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한국의 서양 술

전통주의 기준에 물음을 던지는 한국산 서양 술이 등장했다.

BYESQUIRE2018.08.20

한국산 와인이 시중에서 왕왕 보인다. ‘포도·와인 산업 특구’로 지정된 충북 영동에서는 연간 500톤에 달하는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사실 포도 농가들은 오래전부터 가공품을 개발하기를 갈망해왔다. 2004년 한국과 칠레의 자유무역협정, 즉 한국-칠레 FTA가 발효되자 농민들이 국산 포도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와인 제조에 박차를 가했을 거라고,경기도농업기술원 이대형 농업연구사는 분석한다. 최근에는 전 세계 와인 시장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내추럴 와인을 국내에서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는 비단 와인에 국한한 얘기가 아니다.

사과즙을 발효한 술 사이더(cider)와 꿀을 발효한 미드(mead)를 빚는 양조장도 생겨났다. 한국형 미드를 생산하는 곰세마리양조장 양유미 대표는 미드가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붐에 편승해 유행한 만큼 미드를 비롯한 서양 술을 국내에서 직접 제조하는 일이 점점 늘어날 거라고 예측한다. 참고로 서양에서 미드만큼 낡고 오래된 술로 인식되는 사이더가 최근 재조명된 사건도 브루어리들이 좀 더 새로운 맛의 크래프트 맥주를 찾는 여정에서 비롯됐다. 소비자로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사실은 두 팔 벌려 환영할 만하다. 특히 이런 술은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로컬 푸드에 집중하는 시대의 흐름에 부합한다.

“내추럴 와인에 가장 안 좋은 건 여행이에요. 살아 숨 쉬는 술이다 보니 여행을 하면 멀미를 심하게 하죠. 그러니 유통 과정이 짧을수록 좋아요.” 충북 충주에서 내추럴 와인을 생산하는 레돔 대표 신이현의 설명이다. 이는 내추럴 와인이 장기적으로 인기를 끌 경우 국내 내추럴 와이너리가 늘어날 것을 예견케 한다. 와인이나 사이더,미드가 국내산이더라도 소비자들은 서양 문화로 인식하고 이국의 감흥을 맛보기 위해 이런 술을 마신다. 추적 가능한 건강한 식재료를 주원료로 한다는 사실은 소비자 입장에서 덤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술이 법률상 전통주에 속한다는 사실은 굉장히 아이러니하다.

전통주는 중요무형문화재가 만든 술, 식품 명인이 만든 술, 농민이 국산 농산물을 이용해 만든 술로 나뉜다. 그중 국내에서 생산하는 서양 술인 곰세마리와 레돔 등은 국산 농산물을 이용해 만든 술인 ‘지역 특산주’에 속한다. 술의 재료를 기준으로 따졌을 때 지역 특산주에 해당하는 일은 합당해 보인다. 그런데 지역 특산주의 상위 범위가 전통주라는 사실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양유미 대표의 입장도 비슷하다. “환경, 지리적 분류 위에 관념적 분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다소 이상하게 느껴진다”며 “과연 ‘전통주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 의문에 빠진다”고 고개를 저었다.

한편 이대형 농업연구사는 “전통주 등의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을 만들 때 같은 문제가 제기됐지만 대체할 단어가 없어서 그렇게 사용하는 측면이 있다”며 “전통주에서 ‘전통’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호하기 때문에 이런 의문이 계속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양조장들은 제도의 모호성을 불편해하면서도 서양 술이라는 이국적 이미지를 유지하길 바라는 한편, 지역 특산주, 즉 전통주에 귀속되는 일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유일하게 인터넷 판매가 가능하며 조세 혜택을 받는 등 이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용어와 분류에 스스로 의문을 갖는 일 외에 실제로 전통주에 속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다른 문제점은 없을까?

“제도상 전통주에 속한다는 이유로 많은 분들이 시음 후 ‘누룩 향이 난다’, ‘약재 향이 난다’고 반응해요. 누룩이 아닌 수입산 효모를 사용한다고 설명하면 어떤 분들은 굉장히 안타까워해요. 괜찮은 누룩 공장을 소개해주겠다면서요. 물론 미드라는 술이 국내에서 아직 생소한 이유도 있겠지만, 매번 선입견을 깨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설명해야 해요.” 양유미 대표의 말이다. 반대로 레돔 신이현 대표는 법률상의 분류법에 대해서는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래도 사과로 술을 빚는 일이 낯설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이국의 문화로 더 명확하게 인식할 터. 이미 이국의 식문화로 잘 알려진 와인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전통주에 속하기 때문에 받는 주세 감면 혜택에는 다소 불만이 있는 눈치다. “주세는 원가를 기준으로 책정돼요. 저희 같은 소규모 양조장은 대량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원가가 높은 편이에요. 한편 인기 있는 지역 특산주 중에는 대기업이 농가와 손잡고 그들을 내세워 출시한 술이 많아요. 그런 곳은 대량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원가를 낮출 수 있죠. 저희 같은 작은 업체는 생산량 대비 더 많은 세금을 낼 수밖에 없어요. 좋은 재료를 써서 높은 품질의 술을 생산하도록 장려하는 차원에서 제도를 좀 더 세분화해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전통주는 중요무형문화재가 만든 술, 식품 명인이 만든 술,농민이 국산 농산물을 이용해 만든 술로 나뉜다. 그중 국내에서 생산하는 서양 술인 곰세마리와 레돔 등은 국산 농산물을 이용해 만든 술인 ‘지역 특산주’에 속한다. 술의 재료를 기준으로 따졌을 때 지역 특산주에 해당하는 일은 합당해 보인다. 그런데 지역 특산주의 상위 범위가 전통주라는 사실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신이현 대표는 국내 주류 제조 허가제에서도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제조 방법 신고서를 작성할 때 게재한 목표 알코올 도수를 맞추지 못할 경우 허가가 반려된다는 사실이다. “저희는 내추럴 와인을 지향해요. 그래서 효모나 당을 전혀 첨가하지 않죠. 자연 발효하다 보니 여러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알코올 도수가 들쑥날쑥해요. 당도(brix)가 12도인 사과를 가지고 6도짜리 술을 만들겠다고 게재했는데 발효가 4도에서 멈출 때도 있거든요. 고민이 날로 깊어져서 저희보다 국내에서 더 오래 와인을 양조한 분께 여쭤보니, 그럼 주정을 첨가해 알코올 도수를 맞추면 된다는 거예요. 반대로 도수가 더 높게 나왔을 때는 물을 타서 희석하면 된다고요. 그 말은 내추럴 와인을 지향하는 저희 입장에서 굉장한 충격이었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죠. 그래서 끝내 알코올 도수 목표치를 4도에서 6도까지 모두 허가를 받았어요. 어떨 때는 국내 제도가 오히려 좋은 술을 만드는 일을 저해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좋은 술의 기준이 저마다 다르겠지만요.”

재료가 지닌 한계도 무시할 수 없다. 외국의 경우 포도, 사과를 비롯해 양조용 과일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기술이 앞서 있다. 일례로 일본은 사케를 빚기 위해 양조용 쌀을 따로 농사지을 정도다. 반면 우리나라는 생식용 과일만 재배할 뿐 아니라 대표 전통주인 막걸리와 청주를 위한 전용 쌀도 마련하지 못했다. “국내산 사과는 9할이 부사예요. 경제 논리에 입각해 다수가 선호하는 품종 외에는 개발하거나 생산하지 않는 거죠. 좀 더 복합적인 맛을 내려면 보다 다양한 종의 사과를 섞어야 해요. 저희는 현재 부사에 홍옥을 섞어 새콤한 맛을 끌어내지만, 사과의 떫고 쓴맛도 구현하고 싶어요. 그런데 사과 품종이 다양하지 못하니 현재로서는 한계가 있죠.” 그 때문에 신이현 대표는 근래에 버릇이 하나 생겼다고 한다. 낯선 동네에 가면 미처 베지 않은 사과나무가 있는지 일일이 묻고 확인하는 일이다. 한편 양유미 대표는 새로운 재료를 활용하여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려던 꿈이 법률상의 제약으로 좌절되는 경험을 했다. “대추와 계피를 소량 첨가하니 미드에 꽃향기가 증폭됐어요. 그 미묘한 변화가 마음에 들어 상품으로 개발하려고 했는데, 인근 구에서 생산하는 계피를 찾지 못해 포기해야 했어요.”

지역 특산주는 지역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을 활용하는 일을 장려하는 제도다. 자신이 직접 생산하거나 관할 시, 군 혹은 인접한 시, 군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활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특별시에 해당하는 서울의 경우 인접 구로 그 범위가 대폭 축소된다. 가뜩이나 국내산을 찾아보기 힘든 계피를 농사짓는 곳을 서울 시내에서 찾기란 불가능했을 테다. 그런데 문득 이 대목에서 의문이 고개를 든다. 곰세마리양조장의 미드는 꿀 함량이 36%이며,양유미 대표가 희망한 계피 함량은 0.1%도 미치지 않는 양이었음에도 이것이 규제 대상에 속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대형 농업연구사는 물과 주정을 제외하고 들어가는 재료 세 가지까지 규제 대상에 속한다고 귀띔한다. 즉 비율보다 개수가 기준인 격. “서울처럼 농사를 짓지 않는 지역에 한해 범위를 넓혀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특산주의 목적이 국산 농산물을 소비하도록 장려하는 일인 만큼 그 법의 취지를 살리는 게 우선돼야 합니다.” 이대형 농업연구사는 인터뷰 말미에 지역 특산주가 전통주에서 분리돼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 들려줬다. “와인, 사이더 등은 그래도 과실주로 인식되어 국내 정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편이에요. 반면 위스키, 브랜디, 맥주 등은 외국의 것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어 전통주에 귀속되는 지역 특산주에서 아예 배제됐어요. 일본만 봐도 산토리라는 국제적 명성의 위스키 제조사가 있고,또 이 회사는 일정한 재료를 국내에서 소비해요. 우리도 지역 특산주를 전통주에서 분리시키고 위스키,브랜디, 맥주 등을 지역 특산주에 포함시켜야 더 다양한 주종이 개발, 발전될 수 있다고 봐요. 그래야 누군가가 농사를 거듭하며 그에 맞는 원료를 연구, 개발할 테니 농업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개혁이죠.”

제도와 원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곰세마리양조장 양유미 대표와 레돔 신이현 대표는 국내에서 해외 술을 빚는 데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사과와 포도 품종이 부족한 만큼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국산 품종으로 국내에서 만들어서 그런지 소비자로부터 술이 신선하게 느껴진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아요. 과일 껍질에 들어 있는 자연 효모를 이용해 발효하는 내추럴 와인의 가장 큰 장점이 극대화되는 셈이죠.” 한편 젊은 감각과 생동하는 활기로 혁신에 가까운 길을 개척해온 양유미 대표의 입에서는 예상치 못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신토불이’였다. “다른 나라 꿀로도 미드를 만들어봤는데, 역시 우리 꿀로 만든 게 입에 착 감기고 잘 맞았어요. 훨씬 더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받아들여지는 맛이라고 할까요? ‘신토불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건가 봐요.” 양유미 대표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켐벨로 로제 와인을 만들어낸 신이현 대표는 머루로 레드 와인을 개발하는 중이다. 또한 토종 사과 품종을 찾는 여정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양유미 대표 역시 직접 재배할 경우 원료의 생산지를 인접 지역으로 국한하지 않는 만큼 훗날 제주 유채꿀이나 진해 벚꽃꿀을 직접 채취해 상품을 개발하는 꿈을 가슴속 깊이 품고 있다. 이처럼 건실하게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젊은 양조업자들, 그리고 이대형 농업연구사처럼 보다 현실적인 관련 제도의 개혁을 주장하는 관계자들은 국내의 음주 문화에 새로운 주향을 더하고 다채로운 풍미를 선사하는 토양이 될 것이다. 보다 현실적인 제도의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글_이주연(미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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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민 용준
  • 사진|정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