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거라면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어.” 마블 코믹스의 대표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가 치열한 전투 속에서 적들을 때려눕히며 속삭인다. 성조기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방패를 폼 나게 던지고, 초인 같은 힘을 발휘해 위험에 처한 시민을 구한다.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천둥 번개가 친다.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신의 등장. 지표면을 요란하게 부수면서 육중한 남자가 착륙한다. 그러고는 커다란 망치를 휘두르며 10억 볼트의 번개로 적들을 튀겨낸다. 시공간을 뒤틀며 지구를 지키는 마법사, 화살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맞히는 저격수, 화가 나면 덩치가 커지며 괴력을 발휘하는 물리학 박사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히어로가 등장해 힘을 합쳐 싸운다. 이것이 2018년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흥행하는 영화의 소재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유치한 내용이다. 전신 유니폼을 입고 사람들을 구하는 슈퍼 히어로라니. 우리 미래를 이런 존재에게 맡기기에는 인류가 너무도 빨리 문명을 발전시키고 있다. 특히 전자제어 기술의 발전이 눈부시다. 이제는 음성으로만 피자를 주문할 수 있는 인공지능 장치가 누구에게나 있다. 주변 상황을 인지하고 스스로 판단해서 달리는 반자율 주행 자동차도 현실이다. 우주선을 발사한 후 추진 로켓을 원하는 장소로 귀환시킬 뿐 아니라, 7000만km 떨어진 화성에 물자를 보내 제2의 고향 별을 만들 준비도 진행되고 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우리가 유치한 슈퍼 영웅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유치하고 뻔한 소재를 유치하지 않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게 슈퍼 히어로들이 21세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이다. 그 본질은 오래전 것이지만, 최첨단 기술을 더해 요즘 시대에 걸맞은 결과물로 재탄생한다.
2018년형 뉴 머스탱 GT도 정확히 같은 맥락의 차다. 이 차의 본질은 1960년대에 있고, 핵심 기능은 이미 2000년대 초반에 거론된 것이다. 이전의 가치를 이렇게 지켜내는 차도 드물다. 엔진이 대표적이다. 친환경적 사고와 연료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시대에도 5.0L V8 엔진 구성을 품었다. 당당하다. 물론 10단 자동변속기 같은 최신 기술로 여러모로 진화한 흔적도 있다. 마치 냉동 상태에서 깨어난 과거의 슈퍼 영웅이 최신식 유니폼과 무기로 퍼포먼스를 강화한 상황이랄까.
스티어링 휠 구석에 달린 말 모양 버튼이 시선을 끈다. 손가락이 반사적으로 버튼을 누르자 풀 LCD 계기반의 내용이 화려하게 바뀐다. 주행 모드를 이리저리 바꿔보는 동안 점점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정지에서 시속 100km 가속, 400m 드래그 레이스, 트랙 주행 모드 등 주행 기록 측정 모드가 버젓이 달렸다. 자동차라는 장난감을 최대한 즐겁게 만들려고 노력한 흔적이다. 한편으로는 대단히 유치한 기능이다. 신호에 맞춰 급가속하고 기록을 보며 낄낄거릴 수 있는 유치한 장치를, 사회적 지위가 있는 어른들에게 자랑스럽게 제공하는 것이니까. 그런데도 이런 기능이 멋진 것은 표현하는 방식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계기반이 화려하게 전환될 때 운전자의 마음도 회전 스위치처럼 전환된다.
머스탱 GT를 최대로 가속시키기 전에 작은 이벤트가 있다. 타이어를 태워 자욱한 연기를 만들 순서다. 라인록(번아웃) 모드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강하게 밟는다. 계기반에 최대 압력이 설정되면 준비 완료. 이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밟으면 15초간 뒤 타이어가 빠르게 회전하며 파티가 시작된다. 평온했던 주변 분위기가 흥분의 도가니로 바뀐다.
급하게 속도를 높여본다. 엉덩이를 요동치면서 차가 앞으로 빠르게 달려나간다. 속도감, 소음, 진동이 더해져 운전자 몸속의 아드레날린을 폭발시킨다. 엔진에서 시작해 배기구로 빠저나가는 소리가 환상적이다. 대배기량 V8 엔진만이 만들 수 있는 오페라다. 변속기 2~3단의 급가속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배기음은 중독적이다. 노멀, 스포츠, 트랙 모드에서 원하는 만큼 소음 강도도 조절된다.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갈 때는 무소음 모드로 숨죽일 수도 있다. 눈치 보지 않고 즐길 수 있어서 좋다.
엔진 회전을 한계까지 끌어올릴 때, 계기반이 빨간색으로 깜빡인다. 그 순간이 마치 슬로모션 같다. 엔진이 최대 출력인 446마력을 발휘하는 순간, 충분히 예상한 즐거움을 경험한다. 물론 예상치 못한 부분도 있다. 10단 변속기의 반응이 그랬다. 변속 감각이 거칠다. 일반적인 고단화 변속기처럼 기어비를 잘게 쪼개서 부드럽게 연결하지 않는 듯하다. 기존 6단 변속기의 투박한 감각을 10단으로 늘렸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그래, 어쩌면 이런 세팅이 맞다. 매끈한 감각은 애초에 이 차와 어울리지 않는다.
전자제어 장치를 모두 해제하고 차가 이끄는 대로 기꺼이 춤춘다. 뒷바퀴를 미끄러뜨리고 스티어링 휠로 균형을 잡으면서 코너를 향해 옆으로 달린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고? 이해할 필요 없다.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두 눈 크게 뜨고 소리를 지르며 즐기면 된다. 이게 머스탱 GT의 존재 이유다. 그리고 이 차를 이해하는 가장 첫 단계다.
신형은 기술적으로 많은 부분이 진화했다. 마그네라이드 댐핑 서스펜션의 경우 1초에 1000번 노면 상황을 감지해서 최적의 접지력을 만든다. 내 생각에 크게 설명할 부분은 아니다. 커다란 덩치와 보트처럼 출렁거리는 주행 감각에서 차의 설명은 이미 끝났다. 정교한 데이터나 수치로 계산되는 목표는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차를 모르고 탈수록 더 재미있다. 그런 면에서는 미국 고성능 스포츠카를 대표하는 ‘머슬카’와 거리가 있다.
머스탱은 자신이 창조한 장르를 유지하는 매우 희귀한 브랜드다. 머슬카와 다른 ‘포니카’란 장르를 만들어 지난 수십 년간 그 정신을 유지해왔다. 그러니까 최신 기술의 결정체가 아니라 평범하고 대중적인 부품과 플랫폼으로 호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유행을 좇아 빠르게 변하지 않는다. 자신의 방식대로, 천천히 변하며 반항아 기질을 은근히 표출한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머스탱이 특정 제품이 아니라 하나의 아이콘이 된 이유다. 2018년형 머스탱 GT도 그랬다. 표면적으로는 고성능을 추구하고 있지만, 기본 정신은 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