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그와트에 입학하는 해리 포터의 마음이 이랬을까. 베트남 호찌민에서 다시 비행기로 40분 정도 이동했다. 푸꾸옥이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하니 에메랄드빛 해변이 눈앞에 펼쳐졌다. 해변가에 아름답게 늘어서 있는 리조트가 보였다. 목적지인 JW 메리어트 푸꾸옥 에메랄드 베이. 리조트는 아이스크림 해변이라는 뜻의 바이켐 해변과 마주하고 있었다.
동남아의 리조트에서 해리 포터를 떠올린 건 JW 메리어트 푸꾸옥 에메랄드 베이 리조트의 독특한 콘셉트 때문이었다. 리조트 전체를 대학교 캠퍼스를 모티프로 지었다. 234개의 객실과 빌라까지 모든 건물에 단과대학과 일반 학과의 이름이 빠짐없이 붙어 있다.
단순히 객실 이름만 대학교 학과명에서 따온 게 아니다. 리조트를 설계하면서 아예 세계관까지 함께 디자인했다. JW 메리어트 푸꾸옥 에메랄드 베이 리조트는 1900년대 초 바이켐 해변에서 번성했던 라마르크 대학교 건물을 레노베이션한 것이다. 물론 1900년대 초에 라마르크 대학교 같은 건 원래는 없었다. 하지만 일단 이야기가 시작되자 상상력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됐다. 해리 포터 이야기처럼. 이제부터는 완벽한 상상이다.
라마르크 대학교는 1940년에 문을 닫았다. 20세기 초반 베트남에서 가장 근대적인 대학교였다. 라마르크라는 학교 명칭은 프랑스 박물학자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에서 따왔다.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는 다윈의 진화론에 큰 영향을 준 과학자로 유명하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봐 밝혀두자면, 라마르크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다. 라마르크 대학교가 상상이다. 라마르크 대학교는 조류학, 동물학, 건축학 그리고 고고학으로 유명한 명문 대학교가 됐다. 설명을 듣고 있자니 베트남이 아니라 영국의 마법 학교에 온 기분이 들었다.
아이스크림 같은 새하얀 해변가에 이렇게 완벽한 상상의 대학교를 설계한 인물은 건축가 빌 벤슬리다. 이국적 럭셔리 리조트의 왕, 빌 벤슬리가 설계한 리조트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완벽한 세계관이다. 그 세계에 발을 딛는 사람에게 완벽하게 새로운 세계와 만나고 경험하게 해주는 건축가다.
JW 메리어트 푸꾸옥 에메랄드 베이를 설계하면서 빌 벤슬리는 20세기 초에 번성했던 지식의 캠퍼스를 연상했다. 그걸 21세기에 재현했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상상과 현실을 이어놓았다. 덕분에 푸꾸옥에 들어서는 순간 바깥 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된 세상과 만날 수 있게 됐다. 이제 궁금한 건 단 하나였다. 나는 어떤 학과에 배정될 것인가.
리조트에 도착하자 총지배인 타이 콜린스가 일행을 반겨줬다. 타이 콜린스는 JW 메리어트 리조트에서는 전설적인 총지배인이다. 2015년에는 올해의 총지배인상까지 받았다. 그런데 JW 메리어트 푸꾸옥 에메랄드 베이 리조트에서 그가 맡은 직책은 총지배인 그 이상이다. 라마르크 대학교 총장이다. 복장부터가 남달랐다. 20세기 초 클래식한 지식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라마르크 대학교 총장 타이 콜린스입니다.” 입학식이 시작되고 완벽한 상상의 문이 열렸다.
나는 건축학과였다. 건축에 대한 애정을 타이 콜린스가 미리 예견한 듯했다. 건축학도답게 리조트의 건물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관찰했다. 베트남은 한때 프랑스 식민지였다. 리조트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건축양식에 기반하고 있었다. 베트남 토종 견종 리지백을 호텔 마스코트로 써서 리조트 안과 밖을 연결해놓았다. 제법 규모가 되는 리조트지만 거의 모든 객실이 바다와 인접해 있고, 세 개의 수영장은 리조트 안 어디서든 5분 만에 닿을 수 있도록 요리조리 배치했다.
인테리어는 빨강, 초록, 노랑, 파랑을 다채롭게 써서 따뜻한 느낌을 풍긴다. 5000개가 넘는 오리지널 앤티크 가구가 리조트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 가구들은 빌 벤슬리 팀이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공수해 온 것이다. 모두가 20세기 초반 라마르크 대학교에서 정말 사용했던 것처럼. 분명 리조트에 왔는데 나도 모르게 학구열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리조트는 항상 풍성한 먹거리로 가득 차 있었다. 올데이 다이닝 레스토랑 템푸스 푸지트에서는 모던 베트남식과 정통 프렌치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엄선된 프랑스 파인다이닝을 맛볼 수 있는 곳은 레스토랑 핑크 펄이다. 갓 잡은 해산물을 맛보고 싶다면 레드 럼으로 가면 된다. 어느 순간부터 캠퍼스 생활에 익숙해졌다.
라마르크 대학교 캠퍼스에서 학생들은 자기 주도 학습만 하면 된다. 누구도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다. 물론 시험도 없다. 취업 걱정도 안 해도 된다. 마감 걱정은 좀 있다. 여긴 곳곳에 낭만도 있었다. 한가로움과 여유로움, 그 안에서 떠오르는 수많은 영감. 객실에 돌아와 눈금자 카펫 위에 앉아 쉴 때는 좋아하는 건축가, 건축물들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공부를 강요받는 곳이 있었다. 화학과. 바로 디파트먼트 오브 케미스트리 바다. 물론 제조하는 것은 모두 알코올이다. 흰색 가운을 입고 알코올 칵테일 만드는 법을 배웠다. 적정 비율이 매우 중요하다. 공부는 꼭 학과나 강의실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20세기 초 라마르크 대학교 선배들도 그랬겠지. 화학은 배울수록 재미있고 이상하게 취했다.
리조트 안에는 스쿨버스도 있다. 버틀러가 몰고 다니는 버기다. 버기를 타고 태어나 처음으로 서프 요가 클래스에 참여했다. 가장 두려워하는 체육 시간이다. 아니나 다를까 낙제하지 않은 게 다행인 수준이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요가가 끝나고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샹트렐 스파 바이 JW는 캠퍼스에서도 알아주는 스파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얻은 덕에 곳곳에 진귀한 버섯이 숨어 있다. 스파의 테마도 버섯이다. 각종 버섯의 효능을 만끽할 수 있었다.
JW 메리어트 푸꾸옥 에메랄드 베이는 새롭게 떠오르는 리조트의 명소다. 베트남의 여러 리조트 가운데에서도 가장 돋보인다. 아름다운 자연과 색다른 콘셉트, 풍성한 먹거리와 한가한 시간까지. 우리가 리조트에서 기대하는 모든 요소를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문득 대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졸업하느라 취업하느라 쉬지도 누리지도 못했다. 늘 과제에 시달렸고 열심히 사느라 바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라마르크 대학교에서 이 모든 걸 한꺼번에 보상받은 기분이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연착되는 동안 기내에서 라마르크 대학교에 입학해서 받은 수첩을 꺼내 이것저것 끄적거렸다. JW 메리어트 푸꾸옥 에메랄드 베이, 라마르크 대학교, 건축학과 18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