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로제가 문화를 망친다고?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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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로제가 문화를 망친다고?

영화의 흥행이 저조해진 것도, 신작 게임 발표가 더뎌지는 것도 주 52시간 근로제 때문이 아니다.

ESQUIRE BY ESQUIRE 2018.11.28

지난 10월 24일, <한국경제>는 '제작비 100억 이상 대작 잇단 참패영화계 충격’이란 제목의 온라인 기사를 발행했다. 추석 대목을 맞이해 개봉한 한국 영화 대작 중 <안시성>을 제외한 나머지 세 편인 <명당> <협상> <물괴>가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고 흥행에 참패했다는 내용의 기사는 그 원인 중 하나로 ‘주 52시간 근로제’를 꼽았다.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되며 촬영 시간을 하루 8시간에 맞추다 보니 촬영 일수가 크게 늘었으며 그에 따라 인건비와 숙식비, 장비 대여료 등이 모두 상승하고 초과 근로시간 임금도 예전보다 훨씬 높아진 탓에 손익분기점 자체가 상승했다는 분석이다.

3년 전에 비해 제작비가 30%나 급등했다는 사실이 몹시 충격적이었는지 <한국경제>는 ‘주 52시간 근로제’ 때문이라는 대목을 부제로 뽑아 강조하기도 했다. 잘나가던 한국 영화계가 주 52시간 근로제 때문에 망하게 생겼다는 이 절절한 외침에 수많은 네티즌이 답했다. 대체 무슨 헛소리람.

올해 7월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 전까지만 해도 영화 산업은 특례 업종으로 분류되었다. 사용자가 노동자 대표와 합의하면 연장 근무가 가능했고 주당 최대 68시간까지 노동을 시킬 수 있었다. 영화 산업을 특례 업종에서 제외하자는 논의는 제법 오래 진행됐지만 특례 업종 제외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것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된 올해 2월. 그리고 <한국경제>가 기사에서 다룬 네 편의 작품이 제작에 들어간 시기는 모두 2017년 4~6월이다.

<한국경제>는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된 지 2개월 만에 개봉한 영화들의 흥행 실패 원인을 주 52시간 근로제에 돌렸고, 네티즌들은 “그 영화들이 뭐 지난 두 달 사이에 만들어지기라도 한 것이냐”라는 비웃음으로 화답했다. 자신들의 실수를 뒤늦게 깨달은 <한국경제>는 25일 온라인 기사에서 해당 내용을 삭제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사를 쓴 유재혁 한국경제 대중문화 전문 기자는 미디어 비평지 <미디어오늘>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그 이유에 대해 이와 같이 설명했다. “제작사 이야기를 들어보면 올해 주 52시간 도입을 앞두고, 지난해(영화 제작 시점)부터 촬영 현장에서 하루 8시간 촬영 원칙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실제 그로 인해 제작비가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기자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기사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2018년 7월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을 앞둔 영화계 분위기를 다룬 <씨네21>의 기사에 따르면 <협상> 제작사인 JK필름은 윤제균 감독의 신작 <귀환>을 제작하며 처음으로 주 52시간 근로를 시도해볼 예정이라고 한다. <협상>의 현장은 주 52시간 근로제와는 무관하게 진행됐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지금도 주 52시간 근로제를 지키는 영화 제작 현장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모든 사업장에 동시에 적용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300인 이상 사업장에는 7월 1일부터 바로 주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되기 시작했지만 50~300인 사업장은 2020년 1월 1일부터, 5인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1년 7월 1일부터 적용된다. 대부분의 한국 영화 제작 현장은 2020년 1월까지, 독립 영화 현장은 2021년 7월까지 유예기간을 얻은 셈이다.

이게 단순히 <한국경제> 기자 한 사람의 실수로 난 오보일까? 그럴 리가. 주 52시간 근로제 때문에 업계가 힘들어졌다는 핑계는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디지털타임스>가 지난 11월 11일 발행한 온라인 기사 ‘주 52시간 직격탄 맞은 게임사신작 못 내고 우울한 성적’을 보자.

넷마블과 NC소프트, 컴투스, 게임빌, 위메이드 등이 올 3분기에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다. 그런데 그건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을 앞두고 일찌감치 근무 여건을 개선하느라 근무시간을 단축한 결과 대형 신작 출시가 뒤로 미뤄진 탓이라는 것이 기사의 골자다. 업종의 특성상 신작 출시 주기가 짧고, 개발 막바지에 인력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주 52시간 근로제 탓에 빈번했던 야근이 사라지자 출시 시기를 늦추는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물론 기사를 쓴 김위수 기자는 말미에 업계 관계자의 말을 빌려 “달라지는 노동 문화에 맞춰 부족한 일손을 충원해야 하는데, 업체 대부분이 인건비 부담으로 신규 채용을 꺼리면서 게임 출시 일정이 미뤄지는 일도 생기고 있다”며 업체의 책임을 묻기도 했다. 하지만 기자가 기사를 통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인건비 투자와 신규 채용에 인색한 업체들에 대한 비판이라고 믿을 만큼 순진한 사람이 있을까? 기사 제목이 저렇게나 선명한데 말이다.

승승장구하던 대중문화 산업이 갑자기 주 52시간 근로제 때문에 흥행에 참패하고 신작을 못 내서 울상이라는 이야기는 뒤집어 말하면 그동안 해당 산업의 성장은 오로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에 기대어왔다는 자백과 다름없다. 한국 영화의 세계 시장 진출이나 한류 문화 수출의 가장 거대한 블록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 게임 산업의 급성장과 같은 빛나는 성취가 모두 그 과실을 제대로 나눠 먹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고혈을 짜내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 아닌가.

그럼에도 일시적인 부진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사용자들은 관습적으로 이게 다 인건비 주느라 이렇게 된 것이라 답하고, 언론은 그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 적는다. 어떻게 하자는 건가요, 그럼. 다시 돌아갈까요? 노동자에게 주 68시간 이상 노동을 강제하지 않으면 굴러갈 수 없는 현장, 수익을 내도 인력을 추가로 채용하는 일에는 인색해서 한 사람 앞에 놓인 일이 산더미 같아진 현장, 그래서 야근하지 않으면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없을 만큼 노동 강도가 가혹한 현장으로? 지금이 타이밍정을 먹어가며 미싱 앞에 앉은 여성 노동자들을 쥐어짜낸 결과로 수출탑을 세우고 흐뭇해하던 1970년대인가?

특히나 게임, 음악, 방송, 영화, 연극, IT 산업 등 전통적으로 예체능 영역이라 간주되는 문화 산업은 해당 산업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일이 더 용이하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 고통을 감수하라’는 핑계를 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 산업은 헨델처럼 살아생전 부와 명예를 다 누린 예술가 대신 ‘가난하지만 자신의 열정을 화폭에 담아낸 고흐’랄지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뜨겁게 살다 간 천재 시인 이상’ 같은 가난한 예술가 상을 반복해서 확대 재생산하고는 은연중에 그런 열정을 닮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퍼뜨렸다.

산업 자체가 노동자 스스로 ‘나는 비록 돈도 못 벌어 지갑도 얇고 연일 고생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배고픈 것도 잊고 당당해질 수 있다’는 자기 최면을 걸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구조였다는 반증이다. 영화 <베테랑>(2015)에서 서도철 형사(황정민)의 명대사인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말이 사실은 영화판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위로하기 위해 강수연이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라는 사실을 곱씹어보면 선명해진다. 그 말은 사실 돈을 챙겨줄 수 없으니 대신 가오를 세우라는 산업의 요구를 내면화한 이의 목소리라는 것을.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2011, 한윤형최태섭김정근 공저)에는 다시 읽어봐도 끔찍한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건강 검진 결과 암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 IT업계 개발자는 팀장에게 병원에 가봐야 하니 한 시간 정도 일찍 퇴근하겠다고 보고했다. 팀장은 답했다. “정말 꼭 가봐야 해?” 암이 의심된다는 사람에게 자리를 비우지 말라는 핀잔을 던질 수 있었던 건, 그 뒤에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그 정도는 감내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사용자의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한쪽 폐를 절제해야 했다.

같은 책에서 저자들은 IT 노조와 진보신당이 함께 실시한 2010년 설문 조사를 인용한다. 당시 IT 노동자들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3000여 시간이었다. 한국 노동자 평균 노동시간보다 800시간, OECD 회원국 평균 노동시간보다 1300여 시간 많았다. 이렇게 쉬지 않고 일하는데 왜 우리는 놀랄 만큼 가난한가? 이 근본적인 질문은 한국의 빛나는 IT 기술 성취와 세계 속의 기술 한류 바람에 가려진다. 결국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자기 위안은 다시 ‘그래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로 귀결된다.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tvN <혼술남녀>(2016) 제작 현장에 투입되었던 고 이한빛 PD는, 2016년 10월 26일 폭압적인 사내 분위기와 고된 노동 환경을 고발하는 글을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중간 관리자 역할을 떠맡았던 그는 자신이 불합리한 착취의 집행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그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선임들은 제작진 단체 메신저 창에서 공개적으로 그를 윽박지르고 모욕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심지어 회사는 이한빛 PD의 가족이 실종 신고를 했던 10월 26일 아침, 가족들에게 평소 이한빛 PD가 불성실하고 같이 일하기 힘든 사회 부적응자였노라며 험담을 늘어놓았다. 착취가 당연해진 세상에서는 부당한 착취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사회 부적응자가 된다.

<명당>과 <물괴>가 흥행에 참패해서, 넷마블과 NC가 어닝 쇼크를 기록해서, 그래서 주 52시간 근로제가 섣부른 도입이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고 이한빛 PD를 깨끗이 잊어버린 걸까? 그들의 말처럼 우리는 다시 마음껏 노동자들을 오래오래 굴릴 수 있었던 ‘좋았던 과거’로 돌아가야 할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안다. 말은 제대로 하자.

지금 대중문화 산업이 어려운 건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산업 전체가 사람을 부당하게 착취하지 않으면 지탱이 불가능한 기형적이고 방만한 구조로 굴러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뒤로 돌아갈 수 없으니, 주 52시간 근무제가 화근이라 믿는 분들은 과거에 남아 계시라. 참, 그렇게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기를 거부하고 과거에 남아 있는 이들을 요새 말로 ‘적폐’라고 한다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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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유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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