르디올라를 누를 수 있는 건 리버풀의 위르겐 클로프 감독이 유일하지 않을까….
갑자기 생기가 확 도네요.
아침에 리버풀이 이겼다는 뉴스 보고 오늘 화보를 잘 찍겠구나 생각했죠.(웃음) 집에 있으면 여러 종목의 스포츠 경기를 다 챙겨 봐요. 요즘은 한국 프로농구가 플레이오프를 해서 곧 DB와 SK의 결승전이 시작되거든요. DB가 몇 년 동안 좀 힘들었는데 올 시즌 이상범 감독을 영입했고 두경민 선수와 용병 선수인 버튼도 잘해주고 있어요. 이번이 김주성 선수 은퇴 시즌이거든요. DB가 올 시즌 최약체로 평가받았는데 팀 스피릿의 핵심인 김주성 선수가 은퇴한다니 선수들이 더 단합해서 결승전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죠.
농구에는 크게 흥미가 없는데, 귀에 쏙쏙 들어와요.(웃음)
감사합니다. 언젠가 객원 스포츠 캐스터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웃음)
출연했던 작품을 주기적으로 다시 본다고 한 적 있어요. 최근에 돌려 본 작품이 있나요?
최근에는 드라마 <귓속말>과 단막극 <너를 노린다>를 다시 봤어요. 주기적으로 보는 것까지는 아니고, 보고 싶은 날이 있더라고요. 복습하는 느낌이랄까. 그때 연기가 다 정답은 아니었으니까.
복기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지난 연말 SBS 연기대상에서 <귓속말>로 우수연기상을 받고 문득 내 연기가 어땠을까 싶더라고요. ‘내가 진짜 잘했나?’
잘했던가요?
예전 작품을 돌려 보다 보면 감독님이나 동료 배우들이 조금 더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부분이 보여요. 당시에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미 턱밑까지 배가 차서 더 못 먹어. 안 돼. 토할 것 같아’라고 제가 조절했어요. 그런데 지금 보면 부족한 게 보이더라고요.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요. 이제는 토해도 되니까, 일단 먹어보고 토했을 때 또다른 감정이 나올 수 있으니까, 끝까지 더 해보려고요. 마음속 그릇을 조금 더 넓힐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 같아요.
자신의 흔적을 돌아보는 게 마냥 쉽지는 않죠.
맞아요. 그런데 갑자기 용기가 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찾아보게 되고, 그런 시간이 제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우수연기상 수상 소감이 기억나요. 개띠라고, 2018년 황금개띠해에 달리고 짖어대는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되게 신선했어요. 짖어대겠다니.(웃음)
제가 이상한 소리를 해서.(웃음)
단정한 외모와 다르게 터프하고 장난꾸러기 같은 면모가 분명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오늘 화보에도 그런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고요.
맞습니다. 아주 편했어요.
아무도 모르고 나만 간파했다고 뿌듯해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시상식에서도 그렇고, 들여다보면 늘 스스럼없이 솔직한 편이었어요.
맞아요.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만 내비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제 연기나 저라는 배우에 대해 더 많이 공감받고 지지를 얻으려면 제가 가지고 있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친구를 만났는데 언제나 말없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 너무나 좋죠. 하지만 그 친구가 슬퍼하는 모습도 보이고 솔직한 속내를 내비쳤을 때 서로 더 깊이 교류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저의 모습 중 반원만 보여드렸다면 전체 원의 모습까지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배우로서도 지금까지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없더라고요.
작품을 볼 때 제게 힘들 것 같은 역할인지가 가장 중요해요. 그런 부분에서 승부욕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미지나 역할을 잘 해내고 싶고 도전해보고 싶어요.
너무 도전적이라 고민했던 역할이 있었나요?
심각하게 고민한 적은 없어요. 잘할 수 있나, 내게 맞나 안 맞나 살펴보는 과정이 그리 많지도 않고, 있어도 길지 않았어요. 지금 현재로서는 권율을 이러한 캐릭터로 봐주지 않지만 잘 해냈을 때는 권율에게 이런 모습도 있구나 알아봐주실 것을 고대하며 역할을 선택해온 것 같아요.
하지만 비슷한 캐릭터만 보여주면 지루하다 그러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 되레 개성 없다고도 하잖아요.
거기에 휘둘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하더라도 충분한 고민과 노력, 공부가 있다면 같은 톤 안에서도 여러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쉽지 않죠. 그래서 배우들이 연기할 때 어렵고 힘든 거죠. 그런 부분을 숙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어떻게 표현하고 고민할지에 대해 늘 생각해야 하는 게 배우의 일상인 것 같아요.
낯선 연기에 도전하는 것에 앞으로도 거리낌 없을 거라고 들리네요.
네, 그렇게 생각해요. 물론 그 시도나 과정은 어렵겠죠. 하지만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려고요. 또 이렇게 뱉어놔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달려갈 수 있죠.
사실 배우들이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로 악역을 가장 많이 꼽는데 권율 씨는 이미 <귓속말>을 통해 냉철한 악역을 보여줬어요.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에 무엇이 있을까요?
액션. 누아르. 해보고 싶어요.
뮤지컬 쪽으로는요? 잠깐 흥얼거리던 노래 실력이 보통이 아니던데요.
아유, 아닙니다.
7080 노래라는 게 반전이지만.(웃음) 가사를 찾아보니 해바라기의 ‘사랑으로’이더라고요.
집에서 혼자 띵까띵까 기타 치는 걸 좋아해서 자연스레 예전 노래를….(웃음) 김광석, 유재하, 이문세, 이런 분들 노래 좋아해요. 기타 치기 되게 좋은 노래거든요. 노래 부르면서 기타 치고 싶은데 ‘에델바이스’나 ‘로망스’는 치고 싶지 않고.(웃음) 요즘 노래도 많이 좋아합니다. 위너도 좋아하고 크러쉬도 좋아하고 BTS도 좋아해요. 방탄소년단이라고 안 하죠, BTS. 엑소 친구들, 레드벨벳 친구들도 좋아하고요.
기타 잘 쳐요?
그냥 집에서 혼자 하는 거죠. 배운 적은 없어요. 얼마 전 아버지가 기타를 사주셔서 오랜만에 또 쳐봤어요.
아버지가 어쩐 일로 통기타를 사주셨어요?
아버지는 원래 기타를 좋아하시거든요. 기타 한번 보러 가셨다가 좋은 기타가 싼 가격에 나와 있길래 제 생각이 나서 사 오셨다고….
자상하시네요.
그래서 제가 용돈을 드렸죠.(웃음)
기타에 혹시 애칭 붙였나요?
그런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기타는 기타. 차는 차.(웃음)
쉴 때 또 뭐 해요?
요즘 크로스핏하고 있거든요.
그거 엄청 힘들다던데.
아무래도 하체를 쓰면서 하는 유산소운동이 힘들어요. 스쿼트에 점프까지 같이 하고 이런 거.
크로스핏 한 번 할 때 여러 동작 하잖아요. 어떤 게 제일 재미있어요?
다 재미없어요. 끝나면 재밌어요.(웃음)
얼마나 됐어요?
한 5개월?
오래됐네요.
아니에요. 오래 해도 늘 힘들고, 늘 화나고, 늘 기분 나쁘고.(웃음) 그런데 스트레스를 땀으로 쫙 빼내는 느낌이라 굉장히 상쾌해요. 해냈을 때 성취감이 기분 좋아요.
예전에 권율 씨를 만나본 에디터가 남고생 같다고 표현했는데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아요.
왜요?
솔직하고 꾸밈없어서. 그때에 비해 성숙해졌으려나?
그때는 그냥 남고생이었다면 지금은 ‘땡땡이’ 치는 남고생이랄까?
예전엔 열심히 하는 학생 모드였어요?
그보다는 남고생 이미지를 더욱 확장시켜서 이제는 점심시간에 땀 뻘뻘 흘리며 축구도 열심히 하는 남고생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더 좋겠어요.
내친김에 축구 챔피언스 리그에서 어느 팀이 1등할 것 같은지 예언으로 적어놔볼까요?
이번엔 리버풀이 우승 한번 가지 않을까?
팬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네. 제가 리버풀 팬이 된 게, 2004-2005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AC밀란과 리버풀이 붙은 적이 있었는데, 리버풀이 3 대 0으로 지다가 후반에서 3 대 3으로 따라잡아서 결국 승부차기로 역전했거든요. 그때 리버풀에 흠뻑 빠지게 됐죠. 아무튼 이번에 그때 기운이 좀 들어요.
마냥 잘하는 쪽보다는 드라마틱한 팀을 좋아하는군요.
리버풀은 축구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는 게 분명 있어요. 축구계가 사실 돈의 영향을 많이 받고 투자를 많이 한 팀이 가시적으로 좋은 성적을 내기는 하지만, 비난이 아니라 상업 스포츠에서는 당연한 논리예요. 리버풀도 돈을 좀 쓰고 있기도 하고.(웃음) 그럼에도 무분별한 게 아니라 리버풀만의 색깔을 지키려는 모습이 있어요. 그 색깔을 고수하려는 느낌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에요.
어쩐지 닮았어요.
말을 너무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제가요?
제가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