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가을겨울, 30년의 우정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친구가 된다는 것. | 음악,우정,친구,에세이,봄여름가을겨울

봄여름가을겨울 데뷔 30주년 헌정 앨범에 윤도현, 윤종신, 장기하, 혁오, 황정민 등이 참여한다고 했다. 앨범명은 . 수익금으로 암 투병 중인 봄여름가을겨울의 멤버 전태관을 돕는다는 소식도 따뜻했다. 데뷔 30주년이라는 시간은 또 얼마나 근사한가. 섣부르고 경솔했다는 건 봄여름가을겨울을 알아가면서부터다. 봄여름가을겨울은 김현식의 백 밴드로 1986년에 데뷔했다. 나는 1987년에 태어났다. 내가 무슨 일을 벌인 거지.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을 만났다. 우리의 대화는 처음부터 막혔다.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아 군 면제 사유가 충분한데도, 입대 기간 3년 내내 연주 할 수 있다고 해서 해병대 홍보단에 자원입대했다고 했다. “연주는 연습실에서도 할 수 있잖아요.” 되물었다. 1983년 전두환 시대, 음악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은 김현식의 백 밴드로 시작했다. 당시 대한민국 모든 젊은이들이 김현식을 너무 사랑했다고 했다. 김현식 1집 데뷔곡이 ‘봄여름가을겨울’이었고, 그래서 김현식의 백 밴드는 봄여름가을겨울이 된 거다. “너무 멋있지 않습니까? 폴 매카트니가 밴드를 만드는데 밴드 이름이 ‘예스터데이’인 거랑 같은 거예요.”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이었는데 김현식이 마약 사범으로 구속되면서 팀이 분해됐다. 베이스와 키보드 플레이어가 탈퇴했다. 떠난 두 멤버는 맏이라 집의 가장이었고, 자신과 전태관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막내였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제 갈 길을 찾아가는데, 둘은 베짱이처럼 아무 생각 안했다. 그저 연주하는 게 좋았다.“가족이고 뭐고 내 생각만 한 거예요. 음악하는 사람들은 자기만 생각해요. 다 상관없어, 난 내가 좋은 거 할 거야.” 밴드는 기타, 드럼, 베이스, 건반 네 악기가 온전한 상태인데 봄여름가을겨울은 기타 김종진, 드럼 전태관 단둘이서만, 그렇게 이 빠진 구성으로 30년을 함께했다. 전태관과는 대학교 2학년 때 만났다. 크리스마스이브였기에 만난 날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연주하는 곳에 태관이 왔는데 커피만 마시더라고요. 완전 샌님에 아마추어 한 명 왔구만 했죠. ‘(무대 위로) 올라오세요’ 했어요.” 말투만 봐도 알겠다. 첫인상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걸.“저는 프론트 맨이고 드럼은 뒤에 있잖아요. ‘어떻게 하나 보자’ 하고 있는데 볼륨이 어찌나 크던지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 처음 연주했던 곡도 생각나요. 허비 행콕의 ‘카멜레온’. 연주가 끝나고 다시 인사했어요. 최대한 다정하게. ‘난 종진이야, 친하게 지내자.’ 음악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마음이 열린다고 했다. “태관의 드럼 소리는 남달라요. 그건 대한민국 음악가들이 다 알아요.” 광기 어린 드러머라고 글로만 읽었다. “미쳤어요. 고삐 풀린 망아지죠. 연주하는 걸 보면 찰스 황태자를 위해 준비된 혈통 좋은 말이라고나 할까. 여간 고급스러운 게 아니에요. “형들과 어울렸던 김종진에게 처음 동갑 친구가 생겼다. “프로 연주자들이랑 놀다 보니 대학교에서 음악하는 사람들은 제 성에 안 차는 거예요. 태관과 나의 목표는 연주하면서 열반의 경지로 들어가는 거였어요. “ 두 시간의 인터뷰 말미에야 앨범 을 이야기했다. “사실은 정규 앨범을 낼 생각이었어요. 뮤지션이 데뷔 30주년이 되었는데, 앨범을 내고 30주년 투어를 하지, 동료들이 내는 걸 받는 건 좀 이상하잖아요. 우리가 끝난 음악가도 아니고. 올해 4월, 태관의 부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 많은 뮤지션들이 왔어요. 그때 이구동성으로 ‘형님 도웁시다. 우리가 무조건 음악을 만들 테니 판매 수익금을 태관이 형한테 줘요’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그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뮤지션 한명 한명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누구를 통하면 진정성이 떨어지잖아요. 우리는 작가주의가 있어요.” 제일 먼저 장기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혁오는 장기하를 통해 연락이 닿았다. 혁오는 이문세의 ‘소녀’를 재해석했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고 했다. 2년 전 우연히 연주를 듣고 ‘진짜배기가 하나 있네’ 했는데 인연이 이렇게 닿았다.태관과 자신이 초창기에 음악했을 때와 비슷한 애티튜드를 느꼈다고 했다. 음악에 흠뻑 빠져 있었고, 느긋하게 연주하는 것 등. 혁오에게서 꽤 큰 충격과 감동을 받은 눈치다. “‘미친 놈들 같았어요. 우리가 활동했을 당시 유행했던 리듬, 사운드를 다 넣어서 ‘형님, 비싼 큐빅들 다 넣어 만들었습니다’ 하고 던진 것 같았죠. 눈물이 팡 쏟아졌어요.” 그렇게 자신들의 우정을 응원하기 위해 나선 후배 뮤지션들과 친구가 됐다. 태관의 현재 상태는 거동이 많이 불편하지만 정신력은 자신보다 훨씬 멀쩡하다 했다. 앨범 소식을 듣고 별말은 않지만 그 기분을 알 것 같다고 했다. “후배들이 우리 음악을 했다는 것에 놀라워해요. 저도 놀란 게, 충격적으로 잘하더라고요. 우리는 요즘 음악가들을 조금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에 작업하면서 완전히 깨졌어요.”전태관과는 이런 스토리의 앨범을 발매하려고 했다. “‘제군들, 지금까지 고생 많았다. 이제 우리의 목적지가 보인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하는 우렁찬 음악. 이게 우리가 그린 그림이에요.” 김종진에게 이번 앨범은 가을이라고 했다. 한 해의 농작을 수확하는 풍요로운 시기. 후배들에게서 자신들의 음악을 새롭게 수확했으니 엄청난 축복이라 했다. “어쩌다 음악을 시작했고, 엄청나게 음악을 했는데, 그런 내 음악을 듣고 후배들이 음악을 만들고, 나한테 그 음악을 헌정한대요. 이건 대자연의 신비로움 아니에요?” 전태관과 함께한 봄여름가을겨울의 30년에 대해 물었다. “너무 행복했는데 너무 훅 지나갔어요. 감정이 여러 개가 있어요. 즐겁고, 그리고 30년이 지났다는 게 이상하게 눈물이 나요. 슬퍼서 나는 눈물인지는 모르겠는데.” 김종진에게 ‘자신들의 노래로 두 사람의 우정에 헌정한다면 어떤 노래를 택하겠냐’고 물었다. 생각할 게 뭐 있느냐는 표정으로 0.001초 만에 답했다. “‘남자의 노래’죠. 노랫말에 다 들어 있어요.” 두 사람의 계절은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있고, 여전히 항해 중이다.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