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드의 끝을 잡고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이런 게 1990년대 한국에 진짜 있었단 말이에요?’ 21년 만의 증명, 솔리드는 분명 선구적인 그룹이다.

<무한도전>이 끝났다. 한국 예능계의 전설로 남을 프로그램의 퇴장이었다. 하지만 난 <무한도전>을 본 적이 거의 없다. 통틀어 15번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나마 그 정도 본 것도 ‘토토가’ 때문이었다. 그리고 H.O.T. 재결합 특집과 젝스키스 재결합 특집 때문이었다. 1990년대에 10대를 보낸 나는 이것을 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10대 시절에 보고 듣고 겪은 것은 대부분 평생의 삶의 연료로 사용된다. 뇌과학 관점에서 이를 증명한 이론을 언젠가 접한 적도 있지만 굳이 수치까지 거론하진 않아도 될 것 같다.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이하 <슈가맨>)이라는 프로그램의 등장과 인기도 비슷한 선상에서 조명 가능하다. 1990년대에 10대를 보낸 사람들(약간의 시차가 있기는 하다)이 주 시청자가 되고, 어릴 때 가수 활동을 했던 이들이 젊은 시절의 꿈을 뒤로한 채 다른 세계에서 살다가 나이가 들어 다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어떤 가수들은 나의 10대 시절에 활동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영웅이 된다. 지금의 가수보다 그 시절의 가수가 더 훌륭했다는 말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 시절에도 지금도 훌륭한 가수는 훌륭하고 아닌 가수는 아니다. 하지만 훌륭했든 그렇지 않든 그 시절의 가수들은 모두 반갑다.

누군가는 ‘토토가’나 <슈가맨>을 비판하기도 한다. 발전적이거나 생산적인 요소가 없는 추억팔이이자 퇴행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런 우리의 자화상이 서글프다’고까지 했다.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10대 시절의 우상을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좋은 에너지를 삶에 안겨주기도 한다. 나는 ‘토토가’나 <슈가맨>이 많은 사람의 삶을 한층 더 좋게 만들어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TV를 보며 직접 확인했다.

하지만 음악적 관점을 더 적용해본다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행복한 이벤트일 수는 있지만 말 그대로 대부분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슈가맨>에 출연한 대부분의 그룹은 신곡을 발표하지 않았고, 활동을 재개하지도 않았으며, 그 시절의 히트곡을 그대로 부르고 돌아갔다. 이 이벤트를 필요 이상으로 깎아내리는 것도 잘못이지만 음악 글쟁이로서 이에 만족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솔리드가 컴백했다. 21년 만에.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린 솔리드의 컴백 기자회견은 총 1시간 1분 53초 동안 진행됐다. 유튜브에서 풀 영상을 다 봤다. “오빠들 기다리다 애 둘 낳았어요”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한편 엠넷에서 제작한 컴백 다큐멘터리는 46분짜리였다. 시청 완료했다. 내친김에 추억 여행을 했다. 유튜브에서 그들의 1990년대 당시 활동 영상을 모조리 찾아 봤다. 뮤직비디오는 기본이고 라이브 영상도 여러 개 감상했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추억 여행이었다. 하지만 영상을 볼수록 다른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추억이 아니었다. 솔리드에게는 좋았던 옛 시절을 다시 맛봄으로서 얻는 정서적 치유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선구적인 그룹이었다.

예를 들어 ‘이 밤의 끝을 잡고’(와 ‘어둠이 잊혀지기 전에’)가 나오기 전에 한국에 알앤비라고 온전히 부를 만한 노래가 얼마나 있었을까. 유영진의 ‘그대의 향기’ 정도밖에는 특별히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현진영,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의 앨범에는 한국 발라드와는 분명히 느낌이 다른 슬로잼이 담겨 있기는 했다. 그러나 사운드를 비롯해 교포라는 정체성, 김조한의 보컬에서 느껴지는 소울, 심지어 패션과 헤어스타일까지 “이것이야말로 음악 내적·외적으로 모든 것이 알앤비의 멋으로 일체되었어!”라고 외칠 만한 결과물은 아무래도 솔리드 쪽이었다. 이것은 마치 지누션 이전에도 한국에 랩 음악은 여럿 있었지만 ‘가솔린’이야말로 패션, 사운드, 가사 모두에서 한국인이, 한국에서 최초로 완벽에 가깝게 재현한 미국 힙합이었다는 사실과 비슷하다.

솔리드는 당시의 미국 흑인음악을 한국에서 가장 밀도 높게 구현한 팀이었다. 보이즈 투 맨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댄서블한 뉴 잭 스윙과 서정적인 알앤비 발라드를 동시에 가지고 나왔고, ‘Hiphop Nation’에서는 피펑크(P-Funk)를 샘플링한 후 원숙한 영어 랩을 선보였다. 그런가 하면 ‘이제 그만 화 풀어요’는 베이비페이스의 정수를 한국말로 바꿔놓은 것 같았고, ‘Yes Or No’는 완연한 지펑크(G-Funk)였다. 그 밖에도 솔리드의 음악은 바비 브라운이나 조데시, 어보브 더 로우 등을 떠오르게 했다. 이와 관련해 현재 미국에서 학생들에게 케이팝을 가르치는 음악평론가 김영대는 이렇게 말했다. “강의 시간에 솔리드 노래를 틀어주면 늘 똑같은 반응이 나온다. ‘이런 게 1990년대 한국에 진짜 있었단 말이에요?’”

1993, Give Me a Chance

‘이 밤의 끝을 잡고’와 ‘Into the Light’ 사이에는 20여 년의 세월이 있지만 둘 다 솔리드다. 어쩌면 솔리드는 재결합 후에도 새로운 음악을 계속 만들어갈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2018, Into the Light

하지만 솔리드가 한국 가요계를 근본적으로 뒤집어놓았다는 뜻은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솔리드의 1집부터 4집까지의 변화 추이를 보면 당시 한국에서 흑인음악이 수용돼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밤의 끝을 잡고’가 수록된 앨범은 사실 그들의 데뷔 앨범이 아니라 2집이다. 솔리드는 이미 1993년에 데뷔 앨범을 발표했지만 시원하게 망했다. 소속사의 지원도 부실했고 음악도 2집보다 더 날것의 흑인음악이었기 때문이다. 2집의 성공 후 솔리드는 자신들의 음악이 한국에서 통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 후 그들의 방향은 흑인음악을 보다 강화하는 쪽이 아니라 한국 가요계에 적응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천생연분’의 예기치 못한 성공을 지나 ‘끼리끼리’에 도착했을 때 솔리드는 그들이 지닌 비교 우위의 장점을 잃어버렸다. 수용할 수 없는 음악에서 차이가 매력적인 음악으로, 마지막에는 차이를 거의 상실한 음악으로 끝맺는 것이 바로 솔리드의 짧고도 강렬한 커리어였다. 어쩐지 미완의 느낌이 가득한.

그랬던 그들이 21년 만에 돌아왔다. “솔리드 덕분에 나를 포함한 교포들이 한국 가요계에 데뷔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하던 박정현은 어느덧 중견 가수가 됐고, 한국에서 알앤비나 랩은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하지만 솔리드의 컴백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그들은 <슈가맨>에 나오지 않았다. 컴백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는 뜻이다. 방송도 딱 한 군데에만 출연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음악으로 말하겠다는 의지다. 결정적으로 솔리드는 새 음악을 들고 돌아왔다. 기자회견에서 김조한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방송을 통해 재결합한 팀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음악으로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방송을 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음악으로 나오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퓨처와 레트로를 합친 ‘퓨트로’라는 장르를 만들었다. 이번 앨범에 그런 색깔이 많이 묻어난다.”

퓨트로 장르인 ‘Into the Light’는 새 앨범의 타이틀곡이다. 뛰어난 사운드 퀄리티도 미덕이지만 그보다 새로운 옷을 입으면서도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한 노력이 엿보인다. ‘이 밤의 끝을 잡고’와 ‘Into the Light’ 사이에는 20여 년의 세월이 있지만 둘 다 솔리드다. 둘 사이의 연결 고리가 나에게는 보인다. 둘 다 당대에 뒤처지지 않는 음악이기도 하다. 어쩌면 솔리드는 재결합 후에도 새로운 음악을 계속 만들어갈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김조한은 꾸준히 솔로 활동을 해왔고, 정재윤 역시 솔리드 해체 후 프로듀서로서 이름을 떨치지 않았나. 멤버 전원이 음악과 무관한 삶을 살다가 방송 출연을 위해 잠깐 다시 뭉친 것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된다. 일회성 이벤트보다 새로운 시작이야말로 솔리드에게 원하던 것이었으니까. 그럴 만한 재능과 자격이 있는 그룹이니까. 

‘이런 게 1990년대 한국에 진짜 있었단 말이에요?’ 21년 만의 증명, 솔리드는 분명 선구적인 그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