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같은 질문은 없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해결책을 만드는 것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 민주주의,반기문,칼럼,마거릿 브레넌,존 케리

질문 하나로 전쟁을 막은 여인이 있었다. 때는 2013년 시리아 내전 당시, 이미 3년에 걸친 전쟁으로 사망자 40만 명과 난민 780만 명이 발생한 비극적 상황임에도 민주화를 억압하는 시리아 독재 정부의 만행은 끝나지 않았다. 심지어 민간인 지역에 화학무기까지 살포했다. 이로 인해 1500여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자 미국은 군사개입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미군의 공격으로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지도 모를 대규모 전쟁의 서막이었다. 2013년 9월 9일, 미 국무장관 존 캐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이 시리아를 공습하기로 결정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이윽고 수많은 기자가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공습은 언제 이루어집니까?” “피해 규모는 얼마나 될까요?” “시리아의 대응은 고려하지 않습니까?”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조용히 손을 든 여기자가 있었다. 2013년 5월 당시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했던 마거릿 브레넌이었다. 그녀의 질문은 기자회견장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조금 다른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지금 이 시점에서 시리아가 공습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사람들은 그녀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시리아 공습이 기정사실화됐고 공습을 전제로 한 질문이 쏟아지고 있는 마당에 참으로 엉뚱한 질문이었다. 심지어 몇몇 기자는 비웃기까지 했다. 한참을 침묵하던 존 캐리 국무장관이 말문을 열었다. “시리아가 다음 주까지 보유하고 있는 화학무기를 다 내놓으면 공습은 피할 수 있겠죠. 그런데 시리아 대통령이 그렇게 할지 모르겠네요.”당시 이 상황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다. 아마도 존 캐리 국무장관은 여기자의 바보 같은 질문과 자신의 답변이 시리아 공습을 취소하게 만드는 단초가 될 거라곤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같은 시각, 러시아 외무장관이 미국의 기자회견을 보자마자 덥석 물었다.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를 지원하고 있었지만 미국의 개입이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곧이어 러시아 외무장관도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리아에 요청합니다. 보유하고 있는 화학무기를 국제기구 감시하에 단계적으로 폐기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자 러시아에 의존하던 시리아도 외무장관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러시아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긍정적으로 고려해보겠습니다.” 이에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화답했다. “러시아의 제안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사항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습니다.” 이윽고 프랑스와 독일에서 유엔의 발표를 지지한다는 성명이 이어졌고 군사력 투입에 부정적이었던 미국 의회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헤리 리드 민주당 원내대표는 시리아 군사 공격에 대한 찬반 표결을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버락 오바마는 시리아 문제를 외교적 해결 방법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공습은 철회되었다. 지금까지 나열한 모든 일이 한 여기자의 바보 같은 질문 후 이틀 안에 벌어진 것이다. 시리아 내전의 분위기가 자칫 국제적 갈등으로 불거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해결책을 만들어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공습이라는 해답이 아니라 관점을 달리하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평가절하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시리아 내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하나의 분쟁을 완벽하게 끝내기 위해서는 그 여기자의 질문 같은 수많은 질문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지난 10월 23일에는 시리아 무장단체에 억류되어 있던 일본 언론인 야스다 준페이가 석방되었다. 그는 시리아 내전을 취재하기 위해 2015년 6월 시리아에 잠입했다가 무장 단체에 붙잡혔고, 무려 3년 4개월 동안이나 지옥을 경험하다 간신히 풀려났다. 놀라운 것은 일본의 반응이었다. 장기간 생사의 기로에 섰던 일본인이 무사 귀국했는데, 정작 일본 사회의 여론은 냉정하고 차가웠다. 일본 정부가 위험지역으로 선포한 곳에 스스로 입국한 것이니만큼 납치당한 것은 본인 책임이라는 일명 ‘자기 책임론’이 지배적인 여론이었다. 심지어 그의 석방에 정부자금이 쓰였을 테니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일본에선 이런 분위기가 낯설지 않다. 그들은 언제나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메이와쿠(迷惑) 문화에 익숙하다. 2004년에도 이라크 위험지역에서 봉사 활동을 하다 무장 단체에 납치되었던 일본인 3명이 귀국하자마자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동일한 관점에서 국가에 폐를 끼친 야스다 준페이는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해야 한다. 지난 11월 2일, 무사히 돌아온 야스다 준페이의 도쿄 기자회견장은 안도와 기쁨이 아니라 비판과 사죄의 무대였다. 그에겐 잔인했다. 언론인으로서 사명을 갖고 위험을 감수했던 한 일본인은 이렇게 일본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았다. 그 기자회견장엔 마거릿 브레넌처럼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도쿄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해결책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봤다. 그 해결책은 자기 책임론이라는 해답이 아니라 관점을 달리하는 질문이 아닐까? 문득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떠올랐다. 한 독재 정권의 실상과 진실을 알리기 위해 용감한 행동을 했다가 불행한 일을 당하면 그 불행은 오로지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인가? 정부 방침에 맞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든 개인의 행동을 자기 책임론으로 응징해왔다면 도대체 일본의 민주화는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 정부에 피해를 주는 촛불 집회 같은 일이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곳은 민주주의 국가가 맞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