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논 '이매진', 믿음의 유산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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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이매진', 믿음의 유산

존 레논의 'Imagine'은 이제 모두의 상상이다.

ESQUIRE BY ESQUIRE 2019.01.11

1971년 2월 존 레논은 런던의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 앉아 있었다. 비틀스의 영광을 잉태한 인큐베이터와 같았던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자신의 새로운 솔로 음반을 녹음할 예정이었다. 비틀스가 아닌 존 레논으로 세상에 내놓을 앨범을 말이다.

지난해인 1970년 12월에 첫 솔로 앨범 를 발표한 지 불과 2개월 남짓한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음악적 창작열이 뜨거웠던 덕분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지난 앨범의 저조한 판매 성적에 대한 조급함이 반영된 탓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평단의 반응은 호의적이었지만 멜로디 메이커 폴 매카트니와 함께하지 않는 존 레논의 노래는 비틀스만큼의 대중적 인기는 끌 수 없을 것이란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존 레논은 비틀스의 명성이 드리운 그림자 속에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1971년 9월에 공개한 존 레논의 두 번째 솔로 앨범 은 일종의 선언과도 같은 앨범이었다. 앨범이 발매되기 전인 8월경에 존 레논은 런던을 떠나 뉴욕으로 이주해 있었다. 존 레논은 뉴욕에서 오노 요코와 함께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며 반전 아이콘이 돼 있었다.

그리고 은 반전과 평화의 메신저로서 존 레논의 존재를 형형하게 완성시키는 완벽한 복음이었다. 앨범의 타이틀과 동일한 타이틀 곡 ‘Imagine’은 평화 그 자체를 상상하는 언어이자 상징하는 노래였다. 어느 한 시대에 머물 노래가 아니었다.

은 대중적인 사운드로 메시지의 파급력을 극대화시킨 앨범이었다. 다채로운 악기를 동원한 오케스트라 연주로 전작에 비해 음색은 보다 풍요로워졌고 다양한 세션 연주자들을 동원하며 풍성한 멜로디의 결을 확보해냈다.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도 앨범 작업에 참여하며 존 레논의 새로운 영광에 동행했다.

하지만 모든 이들에게 환호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명망 있는 음악 전문지 <롤링 스톤>은 존 레논의 이 ‘단순하고 따분한 가식’이라는 촌평을 남겼다. 극렬한 반전주의자들 역시 노래 ‘Imagine’의 메시지가 지나치게 천진난만하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1980년 12월 8일 오후 10시 50분경 존 레논은 오노 요코와 함께 뉴욕의 아파트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존 레논의 등 뒤에서 총성이 울렸다. 불과 5시간 전쯤 존 레논의 앨범에 사인을 요청했던 사내가 존 레논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그렇게 존 레논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결코 잊히지 않았다.

‘Imagine’을 통해 존 레논이 남긴 메시지는 해가 갈수록 형형해졌다. 국가도 종교도 재산도 없는, 오늘 하루를 위해 살고 모두가 함께 나누는, 존 레논의 상상을 여전히 따라 부른다. “당신은 내가 몽상가라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나 혼자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에요. 언젠가 당신이 우리에게 동참하기 바라요. 그리고 세상은 하나가 되는 거죠.”

상상은 결코 무력하지 않다는 것을, 의외로 강력하다는 것을 존 레논은 믿었다. 이제 그 믿음을 세상이 노래한다. /글_민용준

https://www.youtube.com/watch?v=YkgkThdzX-8&t=0s&list=OLAK5uy_lm9bwhxzhr6tvInIqltdtWhX3rwRhzoZ4&inde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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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민 용준,사진|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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