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현, 지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신의현은 지금의 인생이 좋다. | 인터뷰,스포츠,운동,패럴림픽,선수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매사 죽을 각오를 다해서 살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지금 인생도, 그때의 인생도 좋습니다.신의현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크로스컨트리 금메달리스트—올해 몇 개 대회에 참가한 건가요? 동계 종목은 11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가 시즌이에요. 올해는 동계 패럴림픽이 있었고, 그 전에 장애인 월드컵이 있었죠. 이번 11월 초에는 핀란드에서 훈련을 겸한 월드컵 대회에 참가했고요. 오는 12월부터 대회가 쭉 이어질 예정이에요. 월드컵도 서너 개나 있고,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세계 선수권 대회도 있어요. 동계 종목인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로 나뉘는 노르딕 스키에도 참가하고, 하계 종목인 핸드 사이클도 훈련 중인 걸로 알아요. 네, 국가대표팀이나 소속된 창성건설 장애인노르딕스키팀 훈련을 할 때는 평창으로 가거나 이천 장애인 훈련원에서 보내고요, 집에 있을 때는 사이클도 타고 꾸준히 운동을 쉬지 않고 하고 있어요. 인터뷰 전에 기사를 찾아보니, 이번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서 ‘여기는 전쟁터다, 지면 죽는다’라는 마음으로 전 경기에 임했다고요. 그 비장한 마음에 대해 생각하면서 현장에 왔습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은 죽는데, 운동선수가 이렇게 큰 무대에서 경기를 치르다 죽는 것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어요. 최선을 다하다 죽으면 명예롭지 않을까 싶어서 그게 힘이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실력이 있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같은 마음으로 뛸 거라고 생각해요. 이미 한 번 생사의 고비를 넘겼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대학교 졸업식 전날 교통사고를 당했지요? 네. 저도 지금처럼 장애인이 되기 전에는 장애인의 삶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죠. 사고 후에 저를 돌아보는 시간도 많았습니다. 장애인이 되고 나서야 조금씩 알게 된 세상의 불편한 면도 있어요. 절벽으로 떨어진 것과 같은 어려운 시기였지만 시간이 약이 되더라고요. 죽진 않았으니까요. 종교는 없었지만 모두 하늘의 뜻이라고 순응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고 생각했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가는데 자신을 돌아보고 단련시켰어요. 장애인이 되고 나서 본인이 이룬 성취를 그저 ‘열심히 하면 된다, 죽을힘에 다해서 하면 된다’고만 말씀하셨지만 짐작 못 할 어려움이 있었겠지요. 2009년부터 운동을 계속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평창 동계 패럴림픽이 열린다는 것 자체가 기회였어요. 노르딕 스키는 2015년에 시작했고요. 하지만 우리나라가 스키 강국도 아니고 초반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훈련, 장비에 대한 노하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코치진은 전부 비장애인이거든요.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운 거죠.아무래도 장애인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인력이 많지는 않을 테니까요. 아마 제가 나이가 어렸더라면 경험이 적어 소통하는 데 쉽지 않았을 거예요. 코치들에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지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러시아, 미국 등 해외의 실력 좋은 선수들의 영상을 많이 보고 무작정 따라 하면서 배우기도 하고요. 장비는 직접 만지고 정비하면서 제 몸에 맞게 익혔죠. 전부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노하우를 쌓아온 거네요. 팀원들도 장애인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힘든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어요. 시합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잠도 안 자면서 계속 시트를 연구했어요.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노하우를 얻었기에 올림픽에서도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불과 3~4년 만에 올해 같은 성적을 얻었습니다. 올해는 즐거운 일이 더 많았나요?운동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국가대표가 되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요. 저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한 것도 있지만 태극기를 달고 뛴다는 게 매력 있어요. 전에 우크라이나에서 월드컵이 열렸을 때, 우크라이나 국가대표 선수들 성적이 좋아서 국가를 하도 많이 들으니까 외우겠더라고요.(웃음) 나는 한국 선수니까 애국가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겼어요. 이번에 평창에서 애국가를 들려줬으니 감회가 남달랐겠어요.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장애인이 되었고 가족에게 많이 의지하는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어요. 한데 사회에 나와보니 장애인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장애인 스포츠 선수들이 더 나은 여건에서 운동할 수 있으려면 필요한 게 무엇일까요?해외에 여러 번 가보니 우리나라가 운동 환경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 아니에요. 이천 장애인 전용 훈련원은 우리나라가 최초라고 알고 있어요. 저는 실업 팀 소속인데, 실업팀을 그만둘 경우 아직 특별한 계획이 없어요. 외국은 평생 운동하고 일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뒷받침되어 있어요. 시설이나 장비 같은 지원은 나쁘지 않지만 사회적 시스템이 좀 아쉬운 면이 있죠. 그래도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패럴림픽을 통해 지금 가장 주목받는 선수가 됐어요. ‘최초’, ‘롤모델’ 같은 수식어가 부담되지는 않나요?제가 장애인이 됐을 때 다른 장애인 선수들을 보면서 자극받고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이제 제가 다른 분들에게 용기와 꿈을 준다는 사실이 기분 좋습니다. 저를 보고 힘이 된다면 감사하죠. 적지 않은 나이에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땄기에 갑작스러운 주목에 휩쓸릴 일도 없고요. 그리고 가족이 있으니까, 가족과 저 자신을 위해서 운동한다고 생각하면 크게 욕심부릴 것도 없어요. 이미 천국과 지옥을 오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음의 중심이 잡혔어요.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조금 철이 든 것 같네요.(웃음). 무의미한 질문일 수 있지만, 만약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도 매사 이렇게 투지를 불태우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을까요?아니요. 이렇게까지 매사 죽을 각오를 다해 열심히 살진 않았을 거예요. 저는 지금의 인생도, 그때의 인생도 좋습니다. 지금처럼 사회에 나오기까지 쉽지 않았지만 누구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중도 장애인이 되어서 힘들어하시는 분도, 저처럼 새로운 길을 찾으려 노력하시는 분도 모두 마음을 열고 사회에 나오면 좋겠습니다. 2018년은 신의현 선수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요?지금까지 꿈꿔온 올림픽이라는 무대에서 꿈을 이룬 해입니다. 바이애슬론 종목에서 부진했으니 다음 올림픽에서는 이 종목으로 메달을 따고 싶고요. 운동선수로서 최선을 다해서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하계 올림픽 종목인 핸드 사이클도 최선을 다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