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맛의 신세계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즐기는 방법이 다양할수록 미식의 경험치가 넓어지는 겨울철 별미, 굴에 관하여.

우리는 해외에서 굴이 귀하다는 사실을 익히 안다. 귀하다 보니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탐닉할 수 없다. 해외에서 굴은 높은 단가를 감당할 수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주로 취급한다. 가뜩이나 비싼 식재료에 셰프의 손길이 닿으니 굴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구하기 힘든 귀한 식재료를 맛보는 만큼 사람들은 굴을 음미할 때 좋은 술을 곁들인다. 최상의 궁합을 심사숙고하여 고른 술을 곁들이니 당연히 굴 맛은 배가된다.

우리는 외국 사람들이 우리네 시장 상인들이 굴을 까며 대수롭지 않게 먹고 국 끓일 때 뭉텅이로 넣는 모습을 보면 크게 놀란다는 얘기를 왕왕 들어왔다. 역으로 우리에게도 해외에서 굴을 주문했다가 놀란 기억이 있다. 양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한 번, 굴을 대하는 사람들의 온도 차이에 또 한 번 놀란다.

호화로운 분위기에서 등장한 굴은 애프터눈 티 세트를 주문하면 나올 법한 2단 트레이에 우아하게 담겨 있다. 잘게 부순 얼음 위에 껍질째 담겨 나온 굴은 그 어느 때보다 영롱해 보인다. 곁들여 나온 색색의 소스와 가니시에 눈이 부시다. 말끔히 차려입은 사람들이 굴을 기꺼이 손으로 쥐어 입술로 훔치는 모습은 어쩐지 야릇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들이 굴을 입에 넣은 후 샴페인이나 와인으로 목을 적시며 온갖 수사를 늘어놓는 모습에 정신이 아득해질 판이다. 굴 특유의 달짝지근하고 산뜻한 향을 맡으며 호로록 쨍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고조된 모습을 보자니 진작부터 굴을 그들처럼 즐겨야 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아니나 다를까, 그 속에서 맛본 굴은 어쩐지 더 달고 감치고 깨끗하며 즙도 풍부하게 느껴졌다.

그 감각은 단순히 착각이 아니다. 근거가 있는 실제에 가깝다. 해외의 오이스터 바나 시푸드 바에서 내는 굴은 우리가 평소 먹는 굴보다 상급에 속한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굴 생산량이 두 번째로 많은데 그중 20% 안팎을 해외로 수출한다. 이때 해외로 빠져나가는 굴은 대부분 알이 굵고 상품성이 높은 것들이다. 최근 한둘 생겨난 오이스터 바에서 내는 굴이 국내산임에도 외국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다.

실제로 통영의 한 굴 양식장을 취재차 찾았을 때 남성 손바닥만 한 굴을 대접받았는데, 이처럼 다년간 키워 씨알이 굵은 굴은 모두 수출용이라고 했다. 압도적인 비주얼에 씹을 때마다 맛과 향, 질감이 다르며 이로 으깨는 매 순간 즙이 흘러넘친다. 입안에 꽉 들어차고, 다음 순간 식도를 따라 묵직하게 넘어가는 느낌도 무척 인상적이다. 여기에 샴페인을 곁들이니 굴 한 알이 완벽에 가까운 요리로 평생 기억된다.

타지에서 굴에 대한 전혀 다른 인상을 받은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이를 잊지 못한다. 최근 한남동에 이어 청담동에 매장을 연 오이스터 바 ‘펄쉘’ 서익훈 대표와 시푸드 바 ‘버블앤코클스’를 운영하며 굴 총판 사업에 뛰어든 최시준 대표도 같은 입장이다. 뉴욕에서 대학을 다닌 서 대표는 미국의 유명 오이스터 바를 다니며 굴 외식 사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굴 생산량이 많음에도 주로 횟집이나 술집에서 소주 안주로 즐기잖아요. 미주나 유럽을 중심으로 발달한 오이스터 바 문화를 국내에 소개해 굴 애호가들에게 좀 더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고 싶었어요.” 서 대표가 오이스터 바를 연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CJ 해외영업팀에서 근무한 최 대표는 런던에 거주할 때 자주 가던 해산물 전문점 ‘라이트브라더스’를 그리워하다가 그곳처럼 제대로 된 시푸드 바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국내에 오이스터 바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굴은 계절 식재료다. 어른들은 예부터 ‘굴은 보리가 패면 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보리 이삭이 날 때가 4월 하순에서 5월 초순경이니 그때부터는 굴을 먹지 말라는 당부다. 또 서양에서는 단어에 ‘R’이 들어간 달에만 굴을 먹으라는 옛말이 전해진다. 9월에서 4월까지가 이에 해당하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굴 철은 똑같다.

굴은 늦봄에서 여름 사이에 산란한다. 산란기의 굴은 맛이 떨어질 뿐 아니라 난소에서 분해한 독소를 지니고 있을 확률이 있다. 굴 애호가들이 수온이 오르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다. 그렇다면 굴을 주재료로 하는 오이스터 바는 여름 내내 가게를 닫거나 냉동 굴을 익혀서 낸다는 걸까? 틀렸다. 그들은 한여름에도 싱싱한 생굴을 보란 듯이 낸다.

“거제에서 양식한 참굴을 취급하는데, 이 굴은 염색체 수를 2배체에서 3배체로 조정해 일 년 내내 생산되는 게 특징입니다.” 버블앤코클스 최 대표의 설명이다.

생물은 성 성숙에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일반적인 생물은 염색체가 2배체로 존재하는데 이를 3배체로 인위적으로 조작하면 산란, 방정 등의 성 성숙 기능이 억제되면서 그 에너지가 온전히 성장하는 데 활용된다. 이 기술을 굴에 접목하면 성장 속도가 빨라지고 비만도도 우수해지는 동시에 산란을 하지 않기에 여름에도 먹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남해에서 우리나라 참굴의 염색체 수를 3배체로 조작하며 굴 사철 시대를 열었다.

시장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뛰어든 건 공덕동에 위치한 탑클라우드23이었다. 코스에 뷔페를 접목한 탑클라우드23은 2011년 뷔페 코너에 오이스터 바를 마련하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여름에는 굴을 먹지 않는다는 소비자들의 인식 때문인지 곧 유야무야 사라졌다. 3년 후 이름을 아예 ‘디오이스터바’라고 지으며 야심 차게 문을 연 오이스터 바도 어떤 이유인지 오래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이전과 양상이 확실히 달라 보인다. 지난해 문을 연 오이스터 바 펄쉘은 한남점에 이어 지난 10월 청담점을 열며 그 가능성을 증명했다. 특히 작년 대비 여름철 굴 판매량이 올해 20% 증가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이는 소비자들이 여름철에도 생굴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음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오이스터 바에서는 굴을 어떤 술과 낼까. 버블앤코클스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샴페인을 포함한 다양한 스파클링 와인과 함께 화이트 와인을 여럿 구비하고 있다.

미식가로 이름났던 헤밍웨이는 파리 체류기를 엮은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 굴에 대한 단상을 기록하며 굴과 화이트 와인의 찰떡궁합을 강조했다. “굴을 먹으면 강한 바다 풍미와 함께 옅은 금속성 맛이 느껴지는데, 나는 이걸 화이트 와인으로 씻어낸다. 오직 바다의 맛과 즙이 풍부한 식감만 입안에 남았을 때 나는 굴 껍질에 남은 차가운 바닷물을 마신 후 입안을 화이트 와인의 청량함으로 또 한 번 씻어낸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공허한 기분을 털어내고 행복에 젖어 다음 계획을 세우게 된다.”

화이트 와인 중에서도 샤블리가 굴과 궁합이 가장 좋다고 정평이 나 있다. 샤블리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최북단에 위치한 마을 이름이자 그곳에서 생산하는 화이트 와인을 통칭한다. 중생대에 바다에 잠겨 있었던 샤블리는 토양에 굴을 포함한 다양한 조개껍질 화석이 다량 함유돼 있다. 이 땅에서 자란 포도로 담근 와인은 아무래도 미네랄 캐릭터가 강하며, 이 캐릭터가 굴과 잘 어울린다는 게 통상적 의견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굴도 품종과 재배 지역, 양식 방법에 따라 맛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어울리는 와인을 한 종류로 국한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펄쉘의 홍문식 소믈리에는 굴에 따라 와인을 달리 추천한다. “크리미하고 담백하면서 감칠맛이 뛰어난 스텔라마리스에는 기포가 작고 섬세한 샴페인을, 짭조름한 거제 참굴에는 단맛이 도드라지는 리슬링을, 바다 향이 진하면서 고소한 강진 클레오에는 적당한 산미가 있는 샤블리가 잘 어울립니다.”

우리에게 굴을 색다르게 먹는 방법을 알려준 또 다른 인물은 무라카미 하루키다. 하루키는 위스키의 성지인 스코틀랜드 아일레이섬과 아일랜드를 여행한 후 <위스키 성지 여행>이라는 산문집을 냈다. 2000년 국내에 출판된 이 책에는 아일레이 사람들이 굴을 먹는 독특한 방법이 소개돼 있다. 생굴에다 싱글 몰트위스키를 몇 방울 끼얹어 먹는 방법이다. 그곳 사람들처럼 굴을 맛본 하루키는 “갯내음이 물씬 풍기는 굴 맛과 아일레이 위스키의 그 개성 있는 바다 안개처럼 아련하고 독특한 맛이 입안에서 녹아날 듯 어우러진다”며 둘의 궁합에 열광했다.

당시 이 글을 읽은 사람은 당장 달려나가 싱글 몰트위스키와 굴을 구해오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을 게다. 하지만 이 글은 우리 삶에 당장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당시 우리에게 싱글 몰트위스키는 낯선 존재였기 때문이다. 딱 10년 후 싱글 몰트위스키가 우리나라에서도 대중화되면서 하루키가 굴에 위스키를 뿌려 먹은 에피소드도 덩달아 다시 화제를 모으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에도 겨울이면 굴을 내는 몰트 바가 꽤 생겼다. 그중 가장 안정적으로 굴을 취급하는 곳이 한남동의 ‘버번스트릿’이다.

겨울이면 굴을 내기 위해 시도하는 바가 꽤 있지만 아무래도 수급, 관리 문제로 내다 말다 하는 게 현실이다. 뉴올리언스의 도로명을 따 이름 지은 버번스트릿은 그중 가장 공백 없이 굴을 내기로 미식가들 사이에서 이름났다. 버번스트릿에서 쓰는 굴은 오이스터하우스에서 판매하는 거제 참굴이다. 3배체 굴인 만큼 사철 판매할 수 있지만 소비자의 인식을 고려해 9월 말부터 판매한다.

“굴이 상당히 크다 보니 아무래도 식감이 남달라요. 입안 가득 넣고 우물우물 씹다가 꿀꺽 삼키면 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과정이 묵직하게 느껴져요. 식도를 꽉 채우는 그 느낌이 매력적인 것 같아요.” 버번스트릿 임재정 대표의 설명이다. 버번스트릿은 현재 굴 메뉴로 생굴과 굴찜 두 가지를 선보인다. 생굴은 트러플 오일, 다진 샬롯, 후추, 칠리 소스로 시즈닝하며 경우에 따라서 캐비아를 올리기도 한다. 물론 손님이 원하면 아일레이 사람들처럼 굴에 위스키를 부을 수 있도록 시즈닝을 하지 않은 채로 내기도 한다. 굴찜은 버터와 특제 소스를 올려 찌는 게 특징이다.

임 대표는 위스키 중 아일레이섬에서 생산한 피트 향이 강한 싱글 몰트위스키가 굴과 잘 어울린다는 하루키의 말에 공감한다고 한다. “자칫 비릿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굴의 바다 향을 피트 향이 눌러주는 역할을 합니다. 한편 아일레이 위스키는 향이 강하지만 목 넘김은 깔끔한 편입니다. 아일레이 위스키와 함께 굴이 미끄덩거리며 넘어가는 그 느낌이 퍽 좋습니다.” 임 대표는 개인적으로 피트 향이 무척 센 아드벡 코리브라칸이나 옥토모어와 굴의 조합을 즐긴다고.

영국 사람들은 위스키 외에 흑맥주를 굴과 함께 즐긴다. 굴의 강한 바다 향과 짭조름한 맛이 쌉쌀하고 구수한 흑맥주 맛과 어우러져 맛이 배가되고 비린 맛은 상쇄된다. 실제로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흑맥주 브랜드 기네스는 1954년부터 아일랜드에서 열리는 굴 축제를 매년 후원한다.

몇 해 전 키조개를 취재하러 전남 장흥을 찾았을 때다. 취재가 끝나고 갓 잡아 올린 키조개를 맛있게 먹는 우리 일행을 어촌계장이 복잡미묘한 눈으로 쳐다보며 우리 민족이 키조개를 먹은 역사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국내 키조개 생산량이 적지 않음에도 우리가 맛보기는커녕 구경도 못 한 이유는 전량 일본에 수출했기 때문이다. 최근 생활수준이 높아지며 덩달아 키조개를 찾는 이가 늘어나면서 국내 시장에도 풀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편 우리가 즐겨 먹는 굴은 여전히 최상품은 대부분 수출한다고 하니 어쩐지 서운하고 억울하다. 물론 알이 굵다고 꼭 더 맛있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평소 먹는 굴도 충분히 맛있다. 하지만 품질이 우수할수록 내수 시장에 집중해 소비하는 이웃 나라들을 떠올리면 씁쓸한 게 사실이다. 오이스터 바라는 새로운 미식의 장이 열린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천혜의 바다가 키워낸 최상의 굴 맛을 경험할 때다. /글_이주연(미식 칼럼니스트)

즐기는 방법이 다양할수록 미식의 경험치가 넓어지는 겨울철 별미, 굴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