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사이보그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만든 신인류. | 구찌,알레산드로 미켈레

“규율에서 오는 권력을 행사하는 데에서 쟁점은 규율의 대상에게 계산된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대상을 이상적과 비이상적이라는 이분법적 틀에 가두고, 대상을 특정한 목적을 위해 범주화, 통제, 규제할 때 발생한다. 이 통제 전략은 규제를 당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구조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이런 준거에서, 생명체에 대한 규율은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생물학적-정치적 통제 수단으로 활용한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구찌의 2018 F/W 컬렉션이 권력과 정체성에 관한 미셸 푸코의 담론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미켈레는 고정된 정체성을 타파하고자 했다. 그에게 정체성이란 선택과 결합, 창조를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다. 계절마다 남녀 구별이 힘든 모델과 옷을 런웨이에 쏟아내더니, 이젠 본질을 들여다보기로 한 걸까. 하지만 그는 젠더 정체성만을 골몰하지 않는다. 여자와 남자, 인간과 동물, 인간과 기계, 물질과 비물질 등 다원적이다. 스스로를 들여다보자는 용기이자 일탈이고 윤리적 접근이다. 그는 철학가이자 사회운동가다. 지난 2월 공개한 컬렉션의 무대는 수술실이었다. 본인의 머리를 옆구리에 끼고 나오는 모델, 새끼 용을 아기처럼 조심스레 안은 모델, 파우누스의 뿔이 달린 모델, 손에 눈이 달린 모델남녀의 성별이 모호해 보이는 건 여느 시즌보다 더했다. 골똘히 들여다봐야 겨우 짐작이나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수술대는 새로운 정체성이 탄생하는 곳이다. 이 무대 위라면 통제된 정체성의 대상이 도리어 괴상하게 보인다. 그는 이 괴물들을 사이보그로 정의했다. 미셸 푸코의 담론이 컬렉션의 사상이 됐다면 도나 해러웨이의 은 이 사상을 시각화했다. 경계를 흐리고 융합하는 과정으로 사이보그가 만들어졌다. 미켈레는 강력하고 불경스러운 이질 언어를 지향했다. 홍콩에서 2018 F/W 컬렉션을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철학적 주제는 옷을 직접 본 뒤에야 비로소 이해가 됐다. 하이브리드적 성향은 스타일링에서 더욱 드러났다. 성별과 역할, 종교와 문화, 시대와 세대, 우주 만물의 모든 것을 끌어모아 뒤섞은 뒤 툭 내던진 것처럼 기괴하고 낯설다. 접점이 없는 옷들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장면에서는 일종의 해방감이 들기도 했다. 이 옷에 어떤 사회적 기준을 들이대는 건 무척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