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악순환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갑질은 어떻게 을을 병들게 하는가. | 갑질

4년 전 ‘땅콩 회항’은 서막에 불과했다. 일명 ‘물벼락 갑질’과 ‘공사장 갑질’ 등 대한항공 일가의 갑질이 파면 팔수록 기괴한 형상을 드러내고 있다. 비단 대한항공만은 아니다. ‘라면 상무’ 사건으로 통하는 포스코 임원의 기내 승무원 폭행 사건, 미스터피자 회장의 경비원 폭행 사건, 운전기사에게 상습적 폭언을 일삼은 사실이 드러난 종근당 회장 사건 등 일그러진 갑의 모습이 만연하다.갑질은 왜 일어나는가. 갑질 사건이 보도될 때면 인터넷 댓글 창은 가해자의 심리 상태를 추리하느라 분주하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사고방식이기에 이런 만행을 저지르는 것일까? 그들의 성장 배경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분노 조절 장애일까? 애정 결핍일까? 이럴 때 으레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 바로 심리학자들의 설명이다.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니 갑질의 심리에 대해서도 뭔가 좀 알지 않겠느냐는 기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심리학자들도 잘 모른다. 다수의 개인에게서 얻은 데이터를 토대로 보편적인 인간의 심리 패턴을 정립해나가는 것이 심리학의 기초이자 본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개인의 심리를 단언하기는 어렵다. 단지 여러 심리학 이론을 기반으로 몇 가지 가능성을 꺼내놓을 수 있을 따름이다. 예를 들어 사회적 학습 이론에서 보자면 성장기에 부모가 갑질을 부리는 모습을 목격하고 관찰하고 모방하며 내면화시킨 결과라는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다. 성격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이른바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권위주의적 성격이 짙어 갑질 행위에 보다 친숙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상황 요인의 힘을 강조하는 사회심리학자라면 갑질이 일어나는 사회 환경에 초점을 맞춰 분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갑질 당사자에게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회 내 갑질의 총량은 1%의 갑질과 99%의 대리 갑질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재벌 등 사회 1%의 최상류층이 벌이는 갑질은 1%일 뿐 나머지 99%는 평범한 을들 사이에서 자행되는 대리 갑질 이른바 ‘을질’이다. 1%의 갑질이 99%의 대리 갑질로 번져나간다. 우리는 이 사이의 흑마술 같은 메커니즘을 추적해야 한다.사실 우리 사회에는 갑질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도록 부추기는 대표적인 통설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아랫사람을 친절하게 대하면 거만해지며 일에서 실수가 잦아지기 쉽다’는 설이다. ‘적절한 갈굼을 통해 정신을 바짝 차리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새로운 일에 빨리 적응시키기 위해 갈굼은 필요악이다’와 같은 생각들 말이다. 갈굼은 곧 갑질이다. 권력 구조상 아래에 자리한 이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갈굼이란 행위는 갑질의 대표적 행위 양식이다. 군대, 학교, 직장 등 조직 내 부조리한 갑질 문화, 갈굼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상당 부분 ‘군기를 잡는 것이 쓸 만한 사람을 만든다’는 믿음에서 기인한다. 그렇게 하면 정말 쓸 만한 사람이 될까?그럴 리가. 갑질을 당하는 을의 내면에는 부적응적 완벽주의, 그중에서도 특히 평가 염려 완벽주의라는 심리가 자리 잡게 되기 쉽다. 심리학자들은 맥락과 방향성 등에 따라 완벽주의를 여러 갈래로 규정하는데, 크게 적응적 완벽주의와 부적응적 완벽주의가 있다. 이를 판가름하는 핵심 기준은 ‘완벽을 정의하는 기준이 어디에서 왔는가’다. 만약 완벽에 대한 기준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가진 사람이 무언가 잘하려고 노력한다면 이는 적응적 완벽주의에 해당한다. 그러나 완벽의 기준을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부적응적 완벽주의를 갖게 되기 쉽다. 최악의 상황은 완벽의 기준이 주체적이 아닌 데다 그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억지로 노력까지 해야 하는 경우다. 부적응적 완벽주의 중에서도 특히 강압, 강요, 괴롭힘 등으로 인해 타인의 기준에 맞춰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 평가 염려 완벽주의 성향이 나타나기 쉽다. 가령 어떤 일을 해내야 할 때 완벽의 기준이 오롯이 나에게 달렸다면 일이 잘못되어도 털고 일어나 다시 도전하면 된다. 하지만 완벽의 기준이 남에게 있다면 내가 주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완벽의 기준을 쥐고 있는 상대에게 맞출 수밖에 없게 된다. 갑이라는 이름으로 완벽의 기준을 쥐고 상대를 갈구고 괴롭히고 몰아치면 당사자는 이러한 평가 염려 완벽주의적 상태가 된다. 스트레스, 우울, 업무 회피, 불안, 자기 효능감 하락, 낮은 삶의 만족도, 수치심, 자기 비난, 자살의 유혹 등 평가 염려 완벽주의는 수많은 심리적 부작용을 쏟아낸다. 이런 막대한 부작용을 품은 사람이 일을 ‘잘할’ 것이라는 믿음은 어불성설이다. 설사 ‘군기가 들어’ 일을 빠릿빠릿하게 잘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신체적, 정신적 자원을 쥐어짜낼 수 있는 대로 긁어다 써서 가능한 찰나의 기적에 지나지 않는다.갑질에 이토록 심리적 고통을 받게 되는 을인데 이런 을이 대리 갑질을 자행할 때가 있다. 갑이 하는 행동 그대로 자신보다 힘이 없는 이들에게 되풀이하는 것이다. ‘땅콩 회항’ 사건만 봐도 그렇다. 당시 사건의 피해자인 박창진 전 사무장은 그동안 일부 동료 승무원들로부터 갖은 폭언과 비난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폭로한 바 있다. 승무원으로의 복귀를 바라지 않는다는 내용은 물론 ‘연예인병’에 걸린 것은 아니냐는 조롱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인 비난이었다. 박창진 전 사무장은 지속적인 괴롭힘과 비난에 시달리다 못해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충격적인 고백을 접하노라면 우리가 그동안 무언가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잠깐, 땅콩 회항 사건의 가해자가 박창진 전 사무장이었던가?심리학에서는 이를 피해자 비난이라 부른다. 사람들은 종종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해를 당할 만한 일을 자초했다고 손가락질한다. 심리학자들은 피해자 비난의 심리 기저에는 공정성, 그리고 공정성 회복에 대한 욕망이 있다고 본다. 공정성 욕망은 공정한 세상 이론과 체제 정당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공정한 세상 이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공평하다’라고 믿는 현상이다. 즉 사람은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다. 그런데 피해를 당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피해자에게도 분명히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야 세상은 공정하다는 내 믿음이 깨지지 않으니까. 인지 부조화를 피하기 위한 방책인 셈이다. 갑질의 피해자인 박창진 전 사무장을 두고 익명의 동료 승무원은 “대외적으로는 약자인 것 같아 보이지만 비행기 안에서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같지만은 않다”라고 말한 바 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같지만은 않다’라는 말에 무엇이 함축되어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체제 정당화 이론 역시 비슷하다. 정치심리학자 존 조스트가 이 이론을 수립하게 된 일화에는 아이러니한 인간 심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국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하다면 언론의 자유를 포기하겠다는 법을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 언론의 자유를 포기하겠다고 답한 사람은 최고 소득 계층보다 최저 소득 계층이 두 배 더 많았다. 최저 소득 계층일수록 언론의 자유를 포기할 수 있다고 답한 것이다. 이에 존 조스트는 사회적 취약 계층이 경제적으로 우월한 계층보다 현상 유지를 더 지지한다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주어진 여건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이 그 여건에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장을 내밀고 바꾸려고 할 가능성이 가장 낮다는 모순된 결과를 얻은 것이다. 역시 익명의 동료 승무원은 박창진 전 사무장을 두고 ‘왜 이 미꾸라지 인간 때문에 우리 모두가 피해를 봐야 하는지’라고 비난한 바 있다. ‘우리 모두’란 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갑질을 한 당사자? 그 갑을 보필하는 대리 갑질자들?사회 내 갑질의 총량은 1%의 갑질과 99%의 대리 갑질로 이뤄져 있다. 재벌 등 사회 1%의 최상류층이 벌이는 갑질은 1%일 뿐 나머지 99%는 평범한 을들 사이에서 자행되는 대리 갑질 이른바 ‘을질’이다. 1%의 갑질이 99%의 대리 갑질로 번져나간다. 우리는 이 사이의 흑마술 같은 메커니즘을 추적해야 한다.이들은 어쩌면 별종 스톡홀름 신드롬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권력의 갑에게 순응하며 그에 맞게 가치관을 내면화한 결과 을이 을에게 대리 갑질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갑질을 저지르는 당사자들은 자신의 행위가 곧 정의의 실천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토록 진지하게 갑질을 저지를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짚어봐야 한다. 정의란 무엇인지, 진정 공정한 세상이란 무엇인지, 유지해야 할 올바른 현상은 무엇인지. 그래야 내가 속한 세상을, 나를 지킬 수 있다.최근 거리에 다시 촛불이 번지고 있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퇴진을 요구하며 불을 밝힌 것이다. 갑질과 대리 갑질의 피해자였던 박창진 전 사무장 역시 이번 집회에 참석했다. 물벼락이 을들의 인내 한계점을 무너뜨린 것일까. 분명한 것은 내부 고발자가 소수였다면 어려웠을 변화라는 사실이다. 을들의 새로운 연대가 결성됐다. 대한민국 갑질 문화의 향방을 좌우할 중요한 시험대다. 고민의 물꼬는 터졌다. 과연 을들은 모순된 심리를 극복할 수 있을까? 낡은 정의를 버리고 새로운 정의를 쟁취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