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의 기록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눈을 기다렸다. 그리고 눈을 기록했다. | 서울,첫눈

“아, 오늘만 벼르고 있었는데” 표기식 사진가는 몇 주를 일기예보만 들여다보고 이날처럼 눈이 내리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카메라 하나 메고 출사를 떠날 계획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눈치도 없는 내가 그 시간을 가로챈 거다. 다른 사진가가 오늘의 일을 듣더니 혀를 찼다. “그런 날이 자주 없어요. 귀해요. 눈이 펑펑 내리는 것도 흔치 않고, 날씨도 맑아 채광도 좋았잖아요. 아, 안타까워라.” 눈이 다 거기서 거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거다. 서울이 다 거기서 거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처럼. “실장님, 이 풍경을 꼭 찍었으면 좋겠어요. 앞의 건물들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거든요. 여기 다 재개발한다고 해서 어제오늘이 달라요.” 몇몇 자음과 모음이 떨어져 나가고 남은 글자들이 가까스로 매달린 오래된 건물이 가운데 서 있다. 뒤로는 최근에 세워진 높은 건물이 흐릿하게 바래 있다. 20세기와 21세기가 공존하는 비정한 세상 속 동화 같은 모습. 사진가 실장님이 벼르고 있던 귀한 날 촬영한 귀한 서울 풍경을 여기에 담는다. 세계의 기운이 다 모인다는 곳에서 표기식 사진가가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