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탁 칼럼] '보헤미안 랩소디' 퀸만 찾는 이들에게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퀸 노래를 들었다면 다른 음악도 들을 수 있다. | 음악,뮤직,칼럼,보헤미안 랩소디,퀸

처음엔 100만 정도 예상했다. ‘그 정도면 대성공’일 거라고 귀띔한 지인도 여럿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예측은 빗나갔다. 9,720,549명.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검색해 찾아낸 가 동원한 관객 숫자다. 2018년 말과 2019년 초에 걸쳐 한국에서 ‘기세(氣勢)상’을 수여한다면 주인공은 마땅히 의 차지여야 할 것이다. 이견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처음엔 15일 정도면 꺼지겠지 싶었다. 주변에서도 ‘그 정도면 잦아들 것’이라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 심미안은 작동하질 않았다. 아니, 원래 부재하는 게 아닐까 요즘 들어 의심이 깊어진다. 최근까지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는 퀸의 노래 신청이 무진장 들어온다. 뭐, 11월과 12월에 비하자면 줄어들긴 했지만 그 기세가 대체 언제쯤 완전히 꺾일지 궁금할 지경이다.솔직히 좀 힘들었다. 나는 퀸 음악 듣기를 속된 말로 고등학교 때 거의 다 뗀 사람이다. 베스트 앨범만 듣고 만 게 아니라 디스코그래피 전체를 샅샅이 뒤져서 꼼꼼하게 챙겼다. 공연 영상도 무지하게 봤다. 그중에서도 1985년 ‘라이브 에이드(Live Aid)’와 1986년 ‘라이브 앳 웸블리(Live at Wembley)’는 합쳐서 100번도 넘게 플레이했을 것이다.오해 말기를. 나는 직장에서의 의무를 소홀히 여기는 사람이 아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나는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나 라디오헤드의 ‘Creep’ 같은 곡을 직접 찾아서 감상하지 않는다. 대략 20년도 넘었을 듯싶다. 이유는 별 거 없다. 의심의 여지없는 명곡이지만 너무 많이 접해 지겨워졌을 뿐이다. 하나, 청취자가 이 곡을 신청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나 둘 모아뒀다가 어김없이 리스트에 넣는다. 지금 당장 배철수의 음악캠프 선곡표로 이 곡들을 찾아보라. 주기적으로 방송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퀸도 유사한 케이스다. 장담컨대,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개봉 전부터 퀸 음악을 가장 자주 트는 프로그램이었다. 실제로도 신청곡이 많이 들어왔다. 한데 11월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수요에 공급이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자, 상상해보라. 바로 어제 퀸 음악을 아예 특집으로 꾸며 1시간 동안 방송했는데 그 후에도 ‘왜 퀸 안 틀어줘요’라는 문자가 계속 들어온다. 당신이라면 어떻겠나.라디오의 기본적인 속성을 모르지 않는다. DJ를 포함한 제작진 입장에서는 ‘1:다수’이지만 듣는 이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적어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 라디오는 ‘1:1’로 소통하는 매체다. 일례로, 이런 사연을 자주 받는다. ‘라디오에서 이 노래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기실 팩트는 이렇다. 방송에서 꽤나 여러 번 선곡된 음악이라는 것이다. 하나 청취자의 사연 또한 팩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노래가 방송된 날 청취자가 듣지 못했다면, 그건 적어도 그 청취자에게 방송되지 않은 것과 별 차이 없다는 의미다.그럼에도, 조금은 지쳐버렸다. 나 배순탁이 누군가. 비판적인 사람들이 퀸 광풍을 보며 대한민국 냄비근성 운운할 때 소셜 미디어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 사람 아닌가. ‘차트라는 건 대개 냄비근성으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딱 2개월만 지나면 퀸 음악 싹 사라질 건데 뭘 그리 툴툴거리시나. 있을 때 그냥 즐기세요.’ 이거 참, 저 글을 쓸 때의 패기는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2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퀸 음악의 홍수에 약간 방전되어버렸다.천국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나를 본다면 “에~요!”하기는커녕 “은혜도 모르는 놈”이라며 일갈할 것 같다. 나는 특수를 한껏 누린 축에 속한다. 한 번은 번역가 황석희와, 다른 한 번은 뮤지션 윤상과 함께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고, 관련 글을 써서 원고료도 받았다. 뉴스 인터뷰로 출연료도 받았고, 퀸의 ‘Bohemian Rhapsody’를 포함한 록 명곡에 대해 강의도 했다. 이렇듯 온통 받은 것 투성이인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지쳐버렸다니 프레디 머큐리가 통탄할 일 아닌가 말이다.그럼에도 할 말은 해야겠기에 이 글을 쓴다. 부정적인 뉘앙스가 아니다. 앞서도 언급했듯 나는 사람들이 오직 퀸만 쫓았던 지난 몇 개월의 현상을 이해한다. 1달에 영화관 1번 가기도 어려운 전 세계 톱클래스 노동 사회에서 퀸을 통해 일상의 행복을 다시 찾았다는 그들의 고백에 공감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모두에게 하나만을 강요하는 듯한 풍경이 달가운 건 아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음악 바에서 퀸을 계속 신청하는 누군가에게 DJ가 “이미 많이 틀었고, 퀸 싫어하는 분도 있다”라고 대답하자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체 왜 싫어해요?”라고 되묻는 태도 말이다.이에 비하면 라디오 청취자들은 양반이다. 라디오 만화 의 대사에서처럼 라디오 청취자들은 기본적으로 호의적이다. 타인의 취향에 좀 관대한 편이라고 할까. 퀸 음악을 신청한 청취자에게 문자로 “방금 전 퀸이 나가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보내면 “아, 아쉽네요”라는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그가 퀸이 안 나온다고 해서 주파수를 바꿨을지 안 바꿨을지 나는 알 수 없다. 왠지 느낌상 바꾸지 않았을 거라고 믿고 싶다. 무엇보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안정적인 청취율이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도리어 나에게 더 큰 불편을 느끼게 한 건 퀸 열풍을 해석하는 수많은 말들이었다. 나는 ‘청춘 어쩌고’하며 퉁치는 식의 분석을 대체로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이를 ‘김난도 류(流)’라고 정의하는데 그것은 마치 ‘스포츠가 곧 인생이다’라거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처럼 우리를 취하게 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노력은 당신을 배신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당신이 예측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 있다면 노력이 당신을 배신할지 안 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뿐이다. 고로, 스포츠와 나의 삶은 관련 없다고 여기는 쪽이 정신 건강에는 훨씬 이롭다.청춘이 어쩌고 하는 분석 역시 똑같다. 당신의 개별적인 청춘과 무관하다고 여기는 쪽이 그나마 소확행을 일궈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이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퀸의 명곡이 청춘의 어떤 지점을 건드렸다’는 유의 언어가 창궐했는데, 읽다가 민망해서 스크롤을 확 내려버렸다. 우리 그냥, ‘광고를 통해 친숙해진 퀸 음악의 파괴력이 완벽히 증명된 현상’ 즈음에서 합의를 보자. 누가 봐도 이 쪽이 훨씬 설득력 있다.제안을 하나 하고 싶다. 음악가이자 물리학자인 존 파웰(John Powell)의 저서 에 따르면, 인간은 “언제든지 새로운 장르를 포함해 취향을 넓힐 수 있다”라고 한다. 중요한 건 이 책에 서술되어 있는 기본형이다. 수많은 실험을 거친 결과, 우리 안에 내재된 기본형은 4가지로 분류된다고 한다. 즉, 우리 각각은 최소 기본형 1개씩은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당신이 새로운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고 치자. 이 새로운 곡이 기본형에 들어맞을수록 당신은 그것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당연한 이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걱정 마시라. 당신의 뇌는 단순하지 않다. 인간의 뇌는 즐기는 음악의 복잡함에 대해 ‘적당한 수준’을 취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처음 감상했을 때는 생소하고 복잡하다 느끼는 음악도 몇 번 듣다 보면 친숙해져 적당함의 범주에 포함되기 마련이다.반대로, 나에게 ‘Hotel California’나 ‘Creep’이 그랬던 것처럼 너무 좋아서 자주 들었던 음악이 어느 순간 지루해지는 것 역시 필연이다. 음악이 기준점 아래로 뚝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퀸 음악은 절대 안 지겨워질 거 같다고? 아직 덜 들어서 그런 거다. 이 세상에 지루해지지 않는 음악은 없다. 누군가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잦은 만남 속에 어느 순간 식어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의 ‘퀸망진창’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따라서 애정 할수록 아껴 듣는 자세는 필수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지겨워지는 순간을 늦출 수 있다. 물론 이걸 피할 수는 없다. 언젠간 필연적으로 닥칠 일이다. 그래도 괜찮다. 사람 아닌 음악 아닌가. 다른 노래로 맘껏 갈아타도 누구 하나 욕할 사람 없다.조심스레 권장해본다. 당신이 기본형을 더 많이 지닐수록 당신은 더 다채로운 음악을 즐길 수가 있다. 존 파웰이 강조했듯 “처음에 마음에 들지 않은 곡도 몇 번 참고 들으면 새로운 기본형이 뿌리를 내려 틀림없이 보상을 안겨줄 것이다. 평생 누릴 수 있는 음악의 즐거움이 늘어나는 셈이다.” 퀸 음악이 위대한 건 상식이다. 그러나 퀸만큼 훌륭한 음악은 이 세상에 말 그대로 널려있다. 취향을 조금이라도 넓히려 노력하는 사람은 음악 바의 누구처럼 타인의 취향에 시비 걸지 않는다고 믿는다. “요즘 음악은 들을 게 없어”라고 습관처럼 투덜대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공통점이 딱 하나 있다면, 요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일 테니까. /글_배순탁