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르츠' 달콤씁쓸한 인생의 맛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새해 첫 영화를 고민하고 있는 당신에게 '인생 후르츠'를 추천한다. | 영화,다큐멘터리,인생후르츠,키키 키린

일본에서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1년 가까이 장기 상영하면서 화제를 모았던 다큐멘터리. 90세 건축가 할아버지 '츠바타 슈이치'와 87세 슈퍼 할머니 '츠바타 히데코'의 은퇴 후 일상을 유난한 연출 없이 담담하게 담았을 뿐인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의 여운은 몹시 크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배우 '키키 키린'이 내레이션을 맡았는데, 나직하고 따뜻한 그녀의 목소리가 작품 전체 분위기가 무척 잘 어울리는 동시에 들을 때마다 그리움을 일으키기도 한다.츠바타 슈이치 할아버지가 설계한 집에서 50년 넘게 살아온 노부부는 마당의 텃밭에 150종보다 많은 채소와 과일을 재배한다. 히데코 할머니는 87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정정하고 부지런하다. 그녀는 계절에 맞는 제철 식재료로 상을 차리고 편의점은 한번도 이용해본 적이 없으며, 수십 년 동안 단골 가게에서 그때 그때 필요한 것만 구입한다. 그리고 꼭 며칠 후에 슈이치 할아버지가 그림을 그리고 직접 쓴 엽서를 단골 가게에 보내 감사 인사를 전한다.다음 날 아침에 집앞까지 배달해주는 온라인 쇼핑이 익숙하고, 쇼핑몰은 단골에게 등급을 부여해서 혜택을 주지만 이처럼 직접적으로 소통하며 취향을 파악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관계는 요즘 보기 드물다. 노부부는 젊은 세대의 월급에 맞먹는 연금을 받고 있지만, 이들이 수십 년동안 성실하게 살아온 시간에 따른 결과다.를 보면 은퇴 후에도 시간은 변함없이 흐르며 일상을 건강하게 지탱해갈 수 있다는 희망과 위로를 선물 받는 기분이다. 당장 앞날이 불안하고 불확실한 노년의 삶이 두려워도, 오늘을, 지금을 잘 살면 언젠가 슈이치 할아버지와 히데코 할머니처럼 선한 인상을 지닌 어른으로 나이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도 생긴다."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열린다." 영화 속에 여러 번 등장하는 키키 키린의 나레이션은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와도 같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치지만 일상에 지쳐 잊기 쉬운 진리, 천천히, 차근차근 통과해야만 비로소 맞이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어김없이 새해는 찾아왔고, 지난해와 조금 다른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다면 부담없이 보기 좋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