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논 '이매진', 믿음의 유산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존 레논의 'Imagine'은 이제 모두의 상상이다. | 음악,음반,앨범,뮤직,노래

1971년 2월 존 레논은 런던의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 앉아 있었다. 비틀스의 영광을 잉태한 인큐베이터와 같았던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자신의 새로운 솔로 음반을 녹음할 예정이었다. 비틀스가 아닌 존 레논으로 세상에 내놓을 앨범을 말이다. 지난해인 1970년 12월에 첫 솔로 앨범 를 발표한 지 불과 2개월 남짓한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음악적 창작열이 뜨거웠던 덕분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지난 앨범의 저조한 판매 성적에 대한 조급함이 반영된 탓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평단의 반응은 호의적이었지만 멜로디 메이커 폴 매카트니와 함께하지 않는 존 레논의 노래는 비틀스만큼의 대중적 인기는 끌 수 없을 것이란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존 레논은 비틀스의 명성이 드리운 그림자 속에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1971년 9월에 공개한 존 레논의 두 번째 솔로 앨범 은 일종의 선언과도 같은 앨범이었다. 앨범이 발매되기 전인 8월경에 존 레논은 런던을 떠나 뉴욕으로 이주해 있었다. 존 레논은 뉴욕에서 오노 요코와 함께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며 반전 아이콘이 돼 있었다. 그리고 은 반전과 평화의 메신저로서 존 레논의 존재를 형형하게 완성시키는 완벽한 복음이었다. 앨범의 타이틀과 동일한 타이틀 곡 ‘Imagine’은 평화 그 자체를 상상하는 언어이자 상징하는 노래였다. 어느 한 시대에 머물 노래가 아니었다.은 대중적인 사운드로 메시지의 파급력을 극대화시킨 앨범이었다. 다채로운 악기를 동원한 오케스트라 연주로 전작에 비해 음색은 보다 풍요로워졌고 다양한 세션 연주자들을 동원하며 풍성한 멜로디의 결을 확보해냈다.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도 앨범 작업에 참여하며 존 레논의 새로운 영광에 동행했다. 하지만 모든 이들에게 환호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명망 있는 음악 전문지 은 존 레논의 이 ‘단순하고 따분한 가식’이라는 촌평을 남겼다. 극렬한 반전주의자들 역시 노래 ‘Imagine’의 메시지가 지나치게 천진난만하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1980년 12월 8일 오후 10시 50분경 존 레논은 오노 요코와 함께 뉴욕의 아파트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존 레논의 등 뒤에서 총성이 울렸다. 불과 5시간 전쯤 존 레논의 앨범에 사인을 요청했던 사내가 존 레논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그렇게 존 레논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결코 잊히지 않았다. ‘Imagine’을 통해 존 레논이 남긴 메시지는 해가 갈수록 형형해졌다. 국가도 종교도 재산도 없는, 오늘 하루를 위해 살고 모두가 함께 나누는, 존 레논의 상상을 여전히 따라 부른다. “당신은 내가 몽상가라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나 혼자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에요. 언젠가 당신이 우리에게 동참하기 바라요. 그리고 세상은 하나가 되는 거죠.” 상상은 결코 무력하지 않다는 것을, 의외로 강력하다는 것을 존 레논은 믿었다. 이제 그 믿음을 세상이 노래한다. /글_민용준https://www.youtube.com/watch?v=YkgkThdzX-8&t=0s&list=OLAK5uy_lm9bwhxzhr6tvInIqltdtWhX3rwRhzoZ4&index=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