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는 성욕의 결과다. 성욕은 인간의 본능, 아니 생물체의 본능이다. 다른 생물은 어떨까? 생물 중에서도 인간과 꽤 비슷해 보이는 원숭이는 어떨까? 몇 년 전 <에스콰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남성의 성욕은 인류의 블루오션”이라고 말한 영장류 학자 김산하를 찾아갔다.
“제가 이야기할 게 많을지는 모르겠네요.” 대현동에서 오랜만에 만난 김산하가 짜장면 곱빼기를 먹으며 이야기해주었다. “인간의 섹스에 해당하는 동물의 번식 전략은 굉장히 중요한 연구 주제이기 때문에 할 이야기는 있습니다. 제가 직접 보지 않았어도 논문으로 연구된 케이스가 많고요. 하지만 제가 연구한 자바긴팔원숭이는 섹스를 많이 하는 종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3년 동안 세 가족을 관찰했는데 하는 걸 한 번도 못 본 경우도 있어요.” 섹스리스 원숭이라.
“모든 긴팔원숭이가 섹스를 안 하는 건 아닙니다.” 김산하의 다음 말이 더 신기했다. “긴팔원숭이는 약 17종에서 20종 정도 된다고 해요. 모두 열대우림에 삽니다. 그중 다른 곳에 사는 시아망이라는 종은 섹스를 굉장히 많이 해요. 자바긴팔원숭이가 섹스를 왜 안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일개 인간인 나는 동물 이야기를 들으며 자꾸 인간 생각이 났다. 섹스를 덜 하는 동네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학자가 일반인의 망상에 제동을 걸었다. “그렇게 단순화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동물학자가 말해주는 섹스의 개념은 간결했다. “곤충이나 어류의 짝짓기가 유희 때문은 아니겠죠. 그런데 원숭이쯤 되면 짝짓기의 목적이 두 가지로 나뉩니다. 번식을 목적으로 하는 것, 그리고 비번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생기죠.” 동물들은 왜 번식과 관계없는 섹스를 할까? “유흥이기도 하고 사교이기도 하죠. 집단에 편입되기 위해서.” 지나친 일반화는 곤란하다 해도 들으면 들을수록 인간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짐승 같다는 표현을 많이 하죠. 저는 그 표현에 어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도 동물의 일부입니다. 크게 다를 바 없어요.” 김산하의 말. 비슷한 말을 동물학자 다케우치 구미코도 했다. 그는 <에로틱한 우리 몸 이야기>에서 자위하는 동물의 예시를 10개쯤 들어놓고 이런 말로 마무리 지었다. “인간에게만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어느 문화권에서 강연을 하든, 제가 말했을 때 청중 반응이 좋은 영장류의 본능이 있습니다.” 김산하가 말을 이었다. “지속적인 파트너를 두고 다른 파트너와 하고 싶어 하는 게 영장류의 본능이에요. 이건 암컷과 수컷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서양 속담과 연결되기도 해요. 탱고를 추려면 두 사람이 필요하다.” 오호라. “이 이야기를 꺼내면 왠지 모두 위안받은 표정을 짓더라고요.” 나도 그런 표정을 지었을지도 모르겠다.
“영장류의 섹스 이야기라면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주실 분이 있어요”라는 말을 들었는데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노보는 섹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걸로 유명해요. 먹이나 서열에서 문제가 생길 때 섹스를 해서 갈등과 긴장을 해소한다는 겁니다.” 꿈 같은 이야기다. “그 동물을 현장에서 연구한 학자가 한국에 있어요. 다만 좀 멀리 있습니다. 군산 근처 서천에 국립생태원이 있거든요.” 그래서 미세먼지가 많은 어느 날 서해안고속도로를 탔다.
“갈등을 섹스로 해소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거예요.” 콩고에 살다 지금은 군산시청 앞에 사는 류흥진 박사가 카페베네에서 말했다. 그는 분자생물학을 전공하고 석사 과정부터 보노보를 연구했다. 보노보는 침팬지와 거의 비슷하나 덜 호전적인 걸로 알려져 있다. “보노보가 갈등을 섹스로 해소한다는 학설은 프란스 드 발이라는 유명 영장류 학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연구는 자연 상태에서 하는 것과 좀 달랐어요. 캡티비티에서 진행한 실험이었습니다.” 캡티비티? “아, 동물원이오.” 잠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물원의 동물과 자연 상태의 동물이 다르다고?
“동물원의 동물은 달라집니다.” 섹스만큼이나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류흥진이 말을 이었다. “야생 상황에서는 먹고 자는 장소를 찾는 것부터가 문제예요. 동물원은 생존에 관련된 여러 요소가 해결된 장소입니다. 동물원뿐 아니라 실험할 때 먹이를 줘도 변해요.” 먹고 사는 게 해결되고 나서부터 섹스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보노보의 경우라지만, 서양과 일본의 호황기에 출시된 온갖 도색적 예술 영화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류흥진이 다음에 한 말도 오래 기억났다. “동물원에 있는 원숭이만 사정할 때까지 자위를 합니다.”
야생 보노보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까? “역시 필요할 때는 다투죠. 섹스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습니다. 그게 될 리가 없죠. 다만 보노보는 발정기가 되면 엉덩이가 부풀어 올라요. 가임기에 맞춰서 성욕도 올라갑니다. ‘내가 지금 섹스할 수 있는 상태’라는 걸 부풀어 오른 엉덩이로 보여주는 겁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매력적인 암컷은 수컷뿐 아니라 다른 암컷에게도 인기가 높습니다. 몸매가 좋은 여자를 다른 여자들이 부러워하는 것처럼요.”
“수컷의 질투는 내 암컷이 다른 수컷의 아이를 가지려 할 때 극대화됩니다.” 류흥진은 인간과 보노보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예전에 어딘가에서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섹스하는 걸 현장에서 보면 둘을 죽여도 정상참작이 된다는 법이 있었대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하지만 이런 법이 시사하는 건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숭이 연구로 인간을 모두 이해하거나 설명하려 하면 안 되겠죠. 그러나 인간 행동을 비추는 거울 중의 하나는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기 원숭이 두 마리가 섹스를 하고 있죠.”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찍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섹스하는 수컷은 서열이 낮습니다. 그래서 서열이 높은 알파 원숭이가 섹스하는 수컷 원숭이를 때려요. 내 암컷과 섹스하지 말라는 겁니다.” 수컷은 불쌍하다. 서열이 낮으면 섹스를 하다 말고 얻어맞는다. “그런데요, 이 암컷이 때린 수컷에게 화가 납니다. 네가 뭔데 내 섹스를 방해하느냐는 거죠.” 섹스를 방해받기 싫은 마음만은 동물들이 다 마찬가지인 것 같다. 먹고살 만해야 섹스를 하고 싶어진다는 것도. 일이 너무 많아서 자위도 못 하고 잠드는 내 모습이 야생 보노보와 겹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